(여행기 독촉 겸 보은 여행기) 도로시 & 동쪽마녀 IN 롬싹 (푸힌롱끌라)
망고찰밥님 소도시 여행기 기다리다 제 풀에 지쳐 올립니다.
궁금해서 이미 여러 번 독촉을 드렸던 터라 죄송해서 더는 못 하겠어서요.
(파야오, 난 궁금해죽겠습니다.ㅠㅠ)
2010년 캄보디아 시엠립 여행기 이후 여행기는 10년만이구먼요.
2019년 1월 중순부터 2월 중순 사이 돌아본 곳들 중
가장 좋았던 두 곳 (콩찌암, 롬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녀온 곳들 전부 올리는 것이 아니어서 이야기가 듬성 듬성하니 양해해주세요.
백만년만에 친정에 보은합니다.^^
< FROM LOEI TO LOMSAK >
롬싹 가는 날.
4시간 정도 가야 하는터라 배가 고플까봐
버스터미널 매점에서 버터코코넛 과자와 타로포, 웨하스를 잔뜩 사서
롬싹 가는 롯뚜를 함께 기다리는 아줌마들에게도 나눠주고
롯뚜표를 판매하는 아저씨에게도 나눠주었다.
일종의 뇌물이자 친한 척이랄까.
함께 동승하는 사람들은 유시시에 나를 챙겨줄 사람들이고
롯뚜표를 판매하는 아저씨는 우리의 큰 가방에 대해 어느 정도는 눈을 감아줄 것이다.
암튼 결과적으로 나는 큰 가방 추가비용으로 백밧만 더 지불하였다.
그것만 내도 되어서 너무 고마웠다.
9시 반 쯤 되니 작은 롯뚜에 모두 다 수용이 될지 몹시 걱정이 될 만큼 많은 사람들이 롬싹에 가려고 모여들었다.
과연 이 롯뚜를 탈 수 있을까,
나와 도로시도 걱정되었지만 큰 가방이 정말이지 매우 걱정이 되었다.
그 와중에도 다른 태국사람들은 좌석의 편의대로 이리 저리 옮겨졌지만
나와 도로시는 그래도 외국인이라서 봐주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 안 통하니 그냥 포기하는 것도 같고.
너무 피곤하여 고개까지 격하게 떨구며 졸다 어느 순간 눈을 떴는데 눈 앞에 산이.
이싼지방은 산이 없는 평야지대인데 국립공원들이 몰려 있는 이 곳에는 산이 있다.
국립공원 가는 길에 있는 푸탑벅은 운해가 절경인 곳이기도 하다.
졸다 말다 하고 있는데 기사 아저씨가 롬싹이라고.
함께 과자 나눠먹으며 걱정 말라고 나도 롬싹에서 내린다던 아줌마도 롬싹이라고.
내려보니 정말 롬싹 시내 간이정류장 맞네.
우리를 내려둔 롯뚜 기사 아저씨가 우리 짐을 내려주며 어디 갈 거냐고 물었다.
워라찻 호텔 간다고 하니 같이 내린 아줌마도 같이 뚝뚝 아저씨를 물색해준다.
콩알만한 뚝뚝이 당첨되었는데 한가로이 서 있던 할아버지는 '누구, 나?' 이런 느낌이어서 너무 웃겼다.
아줌마가 50밧으로 흥정해주고
그 자리에 서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합심하여 그 콩알만한 뚝뚝에 우리 짐을 실어주었는데
짐을 욱여넣고 나와 도로시까지 억지로 구겨 타자 모두들 빵, 터져서 막 손 흔들어주고.
아, 롬싹 너무 좋다!
그 작은 뚝뚝으로 숙소까지 나와 도로시와 큰 가방들을 실어다 주신 할아버지께 고마워서
70밧을 손에 꼭 쥐어드렸다.
걷는 속도와 다를 바 없었지만 초행길에 그리 작은 골목에 위치한 숙소를 우리가 어찌 찾았겠나.
건강하세요, 할아버지!
체크인을 하고 '푸탑벅'과 '푸힌롱끌라 국립공원',''왓 파썬깨우' 투어에 대해 주인 언니에게 물어보았다.
언니는 롬싹에는 택시가 없다며 자신이 전화를 해서 물어보겠다고 하였다.
푸탑벅에는 구름 보러 가느냐며.
그런데 푸힌롱끌라는 왜 가는지 물어서 '란 힌 뿜' 을 보고 싶어서 간다고 대답하였다.
카오커국립공원은 안 가느냐 물어서
일단 먼저 세 곳을 다녀보고 좋으면 그 때 가서 결정하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왜 '파썬 깨우' 는 빼놓는지 물으니
앞 선 두 곳과 완전히 다른 쪽에 있어서 세 곳을 묶어 하루에 다 돌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뭐 할 거냐고 묻길래 일단 밥을 먹어야겠다고 하니
저녁 때 숙소에 돌아와 있으면 투어 여부를 알려주겠다고.
얼굴 하얗고 예쁜 언니가 똑똑하고 일도 잘 하고 성격까지 시원 시원하네.
푸탑벅 운해를 보고 싶어서 아침 6시에 출발하겠다고 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숙소에서 푸탑벅까지 택시로 거의 1시간 거리여서
최소 아침 5시에는 숙소에서 출발하여야 운해를 볼 수 있었던 건데
나는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인 줄 알았고 일출 시간도 너무 늦게 잡았던 탓에
운해는 볼 수 없었다.
푸탑벅 가는 도중에 해가 떠올랐고 푸탑벅 도착해서는 해가 아주 중천에 더 있있다.
내 평생 다른 나라 운해를 또 어디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게으름을 부렸을까.
그깟 놈의 잠 죽으면 싫어도 쭉 자는 것을.
푸힌롱끌라국립공원 입장료는 어마어마하였다.
1인 500밧에 무슨 입장료 1인 15밧.
그에 비해 내국인 가격은 40밧.
아, 진짜 거 너무한 것 아니오!
도로시는 눈 앞에서 천밧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고 정말 화를 냈다.
어쩌겠니.
외국인 이중가격제가 더운 나라들 공통 룰인 것을.
그래도 푸힌롱끌라 역시 들고 나는 길은 절경이어서 그나마 마음이 풀렸다.
푸탑벅도 멀었지만 푸힌롱끌라는 더 멀었다.
가는 길에 핏사눌록 표지판이 보이길래 뭐지, 하였는데
푸힌롱끌라는 펫차분보다 핏사눌록에 훨씬 더 가깝다고 기사아저씨가 알려주셨다.
그랬군.
비싼 돈 내고 왔으니 아주 구석 구석 샅샅이 보고가겠다고
열의를 불태우며 두 주먹 불끈 쥔 도로시가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웬지 안내인 신분증으로 보이는 명찰을 목에 건 오빠가 다가와서
명찰을 보여주고는 알 수 없는 태국어로 뭔가 설명해주었다.
뭐지, 했는데 눈치 빠른 도로시는 이 공원 루트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일단 입구에 있는 루트맵 사진을 찍고 들어가니 오빠가 어쩔 줄 몰라했다.
왜지, 그러면서 걸어들어가는데 웬 할아버지가 따라오시더니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아, 이 국립공원은 팀별로 가이드가 따라붙나보다.
처음엔 귀찮을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가 길 안내는 물론 안전하게 발 디딜 곳도 말씀해주시고 포토존도 알려주시고
무엇보다 절경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포인트마다 짚어주시는데다
이곳에서만 서식하는 식물과 서식지도 정확히 말씀해주셔서 좋았다.
푸힌롱끌라 '란 힌 뿜' 은 지형이 정말 신기하기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화산폭발로 생겨나 오랜 세월 침식과 풍화작용에 의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니
사람이 세운 그 어떤 건축물 같은 것과 비교할 바 있겠나, 싶었다.
처음에는 비싼 입장료 때문에 울화통을 터뜨린 도로시도 낸 돈이 아깝지 않다고 할 정도였다.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역시 압권이었으며 숲 특유의 청량함 때문에 기분 좋고 상쾌하였다.
가이드 할아버지가 문득 땅에 쪼그려 앉으시더니 우리를 부르셔서 함께 쪼그려 앉았는데
뭔가 길쭉한 타원을 그리셨다.
그리고는 그 원을 반으로 가르시고는 너는 위쪽이야 아래쪽이야, 하고 물으셨다.
도로시가 냉큼 아래쪽이죠, 했더니 엄청 만족한 웃음을.
할아버지 정은이 아시나?
"그걸 어떻게 몰라.
뉴스에 계속 우리 문재인 대통령 나오시고
김정은하고 트럼프 나란히 앉아 얘기하는 거 나오고 또 나오고 그랬는데."
참 그랬지.
우리가 낭롱 버스터미널에서 우본행 버스 기다리고 있을 때
뉴스에서 그 장면이 나오고 또 나오고 했었지.
어쨌든 우리나라 이슈를 알고 계시는 할아버지 최소 인텔리.
도로시 종이꽃 가든 인증샷.
이곳의 사층리 지형과 어우러져 아낌없이 흐드러진 종이꽃이 한층 신기하고 예쁘게 느껴졌다.
다시 인증샷 포즈를 취하려던 도로시가 문득 뒤돌아보더니.
"엇, 엄마, 저 언니 저 바위에 어떻게 올라갔을까?"
"바위까지 계단 같은 돌이 놓여있다거나 오르막길이 있다거나 하겠지.
가보면 알지 않을까."
호기심에 올라갔다가 도로시는 매우 후회하게 된다.
도로시 샌들 신은 발이 . . .
종이꽃 가든 거의 다 나와서.
와, 역시 푸힌롱끌라국립공원 내 한 곳 답다.
저 빽빽한 숲은 실제로도 시각적으로도 굉장한 청량감을 주었다.
숲은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
들아갈 때는 몰랐는데 종이꽃 가든 입구에 커피숍이 있었다.
아마도 소수민족이 운영하고 그 수익금은 모두 소수민족에게 돌아가는 소수민족 후원 커피숍인 듯 했다.
이런 건 꼭 마셔줘야 한다.
들어가니 웬지 소수민족으로 보이는 바리스타 할머니가 계셔서
'아메리카노 아이스' 라고 말씀드리니 아마도 우유를 넣어줄까, 물으시는 것 같았다.
우유와 설탕은 넣지 마시고 얼음은 쪼끔만 넣어주세요, 라고 말씀드렸는데
얼음을 너무 적게 넣었더니 커피 양이 너무 적어졌다.
바리스타 할머니는 그게 마음에 걸리셨는지 샷 내린 걸 더 넣어줄까, 하시는 것 같았는데
못 알아듣고 괜찮다고 말씀드렸지만 마셔보고 후회했다.
말그대로 완전 아메리카노라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투 샷으로 마시는 까탈스러운 내 입에 밍밍하였지만
그건 순전히 내가 바보여서 그런 거다.
어떤 소수민족인지 이름을 알고 싶었지만
바리스타 할머니가 영어를 커피 용어와 하나 둘 셋 정도만 할 줄 아셔서 여쭤보는 것 실패.
커피숍 내부.
바리스타 할머니를 닮아 소박하고 귀엽고.
소수민족 바리스타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귀엽고 소박한 바리스타 할머니의 귀엽고 소박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도로시, 이게 웬일이야!"
"히잉, 아까 그 언니가 서 있던 바위까지 올라갔는데 비탈길이 흙투성이여서 이렇게 됐어."
"그러게 거길 뭐 하러 올라갔어 그래."
말은 이렇게 했지만
무슨 탄광에서 48시간 석탄만 캐다 나온 것 같은 도로시의 까만 발을 보고 둘 다 빵, 터져서 한참을 웃었다.
누가 보면 태국 석탄은 혼자 다 캐고 온 줄 알겠어요.
그런데 또 발은 통통한 애기발이어서 웃다 울었다.
주차장으로 가려고 종이꽃 가든을 나오면서
출입문을 열어주던 관리인 아저씨에게 "고맙습니다" 하니 바로 "한국인" 이라고.
아니, 그런데 왜 다들 나더러 태국사람이라고 하냐구요.
기사 아저씨 차를 찾으니 아저씨는 그늘에 세워둔 차 안에서 한창 오수 중이셨다.
어차피 이른 아침이었던 것은 마찬가진데 아침 5시에 나와서 운해를 볼 것을,
하는 후회가 다시 밀려왔다.
숙소로 돌아오니 오후 3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너무 너무 피곤하였지만 바트화가 하나도 없어서 밥도 못 먹을 지경이었다.
밥을 먹으려면 환전을 반드시 해야 해서
혹여 은행문 닫을까봐 숙소에서 제일 가까운 크룽스리은행으로 뛰다시피 갔더니.
와, 청경아저씨가 셔터를 막 내리려던 참이었다.
내가 황급히 뛰어들어가니 들여보내주셨다.
원래 태국 은행은 오후 4시까지는 영업을 하는데
롬싹은 워낙 시골이어서 그랬는지 오후 3시 반이면 영업 마감한다.
안내 직원이 어찌 왔느냐 물어서 환전하러 왔다고 하였는데
영업 마감하려던 참이어서 아마도 점장님이 나와 앉아 계시다 당첨되신 듯 하였다.
아무튼 점장님께 환전하러 왔다고 말씀드리니
엥, 얘는 왜 이 시간에 이 곳에서 내게 영어를 구사하고 그러니, 하는 얼굴이었다가
혼자 빵, 터지셨다.
환전한 돈을 건네주며 내게 하신 말씀 때문에
직원 전부와 아직 남아 있던 몇 안 되는 고객들까지 빵, 터졌다.
"안녕히 가세요. 태국사람인 줄 알았는데 한국사람." 이라고 하셔서.
유쾌하신 점장님, 저도 질 수 없지요.
"네, 저는 한국사람입니다. 내일 또 만나요, 태국사람." 하며 배꼽인사를.
전 직원이 다 빵, 터졌다.
그리고 은행 마감시간에 걸리는 바람에 점장님 제외 전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청경아저씨의 안전한 에스코트를 따라 은행 뒷문으로.
공유 좋아하는 언니들, 반가웠어요.
아직 저녁 시간이 되기 일러 덜 들어선 장에서 망고, 무삥을 사들고 숙소로.
배고프던 참에 숙소 근처 병원 앞에 국수 노점이 서길래 한 그릇 먹어봤는데 맛있었다.
주문을 받던 국수집 딸내미 중 하나가 내게 어디서 왔어요, 하고 묻길래
한국서 왔지요, 대답하니 너무 좋아하였다.
예쁜 남의 집 귀한 딸.
안전하고 유쾌하고 행복하고 의미 깊고 무엇보다 참 감사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