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토리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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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도미토리의 사람들

고구마 1 611
(2005년 글입니다.)



결과적으로 쿤밍에서는 총 8일이나 있게 되었는데, 기억을 되살려 봐도 일기를 뒤져봐도 딱히 뭔가를 한 것 같지 않은 날들이다.

도시는 어디서나 비슷한 모습으로 닮아 있어서, 쿤밍도 높은 빌딩과  많은 쇼핑몰들이 들어서 있는 지내기 편한 도시였다. 운남 대학교가 도시 중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다소 젊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게 약간 색 다르달까.... .

시내버스를 타고 열심히 운남대 근처를 들락거리면서 컴퓨터 부품을 사거나 (부속이 뭔가 궁합이 안 맞아서 그 후 2번이나 더 가게 되고...-_-;;), 앞으로 한동안은 구경도 못할 한국음식을 운남대 서문의 한식당에서 사먹기도 하고(아마 세계에서 가장 싼 값에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된장찌개 1300원선...), 뭐 이래저래 사소한 쇼핑을 하며 시내를 쏘다닌 정도...

사실 중국여행이 50일이 넘어서면서부터, 각종 명승지나 유적지를 입장하는 것도 약간은 심드렁해지고, 꽤 여유를 부리면서 이동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동안 차곡차곡 쌓인 여독도 무시 못 할 지경이 되어버려서 사실 쿤밍에서는 암 것도 안하고 완전 게으름뱅이 모드로 지내기로 해버렸다.


쿤밍에서의 8일중 6일을 우리가 머무른 the hump 의 분위기도 우리의 이런 무드에 아주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

2층 침대가 5개, 한방에 10명의 사람이 들어가는 우리 도미토리 방은 낮에도 창문을 열지 않으면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 쿨쿨 늘어져 자기에도 좋고, 엄청 높다란 천정위에 매달려 있는 전등도 거의 켜나 마나 한 것이어서 방은 늘 어두침침한 분위기다.

하지만 다소 어둑한 방의 상태와는 달리 멋지구리한 3층 테라스에는 공짜 당구대와 널찍한 테이블이 여러 개가 있어 쉬거나 햇빛을 쬐기에 좋고, 숙소 스텝들도 배낭여행자를 다루는데는 이력이 난 사람들이라서 어느 정도 영어도 통하고 일하는 것도 세련된 면이 있었다. 게다가 세탁도 공짜, 아침도 공짜(비록 마른 빵 3조각과 약간의 과일과 차 뿐이긴 하지만...)그리고 개인 사물함까지.....

우리는 이 숙소의 주인이 누구일까 무척 궁금했는데, 분명히 배낭여행을 좀 다녀본 사람일 거라면서 추측을 하긴 했지만 결국 알아내지는 못했다.


쿤밍의 최고 중심지역에 자리한 덕에 이곳에 묵고 있는 여행자들은 근처의 까르푸에 가서 먹을 걸 잔뜩 사와 숙소 식당에 늘여놓고 먹기도 하고, 저녁이면 숙소 근처의 나이트클럽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는 낮에는 늘어져 자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우리가 머무른 여름 시즌에는 숙소가 full이 되는 날도 꽤 많아서, 우리 방의 침대들도 거의 빈자리 없이 항상 로테이션 되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많이 보게 된다.


쿤밍 도착 첫날, 배정된 침대에 짐을 부려놓고 방안을 살펴보니 알제리나 모로코계로 보이는 프랑스인들이 보였다. 음... 웃통을 훌러덩 벗고 낮에도 숙소에서 빈둥거리는 이들은 더듬거리는 영어로 다른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프랑스에 남아있는 자기 여자 친구 이야기, 중동 아시아를 여행하면서 본 아랍 여자들 이야기 등등 주로 여자 이야기였다. 유창한 영어였다면 못 알아 들었을텐데, 수준이 비슷해서 그나마 약간 들린다. 쩝쩌구리...

그러고는 느린 걸음으로 방안을 들락날락 거리더니 이내 책상에 앉아서 뭔가 골똘히 작업을 하는데, 알고 보니 대마초 말고 있는 중이란다. 그 심혈을 기울이며 책상 위에 어깨를 구부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대마초 마는 모양새였다니... 허거덩... 설마 대마초 피우고 정신이 휑~ 나가서 우리에게 뭔가 해꼬지 하지는 않겠지....

예전에 어느 티비 프로에서 , 대마초는 피우면 온몸이 나른해져서 오히려 범죄를 일으킬 확률을 낮추고 사람을 릴렉스 시키므로 해로운 것이 아니라고, 열을 올리던 어느 대마초 옹호론자의 이야기가 생각나면서 그나마 약간 오그라들었던 맘이 펴졌다.

볼 때 마다 느릿느릿하게 다니던 이 두 명의 여행자는 이틀간 우리랑 같이 있다가 어디론가 떠나버렸는데, 왠지 안보이니까 안도감이 들고 맘이 편해진다. 괜히 공안한테 걸려 험한 꼴이나 당하지 않았음 좋겠다.....


곰 세 마리 가족 - 아빠 곰은 뚱뚱해 엄마 곰은 날씬해 아기곰은 너무 귀여워~

라는 노래가사처럼 뚱뚱하고 나이가 들어 보이는 덩치 큰 아빠랑 작고 깡마른 체구의 엄마, 그리고 날개만 등에 달면 천사처럼 보일 금발의 작은 소녀... 이렇게 이루어진 프랑스인 가족이 며칠 후 들어왔다.

겨우 대 여섯 살 밖에 안 되어 보이는 이 작은 소녀는 만화 주인공이 그려진 핑크색 트렁크를 자기 힘으로 돌돌 끌고 들어왔는데, 이 예의 바른 가족들은 들어와서 나가는 동안까지 그야말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조용하게 지내다 나갔다. 흔히 보게 되는 소리 지르고 떼쓰고 우는 아이들 덕분에 애라면 다소 귀찮게 생각 하던 나는 이 작은 프랑스 소녀와 엄마를 보게 된 것이 약간 신선한 느낌이었다. 대낮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방에 있을 때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는 이 모녀에게 ‘큰 소리로 말해도 돼요~’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말이 안 통해서리... 그냥 가만히 있었다.

여행하는 동안 숙소 바닥이 더럽다느니, 배낭에 다른 사람들 신발이 닿는 게 싫다느니 하며 다소 요란을 떨어 요왕을 피곤하게 만들었던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맨발로 돌아다니는 엄마와 바닥에 퍼질러 앉아 혼자 조용히 놀고 있는 그 소녀를 보고는, 중국의 청결상태에 대해 불평을 주절거렸던 입을 좀 닫아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따리에서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에서 봤던 여러 명의 한국인 아이들 덕분에 생겼던 키드포비아가 좀 줄어드는게 느껴진다. 부모 없이 인솔자랑 같이 온 그 아이들의 주특기는 틈만 나면 엄청나게 떠들기, 변기에 응가 누고 물 안 내리기, 게임 다운 받지 말라는 주인 아저씨 당부에도 불구하고 컴터에 게임 내려받기 등등이어서 다른 여행자들을 질리게 했었다. 이궁... 여행 나오면 애나 어른이나 좀 리버럴해지는 듯.... 쩝....

하여튼 이 소녀는 다른 여행자들의 눈길도 끌었는지, 부모가 잠시 시내에 나가있는 동안 여행자들이 서로 당구를 가르쳐 주거나 같이 놀아주기도 했다. 우웅~~ 같이 한방 쓰는 처지에 나도 말만 통했으면 그 천사 같은 소녀랑 어케 친하게 지내보는 건데.... 아깝다...

내 경우에는, 어떤 나라에 대한 인상이나 느낌을 가장 강하게 결정 지어 주는 것은 결국 사람인거 같다. 자연경관이나 음식 그리고 여행자가 접하게 되는 이런저런 문화적인 퍼포먼스들보다도 그 나라의 사람이 어떠했는지가 결국은 가장 오래 남는 기억중의 하나가 되는 듯....우리도 여행 하면서 (특히나 배낭에 태극기 붙이고 다니는데...) 처신 잘하고 다녀야겠다는 의지가 불끈! 한다.


숙소의 다용도 홀 (식당도 되고 영화 관람실도 됐다가 저녁이면 바도 겸하는...)에서 인터넷을 하고 있는데, 요란한 여자의 웃음소리가 카랑카랑 울린다. 슬쩍 목을 빼고 밖을 보니 웬 백인 커플이 완전 로맨스 영화를 찍고 있는데, 여자가 남자 앞에서 춤을 췄다가 남자 무릎에 올라앉았다가 또 연신 카랑카랑 웃어대는걸 보아하니 분명 사귄지 얼마 안 된 커플임이 분명하다. 오래된 연인인데도 저런다면 아마 대낮부터 술을 먹었거나 프랑스 애들처럼 뭔가를 피운게야......

음냐리.....숙소의 분위기 속에서는 다소 튀는 듯 한 행동을 하는 저 커플은 과연 어느 나라 사람일까...하고 궁금해 하며 방으로 들어왔는데, 어랏~ 쟤네들도 같이 우리 방으로 들어오네... 오늘 새로 들어온 사람들인가 부다...

여기 머무른지 닷새가 지나가자 벌써 숙소 여행자들도 한 차례 물갈이가 되고, 우리 방만 해도 몇 번이나 로테이션이 되어버려서 우리가 꼭 방장 같은 느낌마저 들어버렸다. 쩝쩌구리...

어쨌든 어김없이 해는 지고 모두들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한 쌍의 남녀가 전혀 조심성 없게 시리 들어온다. 우웅~~ 지금이 몇 신데 남들 다 자는데 저런 식으로 들어온담... 바로 낮에 본 그 애들이잖아...

근데 들어와서도 한참을 큰소리로 이야기 하는데, 듣다 보니 잠은 벌써 다 깨고 시계를 보아하니 12시 반...

‘조용히 해주셍’ 이라고 이야기 할까 말까 어둠속에서 뒤척거리며 망설였지만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도 가만있는데 좀 멀찍이 떨어진 내가 참아야지... 근데 언제 까지 저럴 거람... 근데 끝이 없다.

아 짱 난다 진짜... 저것들이... 이야기를 하려면 밖에 나가서 하던가... 도대체 알 수 없는 언어로 뭔가 주절주절 하는데 갑자기 언성이 높아지고 퍽~ 던지는 소리가 나더니 뭣 모르는 내가 듣기에도 욕 같은 말을 내뱉고 여자가 산만한 배낭을 메고 뛰쳐 나가버렸다. 나가려면 곱게 나가지 문은 왜 쾅!! 닫고 나감담~

그 뒤를 따라 뛰쳐나간 남자랑 한동안 복도에서 실랑이 하더니 따귀를 때리는 소리, 여자 우는 소리가 나더니만 그 담은 이상스러울 정도로 잠잠해졌다. 으으으~~

그 담날 아침... 불만스런 눈으로 그들이 있던 침대를 보니 웬걸!!! 얘 네들이 지금 코미디 하나... 둘이 껴안고 그 좁은 침대에서 같이 자고 있다. 그러고는 그 자세로 한낮까지 쿨쿨 잘도 잔다. 하기 어제 못 잤으니 오늘 낮에라도 자야겠지.....

망할 노무 액션 에로 코미디 커플 같으니라고....담부터는 제발 도미토리 와서 민폐 끼치지 말아주시고 방 따로 써주세요. 제발.....


한 방에 열 명이나 자다보니, 한 사람만 코를 골아도 나머지 사람이 잠을 못자거나 해서 결국은 전부 부시럭부시럭 대며 아침이면 피곤한 얼굴로 일어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유령처럼 어스름한 새벽에 스르르 들어와서 낮 동안은 계속 밖의 어딘가에 있다가 다시 어둑한 저녁에 스르르 들어와 잠만 자고 그 이튿날 일찍 체크아웃 하기도 해서 전혀 얼굴을 볼 수 없기도 하고, 때로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노란털이 부숭부숭 난 서양 아저씨의 팬티가 반 밖에 걸쳐져 있지 않은 통통한 엉덩이를  떡~ 하니 봐야 하기도 했다.

어쨌든 방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여러 세계에서 온 사람들의 면면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편한 방법 중의 하나가... 도미토리에서 지내는 것인 듯하다.

때로는 ‘이방에서 빨리 좀 사라져줬으면....’ 하는 성가신 여행자들도 있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험프의 식당 겸 휴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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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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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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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알뜰공주 2020.08.31 15:33  
도미토리의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한편의 단편 영화를 보는듯하네요.
고구마님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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