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2. 샌프란시스코
- 시내관광 -
2013년 12월 20일(금). 밤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어제 저녁에 7시에 잠자리에 든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자다 깨보니 밤 10시인데, 그 다음부터는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은 일어나서 사진을 정리하고 내일의 여행을 계획했다. 이후 밤 12시부터 다시 잠을 청했으나, 잠손님은 오지 않고, 아이들도 새벽 2시밖에 안된 시각에 모두 일어나 버렸다. 미국에 오면 항상 이게 문제다...
그렇게 밤새 뒤척이다가 7시에 일어났다. 오팔호텔의 조식은 이름도 생소한 컨티넨탈식. 빵과 잼, 과일, 삶은 계란 그리고 주스가 전부인 아주 간단한 식사이다. 이런 음식도 많이 먹으니까 배는 부르다. 어쨌거나 사람이 이렇게 먹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하다.
호텔 앞 Geary St에서 3번 버스를 타고 처음으로 향한 곳은 <유니언 스퀘어>. 남북전쟁 당시에 연방정부군(Union Army) 지지 성명을 발표한 역사적인 장소이며, 샌프란시스코의 중심이다. 광장 중앙에는 스페인 해군을 상대로 필리핀 마닐라 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듀이 제독을 기념하는 27m의 기념탑이 있다.
광장 주변은 백화점과 쇼핑센터, 호텔, 레스토랑 등이 즐비한데, 그냥 바라만 보아도 산뜻한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는 도시의 풍경이다.
광장 북쪽에 있는 <차이나타운 게이트>로 들어섰다. 현판에 새겨진 글귀는 天下爲公. 세상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니 좋은 말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온통 중국인 세상이다. 미국의 서부가 개발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민이 시작되었지만, 중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꿈을 안고 신대륙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지금은 샌프란시스코 인구의 20%를 차지할 만큼 커졌다고 한다. 이들은 타지에 와서도 현지인과 섞이지 않고 자신들만의 구역을 만드는 습성이 있다고 하는데, 이곳이 바로 그 본보기이다.
<그레이스 성당>으로 가기 위해 케이블카를 탔다. 우리가 흔히 전차라고 부르는 <케이블카>는 이미 지역의 명물이다. 땅속에 묻힌 케이블로 차량을 끄는 방식이다. 안에는 저렇게 운전사가 있어서 뭔가 쉼없이 작동을 한다.
마침내 성당에 도착. 파리의 노트르담 사원과 샤르트르 성당을 모델로 하여 만들었다는데, 크기가 웅장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내부를 들어갈 수 없었던 점. 밖에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성당을 뒤로 하고 다시 케이블카에 올랐다. 다음 목적지를 위해서는 온 길을 되돌아가야 했으나, 아이들이 워낙 좋아하고 시간도 많아서 그냥 종점까지 가보기로 했다. 3개의 라인 가운데 가장 인기가 없는 “캘리포니아 라인”인데다 종점도 가까워서 그런지 사람도 없다. 거의 우리 가족이 전세를 낸 느낌이다.
종점에 이르니 차장이 우리에게 포즈를 취하게 하고 사진도 찍어줬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풍경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종점에서 내려다 본 거리도 평화롭다.
케이블카를 포웰-하이드라인으로 갈아타고 찾은 곳은 <롬바드거리>. 경사 27도의 가파른 길을 안전하게 내려가도록 고안된 S자 형태의 짧은 도로이다. 일단 위에서 보면 길이 이렇게 생겼다.
많은 운전자들이 이 길을 따라 경험삼아 내려오는 까닭에 여기서만 체증이 생긴다. 계단을 따라 내려와서 올려다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사진이 나온다. 많은 관광객들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에 바쁘다.
다시 케이블카에 올라 종점에 이르니 <샌프란시스코 해양역사공원>이다. 오래된 배 몇 척이 떠 있는 이곳은 주변에 비해 관람객이 적다. 멀리 보이는 금문교를 바라보면서 산책하기에 적당하다.
여기까지 구경을 하니 배가 너무 고파서 쓰러질 지경이다. 아침에 빵을 잔뜩 먹은 내가 이 정도이니 다른 사람은 어떻겠는가? 식사를 위해 인근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Capurro’s란 이름의 근사한 레스토랑이었는데, 밖에서 메뉴를 확인하니 점심 스페셜은 가격도 착해 보였다. 나는 이곳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할 요리라는 “브레드보울수프 & 시저샐러드”를 주문했다.
미국에 오면 꼭 먹어보라는 음식 10가지 중에 하나인 Bread Bowl Soup는 빵의 가운데 부분을 파낸 다음 스프를 담은 재미있는 음식이다. 아내는 새우 샌드위치, 아이들은 어린이 메뉴에 있는 피쉬&칩스와 햄버거를 먹었다. 두둥... 계산서 등장. 기가 막힌 것이 음식값에는 메뉴판의 가격 이외에 세금이 붙어 있었으며, 음식값의 20%는 팁으로 주어야 했다. 그렇다 보니 실제로 내가 지불해야하는 금액은 메뉴판 가격의 배에 가까운 65불이다. 허허... 속에서 천불이 난다.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라 할 <Fisherman’s wharf>를 본격적으로 구경할 차례다. ‘어부들의 부두’라면서 으레 있어야 할 대폿집은 없다. 대신 수많은 관광객을 부르는 장사꾼의 외침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장사꾼이라 해도 이 정도면 내공을 인정해줘야 한다. 내가 저런 비슷한 것을 다른데서 해 봤는데, 서 있을 수조차 없다. 아주 운동신경이 좋다면 혹시 모르겠다.
41번 부두(Pier 41)에서 유람선을 탔다. 인근의 금문교와 알카트라즈 섬을 돌아보는 스케줄인데, 표는 시티패스에 붙어 있다. 출항하자마자 보이는 것은 바로 옆 39번 부두위의 바다사자들이다.
1989년 Loma Prieta 지진이 샌프란시스코를 강타하자 바다사자들이 피어39로 몰려왔는데, 이후 지속적으로 개체수가 늘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많을 때는 1,500마리에 이르렀는데, 처음에는 소음과 악취 때문에 세입자와 선주들이 불만을 제기했으나, 이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관광객이 몰리자 지금은 저렇게 데크까지 만들어놓고 보살핀다고 한다.
배는 물살을 헤치며 태평양쪽으로 나아갔다. 육지와 달리 바다로 나오니 바람이 세서 조금 추웠다. 엽서 사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금문교>. 그 아래의 모습은 이렇다. 위로 건너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일단 이렇게 아래로 지나가봤다.
금문교와 함께 이곳의 또 다른 명물은 <알카트라즈 섬>이다. 해안에서 2.4km 떨어진 이곳은 역사적으로 1861년 남북전쟁 당시의 포로수용소, 1907년 이후부터 군교도소, 1933년부터 29년 동안 연방감옥으로 쓰인 곳이다. 이곳에 수감됐던 죄수들의 명단도 화려해서 시카고 갱 두목 알 카포네, “버드맨” 로버트 스트라우스, “머신 건” 조지 켈리와 앨빈 카피스 등이 복역했다고 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이렇게 생겼다.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 다른 배를 이용하면 상륙도 가능한데, 나는 그냥 이렇게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는 점이다. 일단 유속이 빠르고, 수온이 낮다. 게다가 주위에는 상어가 산다. 실제로 여러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나섰으나 대부분 실패했다고 한다. 그럼 성공한 사람의 숫자는? 3명...
멀리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를 잇는 <베이브리지>가 보이고, 배 위에서 바라보는 샌프란시스코의 풍광이 참으로 아름답다. 스콧 맥킨지의 노래 “San Francisco”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한군데 더 들른 곳은 <Aquarium of the bay>이다. 애들은 물고기 보는 것을 좋아했다만 나는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어차피 코엑스 아쿠아리움이나 여기나...
- 돌아오는 길 -
해는 완전히 저물었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가야 할 길은 어느 방향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총기 소유가 가능해서 하루에도 총에 맞아 죽어나가는 사람이 여럿인 이곳에서 밤길을 헤맨다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는데... 온 길을 되돌아가야할지 아니면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가야할지조차 판단이 되지 않는다. 사실 시각은 6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여기도 위도가 높아서 우리나라만큼 해가 일찍 저물었다. 인적이 드문 길을 따라 무작정 걷는데, 손에서는 땀이 난다.
천신만고 끝에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버스, 스트리트 카, 또 버스... 하여간 안 타본 차가 없을 것 같다. 이리저리 빙글빙글...
사족:
1) 샌프란시스코를 주요 관광지만 살펴본다면 하루에도 가능하다. 대부분의 볼거리들이 케이블카 포웰-하이드 라인의 주변에 몰려있기 때문.
2) 피셔맨스 워프에 갔다면 좀 무리를 하더라도 해산물 요리에 도전해볼만 했다. “알리오토스” 같은 식당은 꽤 유명하다. 가격은... 어른 1인당 50불 정도 잡으면 될까? 근사한 식당이 부담스러우면 노점에서 파는 대게도 괜찮아 보였다. 우리 가족은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초입에서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나중에 보니 실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