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아유타야
깐짜나부리에서 방콕을 거쳐 우리는 역사 유적지인 아유타야로 왔다.
예전과는 달리, 태국으로 오는 여행자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을 방문하게 되면서 “역사 유적지” 로서의 아유타야는 그 빛을 상당히 많이 잃은 편이다.
앙코르를 본, 또는 보게 될 사람들 이라면 이곳을 스케줄에서 제외시키거나 혹여 방문 한다 할지라도 하루나 길어야 이틀 정도를 보내고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기 마련이니까....
우리는 지금 여행 나온지 3주로 접어들고 있으며, 그동안 나는 한국 음식을 한번도 못 먹었다. 찌개와 김치에 대한 환상( 또는 환장)이 깊어질수록, 풍부한 화학 조미료가 빚어내는 태국음식의 얕은 맛에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마치 당뇨병 환자에게 인슐린이 필요한 것처럼 내게는 김치가 필요하다..
아유타야에 한국음식점인 찰리 게스트 하우스가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지........
아유타야 도착 첫날, 낮에 이곳을 들린 우리는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단 한 숟가락도 남기지 않기 위해 뚝배기를 기울여 숟가락으로 긁을 수 있는 만치 최대한 긁어냈다.
한식당에 오면 최소한 찌개 한그릇도 150 정도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이건 결코 비싼 가격이 ‘절대로’ 아니다. 적어도 한식당은 에어컨이 나오며 시설도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하고, 물도 공짜, 각종 반찬들도 공짜이며 모자라면 더 먹을 수 도 있다. 태국의 노점 식당에선 물론 한 끼니에 20밧에도 해결할 수도 있지만 이 정도 수준의 태국식당에서 이 정도로 차려놓고 먹을 때 오히려 더 많은 돈을 지불한 경험이 종종 있는 나로서는 태국내 한식당들의 가격이 매우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몸 구석구석에 찌들어 있던 여행의 피로가 뜨거운 찌개 국물을 들이키자 어디론가 스물스물 사라지는 느낌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 어째 이번 여행은 좀 많이 지치는걸.....” 땀을 닦으며 요왕이 말한다.
“ 우리도 늙은게야.... 늙었다고 하긴 좀 그렇지만 어쨌든 예전 같지는 않지...”
“ 우리말이지.. 5년전엔 어떻게 5개월씩이나 돌아 다녔을까?...”
“ 아...난 정말 앞으로 장기여행 할 생각이 하니 가슴이 답답해... 그러다가 큰 병이라도 얻게 되면 어째......”
“ 괜찮아...다른 장기여행자 부부들도 여행할 때 거의 30대 초반이였다구...”
“ 난 그 사람들이랑 달라...내 몸 상태는 사십이나 마찬가지 라구...배낭 메구 20분만 걸으면 어깨가 뒤로 빠질거 같애........”
“사실 넌 외모도 사십대로 보여.....”
두 손을 모아쥐고 목을 조르려고 달려드는 나를 피해 ‘ 눈에서 살인 광선 나오는 고구마!“ 라고 소리치며 낄낄된다. 아...증말....
로션을 마지막으로 발라 본 때가 언제 였던가.... 머리는 윤기가 없이 버석버석 거린다. 내가 먹는 그 양질의 기름기 들은 왜 머리카락으로 갈 생각을 못하고 전부 배로만 몰릴까... 자외선은 내 피부를 황무지처럼 만들고 있다.
이제 일주일 남짓 남은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내년에 감행하게 될 장기간의 여행을 위해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여행 자체에 대한 준비와 함께 더불어 집을 세놓고, 세간들을 정리하고 등등등의 일들... 지금 우리가 하려는 일이 정말 후회 없고 바른 선택일까....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나약한 자의 몸부림이 ‘여행’ 이라는 로맨틱한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건 아닌가........ 나는 정말로 세상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있어 여행을 하려는 건지, 아니면 세상에서 도망을 치고 벗어나려고 여행을 하려는 건지 약간씩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 다음날 저녁도 찰리 아주머니네 가족들과 함께 한국식 삼겹살을 먹게 된 우리는 아유타야의 한국인 상사에서 일하는 다른 두 명의 한국인들과 같이 동석하게 되었다. 술이 몇 순배 오가자 주제는 ‘태국인’ 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들로 이어진다.
“ 사실 말이지... 우리가 태국애들 좀 무시하는 경향은 있지만서두, 태국의 돈 있는 사람들이 자기네 종업원 무시하는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지!! 우리가 옆에서 보기 무색할 정도로 완전히 일하는 사람들을 종 부리듯 해요. 하인도 그런 하인이 없지.”
다른 이가 말한다.
“ 여기 주인 부부들이 맘이 좋아서리, 종업원 두 명 두면서 개네들 식구들까지 여기 몰려와서 지내는 거 봐 주는 거지.. 태국 주인 만났음 택도 없는 거야~ 종업원 두명에 그 아들에 언니에, 언니네 아들까지... 군식구들이 4명이야. 내가 아주머니한테 뭐 저 사람들 다 내치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건 하나 알아야 되요. 잘해 주는 거 다 소용없어! 저렇게 잘해줘도 나중에 조건 조금만 좋은데 나면 온다간다 말도 안하고 안나온다니까...”
이싼의 나컨파놈 출신이라는 여 종업원은 우리 옆에서 고기 굽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다.
“ 태국 애들 한가지 나쁜 버릇이, 같은 태국인들끼리한테는 별로 바라는게 없으면서 외국인은 완전 봉으로 알아요. 얼마 전에 골프 치다가 버디를 날렸는데 아 캐디들이 다 팁 바라고 내 얼굴을 빤히 보고 있더라구... 내가 버디 쳤는데 왜 내가 팁을 주냐구요!”
“ 팁 한번 주기 시작하지.... 그러다 담에 한번 못 줘봐... 아주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낸다니까.. 그동안 받은 거 고마운 생각은 못하고 말이지...”
여행자와 생활인들 사이에는 뚜렷한 시각차이가 존재 하는건지, 아니면 그들이 운 나쁘게도 별로 좋지 못한 태국인들을 만난건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식사를 끝내자 종업원과 그 식구들이 우리 옆에서 식사를 하기 시작한다.
조금전의 성토(?)와는 달리 “ 아이구..아까 우리 밥먹을 때 같이 먹지...그래도 저 태국 아줌마가 아들 하나는 잘 키워요. 아주 반듯하고 착하다니까...”라며 반찬과 고기들을 그들 앞으로 밀어준다.
연이은 이틀 동안의 한국식사는 우리에게 보약과도 같은 효과를 내며 나의 대책 없는 향수병도 조금 달래주는 듯 하다. 물론 요왕은 남은 날짜를 꼽아보며 한숨을 푸푸~ 내쉬지만 말이다.
아유타야의 귀여운 뚝뚝
야유타야의 짜오프라야 강변에 있는 수상식당 ‘반 쿤 프라’
방빠인 궁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