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은 동급최강. 모래의 질은 국가대표급. 그러나 해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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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은 동급최강. 모래의 질은 국가대표급. 그러나 해변은...

고구마 2 2984
찡쪽이 싸놓은 똥무더기에 뭉개고 누워 있던 요왕은, 상쾌한 아침을 침대모서리에 앉아 온몸을 마구 탁탁탁~ 털어내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일단은 섬 북쪽의 마을 쪽으로 느릿느릿 걷기 시작했는데, 그나마 상태가 괜찮아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아침을 주문하려고 두리번거리니 누군가 안쪽에서 부시럭 거리면서 나온다.
어제 우리랑 같이 긴 꼬리 배를 타고 리뻬에 내린 태국인 여행자다.
“ 여기 묵고 있어요?”
“ 아...여긴 그냥 식당 일 뿐이고, 난 저 뒤쪽에 텐트 치고 있어요.”
“ 후아...텐트에서...? 괜찮아요?”
“ 그럼요!! 아무 문제없어요.”
그녀는 이곳의 주인장과도 친한 듯 종업원 대신 우리의 주문을 받아 챙겨준다.
남자 친구랑 같이 방콕에서 온 그녀는 벌써 이곳 방문이 4번째란다.
어제 한배에 타고 있던 다른 서양인 여행자들 두어 명과 함께 배를 빌려 스노클링 투어를 할 계획이라며 장비를 이리저리 살펴보기도 한다.
“ 우리도 일찌감치 저 팀에 붙어서 같이 할걸 그랬나...”
“ 아서라...오늘은 피곤해서 온종일 하는 투어는 무리야...”

리뻬는 무척이나 작은 섬이었다. 섬 남쪽의 기다란 파타야 해변과, 섬을 가로지르는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면 나오는 아주 작은 마을과 숙소들.... 그게 이 섬의 전부다.
북쪽에도 해변은 있지만 배가 많이 정박하다보니 그다지 물이 맑지 않고 모래도 평범한 수준이다.

오전에 파타야 해변에 나가보니 물의 맑기가 마치 수영장 풀장 같다. 해변에서 나와 있는 사람이라곤 우리뿐이고, 백사장 나무 그늘 밑에선 겨우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던 서양인이 홀로 요가를 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해변이라니... 마치 이곳이 오직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이 잠시 일었다. 베게로 쓰는 공기주머니를 껴안고 평화로운 무드로 설렁설렁 떠내려 가다보니 앗차~ 발이 바닥에 안 닿는 곳까지 떠내려 왔다. 좋던 분위기는 일순간 깨지고 정신이 번쩍 들며 발버둥을 쳐서 다시 해안으로...

스노클 하나에 의지해 바다 쪽으로 나가던 요왕이 상기된 표정으로 돌아왔다.
“ 여기 진짜 장난 아니야!! 저 앞쪽 까지만 나가도 산호초랑 말미잘이랑... 진짜 이쁘다”

숙소에서 장비를 빌려 서서히 앞쪽으로 나가기 시작하니, 바닥에 모래만 보이는 것도 잠시잠깐..... 갑자기 흑백 티비에서 컬러 티비로 바뀌듯, 다양한 색깔이 확 펼쳐진다.
수심이 얕은 곳에 아직도 이렇게 제 색깔을 유지하고 있는 산호와 많은 종류의 고기들이 살고 있다니..... 바다 한가운데에서 스노클링 할 때는 수심이 너무 깊어 자세히 볼 수 없었는데, 여기선 모든 것이 선명하고 아름답다.
연미색의 말미잘 주변에 무리지어 있는 니모 물고기(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 물고기), 뚱뚱하고 의뭉스러워 보이는 복어들, 나비 물고기와 그 외 이름을 알 수 없는 아름다운 생명체들...
긴 시간 산 넘고 바다 건너 이곳까지 온 게 공염불이 아니었구나.... 흡족하고 상기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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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여기봐.. 이상한 자국이 있다. 이 섬에 큰 뱀 살고 있나봐..” 요왕이 땅을 보며 소리친다.
“ 에이...아니겠지...자전거 발자국 아냐...”
“ 자전거가 이렇게 울퉁불퉁한 자국을 남기냐...”
이상스런 구불구불한 자국이 일렬로 주욱 이어지더니 나무 앞에서 끊기고 만다. 분명히 뭔가가 꿈지럭꿈지럭 기어간 자국인데.... 우리는 그게 틀림없이 뱀 기어간 자국일 거라며 어깨를 움츠리고 주위를 경계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엄지손가락 반 만한 소라게가 뒤뚱 거리며 기어간 자국.....
때때로 무지는 공포를 낳는다.

소라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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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바다만 좋을 뿐만이 아니라 모래 또한, 태국 최고로 쳐주는 꼬 싸멧의 그것에 뒤지지 않을 만큼 곱고도 희다.

그러나 과도하게 자연적이여서 생긴 부작용인지, 해변이 쓰레기장 비슷하게 되가는 데도 누구하나 신경 쓰는 이가 없이 그저 방치 되고 있다. 비수기라서 그런 걸까.....

“바다도 좋고, 모래도 최곤데.... 왠 쓰레기가 이렇게 나 뒹구냐...”
“으으...내가 숙소주인이라면 종업원들 시켜서 자기 집 앞바다라도 좀 치우게 할텐데..... 나라도 당장 망태랑 집게 들고 치우고 싶은 심정이야...”
“이 동네 마을 이장님이 신경 좀 써야 겠는 걸.... 개똥도 좀 치우고 말이야...”
“이 섬은 말이야, 저녁엔 나이트에서 몸 좀 흔들어 줘야 되고 끼니때는 맛있는거 좀 먹어줘야 되는 사람들한텐 영~ 따분한 곳이겠어...”
“지금이 비수기라서 그런지도 모르지... 성수기땐 또 다를지...”
“행색을 보아하니 다를 것도 없어 보이는데.....”

해가지고 깜깜해지자 숙소에만 있기만 무료하다. 술 한잔 하려고 어두운 해변을 하릴없이 배회하다 우연히 들른 ‘점핑 몽키 바 Jumping Monkey Bar’에서 보트트립 투어 가 있다는 반가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6명이 모이게 되면 한사람에 300밧이에요. 장비도 포함 점심도 포함이에요”
“그럼 만약에 우리 둘밖에 없으면요?”
“아...온리 두 사람이면 한사람에 600밧이요..”
“내일 아침 여기로 올게요. 하지만 우리 둘뿐이면 안 할 거에요...”

얕은 해변가도 이렇게 아름다웠는데, 바닷속은 얼마나 더 이쁠까.... 내일 투어가 잘 성사되길 바라며 낡고 음침한 숙소로 돌아간다.
2 Comments
qing 2004.05.08 14:32  
  12년전 피피섬 같은 느낌이군요. 해변에는 검은 해삼도 널려 있었는데 꽃게잡아서 삶아서 먹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코코넛 소라게도 주먹만한 넘이 잡히던 그런 조은해변이 태국에 '꼬리뻬'에 숨어 있었군요. ^^ 아무쪼록 손상되지 않은체 오래 보존되면 좋겠습니다. 꼭 가보고싶어 지는구요.
파자마아줌마 2004.05.10 01:13  
  난몰라~~~송크란터지는날 저희가 핫야이로 가려하다가 실패하고 접어야만했던.꼬리페....다음여행땐 무슨일이잇어도가야지..사진속 너무이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