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뎬에 다다르기 까지
새벽 6시 반까지 나오라던 운전수는 일단 우리를 빵차에 태우고서는 끈질기게 마을을 돌아다니며 손님들을 긁어모아 기어이 만석을 채웠다. 7시 반에 출발한 차는 다행히도 5시간도 안 되서 우리를 샹청에 데려다 놓았다. 두 사람에 150위엔으로 철썩 같이 약속했는데, 막상 우리가 200위엔을 내미니 딸랑 20위엔 만 거슬러 주려는 가당찮은 액션을 취한다.
평소 같았으면 적당한 선에서 더 주거나 해버렸겠지만, 지금 우리 상태가 아저씨보다 더 못하면 못한데... 어디 벼룩의 간을 빼먹으시려고...
약속한 거스름돈을 다 받고 둘러본 샹청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무슨 서부영화에 나오는 황토 먼지 휑휑 일고, 둥그런 나무 덤불 획획 날아다니는 곳처럼 말이다. 마을에는 돼지와 소들이 동네 개들 마냥 길가를 어슬렁거리며 땅에서 뭔가를 주워 먹고 있다.
샹청 중심거리
어차피 여길 뜨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던 지라, 숙소를 잡은 후 전혀 정류장 같지 않은 정류장으로 가봤더니 매표창구는 자물쇠가 걸려있고 아무도 없다. 아웅~ 왜 이렇게 연속적으로 되는 일이 없냐...
다만 한 가지 위안이라면, 매표소 옆에 붙어 있는 요금표엔 중뎬 가는 표 값이 70위엔이다. 차비를 제외 하고 나서도 그나마 몇 십 위엔의 돈이 남게 된다는 거다. 적어도 돈 한 푼 없이 중뎬에 도착하거나 표 값도 없어서 오도가도 못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 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갑자기 안도감이 팍 든 나머지 우리는 과감히 제대로 된 식당에 들어가 점심도 먹고 과일도 약간 사먹으면서 20위엔이라는 거금을 쓰게 되었다.
닫힌 버스 매표소
초조한 마음으로 정류장에 들락날락 한지 네 번째가 되자 그곳 직원인 듯한 불친절 만빵인 아줌마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내일 중뎬 표 지금 예약할 수 있냐고 했더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중국말로 뭐라고 빠르게 말하며 사라지는데 혹시 내일 나가는 차가 없다는 소린가 싶어서 간이 쪼그라든다. 다시 한 번 용기를 내 물어봤더니, 지금은 없고 내일 아침 7시에 직접 와서 표를 사란다. 에휴...
그나마 차가 있긴 있구먼...
그 다음날 새벽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정류장으로 갔더니만, 이 조그만 마을에서 다들 어디에서 숨어 있다가 나왔는지 승객들이 꽤 많은데다 그중엔 서양인 여행자들까지 있다.
나는 차에 올라타고 요왕은 표를 사러 갔다. 그런데 기다려도 안 오길래 매표소로 올라가 보니 요왕이 이상한 표정으로 서있다. 켁! 샹청에서 중뎬으로 곧장 가는 길이 끊겼단다. 그래서 다른 마을을 들러서 돌아가야 돼서, 표 값이 1인당 25위엔씩 추가... 95위엔!
허걱! 지갑을 탈탈 털어 표 값을 지불하고 나니 남는 돈은 달랑 9위엔 밖에 없다.
어제 저녁은 입맛이 없어서 대충 만토우로 때웠는데... 식당에서 밥이라도 사 먹었더라면... 아... 생각하기도 싫다.
게다가 26인승 버스에 좌석 번호가 24, 25다. 다른 사람들은 어제 아침에 다 예매를 해 두었는지 이 차는 단 하나의 좌석도 빈 것이 없이 꽉 채워진 채 출발 한다. 조금이라도 늦게 나왔으면 순번에 밀려 이 차마저 못 탈 뻔 한건가...
제발 무사히 중뎬에 도착해야 할 텐데...
혹시 예전에 쏭판 갈 때처럼 이 차가 퍼지기라도 하면... 그래... 그때는 얼굴에 철판 깔고 저 서양인들한테 거머리처럼 빌붙어야지. 라며 결의까지 다지며 차에 올랐다.
중간에 점심 먹으라고 내려준 식당에서 우리는 담 밖에 앉아서 풀을 뜯거나 이러 저리 할 일 없이 걸으면서 빨리 차가 출발하기만 기다렸다.
절대 배고픈 표정 짓지 말자며, 배가 불러서 안 먹는 듯 행동하자며 입을 모았지만 눈은 자꾸 담벼락 너머의 하얀 밥그릇에만 꽂히고... 이게 웬 거지 중에 상거지 꼴이람... 다른 것도 아니고 밥을 훔쳐보다니...
요왕은 밥을 훔쳐서라도 먹겠다는 헛소리를 한다. 이 상황에서도 날 웃기려고 하는 용기가 가상하지만, 밥을 훔쳐 먹겠다는 말을 할 때 눈빛에 진실이 가득한 것이... 이궁~ 불쌍해라...
비쩍 말라서 나처럼 비축해둔 지방도 없는 탓에 더 힘이 드는 게야....
직행으로 왔으면 훨씬 빨리 도착했을 텐데, 둘러둘러 오느라 중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가 넘어 있었다.
하루종일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생짜로 굶은 채로 도착하니 은행은 모조리 문을 닫았고, 마지막 믿을 구석은 자동인출기뿐...
무거운 배낭을 지고 무조건 돌아다닐 수 없어서 결국 가방은 내가 지키고 요왕 혼자 시내를 헤매기로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멀리서 요왕이 걸어오는 게 보이는데, 어깨가 축 처져 있다.
흑... 출금에 실패 했구나...
하지만 점점 다가올수록 살살 웃으면서 엄지손가락을 번쩍 든다. 아아~ 돈 찾아오는 건가...?
- 돈은? 돈은?
- 찾았지... 낄낄...
- 근데 아깐 왜 그렇게 축 쳐져 있었어?
- 너 놀려줄려고 설정한 거다. 낄낄...
이런 상황에서도 설정을 구사하는 저 가상한 쇼맨쉽이라니...
듣고보니 ATM에서 한 번에 인출된 것도 아니어서 이 카드 저 카드 넣어보고 이 은행 저 은행 돌아다녔단다. ATM 조차 안 될 경우에는 신용카드 되는 호텔(비싼 곳이겠지만....)에서 하룻밤 잘 각오까지 했다고...
우연히 만난 한국인 여행자들이 일러준 숙소에 가방을 팽개쳐 놓고 우리는 재빨리 식당가로 나왔다.
로취베이트를 향해 돌진하는 바퀴벌레들처럼 식당으로 들어가서(그것도 한국음식 하는 식당~ 아하하하~) 찌개를 주문하고 나니 침이 막 고인다.
하루 종일 암 것도 못 먹어 이미 감각을 상실한 우리의 위장은 재빨리 음식들로 채워져, 두둑해진 지갑만큼이나 빵빵해졌다.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했던 말... ‘밥은 먹고 다니냐?’ 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왱왱 울리는 날이었다.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