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 싸무이가 변해가는 방향
(2003년 글입니다.)
2년 전 우리가 3년 만에 다시 싸무이에 도착했을 때, 차웽에 입점해 있던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등등의 다국적 프랜차이즈 업소들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했었다. 싸무이에 패스트푸드 전문점이라니...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쨌든 편리하고 쾌적했다.
다시 찾은 싸무이는 얼마 전에 오픈한 로터스(대형 할인마트)가 현지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성업중이다. 게다가 차웽의 인기 있던 식당 윌웨이트가 있던 자리에는 ‘카오산’이라는 이름의 식당이 대신 들어서고, 라마이에는 카오산의 ‘버디롯지’와 ‘수지펍’ 분점이 오픈을 앞두고 공사중이었다. 싸무이의 변화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듯하다. 누군가는 이변화가 좋을 것이고, 어떤 이는 마땅치 않아하며 혀를 쯧쯧 찰지도 모르겠다.
따오에서 선크림도 안 바른 채 혼자서 내내 뙤약볕 아래 떡~ 하니 서있던 요왕은 썬번을 입었는지 배낭도 어깨에 메질 못하고, 내 가방이 어쩌다 자기의 종아리를 스치니 버럭~!! 하며 비명을 질러댔다. 불쌍한 마음에 싸무이에서 에어컨 방을 잡아놓고 이리 저리 살펴보니 얼룩덜룩 한 몸 색깔이 마치 이면수 껍데기 같았다.
배 쪽은 하얗고 등과 허벅지는 중간색, 종아리와 허리는 다 타서 검붉고 팔뚝과 어깨는 더더욱 검다. 등짝에 대충 발라놓은 선블록을 따라 허연 선이 죽죽~ 가 있는 모양새가 정말 안쓰럽다.
“세상에... 선탠을 하려면 좀 있어보이게 근사하게 하던가... 이게 뭐꼬... 도데체... 어디 못 있을 데 있다 온 사람처럼...”
“낄낄...기념 사진 찍어야지...벽에 붙어 있을테니까 잘 찍어!!”
그러더니 하얀 벽에 가서 만화에서 자주 보는 포즈(벽에 부딪힐 때 한쪽 다리는 들고 두 손은 번쩍 올린...)로 철썩 들러붙었고, 우리는 그 사진을 화면으로 보며 낄낄 거리며 웃었다.
그날 오후 라마이의 노네임 방갈로에 방문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는 동안, 우리는 전날 꼬 따오에서 한명의 한국인이 스노클링 도중 죽었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정확한 사고경위는 알 수 없었지만, 같은 날 같은 섬에서 비슷한 투어를 하던 한국인이 운명을 달리했다는 이야기는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었고 날씨마저 비바람을 동반한 폭풍이 기승을 부려 더욱더 을씨년스러웠다.
우연의 일치로, 싸무이에서 떠나오는 날 사서 본 방콕 포스트에는 정몽헌 회장의 자살소식이 실려있어 또 한번 우리의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싸무이의 날씨는 이상기후 때문에 저녁엔 매일매일 비가 오고 바람마저 스산하게 불어 묘한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해변에서 유유자적하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그다지 이상이 없었다. 새로 생긴 숙소와 바들도 여럿 눈에 보이고 몇몇 숙소들은 프로모션 가격을 제시하며 방 팔기에 여념이 없다. 시즌으로 보면 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사스의 여파가 아직까지도 희미하게 남아있는 듯 하다..
우리는 따오에서의 액티비티로 인해 가벼운 근육통이 생겼고, 그걸 핑계삼아 이틀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어슬렁거리면서 해변을 걷거나 괜찮아 보이는 식당의 메뉴판을 뒤적이는 걸로 시간을 보냈다. 지겨운 사원이나 가기 싫은 투어 억지로 안 가도 되고, 숙소 조사를 위해 방갈로마다 들어가서 방을 보지 않아도 되다니....... 늘상 지도와 수첩에 뭔가를 표시하지 않아도 되고, 매번 무언가를 기억해 내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이번 여행이 나는 참 좋다. 지금까지 여행에서 별 생각 없이 그저 따라다니기만 한 내가 이럴진데, 요왕은 아마도 나보다는 몇 배 더 좋으리라.....
싸무이의 편안한 생활에 길들여진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말레이시아로 가려던 계획을 수정해 그냥 태국에 남아 있을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여기서 페낭 갈려면 아침에 출발해서 밤에 도착하게 되고... 게다가 카메론하이랜드에 들렀다 다시 방콕으로 올라오려면 24시간이 넘게 걸린다구.... 돈도 많이 들고 말이야.... 우리 그냥 깐짜나부리로 올라가서 놀자...”
“음냐...... 말레이시아 가기로 해놓고 안가면 체면이 안서잖아..... 가기로 맘먹고 온 거 가자... 게다가 페낭에 음식도 맛있다며..... 음식 먹으러 가야지... 이왕 남부까지 온 거 그냥 눈 딱 감고 가자..”
결국 내 고집대로 우리는 페낭 행을 결정했고, 싸무이에서 페낭까지 가는 조인트 티켓을 끊었다.
다음날 아직 날도 다 밝지 않은 새벽 6시에 숙소에서 나온 우리는 그날 저녁 말레이 시간으로 9시가 넘어서야 페낭에 도착할 수 있게 됐다.
썽태우 타고 싸무이의 나톤항으로 나와 거기서 배 타고 돈삭에 도착, 다시 버스에 올라타고 쑤랏타니에 도착, 봉고에 올라타서 핫야이까지, 핫야이에서 다른 봉고로 갈아타고 국경까지, 국경에서 다시 세 번째 봉고로 갈아타고 페낭까지..... 헉헉~~~ 중간에 봉고 기사가 길을 잘 못 드는 바람에 시간이 훨씬 더 걸렸다.
그야말로 뼈와 살이 분리되는 듯이 피곤하다. 안 그래도 바늘 뼈에 두부살인데.... 흐흑... 봉고는 곧장 페낭의 출리아 거리의 스위스 호텔로 직행했고 그 시간에 다른 곳을 찾기도 곤란했던 우리는 여기서 여장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