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두 - 판다 보러오세요~
우리가 시안에서 청두로 나오는 날은 토요일
어디서나 주말 기차표 구하기는 힘든 일이어서, 나름대로 서두른다고 서둘러 예매를 했는데도 우리가 원하는 에어컨 침대칸 대신 선풍기 침대칸 밖에는 자리가 없었다. 아아~ 이 찌는 듯 한 날씨에 좁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16시간을 부대끼며 가야 하다니... 우리 둘 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하늘이 도운 셈인지 그날 오전 한바탕 내린 비로 온도가 팍~ 내려갔다. 흐흐...
아무래도 기차 상태가 좀 서민적이다 보니, 승객들 상태도 저번에 탄 기차와는 약간 다른 것이 강한 포스가 느껴진다. 개찰구를 빠져나가 기차에 도착하기까지, 완전 피난민 행렬 저리가라였다. 모두들 큰 짐을 이고 지고 메고 끌고, 빈틈 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짐과 사람들이 덩어리 진체로 겨우겨우 움직여서 우리 자리를 찾아 앉으니 한숨이 피융~ 나온다.
게다가 일층에 출몰해주시는 쥐새끼까지... 나는 그나마 중간층이어서 다행이었는데, 일층에 자리 잡은 중국인 아줌마는 연신 비명을 질렀다는데, 뭐 딱히 뾰족한 수도 없다.
제발 그 쥐새끼가 위로 올라오지 않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중국 아저씨들의 수다(이곳 중국은 아저씨들이 더 수다꾼들인듯...)와 살짝살짝 피워대는 담배연기(그래도 다행인건 대놓고 펴대지는 않았다. 복무원한테 들키면 예의 그 찌르는 듯 한 목소리를 들으며 밖으로 내 쫒기기에...) 속에서도
여차저차 시간은 잘도 흘러 다음날 아침 도착한 청두역...
대부분의 역 앞이 사람과 차들로 부잡스럽기 나름이지만, 여긴 어째 그 정도가 더 심해서 우리는 어리벙벙해졌다. 택시, 버스, 짐차, 수레, 인력거, 자전거, 오토바이가 그냥 질서도 없이 서로 제갈 길 가겠다고 머리를 들이대고 있고 무단횡단 하는 사람들도 한몫 단단히 하는데다, 나중에 다녀보니 도시 전체가 완전 대 공사판이었다. 절반이 파 헤져진 인민북루는 안 그래도 질서와는 거리가 먼 이곳의 흐름을 더 엉망으로 바꿔놓은 듯하다. 모택동 동상이 있는 곳도 공사 중... 우리 숙소인 sim's 옆의 문수원도 대 공사판, 두보 초당도 공사 중.......지금 중국은 뭔가 뜯어 고치는 일로 한창 바쁜 듯 하다.
게다가 정가보다 비싼 값에 지도를 팔면서도 소리를 꽥꽥 질러대는 못된 아줌마에다가 한참을 기다리던 버스를 포기하고 탄 택시는 빙빙 둘러서 우리를 목적지에 데려다 주질 않나... 정말 혼이 홀딱 나갈 지경이다.
사실 이곳 청두 자체는 그다지 큰 볼거리가 없어서, 청두 북쪽의 쏭판과 주자이거우의 경유지 이거나 아니면 캉딩, 리탕, 샹청으로 이어지는 티벳을 스쳐 돌아가는 윈난성 진입 루트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쉬어가는 곳 정도의 의미밖에 없는 곳이었다.
한 가지 특색을 꼽으라면, 귀여운 판다들을 맘껏 볼 수 있는 판다 리서치 센터가 있다는 정도....?
우리가 미리 점찍어둔 sim's cozy는 지은 지도 얼마 안 되는 데다, 주인양반들이 백패커 출신이라 그런지 숙소 운영이 여행자 맘을 잘 헤아린 듯 편안했다.
잠시나마 우리도 이런 숙소하나 운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라서 아마 실제로 외국에서 숙소를 운영하다보면 말 안통하고 심정 상하는 일로 가득 할뿐, 우리가 꿈꾸듯이 행복한 나날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숙소에서 판다 투어를 예약하고, 그 다음날 아침 7시 반에 봉고에 실려 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판다 리서치 센터...
‘10시 반까지 정문으로 나오셔’라는 운전사의 말을 뒤로하고 첫 포인트로 갔는데, 웬 판다 한 마리가 쇠창살 우리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한 손으론 창살을 부여잡고 밖을 멍하니 보고 있다. 전형적인 불쌍우울 모드로 꼼짝도 안하고 앉아 있다니... 넘 애처로워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요왕이 안 보인다. 이러저리 암만 둘러봐도 없어서, 사람들 무리가 우르르 움직이길래 저기 있나 싶어서 쭐래쭐래 따라갔는데 막상 따라가고 보니 그 무리 속에도 없다. 이런 망할... 또 사진 찍는데 정신 팔려서 어디론가 훌쩍 가버리셨구먼... 이곳은 판다들이 먹을 대나무를 빽빽이 심어놔서 한번 사람을 잃어버리면 여간해선 눈에 띄질 않는데, 도대체 이 양반은 어디로 간 겨!!!
마침 그 시간이 판다 먹이 주는 시간이라 다른 여행자들은 귀여운 아기 판다를 배경으로 서로 사진 찍고 웃고 하는데, 암 것도 없는 나도 그냥 한켠에서 구경 좀 하다가 요왕 찾으러 공원의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니다 보니 복장이 뒤집힌다. 여기까지 와서 판다랑 사진 한 장 못 찍고 남편이나 찾으러 댕겨야 하다니... 아 짱난다. 진짜.
한 시간 넘게 헤매다 결국은 요왕을 찾아내서, 실컷 냉대 하고 구박 해주는 걸로도 기분이 안 풀려 그날은 하루 종일 저기압 모드... 자꾸 되는 일은 하나도 없는데 손발마저 척척 안 맞는데다 돈만 많이 쓰는 거 같아서 영 즐겁지가 않다. 여행 나온 지 열흘 잠깐 넘었을 뿐인데... 벌써 이러다니... 맘이 꼬이고 눈초리가 획 올라간다.
- 사람이든 동물이든 뭐든 잘생기고 봐야 돼... 사람들이 판다에 이렇게 열광하는 이유가 뭐겠어. 귀엽고 이쁘게 생겼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 멸종위기에 처해서 이렇게 잘 보살펴 준다곤 하지만, 생긴게 똥개처럼 생긴 동물이었으면 멸종되든 말든 별로 신경도 안 썼을걸...
- 니 이론에 의하면 우리 앞날은 깜깜한 거네...
- 그걸 이제야 알았어!!!! 그러니 돈이나 많이 벌어놔야지!!
- 돈은 그냥 막 벌리냐? 우린 그냥 소시민으로 살면 안 될까...
투덜투덜 잔소리를 끝으로 짧은 투어는 끝났다. 동행자의 손을 놓쳐 우리속의 외로운 판다 같은 신세로 전락하지 않는다면, 이 리서치 센터 방문은 좋은 추억과 멋진 사진을 선사 할 듯...
이곳 청두를 끝으로 대도시와는 이젠 안녕~ 하고 앞으로 남은 건 작은 산골 마을들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솔직히 말해서 산이 싫다.) 등산과 트레킹만 줄줄 이어진 덕분에 나는 별 볼거리도 없는 이곳 청두에서 계속 밍기적 거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계속 뭉개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어차피 쏭판과 주자이거우를 들렀다가 다시 와야 하니까 이쯤에서 무거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