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 Lim의 파키스탄 여행기 29편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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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cky Lim의 파키스탄 여행기 29편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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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0대 중반으로 같이 여행을 다니던 막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부득이 혼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일정은 2007년 7월 15일 출발하여 파키스탄의 라호르 - 라왈핀디 - 탁실라 - 칠라스 - 훈자를 거쳐 카라코롬 하이웨이를 타고 7월 27일 중국으로 출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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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나의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2007년 7월 27일 -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들어가다.

 

- 머나먼 여정의 시작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토스트를 먹고 체크아웃을 했다. 훈자마을 사람들의 특징인지 하나도 바쁘지 않고 천천히 천천히 하는 바람에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빠트리고 가는 물건이 없나 다시 한 번 둘러보며 호텔을 나와 와지르 호텔로 가니 복마니가 나와 지프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정성스럽게 싸준 김밥을 배낭에 넣고 훈자마을을 출발했다. 지프는 순식간에 카리마바드에 도착했다.

 

지프운전수가 카리마바드 버스정류장 사무소에 내려줘 안에 있는 사무원에게 중국가는 국제버스를 타러왔다고 하며 버스표를 보여주었다. 차장이 반색을 하며 나를 끌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더니 뭐라고 한참 설명을 한다. 파키스탄 말이니 내가 알아들을 수 없어 더 길게 설명을 했나보다. 그러더니 버스표를 집어넣고 돈을 내어준다. 이게 무슨 일인가? 버스에서 직접 내라는 말인가? 내가 알아듣지 못하니 옆에 서있던 나를 데리고 온 운전수에게 통역해 주기를 바라며 또 설명을 하는데, 운전수 역시 영어를 모른다. 그저 한마디 하는데

“… 캔슬 … ”

이란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무엇인가 일이 꼬인 것 같아 복마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류장 사무원이 전화에 대고 복마니에게 뭐라고 설명을 하고 바꿔준다. 복마니의 말은 ‘내가 타고 갈 버스가 캔슬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소스트로 바로 가면 소스트 출발 국제버스를 탈 수 있으니 빨리 소스트로 가라.’고 한다는 것이다.

 

“복마니씨, 소스트 국제버스는 하루 전에 버스표를 예매해야지만 탈 수 있는 건데…”

“자기가 소스트에 전화해서 길깃 출발 버스가 캔슬되어서 그렇다고 말해주겠대요.”

“복마니씨는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그거야 선생님 마음대로지요, 소스트로 가시던지요, 아니면 내일 출발 하시던지요.”

“그럼 내일은 버스가 틀림없이 있을까?"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요. 나도 이런 일이 처음이라서… “

 

순간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내일은 버스가 출발하려나? 그러나 떠나겠다고 나온 훈자마을을 다시 돌아가는 것보다 소스트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복마니씨 소스트까지는 어떻게 가지요?”

“그 지프를 그냥 타고 가세요. 다른 것을 타면 시간이 늦어요.”

“그러면 지프운전수에게 말 좀 해 주세요.”

 

버스정류소 사무원에게 소스트로 꼭 전화해야 된다고 다짐을 하고 다시 지프를 타고 소스트로 달려갔다. 어제 훈자관광을 위해 갔던 길을 다시 달려가니 이번에는 그리 재미도 없고 초조해 지기만 한다. 소스트 출발 버스시간에 댈 수 있으려나 초조해 지기만 했다. 그럭저럭 달려 소스트 국제버스 매표소에 도착한 시간은 출발 10분전 쯤 되었다. 우선 버스표를 사야 되겠기에 지프에 짐을 남겨둔 채 매표소로 뛰어갔다.

 

매표소는 정말 황량했다. 한 서너 평되는 공간 한쪽에 사무용 책상 하나 달랑 있고, 사방으로 벽에 붙여 기다란 나무의자들이 둘러져 있다. 책상에 앉아있는 사람에서 국제버스표를 달라고 하니 그 버스표는 어제 예약한 사람만이 살 수가 있다고 당연한 말을 한다. 급하니 왜 영어가 그럭저럭 되는지

 

“물론 안다. 그러나 나는 길깃에서 출발하는 국제버스표를 어제 샀는데, 이것이 오늘 캔슬되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카리마바드 정류소에서 전화해준다고 했다. 전화를 못 받았냐?”

“그것은 길깃과 너의 사정이다. 여기는 소스트다.”

“그게 어떻게 길깃 사정이냐. 당연히 국제버스는 한가진데, 길깃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캔슬 시켰으면 책임을 져야하는 게 아니냐.”

“나는 모른다 그것은 길깃 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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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트 도로를 따라 늘어선 가게들. 아직 기념품이 없는 것을 보면 소스트를 통해 중국으로 가는 관광객이 적다고 짐작된다.





강제로 카리마바드로 전화하게 해서 그쪽 사무원과 통화하게 하였는데도 소스트의 매표원은 소스트에서 예약하지 않으면 표를 팔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린다. 그러는 사이에 버스출발 시간인 9시가 훌쩍 지나고 말았다. 그런데 주변 어디를 돌아봐도 길가에도 중국국제버스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좋다, 그러면 국경버스 승차정원이 다 차서 그런 거냐?”

“그건 아니다.”

“그러면 팔아라. 내가 당신 몫의 수고비를 좀 더 주겠다.”

 

이렇게 옥신각신하는 와중에 안쪽에서 무슨 제복인지 하여튼 제복을 입은 사람이 나오는데 책상 앞 의자에 앉았던 사람이 자리를 내주는 것으로 봐서 직책이 있는 사람 같았다. 그 사람을 붙잡고 다시 국제버스표를 팔라고 사정을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대답도 역시 같았다.

 

이러는 와중에 나를 태우고 온 지프운전수는 자기는 돌아가야 겠다며 지프요금을 달라고 하고, 사무실에 무슨 일에선지 않아있던 10여명의 파키스타니들은 내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는 사건이 되고 말았다. 할 수 없이 제복을 입은 사람에게 거의 사정하다시피 애걸을 했다.

 

“버스가 아직 출발하지 않았으면 내가 약간의 수고비를 주겠다. 가지고 있는 여행비가 충분치 않지만 파키스탄 화폐의 여유가 있는데 까지 주겠다.”

“얼마를 더 줄 수 있냐?”

“얼마를 더 주겠다.”

 

그 금액은 기억하기 어렵지만 아마 국경버스비의 70%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소스트에서 하루를 묵는다면 그것 보담은 적게 들 것이다. 그러나 그 제복은 표정을 숨기며 적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나는 버스표 사기는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돈을 주고 표를 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복마니에게 전화를 해서 도움을 청해보고 안되면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복마니씨, 소스트에서 이런 일을 당하고 있는데 내 상황을 말 좀 해 줘요, 어차피 여기는 파키스탄이니까 안 되면 말지요.”

“아이 ××새끼들 꼭 더러운 짓을 한단 말이야. 하지만 파키스탄이니 어떻해요…”

 

전화를 넘겨받은 제복은 복마니와 통화를 했다. 나를 흘깃 넘겨다보기도 하고, 지프 운전수를 불러 내가 가지고 있는 짐이 얼마만큼 되는가 물어보기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더니 나를 약 3초간 빤히처다보더니만 0.5초간 생각하고 결단을 내리듯 나에게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얼마를 원하는가 물었더니 놀랍게도 국경버스비만 달라고 하더니 처음에 앉아있던 사람에게 버스표를 팔라고 지시하고는 일어선다. 나는 황공한 표정으로

 

‘땡큐 베리마치’

 

만 연발했다. 책상에 앉은 사람은 내 여권을 가지고 인적사항을 적더니 버스표를 내준다. 우여곡절의 어려움 끝에 버스표를 구입했다. 복마니와 그 제복 사이에 어떤 말이 오고갔는지는 모르겠다. 복마니가 사정을 했는지, 협박을 했는지 하여튼 ‘복마니’ 덕을 본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은 모두 내가 자청(自請)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좀더 침착하게 대처했더라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처음 카리마바드에서 버스가 캔슬되었다고 환불(還拂)해 줄때, 버스표를 주지 말았어야 했다. 그리고 그 버스표 외에 카리마바드의 차장한테서 중국행 버스표를 꼭 판다는 약속의 증서를 받았어야 했다. 그렇다면 소스트에서도 버스표를 팔지 않을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믿었던 노선버스가 캔슬되는 황당한 상황을 나는 침착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었다.

 

지프에 가서 배낭을 챙겨드니 지프 운전수가 차비를 달라고 한다.

 

“차비?”

“그래 차비를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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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돌이 별안간 스르르 밀리더니 산사태로 변한다. 바로 앞산에서 산사태가 일어나도 별반 놀라는 기색이 없다.






카리마바드 픽업비용은 어제 모두 복마니에게 주었다. 카리마바드에서 소스트까지의 비용은 모르겠다. 버스가 캔슬 되어서 내가 소스트로 가야한다면 당연히 버스회사에서 주어야 할 것이고, 나를 버스에 태워주기로 복마니가 지프를 불렀는지, 아니면 카리마바드까지 왕복으로 불렀는지 그것은 알 수 없었다.

 

“너 왜 나를 여기까지 태워다 준 거냐?”

“버스정류소 사람이 나를 소스트까지 태워다 주라고 했고, 복마니도 나를 데려다 주라고 해서 왔다.”

“그러면 버스회사나 복마니가 줄 것이다. 나는 복마니에게 차비를 다 주었다.”

“복마니! 그럼 복마니한테 가겠다.”

 

물론 나는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알아들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지프운전수는 영어를 모른다. 겨우 단어를 말했을 뿐이다. 지프는 훈자로 돌아가고 배낭을 집어 들려는데 먼저 내 배낭을 집어 드는 사람이 있다. 아까 버스사무실에서 나와 판매원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재미있게 구경하던 사람이다. 내 배낭을 메더니 앞장서 걸으며 쫓아오라고 한다. 그를 따라가니 버스표 판매소가 있는 기다란 건물의 끝으로 간다. 거기에는 엉성한 철문이 닫혀져 있는데 소리를 쳐 사람을 불러 문을 열게 시킨다. 문을 들어가니 거기는 그 건물을 뒤쪽 주차장으로 몇 대의 차가 주차되어있고, 가운데 국경버스인듯한 버스가 주차되어 있다. 20명이 안 되는 사람이 무리지어 군데군데 모여 있다.

 

주차장 한쪽 무대같이 만들어진 곳 아래 많은 보따리들이 놓여있는데, 그곳에서 조금 차이 나게 떨어트려 내 배낭을 가져다 놓더니 여기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결국 국경버스는 아직 출발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출발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늘 하나 없는 주차장 구석에서 한참을 기다리니 옆의 문이 열리며 파키스탄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몇 명 나온다. 이들이 군인인지 경찰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주차장 구석구석에 삼삼오오 모여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쌓여있는 짐보따리 앞으로 모여든다. 뭐라고 파키스탄 말로 설명을 하는데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중 가장 우두머리 같은 사람이 나를 손짓하며 위로 올라오라고 한다.

 

이때까지 나는 여기가 무엇하는 곳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국제버스를 탄다는 생각을 하고서도 그냥 옆 동네 가는 것 같이 생각을 한 것이다. 퍼뜩 정신을 차리니 여기가 바로 파키스탄 세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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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세관. X-Ray 검사기가 없어 모든 짐을 풀어서 확인한다. 이것은 중국 국경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권이란 처음부터 없는 단어 같다.





그는 내 여권을 보며 세관원들이 하는 상투적인 질문을 하였다. ‘총기 마약 어쩌고저쩌고…….’ 내 짐을 보자고 하였는데 나는 중요한 물건을 담은 작은 가방 하나만 들고 있었고 내 배낭은 저만치 따로 놓여 있었다. 아까 짐을 가지고 왔던 파키스타니가 아래에서 내 짐을 손가락질 하며 뭐라고 그러니 군복을 입은 세관원이 고개를 까딱한다. 그는 내 짐을 들어 버스에 가져다 실었다. 그걸로 나의 세관검사는 끝났다. 너무 친절한 세관원이었다. 그런데 나를 제외한 나머지 파키스탄인들에 대한 검사는 좀 더 철저한 것 같았다. 짐들을 모두 풀어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흔한 X-RAY 검사기가 없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지루하기까지 한 세관검사가 끝나고, 모든 짐을 버스에 싣고 드디어 버스가 출발하였다. 처음 국제버스가 출발한다는 시간과는 거의 상관없이 제멋대로 출발이다. 그런데 버스 출발하기 한 10여분 전 쯤 한 꾀죄죄한 친구가 내 배낭보다 더 큰 배낭을 지고 버스로 온다. 그 뒤에 세관원이 따라온 것으로 보아 안쪽 어디에선가 세관검사를 끝냈다는 것인데 누구일까? 버스에 올라오는 사람을 자세히 보니 나보다는 훨씬 어린 것 같은데 구질구질한 모습과, 피곤에 절은 듯한 모습이 고생 꽤나 한 모습이다. 어느 나라 사람일까? 흥미를 가졌는데 나를 보고 그낭 지나쳐 버스 뒷자리로 가는 것으로 보아 한국인은 아니었다.

 

철문이 열리고 버스는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그리고 쿤자랍 고개 쪽 방향으로 차선도 그려져 있지 않은 KKH의 낡은 아스팔트 위를 천천히 간다. 길 양쪽으로는 정말 조그만 가게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다. 손님이 하나도 없는 가게들은 마치 국경버스를 전송하기 위해서 늘어선 가난한 환송객 같았다.

 

‘이제 카라코룸 하이웨이를 시원하게 달리나 보다.’ 생각한 순간 버스는 오른쪽으로 커브를 틀어 커다란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정말 넓은 주차장은 텅 비었는데 내가 탄 버스 한대만 달랑 새로 지어 아직 시멘트 냄새도 가시지 않은 것 같은 건물 앞서 선다. 여기가 어딜까? 여기서 또 얼마큼의 시간을 기다려야하나? 생각하는 순간 사람들이 앞 다투어 버스에서 내린다.

 

여태까지 비행기로만 입출국을 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일사천리(一瀉千里)로 끝났다. 이렇게 버스로 국경을 넘는 것은 처음이다. - 과거에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을 오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냥 길 건너가는 것 같이 두 나라를 오고 갔다. - 이번에는 출입국 관리소다. 아무것도 없는 휑- 한 로비에 파키스타니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가운데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한 사람이 무언가를 가져다 로비 한편 테이블이 놓는다. 한바탕 전투를 치르는 가운데 남아있는 종이를 한 장 집어보고 여기가 출입국관리소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출입국서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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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트 출입국관리소. 새로 지은 듯하다.





서류를 작성한 사람들은 사무실 문 앞으로 가서 줄을 선다. 나는 줄 설 필요를 느끼지 않아 밖에 나가 담배를 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관리소 사무실을 중심으로 앞뒤로 커다란 주차장이 있는데, 앞에는 주차된 차가 없었지만 사무실 뒤쪽으로는 10여대의 대형 트럭이 주차되어 있었다. 아마도 중파국경무역을 하는 트럭들은 이곳에서 세관업무까지 같이 보는 것 같았다. 중파국경무역의 트럭들은 현대판 대상(隊商)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가지가지 모습으로 치장한 화려한 트럭이 20대 이상이 모여서 행렬을 이루고 국경을 오간다. 정확한 정보는 아니지만 들은 이야기로 이 트럭들은 현금거래가 아니라 물물교환 형식이라고 한다. 파키스탄에서 물건을 싣고 중국으로 가서 그 값만큼의 물건을 싣고 온다고 한다. 그러니 트럭무역에서는 무역역조(貿易逆調)라는 말이 있을 수가 없다. 파키스탄에서는 대체로 1차 상품이 주종을 이루고 중국에서는 전자제품 등이 트럭을 통해서 넘어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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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타고 간 중파 국경버스. 버스 옆에 한자로 국경버스라고 쓰여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출입국 사무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무질서는 줄서기가 필요 없다. 우리만 해도 질서의식이란 것이 있어 줄서기가 이루어지지만 파키스탄의 새치기는 ‘자신의 능력’인 것 같다. 거의 마지막으로 해서 출국심사를 받았다. 심사는 의외로 쉽게 끝나 아무 말 없이 여권을 돌려받았다. 드디어 출발이다.

 

버스는 앞을 가로막는 엄청난 산자락을 굽이굽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멀리 보이는 산 중턱에 연필로 한줄 그은 듯이 보이는 것이 길이다. 저 멀리 있어 길 같지도 않은데 어느새 보면 그 도로 위를 달리는 것 같다. 창밖으로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들짐승이 도로가로 내려온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그런 것을 보는 행운조차 없었다.

 

차가 고도를 높여갈수록 기온은 떨어지며 공기도 희박해져 몸 컨디션이 나빠진다. 창밖 구경도 실증이나 잠시 잠이라도 청할 까 하는 순간에 버스를 세운 운전수가 부른다. 빨리 밖으로 나가보라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조그만 책상을 놓고 앉아있던 관리가 돈을 내라고 한다. 쿤자랍 고개로 가는 여기가 ‘쿤자랍 국립공원(Kunjerab National Park)’이라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버스를 타고 통과하는 것 밖에 없는데 입장료라니? 그러나 이미 알고 있던 터라 군말 없이 입장료 4달러를 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속이 쓰리다. 파키스탄인은 무료고 외국인만 내라고 하니 이것은 파키스탄을 떠나는 외국인에게 마지막까지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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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통과하고 차단기가 다시 내려졌다. 안녕 파키스탄…





버스는 숨차게 오르고 오르고 헐떡거리며 오른다. 다 낡은 버스지만 이런 고개를 올라가는 것 보면 심장만은 튼튼한 가 보다. 그러는 사이에 창밖의 날씨는 점점 변해서 안개, 구름, 비, 눈으로 차례로 바뀌기 시작한다. 드디어 철책이 길게 쳐진 바로 앞 중파국경의 마지막 초소에 도착했다. 건장하고 잘 생기 파키스탄 군인이 올라와 버스 안을 한 바퀴 돌아보며 외국인인 나와 또 한사람의 패스포드만 보자고 했다. 그러며

 

“음- 코리안!”

“아- 재패니즈!”

 

이렇게 말하게 되어서 나 말고 또 하나의 외국인이 일본인 인 것을 알았다. 나 뿐 아니라 버스의 모든 파기니즈들이 궁금했었는지, 그 이후로 이들은 우리를 부를 때

 

“어이- 코리안”

“어이- 재패니즈”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잘 다녀오라고 군인이 손을 흔들며 내려갈 때 차안의 모든 파키스타니들은 아쉬운 듯, 마치 어리광을 부리듯 그 군인에게 손을 흔들었다. 조금 심한 것 아니야? 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이 이때 파키스타니들이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기행문에서 보면 해발 5000미터 가량 되는 카라코룸산맥의 최정상인 여기에서 얼마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진다고 했다. 여기에는 해발을 나타내는 표석(標石)도 있고, 중파국경을 알려주는 비석도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출발부터 시간이 늦었고, 창밖의 날씨가 바람과 함께 진눈개비 같은 것이 내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바로 출발하자고 했는가 보다. 군인이 내려가자 버스는 바로 출발했다. 하기야 관광객이라고 달랑 두 명밖에 없었으니 그들을 배려해 줄 만한 마음도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버스는 안개 속에 내리는 눈을 뚫고 중파국경을 미련 없이 떠나 중국으로 입국하였다. 쿤자랍 고개를 넘어오는 파미르공원의 첫 바람은 너무 쌀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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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동쪽 부탄왕국에서 시작하여 서쪽 파키스탄 까지 달려온 카라코롬 산맥이 흰 눈을 이고 있다.





<파키스탄 끝>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루하지는 않으셨는지요. 기행문을 쓰는 과정에서 미숙한 지식으로 잘못 전해진 정보는 계속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카라코롬 하이웨이를 따라 중국 탁스쿠르칸에서부터 서안까지의 여정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또, 저의 기행문 스타일이 마음에 드셨다면 다른 기행문도 읽어 보십시요. 태국과 캄보디아는 오래되어서 없어진것 같고, '인도 기행문'과 '인도네시아 기행문'이 태사랑에 남아 있습니다. 재미 있으시길 빕니다. 

1 Comments
어라369 2011.02.12 20:56  
다음 여정이 몹시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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