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과 함께 씨엠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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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딸들과 함께 씨엠맆으로

아줌마 3 3316
12월 6일 월요일
방콕에서 날아와 숙소예약도 없이 낯선 곳, 느즈막한 밤 여자 셋!
걱장과는 달리 친절한 기사를 만나 공항 근처 깔끔한 호텔에 짐풀고
다음 날 어김없이 호텔로 06시에 픽업하러 와서 우린 마음 편하게 씨엠맆으로 향했다.
프롬펜의 기사 동생이 씨엠맆에 있다고 공항에 나오게 한다는 걸 애써 뿌리치고...
여행하면서 현지인들의 친절함이 과한 경우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 것같아서....
씨엠맆 공항에 도착하니 삐끼택시들의 호객이 엄청나다.
1$에 시내 데려다 준다기에 둥글넙적한 상냥한 기사를 택했다.
처음엔 글로벌에 가자고 하여 가보니 시골집처럼 허름한 모양이 우리가 묵을 만한 숙소가 아니었다.  우린 아늑하고 깨끗하며 조용한 숙소를 원하였기 때문에
(방콕에서 숙소가 시끄러워 여행을 망친 경험)
숙소만큼은 투자를 하고 싶어서 기사에게 깨끗하고 조용한 곳 추천하라니
‘MOLINA'호텔에 내려준다.
우선 방을 보고 깨끗하고 널찍하고 아늑하여 마음에 쏙 들었다(1박 트리플 20$)
그런데 기사는 당장 자기와 차량계약을 하자는 것이다.
얼마냐? -1일 25, 3일 75$에 반쓰레이+10$. 해돋이 5$. 일몰 5$,3일 총 95$이란다.
비싸서 안한다니 자기가 픽업한 걸 덤터기 씌울 모양.
내가 1$에 가자고 조르지 않았다. 당신이 말한 가격이 1$이지. 라며 난 1$만 주려 했다.
왜냐면 호텔측에서 그에 상당한 커미션을 먹었을테니.....
그쯤되니 오히려 기사가 안달이다.
우린 실갱이 끝에 1일 15$, 반쓰레이 10$, 일출5$.일몰 5$(아주 싸게 계약함)
내일부터 3일간 총65$에 하기로 하고 여행계획서(일정표)를 구체적으로 받았다.
(원래 정부 공식가가 하루 25불에 먼거리 플러스 옵션이라니 참 싸게 했다.
뚝뚝은 1일 10인데 이곳도 공기가 안좋아 싸고 운치는 좋으나 권하고 싶지 않다.)
그리곤 호텔 앞 로얄가든쪽으로 산책을 하다 너무 더워서
호텔 앞 서양식 오키드레스토랑(?)에서 식사 후 샤워하고 낮잠을 즐겼다.
오후 2시경 호텔 옆 인터넷샾에 두 딸을 두고
9일 하노이로 떠날 비행기표를 구하러 갔다.
한국인 여행사가 있어 9일 19:45 하노이 비행기를 160$에 끊고
오랜만에 남편에게 멜도 확인하고 보내고..
남편멜은 이제 곰국도 다 떨어져가고 아그들 잘 챙기란 당부로 가득하다.
아이들과 만나 강줄기를 따라 올드마켓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었다.
강변엔 가난한 자들이 천막을 치고 살고 있기도 했는데,
따뜻한 날씨가 이들에겐 축복인 듯 했다.
올드마켓은 재래시장으로 현지인들과 관광객으로 붐벼 활기에 넘쳤다.
강쪽엔 각종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짐을 줄이느라 운동화만 신고 온 딸들에게 샌들을 사줬다.
1개 9$달라는데 2개에 9$주고.
근데 신던 신발 같고, 여행 후 버리고 가야 할 거 같다.(한국물건 정말 짱!)
가격을 마구 깍으니 우리 딸들은 엄마가 너무한단다.
하긴 딸들은 처음부터 엄마 영어발음, 말하기에 늘 흉을 본다.(지들은 구경만)
한켠에서 생과일 쉐이크를 먹는데 정말 맛있다.
바나나, 망고. 파인애플, 칵테일과일.......
딸들은 톰레이더의 여주인공이 찾았던 ‘레드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길 원해
갔는데 서양인이 많다. 우린 2층에 자리 했는데 처음부터 써빙하는 종업원이
영 짜증스런 얼굴이더니 서양인이 오니 방글방글 웃으며 써빙한다.
비위 상해 벼르고 있는데 큰애 주문한 음식이 안나온다.
음식을 독촉하지 않으려 했는데, 종업원을 불러 물으니 주문이 안됐단다.
화가났다. 주문 받을 때 성의없이 받고 확인도 안하더니...
난 다른 종업원을 불러 그녀의 불친절과 재확인 안한 것 등을 말하고
더 이상 이집에서 식사할 수 없으며 불친절로 팁을 줄 수도 없음을 말하니
두 종업원 사과를 거듭한다.
유럽 여행시도 이런 인종 차별적 대우로 불쾌한 적이 있었는데....
같은 아시아에서도 이러니 정말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착한 두 딸들은 그 종업원이 불쌍하다는데..내 생각은 달랐다.
다음에 올 사람들을 위해서도......
내일 아침 04시 30분에 일출을 보기위해 일찍 잠이 들었다.


12월 7일 화요일
4시에 일어나 30분에 앙코르왓으로 출발하였다.
그런데 어제 그 기사가 바쁘다며 다른 기사를 데려왔는데 좀 무뚝뚝하고 무섭다.
왜 어제말하지 않았냐? 항의하니 미안하다고만 하는데....이른 아침부터 어쩌랴!
쌀쌀한 새벽의 한기와 어둠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앙코르왓!
천년의 신비를 품고,
웅장하고 장엄하게 우리들 가슴속으로!
1$에 배달된 모닝커피!
큰 아인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앙코르왓을 가슴에 품었었다.
기대가 크면 감동은 적어진다는데 앙코르왓은 절대 실망이 없을 것 같다.
일출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웅장함과 신비로 우리 세사람의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아침밥 먹기도 잊은 채 우린 1층의 부조를 감상하는데
딸들의 힌두 전설과 해박한 지식이 도움이 많이 됐다.
난 끝없이 이어지는 부조의 아름다움에 도취되고,
딸들은 전설에 엉킨 이야기들과 장대함에 도취되고.
10시쯤 나와서 기사와 식사를 하고 다시 앙코르왓에 갔다.
깍아지른듯한 경사를 오르고, 멀리 정글이 보이고....
정말 히말라야, 메루가 이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난 이미 압살라에 도취되었고, 그들의 웅대한 조형물아래
인간의 능력은 도대체 어디까지가 한계일까? 하는 오만함도 잠시 갖게 했다.
12시에 나와서 우선 호텔에 가 샤워 후 빵과 우유로 때우고 낮잠을 즐겼다.
2시 앙코르톰에 갔다.
앙코르왓의 웅장함을 보았으니 더 큰 감동은 없겠지...했는데
앙코르톰 또한 입구의 나가를 들고 있는 신들과 아수라상들의 위엄에 압도된다.

대체 이들은 그 당시 이 큰 해자와 큰 길, 큰 상들과 큰 조형물들을
어떤 믿음을 갖고 만들어 갔을까? 하는 의구심이 떠나질 않는다.
우리 큰애는 이번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
아니 학교 교육에 적응할 수 없었다.
2학년 2학기에 자퇴를 하고 나름대로 준비했는데 힘들었나보다.
그래도 학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단다.
지금쯤 한국에 있음 점수로 스트레스 팍팍 받고 있을 텐데...
그런 사소한 실패는 이렇게 웅장한 조형물 앞에 서니 의연해진다.
우린 서로 말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위대한 조형물 앞에서 서로 용기를 얻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프놈 바켕에서 일몰을 보았다.
한국 여행자를 별로 못 만났는데 이곳에서 교회에서 단체로 온 분들을 만났다.
엄마가 용감한가? 딸들이 용감한가? 하여 우린 웃었다.
고3이라니 여지 없이 수능은 잘봤나? 고 질문 한다.
아! 듣고 싶지 않은 말인데 참 집요하게 달라붙는다.
그래도 우리에게 이젠 웃음으로 가볍게 들어줄 여유가 생겼다.
     

호텔로 돌아오며 호텔 바로 옆에 ‘한국∥게스트하우스’가 있어서
그곳에서 김치찌개, 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T 012 482 711 korean호@naver.com)
이 곳 사장님은 매우 친절했고 여행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우린 그곳에서 똔레쌒 호수에 갈 때 미리 바우처를 가져가면
인원에 상관없이 10$(바우처 없음 1인당 10$)에 갈 수 있다는 귀중한 정보와 ‘끌렌 삐 레스토랑’ 저녁식사(10$)를 예약하고 맛사지(1시간 5$)를 소개받았다.
끌렌 삐의 압살라 민속춤을 즐기며 풍요로운 만찬을 즐기고 돌아와
발맛사지를 받으며 행복하게 잠이 들었다.


12월 8일 수요일
오늘은 9시에 출발하여 반띠 스레이와 반띠 쌈레를 둘러 보았다.
이곳은 외곽에 위치해 있는데 붉은빛 사암으로 건축되어 여성적이며 섬세하게 깊이 파인 조각들이 무척 아름다운 운치를 자아낸다.
주로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시바와 데바다여신의 조각이 많고 불교의 느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반띠 쌈레는 작은 규모에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역시 문에 장식된 깊게 파인 조각들은 하나하나가 아름다워
빼놓지 말아야 할 유적지이다.
우린 한개에 35$달라는 40센치쯤되는 압살라 나무 조각을
10$씩 4개(2쌍)를 샀다.
흥정하는 것도 재미있고 우리 딸들에게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돌아오는 길에 프라하 칸, 니악 뽀안, 타솜, 동 메본 등의 유적지를 돌아 보았다.
프라하 칸은 대단히 큰 궁전의 규모를 갖고 있는데, 앙코르왓(사원의 쓰임은 아직 밝혀지지않음)은 규모는 크지만 사람들이 생활하기보다는 어떤 의식을 치루는 장소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뿌레아 칸은 궁전으로서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방들, 회랑, 압살라의 아름다운 조각들이 지금도 춤과 음악이 흘러 나올 듯 하고 시대의 영화를 누렸던 왕과 왕비의 웃음소리가 건물 어딘가에서 들려올 것만 같아 자꾸 기웃거리며 두리번 거려진다.
살아있는 듯한 궁전이다.
기사는 매우 무뚝뚝하지만 친절했고 건실했다.
오가며 이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학교, 주변 건물들의 설명도 곁들여 들려주었다.
우기에 이곳에 오다 길이 잠겨 되돌아간 이야기,
우기면 길 양쪽의 숲은 바구니, 소쿠리등으로 고기를 낚는 낚시터가 되고,
관광객도 많이 줄어들고
이곳 아이들은 2부제 수업을 하며(고등학생까지)
자신의 아이도 8살인데 학교에 간다.
그러나 첫 번째 학교(초등)는 공부는 하지 않고 논다.
학교 안 가는 시간에 아이들은 사원에 많이 보내져 장사도하고
10살쯤되면 대부분 부모의 일을 돕는다.
학비는 정부에서 대부분을 대주고 있고, 대학 교육은 많이 안받는다.
총600$은 있어야 대학을 다닐 수 있다.
자신은 딸과 아들이 있는데 그만 낳을 생각이고,
자식을 갖을 때 남녀차별이 있느냐는 말에
없다고 말하며 처음엔 아들이 좋았으나 지금은 딸이 더 이쁘단다.
내게 딸만 둘이냐 묻고는 그렇다하니 놀라워 한다
이곳은 보통 한 부부가 6-8명의 자식을 둔단다.
킬링필드 기념탑에 가보겠느냐? 다행히 자신의 가족은 별 피해를 입지 않았다.
등등 기사는 의식이 좀 깨어있는 사람 같다.
딸들은 기사의 아이들에 관심을 갖고 많이 질문을 했다.
우린 처음엔 기사와 같이 식사를 했으나 같이 식사하면 최소한 3-4$은 드는데
팁으로 2$(하루)주니 매우 고마워하며 받았다.
같이 밥을 먹느니 기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12월 9일 목요일
오늘 일정은 똔레쌉호수에 다녀와 호텔 체크아웃 후 따프롬, 반띠 끄데이, 스라스랑,크라 반, 따 케오 등을 둘러보고 하노이로 가야한다.
똔레쌉 호수는 바다 같다.
끝을 볼 수 없다.
이들에겐 방콕 같은 수상 시장은 없지만 수상 가옥이 있는데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수상가옥 학교에서는 교실에 간단한 칠판이 걸려있고
아이들은 밝았으며
선생님은 아이들과 여유있게 담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집에 가는 아이
학교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우러져 평화로 왔다.
기사는 꽤 친숙해져 정이 들어 아이들이 배를 같이 타자 조르니
자신의 차를 훔쳐가는 사람이 많아 지키고 있어야 한단다.
그곳의 경찰과 다정하게 인사해 친구냐고 물으니
전에 경찰로 이곳에서 근무했는데 그 때 동료란다.
전에 경철을 했는데 보수가 너무 적어 결혼하면서 직을 바꾸었고
지금은 씨엠립 가까이 집을 마련하고 살고 있단다.
한국에서 결찰은 잘 산다고 말해주고
경찰이 되기도 힘든 시험을 거쳐야 한다니 의아해한다.
어렵게 내게 직업이 있느냐? 직업이 뭐냐? 봉급은 얼마냐? 물었다.
난 교사이고 지금은 휴직중이며, 1달에 약3000$를 받는다니 놀란다.
자신은 아직 캄보디아를 떠난 적이 없고, 프롬펜에 간적이 있다.
그는 해외여행을 생각해 볼 수 없다고 했다.
작은 딸 소담이가 아마 아저씨도 곧 잘살게 될 거예요.
사회는 빠르게 발전하니까요. 희망을 갖으세요. 라며
기사의 행운을 빌었다. 진심으로
갑자기 나도 학교가 그립다.
약 20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난 지쳐있었고,
나날이 타성에 젖어 사는 동료들 속에서 나 또한 그리 살고 있음에 두려워
도망치듯 휴직을 결정하고 학교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이젠 나도 돌아가면 잘 할 수 있을까? 문득 희망이 보인다.
길가에 한 칸짜리 풀집에는 보통 약12명정도의 대가족이 모여 산단다.
어린아이를 향한 값싼 동정이 아이를 계속 거리로 내몬다며 자제할 것을 요구하는 글을 읽었기에 
“1달러, 1달러만.....”을 외치는 어린 소녀를 메몰차게 뿌리치고 차에 탔는데
창밖에서 “굿 바이, 굿 바이..”하며 환하게 웃는다.
순간 난 머리가 띵해진다.
저렇게 천진하고 선한 웃음이 어디서 왔을까?
도저히 구걸하는 자의 미소로 이해 할 수 없었다.
부처님의 미소, 압살라의 춤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미소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 뭉클해진다.

우린 체크아웃 후 기사의 추천으로 전통 민속 레스토랑에서
캄보디아 전통 코스 요리를 먹었다.(1인 7$)
야자에 담긴 음식등 아주 맛있었다. 
기사는 캄보디아의 커미션제도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했고,
애초에 우린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다 했지만 가게에 들러서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자신은 커미션을 받으니 구경만 해줘도 자신을 도와 줄 수 있단다.
솔찍한 기사가 맘에 들어 정말 우린 구경만하고 나왔다.
오후에 본 유적지는 정글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괴기한 고목(기사는 gum tree라 했다)이 사원을 덮치고 세월의 무상함과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의 존재를 다시금 실감케 했다.
우린 공항으로 가던 중 기구를 타고 마지막 앙코르왓을 항공에서 보았다.
기구는 제자리에 떠오르는 거라 별 재미는 없었는데
우리가 올라가면 훨훨 날아가게 제발 줄을 끊어달라는 애교섞인 농담으로
운행하는 아저씨들과 즐거웠다.(12$)
앙코르왓은 방대한 유적이 뒤 늦게 개발되어 사람들은
방콕사람들 만큼 때 묻지 않았고 순박함을 갖고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묵직한 표정을 갖었지만 대부분 신뢰감있게 느껴졌다.
기사에게 왜 소개해준 기사처럼 공항에 가지 않느냐?
그럼 수입이 좀 더 나을텐데.. 했더니
피식 웃으며 자긴 그런 호객행위를 싫어하고
호텔에서 관광객을 알선해주면 관광객을 모신단다.
그러면서 점심값을 주는 여행객을 처음 봤다며 우리의 친절함에 감사했다.
우리나라는 같이 일한 자에게 밥을 주는 미덕이 있는데....
우린 공항에서 헤어지며 기사에게 감사의 표시로
딸에게 케익을 사다 주라면서 3$과 쓰고남은 캄보디아 잔돈 을 주는데
어찌나 감사히 겸손하게 받는지 오히려 주는 손이 미안했다.
우직하면서도 성실한 기사에게 진심으로 행복을 빈다.
(추후 이 기사님께 연락하면 제가 계약한대로 1일15불에 이용할 수 있다 함.
기사 이름 UTH SOTHEARA 이멜 sothearal@yahoo.com. T-012-996-184)


베트남여행기서 계속 만나요.
3 Comments
ㅋㅋㅋ 2005.01.16 16:00  
  남편 분 말씀 " 곰국도 다 떨어져 가고...." 압권입니다. ^_^
임채숙 2005.02.15 11:43  
  ㅎㅎㅎ 나중에 들은 말로는 설마 여자들만 떠날 수 있으랴? 생각했는데 실제로 떠나고 나니 넘 외로와 못살겠다고 하더군요. 가족이란 참 묘하죠?
2005.02.25 01:51  
  글 너무 잘 읽었어요 ^^ 저는 방콕에 거주한지 한달 남짓된 아이엄마랍니다.. 저도 4월쯤 딸 아이와 단둘이 앙코르왓에 여행을 갈까 하거든요.. 덕분에 유용한 정보 많이 챙기고 갑니다.. 님과는 엄마와 딸의 여행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더 가슴에 와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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