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fun time. 끄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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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fun time. 끄라비

고구마 3 2985
리뻬에서 간단하게 끄라비로 올수도 있었다.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미니밴을 잡아타면 곧바로 끄라비 시내에 내려주니까...
하지만 우리가 택한 방법은 ‘대중교통’이었다.
빡바라 항구에서 썽태우를 타고 ‘라 응우’로....라 응우에서 뜨랑행 버스를... 뜨랑에서 썽테우 타고 뜨랑 버스터미널로... 뜨랑 터미널에서 끄라비행 버스를 탄 후... 끄라비 터미널에 내려 썽태우를 타고 시내로... 오전 9시에 시작한 여정은 오후 6시에 끝이 났다.

우리는 고난과 고생을 즐기는 매저키스트 인걸까.. 아니면 돈 한 푼에 다리품을 마다하지 않는 수전노 인걸까....음...그냥 부지런한 여행자라고 해두는 게 그나마 나을 것 같다. ^^;;
연이은 길고긴 여정 때문에 약간 몸살기가 돌고 속까지 편치 않다. 끄라비를 거쳐 후아힌으로 갈 계획이었지만 결국은 이곳에서 주저 앉았다.

다른 섬들과 해변으로 향하기 전에 잠시 들르는 작은 도시로 치부해버리기엔, 끄라비가 가진 매력이 그리 꾀죄죄한게 아니다.
썽태우를 타고 조금만 달려가면 아오낭과 라이레 해변이 있고, 배타고 꼬 피피를 갔다 올수도 있다. 근처에 산재해 있는 조그만 섬들 사이로 아일랜드 호핑도 하고 따오의 낭유안 처럼 앞에도 바다~ 뒤에도 바다~ 인 재미있는 해변도 있다.

섬에 비해 저렴하고도 질 좋은 숙소에 묵으면서 바다가 주는 혜택은 거의 다 누릴 수 있으니 우리 같은 백패커 들에겐 환영받는 곳이다. 그리고 저녁이며 열리는 두 군데의 야시장에서는 그야말로 먹거리가 쏟아져 나온다.

비치를 갔다오거나 투어를 하기엔 몸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어디를 갈까 궁리하다 끄라비 근교의 ‘싸 머라꼿 Crystal Pond’에 갔다 오기로 한다.
다행히 아침 시장 근처에서 싸 머라꼿으로 가는 썽태우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 시장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바로 차를 잡아타기 위해 시장 쪽으로 향한다.

싸 머라꼿으로 출발하기 전에 아침으로 먹은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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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 빠른 요왕을 못 따라 잡을 때면 가끔 나는 멀찍이 뒤쳐져 가곤 하는데, 뒤에서 요왕을 바라보니 뭔가 좀 이상하다.
‘저 신발에 노란색이 있었던가......’
여행오기 전에 새로 장만한 운동화는 분명히 파란색인데... 왠 황금색이 번쩍?
에구머니나!! 똥 밟았구나... 그것도 지대로 밟았네...
“요왕! 요왕~~ 오른쪽 발 오른쪽 사이드.....”
내 목소리에 어리둥절해 자기 신발을 보더니 꺄울~~ 질겁을 한다.
“아우... 아침부터 재수없게.....”
“내 옆에 오지마... 저리 멀찍이 떨어져...빠이! 빠이!!”
“아주 틈틈히도 박혔다.. 낄낄.. 그러나 저러나 장 상태가 아주 좋은 개 인가봐.. 아주 황금색인걸.....”
탁탁탁! 털어보지만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더러워 죽겠다고 소리치니 똥 묻은 신발로 살살 어루만져 주겠다며 낄낄댄다... 아... 미칠 거 같고 토가 쏠린다..

아침 9시행 썽태우를 잡아타고 거의 한 시간하고도 20분여를 달리니 마침내 싸 머라꼿이다.
앗~ 근데 이게 웬 말이람.... 입장료가 있다... 태국인은 20밧.. 외국인은 200밧...
“아침에 똥 밟았더니 되는 일이 없네...”
그 푯말을 보자 정적이 잠시 흐르고 텔레파시가 교환됐다...우리는 말없이 스르륵 창구앞에 갔다.
“ 끼 콘..? (몇명이에요.?)
“썽콘...........(두명)”
모기만한 목소리로 두 명이라고 얘기하자 ‘씨십밧...’ 이란다. 옆에서 눈치 보던 요왕이 얼른 40밧을 던져주고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숲속으로 후다닥~ 사라졌다.
양심 없는 행동이었지만.....외국인한테는 대놓고 10배나 더 받아먹는 입장료 규정도 야박하기는 마찬가지라며 스스로 달래본다. 야박함에는 비양심으로 대처해도 괜찮다며....

“고구마야..살다살다 니 얼굴 덕보는 날도 있구먼...”
“근데..정말 외국인한테 칼같이 200씩 받는걸까? 그렇다면 너무한데...그냥 저렇게 써놓고 다 20 받는거 아냐...?”
“어쨌든 잘된 일이야...”

1킬로 남짓 축축한 우림 속을 걸으니 드디어 연못이 등장~~
이곳은 완전히 현지인들의 야외 풀장이었다. 어른 아이할거 없이 연못 속에 들어가거나 근처 얕은 계곡에 몸을 누이고 있다. 우리네처럼 할머니들은 물에 들어가지 않고 돗자리 위에서 식구들이 벗어놓은 옷가지를 챙기며 아이들에게 조심하라는 주의를 준다. 많은 사람들이 물에 들어가지만 현지인들 중 수영복을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들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를 입고 풍덩~ 뛰어든다. 섹스 산업이 발달해서 이런 쪽으로도 무척 개방적일 것만 같은 선입견과는 달리 일반 서민들은 ‘아시안’답게 여전히 보수적인 듯 하다. 비키니를 입고 있는 한 쌍의 서양여행자들이 이들 속에서 정말로 이방인 같다.
온통 웨스턴들이 점령한 푸껫과 팟타야 등등의 메이져 비치에서와는 달리, 허연 살을 내놓고 연못 한가운데에서 에로 무비 찍고 있는 이들이 유난히도 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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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복도 타올도 챙겨오지 않은 우리는 따로이 할 일이 없다. 근처에 온천이 있다는데 거기까지는 거의 8킬로를 걸어야 한단다... 현지인들도 대중 교통으로 오는 사람은 거의 없고 다들 자기 차를 타고 온다.
물끄러미 현지인들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덥고 습한 기운이 더해간다.

“아웅...집에 어떻게 가냐...끄라비 가는 썽태우는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생각을 좀 해보자구...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 되...”
근처 노점에서 국수 한 그릇 씩을 먹고 나니 걱정이 밀려온다.
“히치 하이킹으로 나가는 수 밖엔 없다.”
“ 헉! 우릴 태워줄까....?”
“ 번듯하고 좋은 차는 그냥 보내고 일단 픽업트럭 뒤 칸을 공략하자...”
옷 매무새를 바로 잡고 우리는 주차장 입구에 진을 치고 앉아 살살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서너 대를 그냥 보내고 나니 과연 남의 차를 얻어 탈수나 있을까 걱정된다.

“야!! 저기 픽업트럭 나간다. 빨리 나가서 잡어!!” 요왕이 내 옆구리를 쿡 찌른다.
“어어어....꼭 이런건 나보고 시켜요..”
주차관리원 아줌마랑 이야기 하느라고 잠시 차가 서있는 순간에 차 옆으로 후다닥 붙었다.
“저...끄라비 까지 좀 태워 주실래요?”
“뭐요?”
“저..끄라비....”
“끄라비 안가는데..끄라비 안가요. 우리”
뒤에서 요왕이 지원을 한다.
“끄라비 아니면 그냥 크롱톰 까지만 태워주세요. 큰 도로요 큰 도로...”
크롱톰 이라는 말에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고 짐칸으로 냉큼 올라탄다.

뒷 칸에는 우리말고도 운전사 부부의 아이들로 보이는 오누이가 함께 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태사랑 뱃지를 나눠주니 수줍게 웃으며 금세 티셔츠에 다는 모습이 귀엽다.

문화는 다른 것 같으면서도,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비슷 하다는 생각이 든다. 크롱톰으로 나오니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일러주고 그 차는 뜨랑 쪽으로 간다.
일단 큰 도로로 나오니 끄라비 가는 차를 잡는 건 식은 죽 먹기!
저녁 무렵 야시장으로 나가 망고를 1킬로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한국에서부터 준비해간 플라스틱 접시 위에 큼지막한 놈 두어 개를 깎아 수북히 쌓아놓으니 그저 입안에서 홍냐홍냐 녹아 없어진다.

맛있는 음식, 그다지 뺀질하지 않은 마을 사람들, 비교적 저렴한 물가와, 많은 볼거리와 놀거리들.... 이 모든 것들이 혼합되어 백패커들로 하여금 꿀통에 벌 꼬이듯 끄라비로 향하게 하고 있다.
3 Comments
알렉스 2004.05.08 04:35  
  고구마님의 글은 참 따뜻해서 좋습니다.
대구사투리모르는 이에게 홍냐홍냐가 뭘까.라고 생각하게 하겠네요. ^^ 저도 한때 여행중 하도 싼데만 다니니까 친구가 울었습니다. ^^ 집에 가고싶다고요.
그런 저가 요즘은 호텔에서 자는데 익숙해지고 있다니.음. 세월이 무섭습니다. ^^ 꼭 제가 끄라비에 있는것 같네요.
레아공주 2004.05.12 01:05  
  -_- 언니.... 어쩜 저곳은..라오스에서 갔었던... 정말 죽을힘을 다해 오르막 20키로 자전거투어끝에 만났던 그 곳이랑 비슷하네요... 태국에도 저런곳이 있을줄이야...아... 망고 먹고 힘많이 내고 건강하게 오세용~
M.B.K 2004.06.24 12:15  
  아 이제야 이 글을 읽게 되네요.. ^^ 저곳 너무 덥더라구요... 싸우나가 따로 없는... 그래도 계곡 곳곳의 물색이 참 다양했는데....  요왕님과 고구마님보다 제가 먼저 가본 태국 여행지가 있다니... ^^ 신기한걸요...  걸어서 8키로 떨어져있다는 온천 사진 올려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