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뎬에 다다르기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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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뎬에 다다르기 까지

고구마 2 498
(2005년 글입니다.)



새벽 6시 반까지 나오라던 운전수는 일단 우리를 빵차에 태우고서는 끈질기게 마을을 돌아다니며 손님들을 긁어모아 기어이 만석을 채웠다. 7시 반에 출발한 차는 다행히도 5시간도 안 되서 우리를 샹청에 데려다 놓았다. 두 사람에 150위엔으로 철썩 같이 약속했는데, 막상 우리가 200위엔을 내미니 딸랑 20위엔 만 거슬러 주려는 가당찮은 액션을 취한다.
평소 같았으면 적당한 선에서 더 주거나 해버렸겠지만, 지금 우리 상태가 아저씨보다 더 못하면 못한데... 어디 벼룩의 간을 빼먹으시려고...

 

샹청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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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 거스름돈을 다 받고 둘러본 샹청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무슨 서부영화에 나오는 황토 먼지 휑휑 일고, 둥그런 나무 덤불 획획 날아다니는 곳처럼 말이다. 마을에는 돼지와 소들이 동네 개들 마냥 길가를 어슬렁거리며 땅에서 뭔가를 주워 먹고 있다.


샹청 중심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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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여길 뜨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던 지라, 숙소를 잡은 후 전혀 정류장 같지 않은 정류장으로 가봤더니 매표창구는 자물쇠가 걸려있고 아무도 없다. 아웅~ 왜 이렇게 연속적으로 되는 일이 없냐...
다만 한 가지 위안이라면, 매표소 옆에 붙어 있는 요금표엔 중뎬 가는 표 값이 70위엔이다. 차비를 제외 하고 나서도 그나마 몇 십 위엔의 돈이 남게 된다는 거다. 적어도 돈 한 푼 없이 중뎬에 도착하거나 표 값도 없어서 오도가도 못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 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갑자기 안도감이 팍 든 나머지 우리는 과감히 제대로 된 식당에 들어가 점심도 먹고 과일도 약간 사먹으면서 20위엔이라는 거금을 쓰게 되었다.


닫힌 버스 매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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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한 마음으로 정류장에 들락날락 한지 네 번째가 되자 그곳 직원인 듯한 불친절 만빵인 아줌마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내일 중뎬 표 지금 예약할 수 있냐고 했더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중국말로 뭐라고 빠르게 말하며 사라지는데 혹시 내일 나가는 차가 없다는 소린가 싶어서 간이 쪼그라든다. 다시 한 번 용기를 내 물어봤더니, 지금은 없고 내일 아침 7시에 직접 와서 표를 사란다. 에휴...
그나마 차가 있긴 있구먼...

그 다음날 새벽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정류장으로 갔더니만, 이 조그만 마을에서 다들 어디에서 숨어 있다가 나왔는지 승객들이 꽤 많은데다 그중엔 서양인 여행자들까지 있다.
나는 차에 올라타고 요왕은 표를 사러 갔다. 그런데 기다려도 안 오길래 매표소로 올라가 보니 요왕이 이상한 표정으로 서있다. 켁! 샹청에서 중뎬으로 곧장 가는 길이 끊겼단다. 그래서 다른 마을을 들러서 돌아가야 돼서, 표 값이 1인당 25위엔씩 추가... 95위엔!
허걱! 지갑을 탈탈 털어 표 값을 지불하고 나니 남는 돈은 달랑 9위엔 밖에 없다.
어제 저녁은 입맛이 없어서 대충 만토우로 때웠는데... 식당에서 밥이라도 사 먹었더라면... 아... 생각하기도 싫다.
게다가 26인승 버스에 좌석 번호가 24, 25다. 다른 사람들은 어제 아침에 다 예매를 해 두었는지 이 차는 단 하나의 좌석도 빈 것이 없이 꽉 채워진 채 출발 한다. 조금이라도 늦게 나왔으면 순번에 밀려 이 차마저 못 탈 뻔 한건가...
제발 무사히 중뎬에 도착해야 할 텐데...
혹시 예전에 쏭판 갈 때처럼 이 차가 퍼지기라도 하면... 그래... 그때는 얼굴에 철판 깔고 저 서양인들한테 거머리처럼 빌붙어야지. 라며 결의까지 다지며 차에 올랐다.

중간에 점심 먹으라고 내려준 식당에서 우리는 담 밖에 앉아서 풀을 뜯거나 이러 저리 할 일 없이 걸으면서 빨리 차가 출발하기만 기다렸다.
절대 배고픈 표정 짓지 말자며, 배가 불러서 안 먹는 듯 행동하자며 입을 모았지만 눈은 자꾸 담벼락 너머의 하얀 밥그릇에만 꽂히고... 이게 웬 거지 중에 상거지 꼴이람... 다른 것도 아니고 밥을 훔쳐보다니...
요왕은 밥을 훔쳐서라도 먹겠다는 헛소리를 한다. 이 상황에서도 날 웃기려고 하는 용기가 가상하지만, 밥을 훔쳐 먹겠다는 말을 할 때 눈빛에 진실이 가득한 것이... 이궁~ 불쌍해라...
비쩍 말라서 나처럼 비축해둔 지방도 없는 탓에 더 힘이 드는 게야....



 

중뎬으로 가는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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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청에서 더롱 쪽으로 돌아 중뎬으로 가는 길. 깊고 길고 험한 협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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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행으로 왔으면 훨씬 빨리 도착했을 텐데, 둘러둘러 오느라 중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가 넘어 있었다.
하루종일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생짜로 굶은 채로 도착하니 은행은 모조리 문을 닫았고, 마지막 믿을 구석은 자동인출기뿐...
무거운 배낭을 지고 무조건 돌아다닐 수 없어서 결국 가방은 내가 지키고 요왕 혼자 시내를 헤매기로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멀리서 요왕이 걸어오는 게 보이는데, 어깨가 축 처져 있다.
흑... 출금에 실패 했구나...
하지만 점점 다가올수록 살살 웃으면서 엄지손가락을 번쩍 든다. 아아~ 돈 찾아오는 건가...?
- 돈은? 돈은?
- 찾았지... 낄낄...
- 근데 아깐 왜 그렇게 축 쳐져 있었어?
- 너 놀려줄려고 설정한 거다. 낄낄...
이런 상황에서도 설정을 구사하는 저 가상한 쇼맨쉽이라니...
듣고보니 ATM에서 한 번에 인출된 것도 아니어서 이 카드 저 카드 넣어보고 이 은행 저 은행 돌아다녔단다. ATM 조차 안 될 경우에는 신용카드 되는 호텔(비싼 곳이겠지만....)에서 하룻밤 잘 각오까지 했다고...

우연히 만난 한국인 여행자들이 일러준 숙소에 가방을 팽개쳐 놓고 우리는 재빨리 식당가로 나왔다.
로취베이트를 향해 돌진하는 바퀴벌레들처럼 식당으로 들어가서(그것도 한국음식 하는 식당~ 아하하하~) 찌개를 주문하고 나니 침이 막 고인다.
하루 종일 암 것도 못 먹어 이미 감각을 상실한 우리의 위장은 재빨리 음식들로 채워져, 두둑해진 지갑만큼이나 빵빵해졌다.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했던 말... ‘밥은 먹고 다니냐?’ 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왱왱 울리는 날이었다.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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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버섯이 이쪽 특산물이라고 해서 송이버섯 볶음도 먹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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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롭구나~
진정한 샹그릴라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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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냥냥 2020.08.20 15:09  
요즘은  참  환전하기  편한데  예전엔...
읽는  내내  스릴러물을  보는듯한  쫄깃함 이었어요.ㅎ
알뜰공주 2020.08.31 11:01  
실감나게 글을 잘쓰는 고구마님의 여행기가 한편의 멋진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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