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두 - 판다 보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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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두 - 판다 보러오세요~

고구마 3 434
(2005년 글입니다.)



우리가 시안에서 청두로 나오는 날은 토요일

어디서나 주말 기차표 구하기는 힘든 일이어서, 나름대로 서두른다고 서둘러 예매를 했는데도 우리가 원하는 에어컨 침대칸 대신 선풍기 침대칸 밖에는 자리가 없었다. 아아~ 이 찌는 듯 한 날씨에 좁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16시간을 부대끼며 가야 하다니... 우리 둘 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하늘이 도운 셈인지 그날 오전 한바탕 내린 비로 온도가 팍~ 내려갔다. 흐흐...

아무래도 기차 상태가 좀 서민적이다 보니, 승객들 상태도 저번에 탄 기차와는 약간 다른 것이 강한 포스가 느껴진다. 개찰구를 빠져나가 기차에 도착하기까지, 완전 피난민 행렬 저리가라였다. 모두들 큰 짐을 이고 지고 메고 끌고, 빈틈 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짐과 사람들이 덩어리 진체로 겨우겨우 움직여서 우리 자리를 찾아 앉으니 한숨이 피융~ 나온다.

게다가 일층에 출몰해주시는 쥐새끼까지... 나는 그나마 중간층이어서 다행이었는데, 일층에 자리 잡은 중국인 아줌마는 연신 비명을 질렀다는데, 뭐 딱히 뾰족한 수도 없다.

제발 그 쥐새끼가 위로 올라오지 않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중국 아저씨들의 수다(이곳 중국은 아저씨들이 더 수다꾼들인듯...)와 살짝살짝 피워대는 담배연기(그래도 다행인건 대놓고 펴대지는 않았다. 복무원한테 들키면 예의 그 찌르는 듯 한 목소리를 들으며 밖으로 내 쫒기기에...) 속에서도

여차저차 시간은 잘도 흘러 다음날 아침 도착한 청두역...

대부분의 역 앞이 사람과 차들로 부잡스럽기 나름이지만, 여긴 어째 그 정도가 더 심해서 우리는 어리벙벙해졌다. 택시, 버스, 짐차, 수레, 인력거, 자전거, 오토바이가 그냥 질서도 없이 서로 제갈 길 가겠다고 머리를 들이대고 있고 무단횡단 하는 사람들도 한몫 단단히 하는데다, 나중에 다녀보니 도시 전체가 완전 대 공사판이었다. 절반이 파 헤져진 인민북루는 안 그래도 질서와는 거리가 먼 이곳의 흐름을 더 엉망으로 바꿔놓은 듯하다. 모택동 동상이 있는 곳도 공사 중... 우리 숙소인 sim's 옆의 문수원도 대 공사판, 두보 초당도 공사 중.......지금 중국은 뭔가 뜯어 고치는 일로 한창 바쁜 듯 하다.

게다가 정가보다 비싼 값에 지도를 팔면서도 소리를 꽥꽥 질러대는 못된 아줌마에다가 한참을 기다리던 버스를 포기하고 탄 택시는 빙빙 둘러서 우리를 목적지에 데려다 주질 않나... 정말 혼이 홀딱 나갈 지경이다.

사실 이곳 청두 자체는 그다지 큰 볼거리가 없어서, 청두 북쪽의 쏭판과 주자이거우의 경유지 이거나 아니면 캉딩, 리탕, 샹청으로 이어지는 티벳을 스쳐 돌아가는 윈난성 진입 루트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쉬어가는 곳 정도의 의미밖에 없는 곳이었다.

한 가지 특색을 꼽으라면, 귀여운 판다들을 맘껏 볼 수 있는 판다 리서치 센터가 있다는 정도....?

우리가 미리 점찍어둔 sim's cozy는 지은 지도 얼마 안 되는 데다, 주인양반들이 백패커 출신이라 그런지 숙소 운영이 여행자 맘을 잘 헤아린 듯 편안했다.

잠시나마 우리도 이런 숙소하나 운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라서 아마 실제로 외국에서 숙소를 운영하다보면 말 안통하고 심정 상하는 일로 가득 할뿐, 우리가 꿈꾸듯이 행복한 나날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숙소에서 판다 투어를 예약하고, 그 다음날 아침 7시 반에 봉고에 실려 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판다 리서치 센터...

‘10시 반까지 정문으로 나오셔’라는 운전사의 말을 뒤로하고 첫 포인트로 갔는데, 웬 판다 한 마리가 쇠창살 우리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한 손으론 창살을 부여잡고 밖을 멍하니 보고 있다. 전형적인 불쌍우울 모드로 꼼짝도 안하고 앉아 있다니... 넘 애처로워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요왕이 안 보인다. 이러저리 암만 둘러봐도 없어서, 사람들 무리가 우르르 움직이길래 저기 있나 싶어서 쭐래쭐래 따라갔는데 막상 따라가고 보니 그 무리 속에도 없다. 이런 망할... 또 사진 찍는데 정신 팔려서 어디론가 훌쩍 가버리셨구먼... 이곳은 판다들이 먹을 대나무를 빽빽이 심어놔서 한번 사람을 잃어버리면 여간해선 눈에 띄질 않는데, 도대체 이 양반은 어디로 간 겨!!!

마침 그 시간이 판다 먹이 주는 시간이라 다른 여행자들은 귀여운 아기 판다를 배경으로 서로 사진 찍고 웃고 하는데, 암 것도 없는 나도 그냥 한켠에서 구경 좀 하다가 요왕 찾으러 공원의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니다 보니 복장이 뒤집힌다. 여기까지 와서 판다랑 사진 한 장 못 찍고 남편이나 찾으러 댕겨야 하다니... 아 짱난다. 진짜.

한 시간 넘게 헤매다 결국은 요왕을 찾아내서, 실컷 냉대 하고 구박 해주는 걸로도 기분이 안 풀려 그날은 하루 종일 저기압 모드... 자꾸 되는 일은 하나도 없는데 손발마저 척척 안 맞는데다 돈만 많이 쓰는 거 같아서 영 즐겁지가 않다. 여행 나온 지 열흘 잠깐 넘었을 뿐인데... 벌써 이러다니... 맘이 꼬이고 눈초리가 획 올라간다.


- 사람이든 동물이든 뭐든 잘생기고 봐야 돼... 사람들이 판다에 이렇게 열광하는 이유가 뭐겠어. 귀엽고 이쁘게 생겼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 멸종위기에 처해서 이렇게 잘 보살펴 준다곤 하지만, 생긴게 똥개처럼 생긴 동물이었으면 멸종되든 말든 별로 신경도 안 썼을걸...

- 니 이론에 의하면 우리 앞날은 깜깜한 거네...

- 그걸 이제야 알았어!!!! 그러니 돈이나 많이 벌어놔야지!!

- 돈은 그냥 막 벌리냐? 우린 그냥 소시민으로 살면 안 될까...


투덜투덜 잔소리를 끝으로 짧은 투어는 끝났다. 동행자의 손을 놓쳐 우리속의 외로운 판다 같은 신세로 전락하지 않는다면, 이 리서치 센터 방문은 좋은 추억과 멋진 사진을 선사 할 듯...

이곳 청두를 끝으로 대도시와는 이젠 안녕~ 하고 앞으로 남은 건 작은 산골 마을들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솔직히 말해서 산이 싫다.) 등산과 트레킹만 줄줄 이어진 덕분에 나는 별 볼거리도 없는 이곳 청두에서 계속 밍기적 거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계속 뭉개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어차피 쏭판과 주자이거우를 들렀다가 다시 와야 하니까 이쯤에서 무거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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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냥냥 2020.08.19 14:19  
판다♡  대만동물원에서  처음  봤는데  정말  심쿵한  귀여움이었어요.
meiyu 2020.08.20 15:33  
아~ 고구마님의 유머가 오늘도
즐겁습니다. 요왕님은 행복한 분이세요.
알뜰공주 2020.08.31 10:03  
요왕님 잃으셨을  때의 절망스럽고 속상했던 마음이 이곳까지 잘 전달되네요. 1시간의 긴  시간 얼마나 힘들고 걱정스러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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