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9. 꼭꼭 구겨 넣은 샌프란시스코 일정
어제 마신 도수 높은 맥주의 영향으로 오늘 아침 요왕의 컨디션은 그다지 좋지않은 편이었다. 술은 한동안 안 마시다가 마시니 알콜 영향을 많이 받나보다. 계속된 일정 속에서 운전하느라 힘도 들고 피로도 쌓였을테고 말이야...
그래서 숙소에서 조금 늦게 출발했는데 어쨌든 마지막 날이니까 컨디션은 참아내고 열심히 돌아다녀야한다.
일단 차를 몰고 금문교 근처의 ‘포트포인트Fort Point’로 갔는데 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별로 얇지도 않은 내 다리가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그냥 보통 바람이 아니라 태평양 바람이니까 이렇게나 대단하구먼...
예전에는 군사기지였던 곳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몇 가지 군대 관련한 볼거리들도 전시되어져 있는 곳이었다.
휘청거리며 바람을 엄청나게 얻어 맞은 후에 오늘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롬바드 스트릿’의 꼬불꼬불한 길을 향해 차를 달려 도착해서는 다행히 바로 시작점 건너편 주차공간을 득템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이 길을 걸어도 보고 차로 내려와 보기도 했다.
여기는 그야말로 샌프란시스코방문의 인증사진 중 수위권을 차지하는 곳이어서 늘 우리 같은 여행자들로 바글바글한 곳이었는데, 이 구역의 저택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이런 여행자들이 성가시지는 않을까? 늘 집밖에 낮선 사람들이 서성이면서 웅성거리고 차가 들끓고 카메라소리가 찰칵이는 건 어떤 느낌일까? 집들도 엄청 비싸 보이던데 말이다.
교통수단이라기보다는 관광상품에 가까운 케이블카를 타고 파월Powell로 가서 에바부에나 가든Yerba Buena Garden을 둘러보기도 했는데 생각과는 달리 크게 볼거리는 있는 곳은 아닌 것 같았다. 이곳에서는 뭘 건질게 없다는 판단이 들어, 천부적인 방향감각을 가진 요왕의 안내대로 버스를 잡아타고는 차이나타운으로 가서 점심을 먹기로했다.
차이나타운은 정말 차이나같다. 여기 있는 중국사람들은 미국화된 중국계 미국인 같지가 않고 그냥 바로 본토에서 넘어와서는 그 스타일 그대로 사는 사람들처럼 외모도 그렇고 표정도 그렇고 미국특유의 경쾌한 뭔가가 묻어나지 않았다. 미국의 캐셔들은 대부분 상당히 경쾌하고 친절한데 비해 여기 중국계 슈퍼의 캐셔는 뚱한 얼굴 그 자체다. 바로 우리가 중국여행할때 봤었던 그 표정들....
옷도 표정도 말도 그냥 중국 그 자체였다. 하긴 이런게 진정한 차이나타운이지... 전부 미국화 되었다면 뭐하러 타운이라 하겠나...
인디에나 존스 한 장면의 무대가 되었다던 골목도 있어서 걸어들어가 봤는데 그다지 특이할건 없지만 나름 의미는 있었다. 우리는 돌아다니다가 허름 해 보이는 식당 앞에 손으로 대충 쓴 작은 간판에 이렇게 적혀있는 글귀를 발견했다.
'올 유캔 잇 딤섬 1인당 6달라'
우리는 호기심과 약간의 기대를 안고 들어 가 봤는데, 아악~ 난민보호소 음식도 이거보다는 잘 나올 것 같았다.
‘딕리 패스츄리’라는 곳이었는데 다 먹고 난 일회용 종이접시에는 하얀기름이 굳어진채로 있다. 뭐야 돼지기름으로 버무린건가? 왜 하얗고 굳은 기름이 보이지...? 식당 앞 광고 사진과는 달리 뭘 먹을 것도 없고 그랬다.
칼로리만 높은 정크푸드를 먹으니 기분 나쁘게 배는 부른데 어쨌든 힘은 나고 있다.
롬바드거리
약간 울적해진 마음은 차이나타운에 팽개치고 다시금 힘을 내서, 우리는 케이블카 박물관도 둘러봤는데 굉장히 신기한건 케이블카가 이곳의 동력으로 움직인다는 거였다. 직접보기 전에는 무슨 말인지 잘 파악이 안 되는데, 긴 케이블에 케이블카가 의지한 채로 이곳에서 끌고 당기는대로 움직인다고 봐야하나... 뭐 그랬다. 아니 그 굵은 철 케이블이 온 시내를 헤집고 다닌다는 얘긴데 그무게도 상당할텐데... 아무튼 신기했다.
차를 몰고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AT&T야구장도 겉에서만 살짝 본 후 우리는 그 이름도 유명한 ‘트윈픽스Twin Peaks’로 향했다.
트윈픽스는 샌프란시스코의 게이-레즈비언 지역에서 멀지않은 곳이였는데, 그걸 의식하고 있어서 그런지 왠지 트윈픽스로 가까워질수록 동네 전경도 살짝 다른 것 같고... 거대하게 나부끼는 무지개깃발을 보니 이곳의 분위기와 정체성이 확 체감이 되었다.
두 개의 봉우리가 있어서 트윈픽스로 불린다는 이 언덕에 오르니 샌프란시스코의 전경이 훤하게 보이는데 역시나처럼 바람이 강렬하게 몰아치고 있어서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뭐 언덕에서 오래있어 봤자 별달리 할일도 없고...
이후 우리는 늘 지나다니는 금문교를 건너서 소살리토Sausalito 시내로 들어갔다.
소살리토는 금문교 지날때마다 스쳐지나가긴 했는데 시내로 들어온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줄줄이 정박되어져 있는 하얀 요트와 언덕에 층층이 자리 잡은 저택들 그리고 잘 가꾸어진 상점들에서 부티가 줄줄 흐르는 곳이었는데 여기서 좀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떻게 이렇게 다 예쁠 수가 있을까? 집과 거리 가게와 요트가 완벽하게 어우러져 마치 부내 잔뜩 풍기는 영화세트장 같은 이 동네가 우리의 샌프란시스코 마지막 일정이었다.
내일부터는 다시 장거리 이동이니까 오늘은 일찍 숙소로 돌아가 잠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