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3. 샌프란시스코
- 시내버스 -
2013년 12월 21일(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깜짝 놀랐다. 9시 반. 조식시간이 끝난 것이 아닐까? 아무리 허접한 음식일지라도 안 먹으면 배가 고픈 법이다. 가족들을 전부 깨워서 세수도 안하고 식당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다행히 아직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과일과 삶은 계란마저 동이 나버려서 잼과 빵만 남아 있었다. 그것도 많이만 먹으면 어쨌거나 배는 부르다.
오늘의 행선지는 캘리포니아 과학관. 이제는 버스 노선을 보는 방법을 알았기 때문에 시내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자신이 있다. 12월이면 이곳은 절기상 우기. 하지만 날씨는 너무나 좋다. 기다리던 38번 버스에 탑승.
토요일인데도 사람은 제법 된다. 이 버스는 신형이라서 내려야 할 정거장을 전광판으로 표시해준다. 구형버스에는 이게 없는데, 그런 경우에는 기사가 방송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안내가 없다. 이러면 내 입장에서는 참 힘들어진다... 한국 버스의 경우는 “승객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손잡이는 꼭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뭐 이런 멘트가 나온다만, 여기 버스는 “Please, Hold on” 이런다. 아주 간단해. 아울러 “때로는 갑자기 정지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내용이지만 뉘앙스는 다르다.
정신 바짝 차리고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은 결과로 버스를 도중에 2번이나 갈아타면서 목적지에 잘 도착했다.
- 캘리포니아 과학관 -
1853년에 지금의 차이나타운 자리에서 개관, 1906년 대지진 때 현재의 위치(골든게이트공원)로 이전, 1989년 로마 프리에타 대지진 때 건물이 심하게 훼손되어 재건축했다. 하여간 사연도 많은 이 건물은 외관이 웅장할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이 매우 아름답다.
여기도 시티패스에 붙은 표로 입장. 안에 들어가 보니 티라노사우루스 화석이 관람객을 맞아주는데, 건물 자체도 친환경으로 지었을 뿐 아니라 환경을 주제로 한 다양한 전시물이 있었다. 예를 들어 열대우림기후관을 만들어서 관람객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안으로 들어가면 Pitcher plant(곤충 잡아먹는 식물)를 비롯한 열대식물, 아나콘다 등이 있고, 예쁜 색깔의 나비도 날아다닌다. 나는 여기서 파란색 날개를 가진 나비를 처음으로 보았는데 촬영에는 실패했다. 대신 이거라도...
수족관도 있었는데, 흔히 Big and old라 부르는 커다란 물고기도 있었다. 이런 물고기는 매우 오래 살아서 몸집도 아주 큰데, 장수의 비결은 ‘느림’이라고 한다. 뭐든지 느릿느릿... 오래 살고 싶은 친구들은 참고로 하기 바란다.
성탄을 맞아 어린이 관객을 위해 캐럴도 들려주고 있다.
여기 오면서 기대는 아주 컸다. 심지어 나는 하루 전체를 여기서 보낼 마음까지 먹었다. 일단 직업이 그러니까... 그러나 실제로 이곳만의 특별한 점을 찾기는 좀 힘들었다. 솔직히 우리나라의 과천과학관도 이 정도는 하거든... 우리나라도 이젠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서 그런지 미국에 왔다고 해서 특별히 신기한 무엇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차라리 내가 감동한 곳은 <아카데미 카페>라는 이름의 식당이었다. 여기는 일단 “밥”이 있었다. 밥을 보는 순간 얼마나 반갑던지... 그렇다고 김치찌개나 된장찌개가 있지는 않았다. 가장 비슷한 음식으로는 카레가 있어서 그것을 주문했다. 기대가 만땅인 상태에서 밥을 비벼서 먹어봤는데, 카레가 참 달더라. 하하... 게임 끝.
- 카스트로 -
과학관이 위치한 골든게이트공원은 가로 길이만 5km에 달하는 거대한 공원이다. 과학관뿐만 아니라 드 영 기념박물관, 일본 차 정원 등 모두 41개에 이르는 시설이 들어서 있어서 하루에 구경하기가 어렵다.
과학관에서 바라본 드 영 기념박물관의 모습이다. 주변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아무데서나 사진을 찍어도 작품이 나올 것 같다.
드 영 박물관의 옆에는 미국 국가의 가사를 지은 프랜시스 스콧 키의 동상이 서 있다.
나는 이 무렵에 해가 기우는 모습을 보며 공연히 마음이 바빠졌다. 박물관도 좋고 정원도 좋지만 샌프란시스코에 왔다면 꼭 한번 가봐야한다고 믿는 <카스트로 거리>로 가고 싶었다.
이번에는 “스트리트 카”를 탔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정말 다양한 형태의 교통수단들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전차랑 비슷하게 생겼으면서도 다르다. 이곳의 케이블카보다는 한국의 전차랑 더 비슷하다.
서둘러서 달려왔건만 카스트로 거리에 도달했을 때, 해는 이미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모습을 나타낸 무지개 빛깔의 대형 깃발! 17번가와 Market Street의 교차로에 펄럭이는 저 Rainbow Flag는 카스트로의 상징이다.
동성애자의 거리...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동성애자들은 이곳에 모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공동체를 중심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다방면에 걸쳐 자신들의 존재감을 표현했다.
카페의 불빛도 무지개색, 극장의 네온사인도 전봇대와 주택에도 무지개색 깃발이 걸려 있다. 이곳은 동성애자들의 해방구이고, 샌프란시스코의 또 다른 랜드마크이다.
카스트로 극장의 간판이다. 저 안에서는 오늘도 동성애에 관한 영화가 상영되고 있을 것이다. 솔직히 한번은 보고 싶었다...
사족:
1) 버스에 관한 비슷한 이야기 하나.
승객들이 뒤로 들어가지 않고 앞에 서 있는 점은 우리나 여기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2) 약간 다른 이야기 하나.
여기 연방법은 노약자와 장애인을 위해 자리를 비워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느 노인 한 분은 버스에 오르더니 우리 큰 애한테 “Sorry, I have to be seated”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더라.
3) 성탄절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요즘 성탄 인사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교회를 다니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성탄절은 ‘남의 생일’이 아니냐? 예수가 왔다고 해서 특별히 즐거울 이유가 없지. 해서 요즘은 그냥 “해피 할러데이즈”라고 한대. 실제로 여기 와서 그런 인사를 많이 들었다. 노는 것은 누구나 행복하니까...
4) 초등학생 두 명과 아내를 데리고 온 내가 카스트로 거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미 날은 완전히 어두워져 밤이 찾아왔으니 돌아갈 일도 걱정이다.
5) 예전에 종로3가에 있는 파고다극장은 동성연애자들의 소굴이었다고 한다. 성정체성과 그 사람의 인간됨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데는 그들의 퇴폐문화가 한 몫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동성애 퇴폐문화의 중심에 바로 파고다극장이 있었다. 얼마 전에 친구와 그 길을 걸을 일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극장은 철거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