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9. 생각보다는 훨씬 멋있었던 브라이스 캐년
동가식서가숙한 미서부 4개주 이야기
9. 생각보다는 훨씬 멋있었던 브라이스 캐년
유타주의 경계선은 마치 자로 딱 그은 것 같은 사각형의 모양인데, 완전체 사각형은 아니고 한쪽이 좀 톡 튀어나온 사각형모양이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사각은 아닌건데...어쨌든 그 사각영토의 서남쪽 끄트머리에 붙은 게 브라이스캐년과 자이언캐년~
오늘은 트로픽 마을에서 출발해 근처의 브라이스캐년을 보고 자이언캐년의 전진기지도시인 허리케인에 도착해 그냥 푹 쉴 생각이다. 사실 미국에서의 비싼 체제비를 생각해보면 이렇게 루즈하게 다녀서는 안 되고 이른아침부터 저녁까지 달리고달리고 보고 걷고 찍고 하면서 응축을 꽉꽉 시켜야 옮겠지만, 처음 방문한 곳을 직접 운전하면서 다니자니 체력소모도 급격하고 뭔가 빨리 피로해진다. 운전을 교대로 해 줄 수 없는 내가 미안 할 뿐이다.
“여기 이 길은 진짜 한적한데 너가 운전해볼래? (실제론 나한테 핸들 맡길 생각도 전혀없다.)”
“미국 시골 길바닥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은거야? 두다리 멀쩡할 때 여기저기 더 신나게 다닐 곳이 곳곳에 널렸는데, 거길 다 가보지도 못하고 미국 땅에서 객사하면 억울해서 눈도 안감길거다.”
다행히 운전하길 좋아하는 요왕이라서 별다른 타박없이 신나게 달리고있다.
미국을 달리다보면 정말로 많은 캠핑카들을 볼 수 있는 데 캠핑카의 수도 수지만, 그 규모가 진짜 입을 쩍 벌리게 하는 것들도 있다.
5톤트럭 규모의 대형캠핑카(이정도면 캠핑카가 아니고 그냥 집을 끌고 다니는 격)가 달리는데 그 뒤에는 SUV가 달려 있는 거다. 캠핑카의 크기도 어마어마한테 거기에 무슨 자전거 매달고 다니듯 SUV를 달랑달랑 달고 다니다니... 아... 이런 경우에는 정말 운전자가 어떤 사람인가 한번쯤 올려다보게 되는데 내가 본 경우는 대개 중노년의 백인들이었다.
장기로 여행 할 경우 미국에서의 비싼 숙박비를 조금 아껴볼 심산이라면 이런식으로 캠핑카까지 빌리는 건 비용적으로 크게 절약이 안 되겠지만, 어차피 차는 렌트할거니까 텐트를 가져와서 캠핑을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도 잠깐 드는데... 막상 해보면 삭신이 쑤셔서 후회할지도 몰라... 태국 쑤린섬에서의 텐트생활을 떠올리니까 비용이 들더라도 캠핑은 무리다 싶다.
어쨌든 1박에 62달러인 브라이스 파이오니어 빌리지에서 간단히 차려놓은 빵과 시리얼을 줏어먹고 체크아웃 한 후에, 짐을 챙겨 차로 잠깐 달리니 브라이스 캐년 비지터 센터에 샤라락 안착한다. 여기도 캐년이니까 뭔가 지금까지 본거랑 비슷한 전경일거라고 예상했는데 오~ 훨씬 더 다채롭다.
고도가 높은 지역이라 바람이 좀 불고 건조한건 어쩔 수 없는거지만, 말고 쨍한 푸른 하늘에 군데군데 자라고 있는 나무들과 아름다운 형상으로 말라죽은 고목들.. 그리고 레이어드무늬의 첨탑들이 오종종하게 서있는 모습이 여느 캐년답지 않게 ‘예쁘다’ 라는 느낌마저 주고있다.
브라이스 캐년의 비지터센터와 볼거리들은 공원의 북쪽구역에 모여있고 남쪽으로 몇 개의 뷰포인트가 있는데 남쪽구역은 그냥 일정에서 과감히 포기하고 북쪽의 뷰포인트를 보고 트레일을 걸어보기로 했다.
일명 선라이즈에서 선셋포인트까지 이어지는 산책수준의 트레일인데 천천히 사진찍으면서 걸으면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려나... 이 구간 안에는 빅토리아 여왕의 옆모습을 닮은 돌첨탑도 있고 어벤져스영웅 토르의 망치를 닮은 바위도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아무리 눈을 가자미처럼 뜨고 봐도 전혀 곰이나 사람처럼 보이지 않던 엔틸롭캐년의 형상에 비하면 여기 형상들은 보는 순간 수긍하게 되는 정확한 모양이다.
이 구간의 마지막은 지그재그형의 오르막길이였는데 올라가는 게 진짜 좀 힘에 겨웠다. 길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내가 워낙 근력이 없어서 그런듯한데 하긴 우리나라에서 뭔 운동이란 걸 했었어야 말이지...
트레일을 다 돌고 지형지물을 익히고보니 이 루트를 반대로 돌걸 그랬나보다. 그럼 이 지그재그길을 타박타박 내려갈 수 있으니 좀 더 쉽잖아!!
하이킹을 마치고 선셋 뷰포인트에 서니 한국인 아줌마아저씨들이 색색깔의 아웃도어 옷을 입고 한껏 들떠서 사진을 찍느라고 부산을 떨면서 길을 막고 그런다. 하하~ 여행이 좋긴 좋아. 저렇게 사람을 웃고 떠들고 들뜨게 만들잖아. 그나저나 한국에서 온 것이 분명한 이분들은 라스베가스에서 출발한걸까?
브라이스캐년에서의 하이킹은 비교적 짧게 끝이 났다. 그런데도 막바지에는 남아있는 에너지랄게 별로 없이 몸이 고갈되고 황량한 상태가 되버렸다.
“내가 걷는거는 지구력있게 잘하는 편인데 요즘 왜 이렇게 힘이 드는거지...?”
“지금 우리가 잘 못먹고 다녀서 그래. 사람은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는데 우리가 먹는 고기라곤 가끔 먹는 햄버거 속에 든 패티뿐이잖아.”
“내일 자이언 공원에서 트레킹 하려면 오늘 뭔가 좀 고기를 먹어줘야겠어. 체력이 이래서야 암만 좋은데 데려다놔도 소용이 없잔아...”
그래서 우리는 오늘오후 우리의 여정에서 유타주의 마지막 단락을 마무리할 여행지인 자이언 국립공원의 주변도시인 허리케인에 도착하면 고기를 마구 구워먹을 작정이다.
허리케인 마을에서 2박을 할 숙소는 유서있는 주택의 방 한 칸 씩을 여행자에게 빌려주는 일종의 민박인데 가정집이니까 당연히 주방이 있고 그럼 내가 보물처럼 껴안고 있는 신라면도 끓일 수 있겠지~ 빈곤한 식생활로 떨어질 체력을 끌어당길 수 있게 소고기도 구워 먹을거고 하여튼 기대가 무진장 크다.
브라이스에서 자이언 국립공원을 거쳐 허리케인 이라는 도시에 도착하기까지는 약 2시간이 넘게 걸렸다. 거리는 멀지않았지만 자이언을 가로지르는 길이 꼬불꼬불하고 전경이 멋있어서 사진을 찍느라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라고 요왕이 말해준다. 나는... 유타주의 따뜻한 볕에 쪼여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차안에서 조느라고 이 전경을 다 보진 못했지만... 크게 아쉽진 않다.
일단 자이언 국립공원을 관통 한 후 당도한 허리케인은 규모가 꽤 있는 도시여서 극장도 있고 월마트도 있고 식당도 꽤 되는 곳이다.
우리가 2박을 할 주택을 찾아가보니 전형적인 미국식 2층 주택으로 외관이 정말 역사가 있어 보인다. 단점이라면 공동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는건데 거실과 주방을 통과해 자리한 화장실은 무척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아마도 집주인이 두 명의 여성인지라 주방도 아기자기 깔끔하고 여러모로 집 안팎을 깨끗하고 예쁘게 신경을 쓰는 편이다. 이런 미국식 가정집안에 들어온 것 자체만으로도 무척 생소한 느낌이 진하게 들어서 집안을 왔다갔다하는거 자체가 여행하는 느낌이 드는데... 한 가지 단점은 여기 사람들이 워낙 말이 많아가지고 사람들이 모이면 거실에서 좀 떠드는 경향이 있다는 거... 물론 저녁에는 조용해지지만 말이다.
주인장들이 친절하고 말이 많은 사람들이어서 영어를 잘했다면 흔쾌히 그들의 대화에 끼워줬을텐데...
그들에게 우리는 그냥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방을 깨끗하게 쓴 조용한 아시아인들로 기억되었겠지. ㅠㅠ
자 이제 우리에게 배정된 방에 짐도 풀었으니 고기 사러 월마트로 고고!!
우리가 월마트에서 산 고기는 바베큐용 두터운 초이스급 등심고기 2장이었는데 조그만 후라팬에서 냄새날까봐 뚜껑덮고 약불에 구웠더니 굽기에 완전 실패해서 스테이크가 아니라 그냥 고기볶음처럼 되어버렸다. 육즙도 다 새어나와서 부글부글 끓다가 다 증발해버리고....
하지만 어쨌든 고기를 먹어줬으니 내일은 힘이 날꺼야.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신라면 끓여먹고 자이언 공원으로 가야지. 아오~ 신나~
브라이스캐년 풍경
허리케인의 숙소
허리케인 전경
다음날 아침 만들어 먹은 신라면. 슈퍼에서 사둔 샐러드용 야채를 넣어 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