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아름답게 해주는 건 언제나 사람 / 방콕으로 가는 길
(2003년 글입니다.)
요왕의 고질병...태국 편애증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 말레이시아에 할애된 시간은 겨우 6박 7일 뿐이었다.
그것도 내가 조르고 졸라서 말이다. 그 짧은 기간 중 그나마 들고 나는 시간을 빼면 온전히 즐길수 있는건 5일 정도....
우리는 내일 태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실질적으로 마지막 날인 오늘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어제의 등반(?)으로 걸을 때 마다 허벅지가 뻐근해왔지만, 그렇다고 숙소에서 마냥 쉴 수는 없는 일...... 지도를 들고 카메론 하이랜드에서 제일 볼만하다는 차농장과 브린창산을 올라가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휴양지도 대개 그러하듯이 이곳도 차농장의 입구까지는 대중교통이 다니지만 그 입구에서부터 농장까지의 상당한 거리 사이에 대중교통이란 게 없다. 대부분의 현지인들이 자신의 승용차를 가져오거나 우리 같은 외국인들은 투어를 신청해 단체로 오곤 했다. 가끔 택시도 보이긴 하지만 그 수는 매우 적고 비용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숙소에서 낡은 버스를 잡아타고 얼마쯤 가니 안내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내리라고 손짓한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시골길을 죽 따라 걸으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왼쪽길은 브린창산으로 오른쪽길은 차 농장으로 연결이 되었다.
앞으로 갈길은 멀고도 먼데 이 갈림길에서 차농장으로 접어들고 난 얼마 후 부터 나는 매우 지치기 시작했다.
“못살겠다. 정말이지 다리가 후들거려서 못 걷겠어...”
“그러게 아침을 좀 든든히 먹지...겨우 로띠 한 장 먹고 따라나서더니....”
“우리 히치하이킹이라도 해보자....계속 걷기만 할 게 아니라 여기 좀 서서 기회를 보자구..”
그때부터 우리는 서정적인 눈빛을 하고서는, 지친 게 역력해 보이는 다소 구부정한 포즈를 잡은 후 오는 차들을 기다렸다. 하지만 역시 가족들끼리 놀러온 사람들이 대다수라서 대부분의 차가 뒷좌석은 아이들로 빼곡히 차 있었고 우리가 탈 자리는 없다. 그나마 만만해 보이는 트럭은 어찌된 일인지 거의 다 브린창 산 쪽으로 획 가버리는 통에 우리는 그 모습을 멀리서 보며 입맛만 다시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피곤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건 좋은 경험이었다. 산등성이 빼곡히 자리 잡은 아름다운 차나무 밭을 지나는 길은 약간 쌉싸름한 차 잎 향기가 가득 배여 있어서 절로 폐가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분재처럼 생긴 차나무들과 그 사이사이에 피어있는 작은 꽃가지(잡초지만...)들은 그야말로 우리의 눈과 마음을 행복하고 평화롭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이곳이 이렇게 아름다우니 분명 우리나라의 보성 차밭 마을도 틀림없이 아름다울 것이라며 이야기 했고, 이번에 귀국하고 그곳도 꼭 가보자고 다짐했다. 최종 목적지인 차 제조 공장을 둘러보고 그 길을 돌아 나와 우리는 다시 갈림길에 섰다.
“이제 내는 죽어도 못 움직여...지도 좀 봐....산 정상까지 얼마나 머냐...”
“어제처럼 트레킹 길도 아니고 다 포장 되 있는 도로인데 뭐가 어때서...이번에는 내가 꼭 히치하이킹 할테니까 일단은 가보자....”
우리를 태워다준 첫번째차는 요왕이 히치한 낡고 낡은 트럭이었다.
화교로 보이는 운전사 아저씨는 우리의 국적을 묻고서는 엄지 손가락을 세워 보인다. 무슨 의미인지 알수는 없지만 어쨌든 좋은 뜻인거 같다.
트럭의 문은 마치 게스트 하우스의 화장실 문의 여닫이처럼 ‘철컥’ 대는 쇠고리가 달려져 있었고 내부는 온통 녹슬어 있었다.
“ 디스 카 고잉 온리 할프 웨이. 오케이?”
“ 오케이 ”
이 차는 우리를 산으로 올라가는 길의 절반까지 데려다 주고 다시 자신의 갈 길을 갔다. 다시 길가에 널부러지다시피 앉아서 우리는 애꿎은 풀이나 잡아 뜯으면서 시선은 온통 저 멀리 도로에만 고정시켜 놓고 있었다.
“아까는 내가 잡았으니까 이번에는 니가 잡아~”
“으이구... 믿는 도끼에 내가 발등 찍힐 줄 알았어......”
시시한 이야기로 시간을 때우는데 승용차 한대가 다가온다. 이번 차도 못 잡으면 길 중간에서 오도 가도 못한다고 생각하니 용기가 난다. 벌떡 일어난 나는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어색하고 쑥스러운 모양새로 팔을 위아래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제발 내손이 힘없고 쑥스럽게 내려오지 않길 바라면서, 나는 약간 비굴한 웃음도 지었던 듯 하다. 나는 정말이지 아직은 히치하이킹이 낯설고 쑥스럽다.
다행이다. 이번엔 아이가 없이 한 쌍의 부부만이 탄 차였다.
인도계 말레이시안 인 이들 부부는 불과 3개월 전에 결혼한 신혼부부였다. 자동차 기술자로 일한다는 남편은 올라가는 도중 우리에게 이곳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와 설명들을 해주었고, 부인은 사람 좋고 얌전한 웃음을 계속 짓고 있었다.
산 정상에 도달하면 뭔가 사먹을 수 있는 매점이 있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높은 전망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산은 그 어느 한곳 빈틈없이 빽빽한 나무들로 인해 완벽한 녹색을 자랑하고 서있다. 아름답긴 하지만 계속 산만 보고 서있기에는 왠지 조금 지루하다.
하늘이 갑자기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들로 수선스러워지기 시작하더니 우리가 서있는 전망대 쪽으로도 구름이 감싸듯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야~~ 산이 높긴 높나봐...방금 전에 내가 뭐 봤게?... 구름 조각이 바로 내 옆으로 지나갔어...”
“고구마야 진정해라... 그건 구름 조각이 아니고 내 옆 사람이 피우는 담배 연기였다.”
“켁~ 그랬구먼.... 근데 우리 내려갈 땐 어떻게 하지? 날씨도 안 좋아지기 시작하는데 걸어가?”
“저 부부 내려갈 때 다시 빌붙자. 그 수밖엔 없는 거 같애....”
다행히도 이런 우리의 맘을 알아차렸는지 그들이 먼저 “같이 내려가자” 라고 제안했고 우리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섞인 표정으로 그 제안을 답싹 받아 들였다.
별로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사람들끼리 나눌 수 있는 대화에는 “어디에 살고 있느냐?” 는 질문도 꼭 들어가곤 한다.
“우리는 이 근처 이포에서 살고 있어요. 오늘이 일요일이라서 놀러 온 거예요”
“아... 그렇군요. 우리는 내일 이포를 지나 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에요”
“꼭 내일이어야 해요? 오늘 갈 수 있으면 우리 차를 타고 가도 좋아요”
오... 친절한 사람들... 하지만 우리는 벌써 내일 출발하는 차편을 예매해 놓았고 숙소 비용도 지불했다.
차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금세 돌아내려와 우리를 큰 길 가로 데려다 주었다. 길지 않은 시간... 많지 않은 대화들.... 어색한 호감들로 이루어졌던 짧은 동행이 끝나고 각자의 갈길로 갔다.
어두웠던 하늘에선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추운 날씨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동안 또 한대의 차가 우리를 픽업해서 숙소까지 데려다 주었다. 타인의 호의로 가득찼던 하루....카메론 하이랜드는 지금 내기억에 매우 좋게 남아있다.
브링찬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카메론하이랜드
우리를 히치해준 말레이시아인 부부
방콕으로 가는 길
오전 8시에 카메론 하이랜드에서 나온 우리는 과연 버터워쓰 역에서 기차표를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가능성은 반반이고 운이 좋으면 기차를 탈수 있을 것도 같다.
가는 도중 버스가 주저앉아 버려서 약 20분간을 허비하긴 했지만 기차 출발 시간까지는 아직 한시간 정도가 남았었다. 급히 버터워쓰 기착역으로 달려가봤지만 오후 2시반 출발 방콕행 기차는 모든표가 매진 됐단다. 월요일이라서 약간은 기대를 했건만.....혹시나가 역시나다..
자...이제부터 우리는 버터워쓰에서 핫야이행 버스를 타고, 핫야이에서 다시 방콕행 야간 버스를 잡아타야 한다. 단지 6박 7일간의 말레이시아 여행을 위해 많은 돈과 많은 시간이 길에 뿌려졌다. 후회는 없지만, 약간은 아쉽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정상적인 스케줄 대로라면 우리는 다음날 오전 10시쯤에는 방콕에 도착했어야 했다.
나는 이제 그다지 젊지도 않고, 이동이 많은 이번 여행의 특성상 버스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정말이지 지긋지긋했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우리는 현지인들보다 높은 가격에 바가지를 쓰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표를 샀다. 여행사 직원말로 32석 브이아아피 버스에 6시반 출발이라던 버스는 막상 타고 보니 거의 50석에 7시반이 되서야 출발했다. 작지만 피곤한 거짓말들...우리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밤 11시가 넘어가며 많은 사람들이 잠든 시간..도로 중간에서 차가 갑자기 서버렸다. 운전사가 내려 뭔가를 살펴보는데 별일 아닐거라 생각했던 나는 신경 쓰지 않고 금세 잠들어 버렸다. 이런 경험이 몇 번 있었지만 다들 얼마간의 비상조치를 취하면 차는 곧 출발하곤 했으니까.....선잠에 들었다가 이상한 느낌에 후닥닥 눈을 떠보니 시계는 벌써 1시...그런데 차는 아까 서있던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다. 길 위에서 완전히 퍼져 버린 것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서로 각자의 방식으로 떠들기 시작했지만 문제 해결엔 아무런 도움도 되질 않았다. 나는 정말로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벌써 2시간째 이러고 있는데,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되냐..?”
“뭐 다른 차가 곧 오겠지. 그나저나 서더라도 좀 좋은데서 서지... 근처에 동물농장 있나봐... 똥 냄새가 진동을 한다야...”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도 다들 코를 막고 서있다. 핸드폰을 꺼내들고 어디론가 통화를 하는 사람들로 주위는 더 소란스러워졌고, 억지로 시동을 걸고 5분 정도를 달려 휴게소에 도착 한 후에도 사람들은 이런저런 말로 떠들어 대긴 했어도 언성를 높힌다거나 화를 내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긴 해도 분통을 터트리는 이는 한명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천하태평인 이들의 모습은 우리를 꽤 어리둥절하고 답답하게 만들었고 나는 그중 좀 똑똑해 보이는 아저씨를 잡고 물어봤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에요?”
“새벽 4시에 차가 올거요. 그냥 기다리면 되요.”
하지만 새벽 4시가 되서도 아무런 차도 오지 않았고, 몇몇 사람들은 트럭을 히치 하이킹 해서 자기 갈길로 떠나버렸다. 남은 사람은 이제 절반 남짓... 도대체 어떻게 되어가는 거람...
버스 안에서 할일 없이 한숨만 쉬고 있던 내게 요왕이 말했다.
“앗! 저기 봐... 사람들이 돈을 주고 받고 있어.”
“어..환불해주나부다..우리도 빨리 가서 받자..”
“환불이 문제가 아니라 여기서 그냥 돈 주고 가라고 하면 더 황당한건데........ 그리고 다른 차는 왜 아직 안 오는 거람...우리나라 같았음 무슨 수를 써도 벌써 썼겟다. 게다가 이 사람들 어떻게 이렇게 태평인 거야...”
땀과 피곤에 지친 우리는 노숙자 몰골과 누렇게 뜬 얼굴을 하고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갔다. 아까의 그 똑똑해 보이는 아저씨가 뭔가를 적고 그 주위에 돈을 쥐고 있는 사람들...
“아...당신들도 돈 더 내요. 일인당 얼마얼마...”
“뭐요? 돈을 주는 게 아니라 더 내라구요? 왜요?”
“다함께 돈을 모아서 여기서 방콕 가는 다른 차를 타고 갈 거에요”
허걱! 돈을 더 보상 받는 건 기대도 안했지만, 이건 너무한걸.... 운전사는 어디로 갔는지 안보이고 승객들이 모여 방법을 강구하다니....
하지만 이 모든 억지스러운 상황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사람들이었다. 모두들 피곤한 얼굴을 하고는 있지만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1인당 얼마씩을 다 걷고도 돈이 모자란다면서 추가요금을 받으러 다니던 아저씨 우리에게 말한다.
“ 이십밧씩 더내요”
“ 탐마이? (왜요?)” 요왕이 대답했다.
“ 돈이 모잘라서.....”
“ 허걱~ 마이 미 땅!!( 돈 없어요)”
외국인의 “돈 없다”는 소리에 모두들 웃었다.
내 계산기를 빌려가 뭔가를 뚜들겨 보더니 이제는 돈이 많이 남는단다. 남는 돈으로 마실 것과 과자를 사서는 다들 나눠 먹으며 낄낄대는 모습은 마치 야유회라도 온듯하다.
“댁들은 뭐 먹을 거유?”
“음....그러니까.. 커피요...”
나나 요왕이나 커피라면 한달에 한잔도 안마실정도로 싫어하는데 왜 그때 내입에선 “커피” 라는 말이 나왔을까... 너무 지쳐서 머리가 제대로 작동을 안 했나부다.
우리를 위해 비싼 값의 커피 두 잔 값을 치르고 잡담은 다시 이어졌다.
비싼 값으로 표를 판 회사는 아무것도 해주는 것이 없었고, 모든 것은 남겨진 사람들이 알아서 해결해야될 문제로 남았다.
흥분과 초조함은 우리만의 몫이었고 이들은 멀쩡하다. 아침 7시가 조금 넘어서야 다른 차가 우리를 태우기 위해 도착했고, 그날 오후 5시에야 남부 터미널에 떨어졌다.
거의 33시간에 이른 피곤한 여정 때문에 머리가 빙빙 돌고 뼈다귀에서 살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다.
나는 이들의 천성이 얼마나 여유롭고 넉넉한지에 대해 말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뭔가를 항의하거나 적당한 조치를 요구해도 아무것도 나올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당연한 반응이 아닐까 하고 상상해 볼뿐이다. 사람들의 모습은 평온했지만, 이런 식의 해결방법은 정당한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역시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것일까...
적어도 그 사람들 덕에 나는 화내거나 분노하는 대신, 다소 어리둥절하고 어이없긴 했지만 그럭저럭 감정 상하지 않고 그 시간을 보낸 듯 하다.
만약 한국에서였다면, 나는 성난 사람들 틈에 끼여 나 역시 붉은 얼굴을 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쑤랏타니 부근에서 서 버린 버스. 사람들이 모두 내려 우왕좌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