쏭판에서 벗어나 쥬자이거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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쏭판에서 벗어나 쥬자이거우로~

고구마 1 460

(2005년 글입니다.)




쏭판에 도착하여 처음 본 숙소의 광경에 맘의 데미지를 상당히 입은 채 다시 비 오는 밤거리로 나섰다. 할 수 없이 북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데...
앗~ 그런데 이게 웬일~ 이 산골 마을에서 ‘한글’을 보게 되다니... 김치찌개, 말 트레킹 같은 한글이 창문에 크게 붙어 있는걸 보니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이 틀림없는 듯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조건 들어가 ‘아무도 안계세요~’ 라고 불러 봐도 아무 인기척이 없다.
다시 비실비실 되돌아 나와 오도가도 못 하고 멍하니 앞을 바라보니(이곳은 쏭판의 거의 북쪽 끝이라서 더 올라가봤자 별 볼일이 없었다) 바로 전면에 숙소의 간판이 있는 거다. 만세라도 부를 것 같은 마음으로 들어 가봤더니, 오호~ 바로 얼마 전에 개장을 한 듯 반짝반짝 한 모습이라니... 안도의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지금쯤 나머지 승객들은 그 똥차 안에서 뭘 하고 있으려나...

피곤과 좌절에 쩔어서 쿨쿨 자다가 다음날 아침 일어나 둘러본 쏭판의 풍경은 한마디로 ‘심봤다~’였다. 우리 숙소 바로 뒤의 높지 않은 산에는 구름자락인지 안개자락인 모를 하얀 띠가 걸쳐져 있고,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전부 산뿐인 이 작은 산골마을의 외양은 정말로 기대이상이었다. 얼마 전만 해도 이 동네는 온통 공사판에 포크레인으로 갈아엎고 있는 삭막한 풍경이었다는데, 그 대공사가 거의 끝이 난 모양이다. 다행스럽게도(아니면 우리가 알 수 없는 다른 목적이 있는 건지 몰라도...) 이 대대적인 보수의 목적은 현대적으로 지어진 네모난 건물의 난립이 아니라, 전통적인 분위기의 재현이었나 보다. 똑같은 인테리어로 지어진 중국 전통가옥 스타일의 건물들이(게다가 홍등까지 달고) 촘촘히 들어서 있는 이 묘한 분위기는 마치 영화 세트장 같은 느낌을 선사했다.
잘 만들어진 이 마을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이제껏 중국 도시에서 봐오던 시민들과는 확~ 다른 모습! 무척이나 빨간 볼을 가진 처녀들과 아이들의 얼굴, 티벳 특유의 검고 치렁한 옷을 걸친 아주머니들이 손수 만든 버터를 내다팔고, 토각토각 말을 타고 다니는 아저씨들까지... 마치 이곳에서 찍고 있는 영화 속의 엑스트라들이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주는 곳이었다. 이미 마을 곳곳을 차지하고 있는 현대적인 상점들의 위세가 어느 순간부터 이 마을의 묘한 매력을 조금씩 갉아먹겠지만, 어쨌든 지금 현재 쏭판은 흥미롭다.
전날 버스가 멈춘 곳으로 살랑살랑 걸어 가봤더니, 버스도 승객도 아무것도 없었다. 도대체 어제 밤 어떻게 일이 마무리 된 걸까...


계곡 속의 예쁜 도시 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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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 파는 티벳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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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이곳에서 3박을 했었지만, 기억할만한 일을 한 것은 거의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우리의 의욕을 꺾고 발목을 잡았다. 여기서 가깝다는 황룡을 보러갈까 아니면 이왕 이렇게 됐으니, 쥬자이거우 갔다 온 담에 하려고 했던 말 트레킹을 지금 해버릴까 망설였지만, 결국은 그냥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밥 사먹는 일로 하루하루를 소일했다.
이렇게 매일 비가 오는 날씨에 산으로 말 타고 가는 트레킹을 할 엄두도 나지 않아서 나흘째 되는 날 아침, 짐을 꾸려 쥬자이거우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예정대로 라면 3일전에 도착했어야 할 곳.... 얼마나 멋진 곳인지 한번 두고 보자고...

사실 쏭판을 떠나 쥬자이거우로 떠나오기 바로 전날 밤, 우리 숙소 맞은편의 한국인 아저씨가 운영하는 ‘호숙숙好淑淑’이란 식당에서 우연히 한국인 여행자들을 떼거리로 만나게 되었다. 우리를 포함해서 10명이나 자리 잡았고, 우연히 지나가던 3명의 한국인 여행자들까지 있었으니 그야말로 지금껏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우리말로 수다를 떨었던 즐거운 시간이 될... 뻔!! 했으나...
기분이 좋아질 데로 좋아진 요왕의 술 쑈 때문에 (50도가 넘는 술을 마구 원샷하는 광란의 밤) 정말로 괴로운 밤을 보내게 되었다...
도리어 당사자는 아무것도 기억 못하고 푹 잘 잤다는데 말이다. 흑흑...
자면서도 술주정이라니... 한 공간에서 그 모습을 보기엔 넘 괴로운 나머지 귀중품과 얇은 담요를 옆구리에 꿰어 차고 2층 숙소 주인아줌마한테 갔다. 아무거나 침대 하나 남는 거 있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면서 남는 침대가 하나도 없단다. 방이 다 찼다나... 할 수 없이 뚜벅뚜벅 일층 우리 방으로 내려와 2층을 올려다보니 그 아줌마가 방에 들어가지도 않은 채 걱정스런 미소로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이궁... 아줌마 심정은 아줌마가 알아주는 듯......

여행이고 뭐고 다 끔찍하게 지겨워져 버려서 나는 그 다음날 아침 ‘나 그냥 청두로 간다. 청두 가는 표 사오기 전엔 꼼짝도 안 하겠다’며 담요로 얼굴을 둘둘 말고 그냥 엎어져 버렸다. 지루한 설득과 읍소가 이어지고, 결국은 다시 배낭을 짊어지고 쥬자이거우행 버스에 몸을 실은 것이다. 댓발이나 나온 입은 들어갈 생각도 안하고 얼굴은 퉁퉁 부은 채로...

2시간 반쯤 달리니 숙소들이 갑자기 많이 보이기 눈에 보이고, 슬슬 관광단지 분위기가 나기 시작한다. 쥬자이거우 바깥의 분위기는 요왕 말에 의하면 ‘설악동’과 비슷하단다. 설악동이 어떤 곳인지는 잘 몰라도 하여튼 크고 작은 숙소들, 낡은 건물과 새로 지은 건물이 촘촘히 뒤엉킨 사이로 식당과 기념품 가게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면 분명 이곳과 많이 닮은 곳임에는 틀림 없을듯하다.
쥬자이거우 치처잔(버스터미널)에 도착하기도 전에 우리를 잡아채 갈려고 버스위로 냉큼 뛰어오른 삐끼 아줌마의 손에 끌려(도대체 ‘팅부동(몰라요)’이라고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중국어로 떠드는 그 기세에 눌려버렸다. 우리가 중국말을 모른다는 게 이 사람들한테는 납득이 안 되는 일 인걸까?) 낡은 중국식 호텔 (2박에 180元)에 여장을 풀었다.
어제 밤 마신 술의 여파로 요왕은 침대 위에 기절해 있고, 나는 걸어서 이십분 거리인 쥬자이거우 입구로 슬슬 걸어가 봤다. 오후 4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간... 출구에서 삐져나오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의 행렬을 보니 어째 내일 구경이 그다지 만만할 것 같지 않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날이 바뀌고 다음날 아침... 매표소 앞에서 우리는 두 번 놀랐다. 정보와는 달리 너무 올라버린 표 값(거의 예외 없이 다 구입하는 버스표 포함해서 310元!!) 과 예상보다 훨씬 많은 중국인 단체 관광단의 행렬에 잠시 기가 죽어버렸다. 각종 가이드북과 현지 숙소의 정보판에 써있는 입장료 가격이 무색해질 정도로 이곳 중국의 입장권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가파르게 인상되고 있단다. 누구 주머니로 가든 간에 좀 옳은 일에 쓰여 졌음 좋겠다.
왠지 모를 부당함을 느끼던 우리는 지갑에서 각자의 운전면허증과 주민증을 학생증이라고 내밀어 보기로 합의하고 매표소 앞으로 갔고, 결국 일인당 50元씩 할인된 가격에 표를 살 수 있었다. 우리의 신분증을 이리저리 돌려보던 매표원은 그걸 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그녀가 웃는 얼굴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 얼마나 가슴이 쫄리던지...
불안한 눈동자와 주책없이 흐르는 땀을 대충 수습하고 쥬자이거우 공원으로 입장한 시간이 오전 8시 반...
단체관광단과 조금의 시차라도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그 사람들이 입장하는 시간에 우리도 입장하게 되어버린 탓에 사람들에 치여 구경이고 뭣이고 옷깃을 부비적거리며 발길을 떼기도 바쁘게 되어버렸다. 이게 웬 난리래... 만리장성 투어의 부잡스러움은 이거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겨우 자리를 잡고 구경을 할라치면 ‘사진 찍게 좀 비켜주셔’라는 손짓이 어김없이 날라온다. 태국이나 여타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는 달리 이곳 중국에서는 현지인들의 관광 유람이 엄청 활성화 되어있고 인기가 있는 듯하다. 역시 인구의 힘인지, 아니면 살기가 나아져서 여행을 하는 건지, 살림살이랑 상관없이 유람 자체를 좋아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쥬자이거우 공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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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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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흥을 떨어트리는(마침 이날이 일요일이어서 더했던 건지도...) 이 혼란에도 불구하고 쥬자이거우는 산 넘고 물 건너 온 보람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내가 시인이라면... 이곳의 풍경을 말로 설명할 수 있을 테지만, 허접한 글로 표현하는 것 보다는 몇 장의 사진이 이 신비로운 광경을 잘 보여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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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무리를 피해 약간 후미진 곳에 숨어 한숨 돌리니, 익숙한 것들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 야! 여기오니까 우리집에 있는 영물이 걸려있네...
- 헉... 영물 보니까 집 생각난다.

이곳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이야기지만... 몇 년 전 한창 벤처 바람이 불 때 요왕과 그의 친구들이 공동출자해 ‘동남아와 인도 공예품’을 파는 인터넷 쇼핑몰을 만드는 작업에 야심차게 뛰어든 적이 있었다. 동남아 각지를 돌아다니며 우리 부부가 전통 공예품과 특산품을 사 모으고 또 얼마간의 돈은 티벳으로 보내져 그곳 공예품으로 대체되어 왔는데, 당췌 이 티벳 공예품이란 것이 괴상한 모자, 용도를 알 수 없는 돌돌이(나중에 알고 보니 마니차) 그리고 꼬부랑 글씨가 잔뜩 새겨진 형형색색의 깃발(나일롱 빨래줄에 매달아놔서 얼마나 값싸게 보이던지... )등등이었다.
결국 그 쇼핑몰은 문도 열어보기 전에 친구가 하는 관리 회사가 부도가 나 버려서 생돈만 날리고 사 모은 물건은 졸지에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문도 못 열어보고 회사가 망한 게 결과적으로 다행인 듯... 만약에 쇼핑몰 개장했으면 돈 더 꼴아 박고 망했을 듯하다.
어쨌든 우리가 사 모은 건 그나마 선물의 역할이나마 해서 이래저래 세월 가면서 소진이 되는데, 티벳 물건은 누구를 줘봤자 좋은 소리 못들을 것 같은 것들뿐이라서 4년이 지나도록 고스란히 우리차지... 우리는 아마 저 애물단지에 혼령이 깃들어도 깃들었을 것이라며(오래된 물건에는 혼이 깃든다지...) 그것들을 ‘영물’이라고 불렀었다. 아직 그 영물들은 여전히 처분이 안 되고 있다. 흑흑...

티벳 사람들은 신성한 곳에 이런 깃발을 걸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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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쥬자이거우의 이 신비로운 푸른색의 호수들은 끊임없이 다른 이름으로 바뀌며 계곡 정상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특히 많이 몰리는 포인트에는 장족(티벳족) 민속의상을 빌려주는 행상인들과 즉석사진을 뽑아주는 사진사들이 혼잡에 한 몫을 더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와볼 가치가 있는 곳~ 쥬자이거우다. 

1 Comments
알뜰공주 2020.08.31 10:18  
다행입니다. 쏭판의 전통의 아름다운 거리풍경과 쥬가이거우이 트래킹이 너무 멋져요.
 요왕은 술은 확 줄여야할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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