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주기9. 1000미터 위의 끄무족 끼우칸 마을로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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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기9. 1000미터 위의 끄무족 끼우칸 마을로 등산

탄허 0 1408
종주기9 끼우칸 마을로 등산하기 

7:00 커피를 내려마시고 끼우칸이라는 1000미터 위의 마을이자 산 정상에 오르기로 했다. 아직 가게들이 열지않아 아침은 코코낫가루를 송편처럼 만들어 물에 삶은 떡과 바나나를 기름에 튀긴 것을 아침과 새참거리로 샀다. 

9:00 반쎈이라는 마을에서 캄마오씨를 만났다. 그는 오늘 사냥을 나가기로 되어있는데 우리를 만나 산길로 서너시간 거리에 있는 끼우칸까지 가기로 약속을 했다. 15만낍. 약 2만원. 
그는 우리가 못믿어웠는지 집을 비우고 부재중. 현지 주민의 가이드 없이 열대산림을 트렉킹한다는 것은 모험이다. 내가 뻔한 길도 잃어버리고 고생한 것이 어디 한두번인가. 그냥 가자는 일행의 말을 무시하고 나는 캄마오를 기다렸다. 어디선가 웃음을 띠며 나타난다. 
캄마오가 앞장서고 우리는 따르고. 등산을 가는 일행은 이사벨이라는 6년째 여행중인 스위스 여성이 합류하여 6명. 마을을 빠져나가니 논이 나타나고 논이 말라있어 편안했다. 반쎈 사람들도 사냥을 나오고 있었다. 개들의 모습이 민첩하고 영리해보인다. 열사람은 되어보이고 개도 열마리는 되어보이는데 총은 조선시대에나 쓰였을 법한 화승총을 닮았다. 총신은 길다. 무엇을 잡으러가냐고 물으니 멧돼지를 잡는단다. 우리가 산을 내려오면 이들이 잡아놓은 야생 돼지 고기를 맛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한 겨울 낮의 꿈을 잠깐 꾸고. 
논길을 지나니 이제 후와이쎈이다. 후와이는 개천의 라오스어. 크고 작은 개천들이 많이 있어 양말을 벗었다 신었다를 반복. 캄마오가 업어서 건네주기도 하고. 개울에는 쎈 마을 사람들이 사용하는 소형발전기도 걸려있고. 마침내 개울을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가는 구간이 나와서 전원 양말을 벗고 차가운 개울물에 정신을 깨웠다. 개울을 다 건너고 나서 캄마오가 내 발에 붙은 거머리를 떼어준다. 

드디어 등산로. 평탄한 구간과 가파른 구간이 갈마든다. 라오스에 와서 첫 본격적인 등산이다. 걷는 것이야 새로울 것이 없지만 한국식 등산은 처음이다. 안쓰던 근육들이 당겨지는 기분이고 뻑뻑하다. 일주일에 야간 산행을 세번을 하시는 동반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교편을 잡고 있는 동반은 힘들어하신다. 그래도 오르막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호흡을 고를 수 있는 구간이 자주 있어서 등산으로 볼 때 아주 괜찮은 코스다. 
마침내 정상. 
스마트폰을 열어 지피에스로 고도계를 열어보니 1000미터를 넘어있다. 끄무족들은 돼지를 모처럼 잡았는지 부산하다. 우리가 왔는지 말았는지 관심도 없고. 뭔가 격식을 차린 말씨가 아니고 거침없이 내뱉는 소리들이라 야생의 소리로 느껴진다. 검은털의 돼지가 해체되어있다. 맛을 보고 싶은 우리가 팔라고 해도 자기들 먹을 것도 부족하다고 딱잘라 거절. 
예의나 의식이라곤 찾을 수가 없다. 이 산 위에 그런 것은 사치일 수도 있고. 이들이 대처로 나오는 것은 우리가 묵고 있는 므앙응오이에 10일장이 설 때 외에 없을 것이다. 지난번 답사 왔을 때 이 동네 아낙들이 기름과 조미료를 사가는 것을 보았으니까. 

왜 이들은 여기에 사는 걸까? 바보스럽긴 하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캄마오도 이유를 모르겠단다. 캄마오는 여기에 친척을 두고 있었서 집안에 들어가 밥까지 얻어먹는 입장이어도 이유를 댈 수가 없다. 캄마오는 산을 내려와 쎈 마을에 정착해서 살고 있다. 산을 내려간 사람들과 남아있는 사람들. 산 위의 사람들 입장에서 내려간 사람들은 비겁하거나 배신자들일까?
내 짐작이긴 하나 처음엔 몽족이나 끄무족이나 어쩔 수 없어서 산 중턱이나 산 정상에 살아야했을 것이다. 라오족들이 윈난의 씹쏭판나 지역 부근에서 대거 남하를 했으니까. 끄무는 산 중턱 부근으로 피하고, 몽족은 나중에 내려왔으니 남아있는 땅이란 산의 정상 부근이고. 살다보니 산에 사는 것이 정상적인 상태가 되어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두려울 지도 모른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충돌이 싫으면  피하면 되는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다툼이 일어난다. 식물에 비하여 동물이 우수한 것은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움질일 수 있다는 사실 외에 무엇이 있는가? 생존 조건이 열악하고, 척박해도 위험하거나 충돌이 불가피한 상태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여간 다행히 끼우칸 마을은 햇볕이 잘 드는 양지 바른 땅에 둥그렇게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다. 

여기에도 공사차량들이 나타났다. 농키야우에서 끼우칸, 므앙응오이를 연결하는 도로공사라 한다.  농키야우에서 끼우칸에 오려면 차량으로도 네댓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도로가 좋아지고 므앙응오이까지 차량으로 다닐 수 있다면 더 이상 여기도 오지가 아니게 될 것이다. 농키야우에서 끼우칸까지만이라면 모르되 므앙응오이까지 도로가 연결된다면 뱃길로도, 육로로도 다니게 될 것이니까. 지금도 바이크 트렉커들은 이렇게 들어오고 있으니까. 

끄무족 마을에서 맥주 한병, 찹쌀밥 두 접시를 꼬마김밥으로 배를 채우고 하신길을 재촉했다. 밤에 어떤 장비도 없이 산을 내려올 수는 없으니까. 므앙응오이에서 끼우칸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루를 여기에서 묵고 내려간다. 홈스테이가 전부다. 게스트하우스 조차도 없고 홈스테이가 전부다. 

부지런히 내려와서 오르막은 반쎈에서 3시간 30분이 걸렸으나, 내려올 땐 3시간에 내려왔다. 반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주문해두었던 닭죽과 닭 볶음 두마리를 등산을 했던 6명이 나누어먹었다. 닭에 찹쌀을 넣어 끓이게 하였으나 죽이 좀 퍼져서 뻑뻑하긴 하였으나 그래도 먹을 만 했다. 사냥꾼들은 허탕을 치고 아쉽게도 왕대만 지고 내려왔다. 

이사벨은 내 메일 주소를 적고 독일인 동반 여성을 찾아 일찍 반나마을로 떠났다. 힘들었을 동반을 위해 위해 나는 오토바이를 수배해서 먼저 내려가게 했다. 반쎈에서 므앙응오이까지 해동갑해서 내려오려고 7킬로의 거리를 쉬지도 않고 내려왔다. 
우리가 다 내려오니 므앙응오이는 이미 어둠에 묻혀있었다. 
씻고, 커피를 내려마시고, 컴퓨터를 켰으나 자판은 두들겨보지도 못하고 이내 쓰려졌다. 

*사진은 링크된 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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