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톰슨을 생각나게 하는 정글 워킹
러브 레인 인에서 끝내는 빈대에게 몸을 물어뜯긴 우리는 새벽 3시에 불을 켜고 일어나 앉아 시트를 뒤적여 5마리의 빈대를 잡아 죽이는 걸로 시간을 보냈다. 정말 밉살스런 놈이다. 방금 빨린 것이 분명해 보이는 우리의 피가 시트가 찍~ 묻었다.
그나마 아침 8시에 출발하는 차를 예약해 놓은 것이 다행이다. 우리는 혹시나 배낭에 빈대가 숨어 들어가지나 않았을까 걱정하며 그곳을 탈출하다시피 나왔다.
7시간을 달려 도착한 이곳 카메론하이랜드의 타나라타는 그야말로 마음에 딱 드는 곳이다. 우리가 묵은 숙소의 프론트에 앉아 있는 시큰둥한 표정의 중국인 직원만 빼버리면 말이다. 시원하고 청량감 있는 공기, 코스모스와 국화를 볼 수 있고 숙소들도 깔끔하고 예쁘게 생겼다.
오늘 아침 우리는 느즈막히 아침을 먹은 후 정확하지 않은 지도를 한 장 사서는 근처 마을 브린창으로 슬슬 걸어 올라갔다. 브린창에서 딱이 할일이 없던 우리는 숙소가 있는 타나라타까지 트레킹 코스를 따라 내려 가기로 의견을 모으고는, 점심은 거기 도착해서 먹기로 하고 간단하게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골라들었다.
카메론 하이랜드에는 십 수 개의 정글워킹 투어루트가 있는데 우리는 지도에서 가장 만만하고 짧아 보였던 2번 루트를 선택하고는 숲길에 접어들었다. 2번 루트는 유명한 산과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별로 인기가 없는 루트였다. 거리상으로 1킬로미터 남짓한 이 짧은 길에서 도대체 문제될게 무어란 말인가... 가파르고 축축한 산기슭을 헉헉되며 올라가는 동안 끙~ 하는 소리가 저절로 입에서 새어 나오긴 했지만, 앞으로 500미터 정도만 더 가면 된다는 노란 표지판은 ‘정글이래봤자 뭐 별거 아니네...이름만 거창한 정글워킹 이잖아...’ 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했다.
앞서가던 요왕이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뒤돌아 본다.
“근데...고구마야...나 방금전에 뱀 봤다...”
“뭐? 진짜로? 진짜야? 가짜야? 바른대로 말해!!”
“진짜야...”
“다시 한번 더 말하는데 만약에 거짓말이면 나 광분한다... 그리고 내가 광분하고 이성을 잃으면 이 산에서 넌 못나가는 수가 있어..... 정말 뱀 봤어? 아니지? 나 놀리려고 그러는 거지?”
“낄낄... 사실은 뱀 같은 건 못 봤다. 겁은 많아가꾸...쯧”
으으... 원하는 대답을 듣고 안심이 된 나는 실실 웃음이 나왔다. 힘들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표지판을 끝으로, 길도 없고 아무런 표시도 없는 그저 빽빽한 정글만이 확~ 펼쳐졌다. 당황한 우리는, 길이라고 생각 되어지는 곳으로 엉금엉금 기다시피 발 걸음을 옮겼고 미끈한 바닥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 손에 잡히는 것은 모두 잡아 당겼다. 분명히 이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는 길처럼 보였었는데 한참을 걷다 뒤 돌아 보면 우리가 지나온 곳은 그저 ‘빽빽하고 어두운 숲’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이쪽이 아닌 거 같애...”
이미 땀과 진흙으로 젖은 요왕이 말했다.
“내 생각엔 이쪽 같은데... 우리가 한참 올라왔으니까 이제 내려가야 되는 거잖아... 이제 돌아갈 수도 없는데 그냥 내려가 보자..”
“아무래도 이상한걸...”
맞는거 같다며 자신 없는 소리를 지껄이던 나는 다섯 발자국도 못가서 커다란 나무뿌리 사이로 나동그라졌다. 등판이 온통 진흙으로 칠갑을 한 후에야 맘을 고쳐먹은 나는 ‘더 이상 이쪽으로 가지말자’ 라고 중얼거렸고 우리는 정글 속에서 길을 잃었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헬프 미. 아이 로스트 웨이”라며 민망하게 소리쳐 봤지만 메아리만 돌아 올 뿐이었다.
방금 우리가 지나온 방향도 어디인지 분간이 잘 안 갔지만, 그나마 나보다는 훨씬 뛰어난 방향 감각을 가진 요왕을 따라 한참을 가다보니 아까의 그 표지판이 나왔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브린창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되돌아 나간다는 건 시쳇말로 ‘너무 쪽팔리는 일’이지......
우리는 다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앞으로 전진 했고 같은 장소를 갔다 왔다 하는 일을 반복하는 동안 조급함이 일었다.
“정말 이런식으로 산에서 길 잃을수도 있겠다...”
“짐 톰슨(카메론하이랜드에서 실종된 전직 미정보국 OSS 국장) 생각이 아까부터 자꾸 나...”
“이러다 우리도 짐 톰슨 옆에 나란히 눕게 되는 거 아닐까...”
“아까 내려 가려다가 포기한 그길로 쭉~ 가면 짐 톰슨 이외 여러 실종자들이 ‘웰컴~투 정글~’ 플랭카드를 들고 우리를 환영해 줄지도 모르는 거 아니겠어~” 희미하고 힘없는 웃음이 잠시 나왔다.
정글은 참 희안하기도 하지... 단지 몇 발자국 만 떨어져 있을 뿐인데도 요왕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목소리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뒤쳐져 가던 나는 요왕의 뒷모습을 놓쳐버렸고 “안보여~~ 안보인다고... 아무말이나 계속 좀 해” 라고 소리쳤다.
간간히 들리는 천둥 소리에 공포심마저 느낄 즈음....우리는 드디어 나무에 아무렇게나 묶여져 있는 빨간 비닐 끈을 발견했다. 길 표시였다. 그 후로 갈림 길이 나올 때 마다 초조하게 망설였고 들고 나는 일을 반복하긴 했지만 간간히 보이는 빨간 비닐 끈은 우리를 진정시켜 주었다.
전진을 계속하면서 길은 약간이나마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았고 우리는 덜덜~ 떨리는 다리로 힘겹게 앞으로 나아갔다. 방향을 알려주는 제대로 된 푯말이 시야에 들어오자 벌떡 되던 심장이 정상을 되찾는 듯 했다.
트레킹 길은 여기서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고 다시 다른 루트와 엮여져서 일킬로미터 정도를 더 가야 마을로 연결되게끔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랴... 적어도 다시 나타난 길은 지리산 등반길 정도는 되는 상태였다.
드디어~차 소리가 간간히 들리고 시멘트가 발라진 길이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아~ 너무 감격스러워~” 라며 오버를 떨었다. 기념을 남겨야 한다며 서로의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 놓고 보니 표정이 정말 말이 아니다. 이 모든 여정은 단지 2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정확한 지식과 준비물도 없이 산으로 들어 간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인지 우리에게 똑똑히 가르쳐주었다.
“지금에서야 말하는 건데... 아까 진짜로 뱀 봤었어...”
“그런 거 같더라니...그래도 아니라고 말해주니까 훨 낫더라...”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을 훨씬 넘겨서 타나라타에 도착한 우리는 몇 개의 빵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지금 요왕은 완전히 지쳐버려서 잠에 곯아 떨어져 있고, 나는 지치고 놀랜 몸을 위로해줄 맛있는 스팀보트를 기대하며 어서 빨리 저녁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너무 늦기 전에 요왕을 깨워 밖으로 나가야지~~~ 지금 내 머릿 속은 온통, 뜨거운 국물속에서 멀멀 끓고 있을 야채와 고기 생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