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짐을 꾸려야 하다니
(2003년 글입니다.)
요왕의 직장 퇴직을 기념하야 여름동안 태국 말레샤 여행을 다녀온 지 이주일 남짓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을때......... 요왕이 지나가는 말로 슬쩍 운을 뗀다.
“ 우리 어쩌면 또 태국 가야 될지도 모른다.”
“ 엥? 태국을 또? 어째서.....?”
“ 사무실에서 헬로 태국 개정 작업을 또 하게 될 거 같거든....개정 작업이 확실해 지면 나 말고 또 누가 가겠냐...”
어쩌면 가게 될지도 모른다던 여행은 9월로 접어들자 계획이 거의 확실시 해졌다.
아아...또 짐을 꾸려야만 하다니...나는 정말로 한숨이 푸우~ 하고 나왔다.
사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타입의 사람이 아니었다. 여행이 주는 신선한 자극과 경험도 무척 높이 평가하긴 하지만... 집이 주는 안락함과 편안함에 훨씬 더 많은 점수를 주는 천성을 가진 사람이다. 요왕과 결혼하게 되면서 많이 바뀌긴 했지만서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에 대한 요왕의 열정에 비하면 내 열의는 늘 초라하다.
게다가 또 태국 이라니....이왕 비행기를 탈거라면 이젠 다른 곳으로 가고 싶기도 하건만....
개정작업으로 가는 여행은 정말이지 고달프기 짝이 없을 때도 종종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심각하게, 이번 여행은 요왕을 따라가지 않겠노라고 결심했었다.
하지만 나의 계산과는 달리 떨어져 있어봤자 생활비만 이중으로 더 들뿐더러(경제적으로도 나을게 별로 없다는게 중요한 사실...) , 한달간 떨어져 있는 동안 닥칠지도 모를 외로움을 극복하느니 그저 죽으나 사나 같이 댕기는게 몸은 좀 힘들더라도 더 나을 거 같다는 생각에 이번 여행 역시 따라 붙기로 결정했다.
바로 얼마전에 냉장고가 다 썩은 희한한 일을 겪은바, 이번에는 냉장고를 싹 다 비우고 플러그 까지 뽑고 가기로 했다. 다행히도 버릴만한 음식 조차도 별로 없는 탓에 냉장고 정리는 쉽게 끝났다. 우웅...편안하고 사랑스러운 우리집....돌아갈 수 있는 안락한 내 집이 있다는 사실이 여행의 고단함을 조금이나마 상쇄시켜 주는게 아닐까 싶다...
비수기라서 사람들이 별로 없을거라는 우리의 기대와 달리 타이 항공 659 편은 사람들로 빽빽 했고 외국인들도 많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번 비행기에서는 정말 자리운이 지지리도 없기도 하지.... 우리 뒷자석에는 대여섯살 된 사내애들이 비행시간 내내 , 의자 발로 차기 .손으로 의자 붙들고 뛰기. 식판 펴놓고 두들기기 등 다양한 놀이들로 우리의 등짝을 편치 않게 만들었다. 전날 잠을 잘 못이룬 탓에 살짝살짝 잠에 빠져 들라치면, 등받이를 쿵~ 하고 차대는 통에 정신이 번쩍번쩍 들었다. 정말로 밉살스런 꼬마들...게다가 그 꼬마들 보다 더 미운 건 그런 애들을 전혀 제지 하지 않는 부모들 이었다.
주의를 줘봤자 나아질건 전혀 아무것도 없는거 같아 우리는 그저 그 꼬마들이 의자를 찰때마다 서로 쓴웃음만 교환했다. 정말이지 고백컨데...그 애들의 엉덩이를 마구 두둘겨 주고 양볼을 사정없이 꼬집어 주고 싶었다.
게다가 내 옆에는 뚱뚱한 중년의 인도인 아저씨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그 특유의 체취 때문에 정말 숨 쉴 때마다 짜증이 나다 못해 나중에는 울고 싶을 정도 였다. 그 아저씨가 자리에 앉자마자 신발을 벗고는, 통통하게 살이 잔뜩 오른 맨발을 앞사람의 팔걸이 쪽으로 쭈욱~ 뻗을 때부터 좀 맘에 안 들기는 했지만 이런 데미지 까지 끼칠 줄이야...흐흑....너무나 가혹한 냄새다..
아저씨가 조금이라도 몸을 비틀거나( 팔을 들어올려 기지개를 펼때는 그야말로 속으로 하나님을 찾았다.) 그 옆으로 사람이 지나가기만 해도 화악~ 올라오는 그 냄새와 함께 아이들의 ‘등짝 차대기’ 이중주는 내 인내력을 바닥까지 싸악싹 긁어내고 있었다.
드디어 비행기가 돈무앙에 도착했고...나는 정말 구원 받은 듯한 느낌에 만세라도 부를 기세로 비행기에서 빠져 나왔다. 그 어느때 보다 방콕이 반가웠다.
미리 예약해둔 리젠시 방콕은 수쿰윗 소이 22에 있는 조그만 부띠크 호텔로, 싸구려 호텔 답게 방안은 눅눅하고, 공기는 곰팡이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특별요금으로 나온 항공권을 구입하는 대신 호텔 2박을 의무적으로 구입해야하는 조건탓에 호텔 리스트 중에서 젤 싼 걸로 골랐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 모양이다. 차라리 밝고 햇볕이 잘드는 게스트 하우스가 훨씬 훌륭하고 우리 취향에도 잘 맞는다. 햇빛도 들지 않은 홀 한가운데 다가 연못을 파 놓고 붕어들과 수초를 키우고 있으니 공기가 쾌적할 리가 없지......
우리는 대충 짐을 팽게쳐 두고 요왕의 막내이모와 아이들이 있는 랏차다의 머천 코트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 보다 하루 빨리 방콕으로 여행 온 시이모가족들과 함께 랏차다의 쏨분 시푸드에서 거한 저녁을 먹고 나니 식곤증과 여독이 한꺼번에 몰려오며 무척이나 졸립고 힘들다. 한달안에 열두어개 정도의 도시와 섬을 이동해야 하는 이번 스케쥴 역시 그다지 녹록치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어깨가 축 쳐지기 시작했다.
사진1 : 좁은 공간에 연못을 만들어 놓아, 적어도 우리가 있던 1층은 눅눅하고 냄새가 났다. 보기엔 좋아 보이네....
사진2 : 마늘과 후추 양념을 곁들인 살짝 튀긴 새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