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 미국으로 강제여행하게되기까지
동가식서가숙한 미서부 4개주 이야기
1. 미국으로 강제여행하게되기까지
다른 이들도 그러하겠지만 우리는 그다지 실현될 거 같지 않는 일들을 상상하고 계획하면서 짐짓 행복해하거나,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한 우울한 일들에 미리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면서 다소 적적한 일상 속에서 걱정과 행복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경험에 의하면 행복한 바램은 거의 잘 실현이 안 되고, 미리 걱정하던 일들은 늘 골치덩이로 실현이 착착 되는 경향이...ㅠㅠ 있다.
내 경우에는 정말 터무니없는 상상들... 그동안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집안 먼 친척이 갑자기 나타나 거대유산을 남겨주거나, 또는 로또에 당첨되는 행운을 맞이하는 등등의 거의 막장드라마적 망상에 가까운 걸 꿈꾸는 반면(그럴 친척도 없고 내 평생 로또는 사 본 적도 없다. 왜냐면 당연히 안 될거니까...), 요왕의 바램은 나보다는 현실에 기반을 둔 것으로서 가까운 시일 내에 근사한 스포츠카로 업그레이드 한다거나 아니면 아시아를 벗어나서 머나먼 유럽, 아프리카 북부 등등을 여행한다거나 뭐 그런 것들이다.
그동안 요왕의 여행리스트에는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터키 등등 주로 동아시아를 여행하던 우리의 패턴과는 아예 궤도가 다른 지역들도 많았었는데,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중에 유로화가 갑자기 천정부지로 올라버린다거나 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나라에 대한 열의가 저절로 사그라 들거나, 것도 아니면 여행에 드는 돈을 진지하게 가늠해보니 여행이 즐거움이 아니라 재앙으로 느껴져서 등등의 이유로 가이드북만 사놓고 엎어진 계획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사실 동남아의 백패커 여행경비는 우리나라에서 쓰는 한달생활비랑 거의 비슷한 곡선을 그리고 있어서, 우리가 동남아를 여행하는 건 그냥 그곳에서 생존하는 거지 다른이들의 화려한 여행과는 그 속내가 매우 다르다.
그래서 작년에 요왕이 미국병에 걸려서 미국에 가겠다고 할 때도, 이런 류의 설레발을 떨다가 결국은 엎어지고 말 계획쯤으로 생각하고 옆에서 장단이나 대충 맞춰주고 있었는데....
어라~ 이번에는 좀 이야기가 다르네. 중간에 꺾이지가 않는거다. 하루의 대부분을 지내는 자기공간에서 뭘하는지 다 파악은 못하겠지만, 눈치로 보아하니 이것저것 미국에 대해 찾아보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일단 미국에 대한 생각일랑은 아예 접어두었고, 올해 초 우리는 그동안 아시아에서 가보지못한 여행지였던 스리랑카를 향해 출국했다. 스리랑카에 대한 특별한 흥미가 있었다기보다는 늘 가던 곳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두근두근한 느낌을 느껴보고 싶어서 선택했던 낮선 스리랑카~
- 그래도 이번에는 처음 와보는 여행지로구나~ - 하면서 나름 재미있게 스리랑카 여행기간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여행 중에도 요왕이 가끔씩 미국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서도, ‘어쩌라고?’하는 식으로 그다지 무게감을 두지 않았었는데...
어느날 스리랑카의 고산지대 차밭마을인 하푸탈레의 어둑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에 잠이 깨어 의식을 챙기며, 이불이랑 딩굴딩굴하고 있는데 나의 너구리마냥 졸린눈이 토끼눈이 되게끔 정신을 팍 차리게 하는 요왕의 한마디!
“어제 미국 비행기표 예약했어”
어제? 아니 어제 무슨일이 있었던거지. 우리는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하다가 내가 먼저 잠들었는데...?
미국여행을 여러가지 이유로 (그중에서도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지만) 내가 반대할 것이 뻔했던 것이어서, 내가 잠든사이에 후다닥 스케줄변경/환불불가인 유나이티드항공으로 엘에이 가는 표를 예매했다는거다.
그 순간 나는 요왕 계정으로 몰래 들어가 어떻게 그 표를 취소시켜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디서 어떻게 예약을 했는지도 모를뿐더러 최대한 긍정적으로 방향을 돌려보자면 나 같은 결정장애인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평생 아메리카대륙을 못 밟아 볼 수도 있지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반쯤은 자포자기 반쯤은 미국에 대한 흥분으로 근심스런 눈을 하며 어이없게 웃었던것 같다.
스리랑카 여행을 마치고 우리나라에 돌아와 다시 미국으로 출국하기까지에는 단지 한 달의 시간이 있었는데 , 이 짧은 기간 동안에도 나는 미국여행에 대한 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모든 루트, 일정, 숙소, 할거리, 볼거리 등등은 전부 요왕이 짜고 나는 그냥 패키지여행객처럼 실려져서 다닐거라 생각하고 그냥 있기만 했는데, 이런 방관자적인 내 태도로 인해 여행기간 내내 별 트러블이 없었다는 건 장점(뭘 제대로 알고 할 말이 있어야지 트러블이 생겨도 생길터), 하지만 한사람이 커버하기에는 방대한 루트와 낮선여행지인지라 세밀한 부분의 정보부족으로 현지에서의 여행이 약간 헐거워지고 비용적인 면에서의 단점? 뭐 그런게 조금 있었을 수도 있다.
요왕이 내게 내민 미 서부 4개주의 루트는 이렇다.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 엘에이에 도착한 다음 그랜드캐년 - 엔틸롭캐년 - 아치스 국립공원 - 브라이스캐년 - 자이언 캐년 - 라스베가스 - 요세미티 - 샌프란시스코 - 퍼시픽코스트하이웨이의 몇몇 도시들 - 엘에이 이런 루트의 다소 느슨한 24박짜리 일정이었다.
캘리포니아주 - 애리조나주- 유타주- 네바다주 - 다시 캘리포니아 이런 루트인데....
저 중에는 정말 생전 처음 들어보는 캐년과 국립공원들도 있었는데 우리에게는 다소 낮선 유타주에 있는 국립공원들이란다. 그랜드캐년에서 자이언캐년까지 이르는 둥근 루트를 일명 그랜드서클이라고도 한다는데 이거 미국사람들이 만든 말인지 아니면 그냥 한국인여행자들끼리 만든말인지 모르겠지만... 전반부는 황톳빛 물씬 나는 캐년과 국립공원들 - 후반부는 도시와 푸르른 태평양연안 이렇게 짜여진 일정으로 생전 처음 가보는 미국을 가보게 되었다.
나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세 가지정도 걱정거리가 있었는데
일단은 도대체 25일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여행경비가 얼마나 들게 될까? 하는 경제적인 걱정과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의 입국심사도 겁나고, 전 일정 렌트카로 다니는 우리의 여정에 혹시 뭔가 조그만 해프닝이 일어나서 미국경찰한테 고속도로에서 스톱을 당한 후, 괜시리 우리가 당황해서 뭔가를 설명하겠다고 설레발 떨다가 우리의 이상한 행동에 화가 난 미국경찰한테 곤봉으로 후두려 맞을까봐도 겁나고 어째저째 지금까지 심적으로 그다지 긴장되지 않았었던 아시아와는 많이 다르다.
이런 나와는 달리 요왕은 숙소도 예약하고 렌트카도 예약하고 렌트카에 달 내비게이션도 미국의 아는 형님네 집에 배송시키고 그외 여러가지 수속 등 이래저래 실제적인 준비를 하며 즐겁게 보냈고, 시간은 착실하게 흘러가 마치 공부 하나도 안하고 맞이하는 중간고사 날처럼 미국으로의 출국은 어김없이 다가와서 4월초에 아메리카로 날아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