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 샌프란시스코
- 프롤로그 -
드디어 내가 꿈에 그리던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동안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작년부터 우리 학교에서 근무해 온 레안드리 선생님과 악수를 나누는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토플을 준비하면서 원어민선생님께는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녀는 지난 여름에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교무실에서 내게 영어를 가르쳤었다. 유학생 시험에만 합격했을 뿐, 당시는 내가 과연 대학에 합격이나 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서 몹시 힘들었던 시절인데, 그때마다 그녀는 내게 용기를 심어줬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일요일 아침이면 MBC에서 <세계의 대학>이란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세계 유명 대학의 모습을 소개하면서 그 대학의 학생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학문 연구에 매진하는지를 잘 보여줬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나중에 꼭 유학을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 그 시절로부터 대략 28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 어찌 되었건 꿈을 이루었다. 내가 “어찌 되었건”이란 단서를 붙인 이유는 그 시절에 상상했던 나의 미래가 지금 나의 이런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20대의 젊은이가 아니고, 당시에 상상했던 그런 명문 대학에 가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나는 특별한 희망을 찾기도 어려운 40대 중반의 나이이고, 텍사스주립대는 시골에 있는 그저 그런 대학의 하나일 뿐이다.
- 공항가는 길 -
2013년 12월 19일(목). 전날 밤에 눈이 내려서 걱정을 조금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더 이상 눈은 내리지 않았다. 대신 날씨가 차가웠다. 아침기온은 영하5도. 그런데도 공항까지는 장인어른께서 태워다 주셨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공항버스 정류장이 있기는 하나, 그렇게 하기에는 짐이 너무 많았고, 길이 미끄러웠으며, 날씨가 추웠다. 그렇더라도 70이 넘은 장인어른의 도움을 받으려니 마음이 무겁다 못해 숙연해졌다. 나도 나중에 외할아버지가 될텐데,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손수 운전까지 하면서 장인어른께서는 외손녀들에게 좋은 말씀도 들려 주셨다.
1. 한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
2. 영어 못한다고 기죽지 마라. 만일 미국애들이 놀리거든 이렇게 말해라. “너희는 한국말 할 수 있냐?”
배웠다는 놈의 얄팍한 지식으로 본다면, 일단 첫 번째는 말이 안된다. 도대체 근거가 무엇인가? 하하.. 실제로 저런 해괴한 논리를 펴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근거가 IQ래. 하하... 저렇게 결론을 내리는 사람은 아이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두 번째도 그렇다. 세계의 변방에서 1억명도 안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세계인이 공용어로 사용하는 언어의 가치가 같다는 말인가?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 장인어른의 저 말씀은 나의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벌써부터 낯선 환경에 주눅들어있는 아이들에게 나도 일깨워준다.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셨지?”
- 출국 -
출발한지 한 시간 조금 넘어서 인천국제공항 도착. 수고하신 장인어른을 위한다고 식사부터 했다. 한사코 좋은 식당을 마다하고 푸드코트로 가시는 아버님... 비빔밥 한 그릇을 다 비우시더니 말없이 눈물을 훔치신다. “어... 지금 우세요?” 내가 결혼한지가 올해로 13년이고, 그 사이에 처조모, 처외조모가 돌아가셨는데도 아버님이 우시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다. 아버님의 큰 사랑이 느껴져서 다시 한번 내 마음도 숙연해졌다. 세상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도 있다...
아버님을 배웅하고 나서 우리 가족은 기념사진을 찍었다. 장소는 언제나 같다. 저 파란색 시간표가 배경이다. 이렇게 하면 이곳이 진짜 인천공항이란 생각이 들어서 좋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버님은 또 눈물을 흘리고 계실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저렇게 좋다고 사진찍고 있다.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그게 자식이다.
인천발 샌프란시스코행 아시아나항공 212편. 탑승하기 전에 남은 한국돈을 모두 환전했고, 남은 동전으로는 아이들을 시켜 공중전화로 양가 조부모님께 작별인사를 드리게 했다. 아마 아이들은 공중전화라는 것을 처음 보았을 것이다. 그러고도 남은 동전은 유니세프 아동을 돕는 저금통에 넣었다. 많은 사람들이 유니세프 아동을 이런 식으로 돕기 때문에 그들은 늘 배가 고픈지 모른다.
아시아나 항공의 기내식은 정말 훌륭했다. 바로 작년 이맘 때 탔던 대한항공보다도 훨씬 좋다. 후발주자의 분발인가 아니면 미주노선의 차별성인가?
저렇게 스테이크로 근사하게 식사를 끝내고는 조용히 영화 <더 테러 라이브>를 감상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불안할까... 왜 이렇게 자신이 없지? 그냥 한국에서 영어공부나 하면서, 아는 거 나오면 잘난체나 좀 하면서 살 것을, 괜히 유학을 신청했나... 처음으로 후회가 되었다. 갑자기 차만 팔아치웠지 운전자보험을 해약하는 것은 잊은 것도 생각났다. 심지어 그냥 이대로 비행기가 떨어져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그게 아니야... 살아야지... 내가 아빠이고, 남편이다. 저들은 어쨌든 나를 믿고 이 먼길을 따라 나서지 않았는가...
- 샌프란시스코 공항 도착 -
2013년 12월 19일 아침 10시 40분(한국시간 20일 새벽 3시 40분)에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무사히”를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지난 7월에 이곳에서 비행기가 착륙도중에 추락하여 많은 사상자를 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손쉽게 항공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내가 예약을 하던 10월의 12월 19일 미주 노선 좌석 상황은 뉴욕, LA, 시카고 다 안 좋았는데, 이곳에만 좌석이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사고가 일어난 장소를 회피하기 마련이다.
호텔까지 가지고 가기에는 짐이 너무 많아서 상자 2개는 공항 안에 있는 보관소에 맡겼다. 금액은 300불이 넘는다. 사실 상자 안의 내용물은 다 팔아도 300불이 안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은 텍사스에 가면 당장에 필요할 물건들이니 도리가 없다. 나와 아내는 괜찮았는데 자느라고 아침을 먹지 않은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해서 점심부터 해결했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먹어보는 식사라고해서 아이들의 기대는 정말 컸다. 그러나... 맛은 그저 그렇고, 다만 양이 많으니까 좋다.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방법은 BART가 편리하다. BART는 Bay Area Rapid Transit의 약자인데, 아마 여기 사는 사람들도 모를 것이다.
약 30분이 지나서 Powell Street역 도착.
역사를 벗어나 바깥 세상을 보았다.
그리고 제일 먼저 공부한 대로 여행자정보센터로 들어갔다. 여기에 오면 한국어로 된 지도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없다. 독어, 불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일본어는 있지만, 한국어는 없다. 하다못해 중국어가 있는데 한국어는 없다. 센터 안에 한국 사람들이 많았는데도 한국어는 없다. 반면에 일본어자료는 넘쳐난다. 아무리 원전에서 사고가 나고 장기 불황에 국민들이 힘들어한다해도 일본어자료는 많았다.
- 호텔 가는 길 -
상자 두 개는 보관소에 맡겼는데도 아직도 짐은 많았다. 초등학생 두 딸에게도 캐리어가 하나씩 쥐어졌다. 집사람은 이민가방을 끌며 낑낑댔다. 아무리 바닥에 바퀴가 있어도 그건 평지를 갈 때나 해당되는 얘기지 계단을 올라갈 때는 무조건 들어 올려야 했다. 결국 그들은 멍청한 아빠, 바보같은 남편을 만나서 안해도 될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공부한 대로 시티패스를 구입했다.
이것만 있으면 시내의 모든 교통수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주요 4개 관광지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표는 사람을 목적지에 데려다주지는 않는다. 택시값 비싼 것은 알아가지고 구태여 버스를 타겠다고 무거운 짐을 이끌고 정류장에 왔는데, 솔직히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있나... 사실 샌프란시스코는 대중교통이 대단히 잘 되어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조금만 똑똑했어도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겨우 겨우 물어서 버스를 탔는데, 내가 어디에서 내려야할지를 몰라... 남들 눈에도 우리 가족이 답답해 보였는지 승객 중에 한 분이 나보고 어디 가냐고 묻더군. 근데, 말을 못해... 답답하니까 주소가 어디냐고 묻더군. 그제서야 자료를 주섬주섬 꺼내서 말해주려는 나. 근데 못 찾아... 짐이 너무 많아서 자기가 자기 가방속에서도 헤매. 게다가 성질이 급해서 내려야 할 상황이 아닌데서도 내려. 영문 모르는 집사람과 애들까지 헐레벌떡 무거운 가방을 낑낑대며 내려.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택시를 타고 싶어도 우리 짐은 택시 트렁크에 들어갈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밴이 와야 해... 게다가 여태까지 고생한 것이 아까워서 그럴 수 없다. 집사람과 애들이 죽어 나가도 일단 “고우 온”이다.
아까 버스 안에서 우리 가족을 챙겨주던 노부인께서도 내리셨다. 나보고 목적지의 이름을 말하라고 하기에 Opal Hotel이라고 했더니 주소를 말해보래. 내가 또 황급히 가방 속을 뒤지니까 천천히 하래. 한참 만에 찾아서 1050 Van Ness라고 했더니 다시 차분하게 가는 법을 알려주었다. 설명을 들으면서 알게 된 사실. 샌프란시스코는 버스 정류장마다 도심지도가 있고, 버스 번호와 노선까지 다 그려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바보 멍청이라도 어디든 찾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내가 너무 고마워하니까 나보고 너무 고마워하지 말래. 내가 너희 나라에 갔어도 마찬가지 아니었겠느냐고 하는데, 너무 감동해서 말이 안 나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만난 현지인인데, 이렇게 친절하다니... “당신같은 사람이 있어서 미국이 세계를 제패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설명들은 내용을 정리하느라 지도를 뚫어지게 보는 내게 집사람이 묻는다.
“여기가 뭐야? 저 분이 이 건물로 들어갔어!”
아닌게 아니라 버스정류장 앞에 큰 건물이 있는데, 다가가서 보니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뭐 이렇게 씌어 있다.
“교수님인가?”
사실 그 분이 뭐하는 사람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 호텔 도착 -
천신만고 끝에 호텔에 도착했다.
그동안 해외여행을 하면서는 공항에 내리면 택시를 타고 날았으니 이런 고생을 해 본 적이 있나... 집사람도 고생, 애들도 고생... 그런데 막상 호텔이라고 도착하고 보니 아이들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해. 허허... 수영장 같은 것은 당연히 없고, 방에서는 쾌쾌한 냄새가 진동을 해서 창문을 열면, 보이는 것은 저게 뭔가 싶어서 도로 창문을 닫고 커텐을 치게 만들었다.
이런 호텔도 세금에 뭐 포함하고 그러면 하룻밤에 10만원 꼴이다. 그동안 아이들이 경험했던 태국이나 필리핀의 별 세 개짜리 호텔들보다 값은 오히려 더 비싸다. 이런 기회에 아이들에게 소득수준과 물가수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나의 설명 자체가 시원치가 않아서... 분명한 사실은 경제생활은 살아있는 지식이라는 것.
사족:
1) 수하물 규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나. 항공기 수하물은 기본적으로 무게가 23kg이하이어야 한다. 그 무게를 넘으면 돈을 내야 한다. 그런데 그것도 32kg이내에서만 가능한 얘기이다. 우리집 이민가방처럼 무게가 41kg과 44kg이 되면 돈하고 상관없이 비행기에 실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인천공항 안에 <대한통운>이라고 있는데, 나같은 멍청이들을 위해 박스를 판매하고 포장도 해 준다. 그것도 비싸봐야 포장까지 포함해서 상자 하나에 만원이다. 결국 이민가방은 무게를 23kg 이하로 맞추고 남은 것들은 두 개의 상자에 나누어 담았다.
2)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보관소에 325불을 내고 짐을 맡긴 것은 정말 바보 천치와 같은 행동이었다. 공항에서 밴을 이용해서 호텔까지 왔으면 대중교통을 타는 고생도 안 했을 것이고, 비용도 훨씬 적게 들었을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바보같은 짓을 하는 나를 생각하면... 속에서 천불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