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5. 큰엿 안겨주신 페이지의 앤틸롭 캐년
동가식서가숙한 미서부 4개주 이야기
5. 큰엿 안겨주신 페이지의 엔틸롭 캐년
그랜드캐년을 떠나 2시간반 쯤 달려서 저녁 무렵에 도착한 페이지는 나바호 인디언구역의 마을이다. 요왕이 건네준 일정표에서 전혀 들어 본 적도 없는 생경한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앤틸롭캐년이었다. 사실 이곳을 포함해 앞으로 가게 될 유타주의 모든 국립공원이 다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다.
하여튼 뭔가 굉장히 신비한 느낌을 주는 좁디좁은 캐년이라는데, 사실 요왕의 컴퓨터배경화면 중 하나인 이 캐년은 사진빨 잘 받기로 유명한 곳이어서 동굴방문 투어 중에서는 사진투어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우리도 그 사진빨에 낚여서 오게 된 것이고 말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과 식견이 짧아서 뭐가 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쪽 구역을 포함해 대략 넓은 지역을 나바호네이션이라고 부를 만큼 그들 나바호인디언의 자치적인 입김이 쎈 지역이라고 주워 들었다. 페이지라는 마을에 도착하기 직전에 호스슈밴드 그러니까 말발굽밴드라고 불리는 계곡을 방문했는데 차를 주차시켜놓고도 한참을 더 걸어 들어가야 나오는 곳이었다. 이쪽 지역이 다 그러하듯 황토색 흙길을 모래먼지 맞으면서 꽤나 걷다보니 짠~ 하고 나타나는데 흙먼지 마시면서 걸어 온 게 전부 보상이 될 정도로 멋들어진 자태다. 미국사람들이 해외여행을 그다지 안하는 이유가 자국 내에 모든 것이 다 있어서 그렇다고 하던데, 그말이 믿길만큼 정말 특이한 지형지물이 많다. 물론 그 자국내에 있다는 모든 것에 긴 역사성이 담긴 유적지는 많지 않겠지만서도...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몇몇 캐릭터들은 절벽에 앉아서 다리를 밖으로 내놓고 있는데 저런 담은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다. 타고나는거지.
와~~ 절벽 앞에 그 곡선미를 내세우며 서있는 호스슈밴드는 정말 사진 좀 한다는 사람들에게는 진짜 탐나는 피사체일거 같았다.
쿨럭거리면서 정신없이 여기저기 나돌아댕기는 내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는지, 절벽가장자리에서 좀 더 자세히 보려는 나를 요왕이 자꾸 안쪽으로 끌어당긴다. 하긴 여기서 떨어지면 수습하는데도 한참이 걸릴거야... 그래도 챙겨주는건 남편밖에 없구먼...
용기를 내 고개를 자라목처럼 빼고 아래쪽을 보니 계곡아래에 흐르는 강을 따라 배를 타고 투어를 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하여튼 사람들로 꽤 바글바글하다. 그리고 바글바글한 사람보다 더 우글거리는 건 날파리들... 어디서 뭘 줏어먹겠다고 몰려온 것들인지는 모르겠는데 해가 질 무렵 이 멋들어진 절벽계곡에는 날파리가 장난 아니게 꼬인다.
석양을 배경으로 한 호스슈밴드의 전경을 꼭 카메라에 담겠다고 꽤나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 후 우리는 그곳에서 나와 바로 근처에 있는 페이지 마을의 모텔6에 들어왔는데, 허걱~ 너무 늦게 도착했나? 엔틸롭캐년을 예약하려는데 투어회사가 다 문을 닫아버렸단다.
아... 이런 할 수 없지. 내일 아침 일찍 투어회사로 찾아갈 수 밖에... 어차피 우린 이 작은 마을 페이지에서 2박을 할거니까 문제가 될 일은 없겠지만 왠지 마음은 좀 급해졌다.
연이어 묵게 된 모텔6 페이지점은 2박에 세금포함 157달러인데 이전에 묵었던 윌리암스 이스트점 보다 방도 좁고 전자렌지도 없다. 1층에 공동으로 사용 할 수 있는 렌지와 냉장고는 있긴한데, 이 작은마을이 앤틸롭캐년 특수로 숙박비가 좀 올라가는건가.
그나저나 저녁은 또 어떻게 뭘로 먹는담.
미국여행을 나오기전에 요왕이 말했다.
“이번에는 통조림반찬이나 라면이라든지 우리나라 음식을 좀 싸가는게 좋겠어. 전에 태국여행할때 보니까 블럭으로 된 즉석국도 진짜 좋더라고. 고추장 튜브도 좋고.”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그동안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랑 푸드채널에서 본 미국음식을 잊었어? 치즈와 즙이 줄줄 흐르는 미국음식, 진짜 본토에서 먹는 미국음식을 먹을수 있는 기회의 창이 우리일생에서 단 25일 열리는데 한국음식? 고추장? 우리나라에서 매일 먹는 한국음식을 싸가지고 가자고? 안돼. 절대 안갖고가. 거기서 한국음식 먹고 있을수는 없지. 암만 못 먹어도 햄버거!!!”
라면서 방방 뛰었는데 막상 미국에 와보니 무슨 얼어 죽을 기회의 창...
나는 내가 이렇게 미국음식에 적응을 못할지 꿈에도 몰랐다. 풍성한 내 뱃살을 키운 것의 8할은 태평양 건너온 미국산 수입밀가루였는데 왜 본토에서는 이렇게 빵이 입맛에 안 맞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잘 모르겠다. 내 컨디션이 별로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정말 미국음식의 무언가와 합이 안맞는건지... 하긴 나는 원래 햄버거는 1년기준 자의가 아닌 타의로 두어번 정도 먹을랑 말랑한 입맛이긴했다.
어두워지면 길거리에 걸어다니는 사람이 거의 안 보이는 작은 마을인 페이지... 어느식당을 가야될지도 모르겠고 가봤자 입에 맞을런지도 의문일뿐더러 팁까지 내려니 망설여져서 그냥 호텔방에서 빵 비슷한걸 먹긴 먹은거같다.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들 다니는걸까. 그 먼 비행시간을 견디고 빵과 고기, 소세지 먹으면서 그렇게나 걸어다닌다는데... 그동안 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음식 때문에 고생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나는, 우리나라음식에 매여서 제대로 못먹고 다니는 다른여행자들이 좀 측은해보이기도하고 까탈스레보이기도했었다. 뭔가 현지문화를 제대로 못 즐기는것처럼 보여서 안타깝고 그랬었건만 미국에서 이렇게 내 식성의 한계를 알게 되면서 겸손해지고 쌀밥과 면이 정말정말 그리워졌다.
사실 슈퍼에 가면 냉동식품코너에 중국스타일의 밥이 있었는데 이때까지는 그걸 몰라서 그냥 미각을 상실한 채 무표정하게 빵만 뜯어먹었다는...ㅠㅠ
다음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투어사무실을 수소문하러 나간 요왕은 헐레벌떡 들어오더니만
“아침 8시반 투어 예약했어. 지금 나가야 돼~” 그런다.
나바호인디언이 걷어들이는 캐년입장료 8달러와 세금포함해서 1인당 48달러나 준 투어는 사실 시내 사무실에서 캐년입구까지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한시간반정도의 비교적 간단한 여정인데 비하면 비용이 좀 과한 느낌이다.
물론 가이드가 한명 붙어서 안내를 해주긴 하는데 크게 별다른걸 설명해주는건 아니였고, 다른사람의 후기를 보자면 시내에서 멀지않게 떨어진 엔틸롭캐년 입구까지 자기차로 간 후, 입장료는 따로 내고 거기 있는 투어사무실에 투어를 하면 20달러 정도에 가능하다는데 직접 체험해 본 건 아니지만 정말로 그 캐년근처에 있는 여행사 홈피를 보니 가격이 그 정도인 건 맞았다. 아... 직접가서 할걸 그랬나.
사실 우리의 원래 일정대로라면 오전에는 어퍼 엔틸롭캐년 오후에는 로어 엔틸롭캐년 이렇게 두군데를 모두 섭렵하는 것이였는데, 투어비의 압박으로 오후 일정은 그냥 마을근처에 있다는 파월 호수와 거대한 댐 보기, 그리고 우리나라에 진출해서는 탈탈 털리고 사라져버렸지만 미국 유통의 아이콘인 월마트 다녀오기로 잽싸게 바꾸게 된다.
하여튼 헐레벌떡 준비하고는 투어사무실 앞으로 모이니 왠 인디언 복장을 한 아저씨가 여기 오신걸 환영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잠깐 하고는 포터블 라디오에서 인디언전통음악을 틀더니만 링을 이용한 인디언 전통춤을 열심히 춘다. 앞에 팁박스가 있는걸로 봐서 투어회사에서 여행자들을 위해 그냥 보여주는 건 아닌 것 같기고하고... 몇 달러라도 주고 싶었는데 잔돈이 정말 하나도 없어서 그냥 돌아서야만했다. 근데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여행자들도 한명도 주는 사람이 없는거다. 그 덩치 큰 아저씨가 아침부터 인디언 복장을 차려입고 조그만 링으로 여러가지 모양을 만들면서 열심히 보여줬는데 돌아서는 마음이 좀 편치않다.
여러회사에서 출격하는 수많은 차량에 여행자들을 숫자대로 분류해서 싣고는 캐년으로 한 20분정도 달려간다. 반은 포장도로 반은 먼지풀풀 비포장길로~ 그리고 캐년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서 각자의 가이드를 따라 줄지어서 개미떼들처럼 들어가면 모두가 카메라렌즈로 사진찍기에 바쁘다. 동굴내부는 사람들의 분주한 발자국으로 인해 바닥의 먼지가 피어올라 완전 먼지구덩이 그 자체였다. 앞의 팀이 전진하기를 기다렸다 걸음을 옮기고 우리뒤의 팀은 우리가 전진하길 기다리고 있고...
가이드가 동굴 내부 몇몇곳을 포인트하면서 저건 뭘 닮았고 저건 또 뭐랑 비슷하고 그러는데 사실 그다지 닮지 않았다. 눈의 촛점을 흐릿하게하고 사팔뜨기처럼 뜨고 봐야 비로서 보이는 매직아이 같은건가? 전혀 곰처럼 보이지 않는데 곰과 닮았다니 뭐 그러려니 해야지...
그래도 가이드가 포인트 해 주는 곳은 사람들이 오오~ 하면서 사진을 열심히 찍어댄다.
캐년투어 자체는 그다지 할말이 없다. 말로 표현할 대상이 아니라 그림으로 표현되는거니까...
나는 사진 찍는데 별 관심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고, 바로 전에 그랜드캐년과 호스슈밴드를 봐서 그랬을 수도 있고, 사진으로 봤던 고요하고 신비한 자태와는 달리 실제로는 명절전날 도매시장 분위기 같은 북적임이 싫었을 수도 있고 해서 약간은 심드렁한 기분이 들고 그랬나보다.
동굴 같은 계곡 끝까지 가서 외부로 나가 잠시 하늘을 보며 쉬면서 인원을 체크 한 후에 다시 들어온 길을 되돌아나가는 걸로 투어는 끝이 났는데 약간 허무한 느낌이 들기도 했던듯...
원래 이 곳의 아름다움은 빛이 수직으로 내리꽃히는 정오쯤이라는데, 우리가 갔던 8시반은 그렇게까지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신비스런 물결무늬 동굴을 도대체 어디에서 보겠는가 말이다. 꽤나 특별한 곳 그리고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각광을 받을만하다. 그리고 나중에 사진 찍은 걸 보니 육안으로 본거보다 사진으로 보는 게 훨씬 더 멋있어 보인다.
이때는 몰랐었다. 이 먼지구덩이 속에서 한시간 동안 셔터를 누르는 동안 무슨 일이 생겨버렸는지... 요왕을 어떻게 멘붕과 희망 다시 실의와 포기에 빠지게 했는지는 시간이 좀 흐른 후에야 깨닫게 된다.
투어가 끝나고 주체할 수 없이 남은 오후시간동안 우리는 숙소에서 좀 쉬며 먼지를 털어내기도하고, 근처 월마트에 들러서 딸기도 사먹고 파월호수와 글랜캐년댐도 다녀오곤 했었다.
우리나라도 딸기가 봄에 제철이듯 미국에도 이 즈음에 딸기가 꽤 보이곤 했는데, 우리나라것과는 달리 육질이 아주 그냥 서걱서걱하다. 딸기꼭지에 달린 잎은 기운 뻗치는 푸성귀 같이 성성하고... 뭔가 딸기가 되게 튼튼하고 팔팔한게 양키스타일인걸...
나는 원래 국을 잘 안먹고 라면을 먹을때도 국물은 그대로 남기는 편인데도, 건조한 기후에서 고작 이삼일 헤매고 다녔더니 50센트짜리 일본브랜드의 컵라면 조차도 너무너무 맛있게 느껴진다.
그런데 우리가 고른 이 컵누들, 젓가락질 못하는 서양인들이 스푼으로 먹을 수 있도록 면을 3센티 길이로 다 잘라놓은거다. 힝~ 이게뭐야. ㅠㅠ 후루룩하고 쭉 당겨먹는 그 맛이 없잖아. 이 사람들아. 젓가락질을 못하겠으면 포크라도 쓰라고.
페이지로 가는 길
다음날 아침 앤틸롭캐년 투어에 앞서 공연을 준비중이신 나바호 인디언 아저씨
이런 트럭을 타고 캐년으로 간다
앤틸롭캐년 도착
앤틸롭캐년의 모습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