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로 갔다 온 하롱만과 흐엉사
(2005년 글입니다.)
사실 투어 란 게 요리조리 알아보고 결정하기까지의 단계가 좀 골치 아파서 그렇지 일단 돈을 지불하고 계약을 하고 나면, 암것도 신경 쓸것 없이 그냥 대기하고 있는 차에 실려 가서 정해진 루트대로 둘러보고 식탁에 차려주는 대로(식사가 포함된 투어일 경우) 먹으면 되는 거라서, 시간이 별로 없는 단기 여행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택이다.
우리는 단기 여행자가 아니어서 잠깐이나마, 독립적으로 우리끼리 하롱이랑 근교 볼거리에 다녀와 볼까? 하고 생각도 했었지만, 곧이어 요왕의 8년 전 회상이 이어지면서 그냥 투어로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8년 전 홀로 이곳에 왔던 요왕은 투어 팀이랑 섞이지 않고 혼자 하롱에 가 보겠다고 일단 터미널로 갔단다. 당연히 현지인들보다 비싼 외국인 버스요금을 적용 받고 하이퐁을 거쳐 하룻밤 자고 다시 배를 타고 하롱의 바이차이 란 곳까지 가서 담날의 보트 투어 계약을 했는데 그때 돈으로 투어비만 20불 넘게 지불을 했다나...
다음날 11시 쯤 오라는 말을 듣고 시간 맞춰 비척비척 항구로 갔더니만, 다른 단체 여행객들이 우르르 타는 배에 같이 타라고 배정해 줬단다. 거기 까지 뭐 그럴 수 있다 쳐도 인솔해주고 챙겨주는 가이드도 없이 단체여행객들 사이에 껴있었던 바람에 남들 다 먹는 점심밥도 못 먹고(그 시간에 그냥 갑판에 나가서 바다랑 이야기 했다나...) 남들 수영할 때도 그냥 하늘만 보고 있고... 오후 5시쯤 돼서 이 고문 같던 유람이 끝나고 돌아와 보니 피부가 태양에 완전히 홀라당 타서 화상까지 입고, 결국 쓰라린 맘과 벗겨지는 피부를 하고 얼렁 비행기 표 끊어 방콕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돈은 돈대로 손해 보고 재미는 거의 못 보다니...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 주니 ‘나 그때 진짜 너무 고생했어...’라며 우는 소리를 한다... 쩝 불쌍했다.
자 이쯤 되면 투어로 가는 건 당연 한 건데, 근데 뭘 택한다지...
신까페와 킴까페로 대변되는 저가형 대형 여행사들과, 후발 주자이긴 하지만 꽤 탄탄해 보이는 프로그램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몇몇 중소 여행사들... 거기에 더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니긴 하지만 가격면에서 저렴한 잔잔한 여행사들 까지... 정말로 많은 여행사들이 이곳 하노이의 구시가지에 진을 치고 있다.
이곳의 거리에 걸려 있는 투어 상품 광고는, 동대문에 옷들이 걸려 있는 것 처럼 그냥 눈만 돌리면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대그룹이냐 소그룹이냐, 투어 중에 카약킹이나 다른 액티비티들이 포함 되냐 안 되냐, 1박2일 투어일 경우 배에서 잘 건지 아니면 깟바 섬의 호텔에서 잘 건지, 배에서 잔다면 배의 상태는 또 어떠한 건지(다들 자기네 회사 배가 좋다고 말들 하지만 완벽히 신뢰하기란 어렵다), 꽤 많은 것들을 이리재고 저리재고 해야 하는데... 몇 군데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 게 가장 좋은 선택이 될지도 사실 헷갈려버린다.
여기에 덧붙여, 우리 숙소의 젊은 사장이 자기네서 투어를 신청하라고 얼마나 종용을 해대는지, 아침에 밥 먹을 때도 앞에 빤히 앉아 있고 외출하고 들어오면 물어보고 나가면 또 물어보고... 아... 아무래도 숙소도 비교적 저렴하게 있는바 그냥 숙소 카운터에서 신청하기로 해버렸다.
저렇게 쪼아대는데 다른 곳에서 투어 신청하면 아무래도 돌 날라오거나, 아침에 제공하는 식사에 못된 짓 이라도 할 것 같다. 물론 실제론 그렇지 않겠지만, 어쨌든 맘 적으로 상당히 불편한 일...
깨끗한 방에 에어컨, 냉장고, TV 있고 온수 잘 나오고 인터넷 공짜에 아침까지 제공하면서 110,000동이니 여기서 투어 신청하는 것도 금전적으로 그다지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계약을 했다.
사실 투어의 일정은 간단했다.
8시에 픽업 당해서 중간에 기념품 가게 하나 들린 후 계속 달려 오전 11시쯤 하롱시에 있는 선착장에 도착... 지정한 배에 올라타서 잠시 기다리다 보니 점심 나오고( 맛있었다... 헤헤~) 계속 하롱만을 둘러보다가 오후 3시쯤 배 옆구리에 달려 있던 카약 내려주더니 맘껏 놀랜다.
서양애들은 기운이 뻗치는지 카약 타고, 2층에서 점프하고 아주 신이 났다. 서양 사람들이라도 젊은 애들은 완전 우당탕탕 거리며 놀고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은 그냥 수영이나 좀 하고 선탠이나 하면서 조용히 지낼뿐...
바닷 속에서 놀던 애들 대충 불러 모아서 배에 집합시키고 다시 항해 시작해서 오후 5시쯤 깟바의 한 호텔에 투숙~
호텔에서 푸짐한 저녁 먹고 섬 한 바퀴 구경하고는 에어컨 만 땅으로 틀어놓고 잤다.
사실 가이드가 배에서 잘래? 아님 호텔에서 잘래? up to you~라고 했는데, 선상에서의 찌뿌둥함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다소 운치는 떨어지지만 호텔을 선택 한 건데 배에서 자는 건 어떤 느낌일까... 감이 잘 안온다.
그 담날... 호텔에서 차려주는 간단한 아침을 먹고 8시에 배에 올라 3시간 동안 천천히 하롱만을 유람하고, 11시 반쯤 선착장에 내려 또 어떤 호텔 식당에서 차려주는 밥 먹고... 잠시 잡담 좀 하고 놀다가 12시 반에 차에 오르면 또 한군데의 기념품 샵을 들른 후 4시에 하노이에 도착 하는 걸로 끝~~
소그룹 투어이고 밥도 잘 나온다고 해서 26달러를 지불했는데, 잘한 결정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11명의 투어 인원 중 우리와 사이공에서 허니문 여행을 온 베트남 부부를 빼면 전부 웨스턴 들... 아시안이라는 공통점 때문이지 몰라도 우리랑 그 사이공 커플이랑 같이 테이블에 앉게 되거나 잡담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뭐 둘 다 짧은 영어로 속 깊은 이야기는 하지 못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하노이(또는 북부 베트남...)에 대한 견해는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었다.
- 사이공은 하노이랑 틀려요. 하노이보다 훨씬 크죠... 그리고 우리는 하노이 사람이랑 다른 스타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답니다. 심지어 말도 약간씩 틀리구요... 우리는 USA 스타일, 하노이는 러시안 스타일이죠...
-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구요. 오오~~
- 그렇죠. 사이공 사람이 만약 ‘아이 라이크 유’ 라고 말하면 그건 정말 상대방을 좋아한다는 뜻이에요. 근데 하노이 사람은 실제로 좋아하지 않아도 ‘아이 라이크 유’라고 할 수 있어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당신네 나라 코리아도 비슷할걸요?
- 아... 우린 서로의 땅에 갈수도 없는데... 그래도 베트남 사람들은 여기저기 갈 수나 있으니... 좋으네요...
- 그렇죠...
서로를 아직 완전히 믿고 신뢰 하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통일이 된지 30년 정도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남과 북은 같은 스타일은 아닌가보다..
둘째날 점심을 먹는 도중 다른 투어 팀의 홀로 다니는 대만 할아버지가(자신을 ‘부다’라고 부르라고 강력히 주문함) 중국인 단체 관광단이 호텔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더니만 사이공 커플에게
- 오~ 유어 코뮨 멤버~ 세임 세임~ ...한다.
쓴웃음만 짓는 사이공 커플과,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한테 말 붙이러 휘청거리며 사라지는 할아버지 덕분에 약간 객쩍인 느낌마저 들어버렸다.
어쨌든 예상보다 꽤 잘나왔던 식사와(언제가 먹는 게 중요한 바로미터다!) 멋진 하롱만의 전경 덕에 26달러의 요금이 별로 아깝게는 느껴지지 않는 일박 이일 이었던 듯...
하노이의 힛트 상품 ~ 하롱 베이... 이미 중국 여행 루트에서 귀저우 성에 들어서면서부터 계속 보아온 카르스트 지형(싱이-류저우-양숴-싱핑-구이린)의 연장선이어서 그런지, 대한항공 시에프에서 느꼈던 것 만큼의 감동을 우리는 못 느꼈지만, 서울에서 곧바로 날아와 이곳을 본다면 바다위의 계림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시리 모두에게 특별한 풍경을 선사해 줄듯 하다.
벌써 한 달 넘게 계속 봐온 동글동글 한 카르스트 지형들 속에서도, 이곳 하롱베이의 풍경은 남다른 그 뭔가가 분명 있었으니까...
그 담에 했던 투어는 하노이 근교의 흐엉사(香寺), 일명 퍼퓸 파고다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이것 역시 간단한 일정이다. 8시에 픽업 당해 11시에 미독이라는 마을에 도착~ 이곳에는 퍼퓸 파고다까지 이어지는 작은 강이 있다. 1시간 배타고 상류로 거슬러 올라간 후, 왕복 2시간 반이 넘는 산행을 해서 퍼퓸 파고다를 보고나면 점심을 먹여준다. 점심 먹고 식당 바로 옆에 있는 절하나 보고 나면 오후 4시... 다시 한 시간 배타고 하류로 내려와서 잠시 쉬다가 버스타고 달려 하노이 도착하면 저녁 7시...
왕복 2시간이 넘는 산행 동안, 곧 죽을 거 같다며 헉헉 대는 사람, 땀으로 샤워를 한 거 같다며 툴툴 대는 사람, 그저 심드렁하게 터벅터벅 걷는 사람 등등 별 스타일이 다 있다.
스타일은 다 달라도 모두들 얼굴은 벌겋게 익어 버리고 티셔츠는 완전히 땀으로 다 젖는 걸로 봐서, 여하튼 쉽지 않은 산행인 것은 분명했다.
여기서 오고가는 보트를 탈 때의 우리의 동행자는 베트남인 노부부였다. 매우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는 탓에 우리는 첨에 그들이 일본인 이라고 지레 짐작했는데, 사공 아줌마와 이야기 하는걸 듣고서야 베트남 사람인걸 알아챘다. 그들은 1968년 사이공을 떠나 프랑스로 이주해서 그곳에서만 37년 째 살고 있단다.
그들의 아이들은 프랑스에서 완전히 프랑스인으로 성장했고, 그들이 베트남에 살고 있을 당시에도 하노이 쪽으로는 와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 내가 베트남 사람이지만, 하노이가 낯설기는 당신과 마찬가지에요. 이번이 우리의 첫 하노이 방문이니까요.
사업가인 아저씨는 우리나라의 부산에서 몇 달간 지내기도 했고 , 아시아의 여러 곳을 많이 다닌 듯 했다.
이번 투어도 사업차 온 일정에 잠시 틈을 내서 하는 거라며 월요일이 되면 다시 비행기 타고 사이공으로 계약을 맺으러 가야 된단다. 완고해 보이지만 지성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노부인은 핸드폰으로 누군가에게 불어로 길게 이야기 한다.
뱃사공 아줌마와는 베트남 말로, 우리와 이야기 할 때는 영어로, 다른 배에 혼자 실려 가던 프랑스 소년에게는 프랑스 말로 유창하게 대화하는 그들 부부를 보니 베트남의 드라마틱한 시간들이 이들의 삶을 참 특별하게 만들어 버린 듯 했다.
어쨌든... 오고가는 투어가 끝나고 마지막에 배에서 내려 팁을 주는 시간~
우리는 과연 얼마가 적당할까 골똘히 생각하다 20,000동 정도면 (태국돈으로 약 50밧 정도...) 괜찮을 듯 해서 그걸 건네 줬더니, 모자란다는 표정이 역력하고 돈을 더 달래는 거다. 그것도 우리 배 저어준 뱃사공 아줌마 보다 옆에 떼로 있던 다른 아줌마들이 더 큰 소리로 떠들 길래 팁 주면서도 약간 씁쓸하고 황당한 마음이 들어버렸다... 쩝... 알고 보니 우리랑 같이 탔던 그 노부부는 3달러를 줬다는데, 우웅~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나... 내 돈 주고도 싫은 소리를 들어야 되다니, 마지막에 약간 슬펐지만 뭐 그럭저럭 우리끼리 수다 떠는 걸로 기분을 상쇄시키고 차에 실려 돌아오니 하노이는 이미 깜깜해져있다. 이렇게 흐엉사의 원데이 투어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