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2.후버댐이 라스베가스 근처에 있었구먼
미국의 유명도시나 지형지물들의 이름은 내귀에 좀 친숙한데에 비해, 그 실제적인 위치는 잘 몰랐었던게 꽤 많았다. 후버댐도 많이 들어본 곳이긴 했었는데, 이 댐이 라스베가스 근처에 있는 사실은 라스베가스에 다 와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도박, 협잡꾼, 미녀, 쇼핑, 식도락, 파티 등등으로 칠갑을 한 라스베가스는 분명히 멋들어진 곳이고 즐길거리가 무궁무진한 곳이었지만, 이걸 완벽히 즐기려면 빵빵한 지갑과 게임의 룰을 아는 게 필요한 법인데 우린 그 정도까지는 안 되는지라 그냥 윈도우쇼핑 수준에서 즐기기로 했다.
라스베가스에는 많은 쇼핑몰들이 있는데 우리가 향한 곳은 플래닛헐리우드 안의 미러클마일이라는 쇼핑몰이다. 사실 이곳으로 간 이유는 이 쇼핑몰 안에 토다이라는 일식뷔페가 있어서 그걸 먹는 게 주된 목적 중 하나였고 더불어서 쇼핑가도 구경하고 그럴 맘으로 간 거였다. 토다이가 다른 쇼핑몰에 있었으면 그곳으로 갔었을듯...
토다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에 런칭을 해서 여러 지점이 생긴 걸로 알고 있는데 , 한국에서는 가본 적이 없어서 미국과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1인당 런치뷔페로 20불이 조금 넘는 수준으로 라스베가스 중심가에서 먹을 수 있는걸 생각해보자면 가격대비 괜찮긴 했다.
아~ 어제는 곰탕 먹고 오늘은 뷔페라니 역시 식도락은 도시야!!
김치도 있고 각종 초밥의 질도 괜찮은 편이고 우동에 여러가지 튀김 등 따뜻한 요리에 디저트도 맛있었다. 전날 한식 먹으면서 위장을 김치로 좀 채운 탓에 그 감흥이 약간 덜하긴 했지만 음식질도 괜찮고, 게다가 뷔페니까 그냥 마구마구 갖다먹기에도 편하고...^^
토다이가 입점해있는 플래닛헐리우드호텔의 미라클마일 쇼핑가는 천장을 아주 멋들어지게 꾸며놔서 약간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었다. 이곳만 이러는 게 아니라 베네시안 호텔안의 쇼핑가도 역시나 이런 식의 돔형 천장이 있었다. 사실 규모면으로 보면 베네시안쪽이 압승!
그런데 쇼핑몰에서의 재미라 함은 뭔가 구체적으로 살거리가 있어야 재미나지 그냥 아이쇼핑만 하다보면 공허감이 들면서 다리만 아플 뿐이었다.
같은 장소를 계속 왔다갔다 했더니 우리를 눈여겨본 호객꾼만 자꾸 들러붙고... 아니 우리가 한국인인건 어떻게 알고 ‘유 투 코리안 가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붙잡는거지..?
토다이 뷔페
플래닛 헐리우드의 미라클 마일 쇼핑가
하여튼 점심도 우리 입맛에 맞게 배 땅땅 두드릴 정도로 먹었으니, 이제 스트립거리 남쪽으로 걸어가면서 호텔순례나 하자는 내말에 요왕은...
- 아... 다리가 아파오고 있다. 지금 걷는건 무리인거 같애...
- 그럼 어쩌고 싶은건데?
- 숙소로 돌아가자. 몸이 아파...좀 쉬었다가 저녁에 후버댐이나 보고...
- 좋아. 그럼 여기서 후퇴하는 대신 후버댐 보고 난후 다운타운 프리몬트전구쑈 보고, 벨라지오 분수쑈도 보기다.
가이드북에서 라스베가스에서 놓치지 말고 꼭 보라고 하는 것들은 마구 넘쳐나고 있는데 우리는 계속 낮에는 쉬기만 하고 있다. 하긴 라스베가스의 4월은 한낮에 계속 걸어 다니기엔 벌써부터 좀 덥기도 한데다가, 말이 노는거지 계속 걸어다니고 있으니 몸이 지칠 법도 하지...
숙소에서 꾸무럭거리면서 누에고치 마냥 있다가 늦은 오후에 후버댐을 향해 출발하니 이래저래 길도 막히고해서 거의 한시간 남짓 걸린 것 같다. 실제로 본 후버댐은 진짜 거대한편이긴 했는데 아무래도 댐이라는게 그냥 좀 삭막한 회색구조물인지라 막 마음이 설레고 이런건 좀 없었다.
약간 심드렁해하는 날 보더니 요왕이 설명해주길 이 후버댐이 여러 영화의 배경으로 나왔다는데 그중에는 슈퍼맨도 있었다고... 아아~ 그러고 보니 장면이 떠오르는 것 같다. 뭔가 댐이 와장창 박살나고 부서지는 거였는데... 그게 이 댐이었구먼. 역시 같은 배경이라도 뭔가 이야기가 첨가되면 더 드라마틱해지고 반짝이는구나.
회색빛 댐은 이제 이만큼 봤으면 됐고 내 마음은 벌써부터 전구들이 알록달록 번쩍이는 구시가지의 프리몬트전구쑈 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다시 핸들을 라스베가스로 꺾어 구시가지쪽으로 가니 신시가지인 스트립과는 확연히 분위기가 다른 낡은 느낌이 나긴한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이 곳 역시 라스베가스이고, 사실 라스베가스의 역사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지라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별 희한한 사람들도 다 나와있다. 거리에서 벌어지는 밴드공연과 영화주인공으로 분장한 코스튬 플레이어 이런 건 스트립이랑 비슷했는데...
아악~~ 우리에게 안구테러를 가하는 별난 사람들이 이곳 거리에 나와 있다. 절대 보고싶지 않은 투실투실한 몸에다가 기저귀 같은 팬티 한 장 걸치고는, 기타를 두둥기는 백인 중년남자... 그의 엉덩이 실루엣이란... 부풀어늘어진 밀가루반죽같다. 아악! 내눈~~ 게다가 고도비만인데 윗옷은 하나도 안 입고 유두에다가 별모양딱지만 붙이고 돌아다니는 백인중년 아주머니커플... 도대체 정체가 뭐지? 이곳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도 그다지 큰 반응도 안 보인다. 미녀가 아니어서 그런건가? 아니면 라스베가스에서는 그냥 일상이니까?
프리몬트 전구쑈가 열리는 거리에는 관광객들, 호객꾼들, 공중에서 짚라인을 타는 사람들의 비명 그리고 각종 별스런 사람들이 섞여서 묘한 열기를 내고 있었다. 현란한 조명이 양옆과 천장에서 마구마구 뿜어져 나오고 비키니걸들이 댄스를 하며 이목을 끌고 있었는데 우리는 왠지 이 난리통에서 급 피곤해진 채로 숙소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볼 건 다 본거다. 이제 원래 일정대로라면 숙소로 돌아와 차를 주차해놓고 벨라지오 분수쑈를 봐야한다.
숙소에 파킹을 한 후 요왕을 닦달 해 스트립거리로 나섰지만 약골 요왕의 얼굴은 죽상이 되어가고, 내발은 뭐가 잘못됐는지 새끼 발가락근처에서 피가 질질 새어나온다. 이런 상태로는 더 못가지... 결국 벨라지오를 향해 반 정도 걸어가다가 숙소로 후퇴해왔다.
우리는 미국에 오기 전에는 미국식 펍에 가서 근사하게 본토 맥주 즐기는 걸 상상해왔었는데 막상 와서보니 좀 심리적/경제적인 장벽이 있다고 해야하나... 내가 술을 즐긴다면 둘이 의기투합해서 신나게 찾아 다닐텐데, 이런 면에 무미건조한 나랑 다니면서 술집을 가자니 요왕도 흥도 안 나고, 또 동남아에서처럼 뭔가 좀 쉽게 척 들어가지게 되질 않는다. 사실 우리는 일본에서도 중국에서도 술집을 찾아 들어가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는데 여기선 왠지 뭔가 좀 어렵다. 뭘까...-_-;;
우리는 아픈 다리와 피가 질질 나는 발을 끌고 숙소근처 마트에서 3개 5달러짜리 캔맥주를 사오는 걸로 오늘의 액티비티를 마쳤는데...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듯이, 새로 날이 밝으면 좀 더 멋진 날이 될거라며 서로 위로하며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