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0. 착착 잘려져 나가는 계획들 자이언 국립공원 트레킹
동가식서가숙한 미서부 4개주 이야기
10. 착착 잘려져 나가는 계획들 자이언 국립공원 트레킹
계획이 착착 진행되는게 아니라 착착 잘려져 나가고 있다.
원래 자이언 공원에서의 계획은 힘들기로 유명한 엔젤스 트레킹을 완주하고(여기선 가파른 구간을 올라가다 추락사도 간혹 일어난다고 한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공원의 안쪽 끝 깊숙히 들어가 The Narrow 구간도 트레킹을 할 작정이었다. 내로우 트레킹은 얕은 강안으로 들어가 강줄기를 따라 차박차박 거슬러 올라가는 구간이 있어서 반바지와 아쿠아슈즈는 필수... 그래서 요왕은 여행전에 들떠서는 이 구간에서 입을 반바지도 사고 운동화도 새로 장만한거였다. 이곳에 가기위해 내게 사준 운동화도 사실 구멍이 숭숭 뚫린 아쿠아슈즈라서, 모래길을 걷다보면 신발 안에 흙이 한가득이다.
그런데... 실제로 와본 자이언에서는...
엔젤스 랜딩의 구불구불한 지그재그길을 헉헉대며 오르막을 한참 올라가다가, 앞서가던 요왕이 일단정지를 하더니 이만 여기서 후퇴를 하잔다.
"내가 보기에 저기 위쪽끝까지 올라가서 보는 전경이나 여기서 보는 전경이나 별반 다를게 없는데 힘만 들거 같애. -_-;;; 루트를 수정해서 좀더 평평한 구간 도는 걸로 끝내자."
나야 뭐 나쁠게 있나. 획 돌아나와 그옆에 있는 좀 평이한 구간 Emerald Pool 트레일을 돌고난 후 셔틀을 타고 우리의 두번째 목적지인 북쪽 깊숙이 위치한 내로우 계곡을 향해가기로 계획을 틀었다. 국립공원 내부 트레일 중 비교적 평이한 걸로 알려진 에메랄드 풀도 걸어보니 나름 괜찮았다. 중간에 물줄기가 떨어지는 구간도 있었고, 에메랄드풀은 이름과는 달리 수량이 적어서 막 에메랄드 같은 느낌은 덜 났지만서도...
평이한 에메랄드풀 트레일을 완주하고는 셔틀버스에 올라탄 후 으쌰으쌰 텐션을 올리며 내로우 트레일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내렸다. 그리고 몇발자국을 걸어들어가는데....
날씨가 도무지 물에 젖어가며 트레킹할 상황이 아닌거였다.
고도가 높은 계곡이라 바람이 무진장 불고있어 체감온도가 엄청 낮은데 이런 상황에서 물에 젖은 채로 트레킹하다 가는 저체온증으로 계곡 중간에 동태처럼 쓰러져서 사망할 확률 100프로
요왕이 인터넷에서 본 개울 거슬러 올라가면서 하는 트레킹은 한여름에나 가능할 걸로 보인다.
지금은 초겨울 날씨로 다들 꽁꽁 싸매고 광풍에 머리가 깃발처럼 미친듯이 펄럭이고 있는데 이렇게 얇게 입고 물에 젖어가면서 트레킹을 한다고....?
이번계획 역시 내가 입댈 것도 없이 요왕선에서 커트!!
우리의 아니 요왕의 가열찬 계획이 거의 수포로 돌아가자,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공원 안에 있는 자이언 롯지로 돌아와 기념품가게 구경하고 화장실 이용하는 걸로 이곳에서의 일정을 마쳤다.
계획은 이런 식으로 틀어졌고 자이언 국립공원에 실제로 머무른 시간에 비하자면 허리케인에 2박을 한건 좀 느슨한 여정인거 같지만 돌이켜보면 나쁠 건 없었다. 어차피 허리케인은 숙박비도 하루 45달러 정도로 저렴했고 그외 체제비도 거의 든게 없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이것이 첫 미국행인지라 그냥 마을에서 백인들의 가정집 안에서 머물기만했었도 좋았다.
게다가 오늘의 식생활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으로, 아침엔 숙소 주방에서 끓여먹은 신라면 저녁엔 10달러짜리 중국음식 뷔페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허리케인의 식당물가는 상당히 저렴했는데 도미노피자도 굉장히 저렴하게(라지 7달러) 파는 걸 봤었다. 다른 도시로 가니 미국은 피자가 엄청 싸다는 풍문과는 달리 그다지 저렴하지도 않았던 걸로 기억된다.
미국 오면 피자, 치킨, 부리또 마구마구 먹을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어째 위장이 도와주질 않네.
하여튼 우리숙소에서도 걸어갈 위치에 있는 중국식뷔페는 점심은 7달러, 저녁은 10달러 정도인데 비해 나오는 음식은 기대이상이다. 지저분한 내부에 몇 안 되는 음식이 있겠지 예상했는데 내가 너무 비관적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즈음 거의 모든 미국음식에 심드렁해진 상태였는데 여기와서 진열대에 있는 중국음식을 보니 너무너무 좋아서 자꾸 빙구 같은 웃음이 실실 나오고 걸음도 경쾌해졌다. 게다가 이게 뭐야 뭔 김밥같이 생긴 롤도 있잖아.
볶음밥도 있고 게다리도 있고 새우튀김도 맛있고 그외 각종 고기와 새우가 들어간 볶음요리에 디저트도 가격대비 빼어나다. 그리고 말로만 들어보던 포춘쿠키도 한 개 씩 갖다주고 과일에 쿠키에 이게 도대체 얼마만에 먹어보는 밥다운 밥상인가.
로스엔젤레스를 떠난 이후에 내내 슈퍼와 패스트푸드점만 갔었는데 여긴 테이블에 앉아서 종업원들이 주는 물 마시면서 정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유타주답게도 손님은 우리테이블 빼고는 전부 백인들이다.
이 식당의 중국인 종업원들은 전혀 미국화되지 않은 그냥 중국본토 느낌이 강하게 나는 사람들이었는데 어떻게 이 유타주의 작은 도시 허리케인에 정착을 하게 된 걸까... 그들의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장사가 아주아주 잘 되기만을 바란다.
타지에서... 캘리포니아 같은 인종퍼즐지역도 아니고 유타주의 이런 변방도시에서 이방인으로서 돈 벌면서 사는 건 정말 쉽지 않을테니까... 그냥 존재자체가 외로울 것 같은 느낌이다. 혹시 우리가 모르는 중국인 커뮤니티라도 이곳 가까이에 있는 건가? 중국인 단체관광객용 식당인걸까? 그게 아니라면 혹여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이곳에서 아시아인으로 살아 간다는 건, 이방인임을 내내 진하게 느끼게 될 것 같다.
자이언 국립공원 풍경
개울의 사슴
엔젤스 랜딩 트레일 올라가는 길
여기서 포기하고 내려갔다.
에메랄드 풀
허리케인의 중국뷔페식당에서 오랜만의 포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