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20. 미국 여행 중에서 가장 공포스러웠던 날
캘리포니아의 대표적인 도시인 샌프란시스코와 LA... 이 두 곳을 연결하는 아름다운 해변도로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캘리포니아 1번 주도)
우리는 PCH를 타고 남쪽으로 점차 이동해서 LA에 도착할 예정이다.
태평양을 바로 옆에 둔 이 도로는 사실 좁고 굴곡이 있는 편이어서 운전하기에는 편치 않지만 전경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이 길 주위로 아름다운 해변과 도시들이 있어서 사실 기대가 많이 되는 곳이었다. 약 700킬로에 이르는 이 길을 3일간 이동할 계획이다.
사실 이 이후의 여정은 꽉 짜여진 일정표 없이 그냥 좀 느슨한 상태로 놔둔지라, 약간은 될되라 되라 하는 식으로 후리하게 다닌거 같다. 여행기간이 길어지면 원래 말미에는 이런 식이 된다니까...^^
드디어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차를 몰고 남쪽으로 향했다.
남하하는 길에 있는 스탠퍼드 대학도 둘러 볼 수는 있었지만, 뭐 우리 둘이서 대학전경 둘러보면 뭐하겠나 싶어서 그냥 패스하고, 도시를 벗어나니 점차 집들이 드문드문해지고 연이어 아름다운 전경이 양옆으로 좌라락 쏟아지듯 펼쳐졌다.
하프문베이Half Moon Bay, 피젼포인트Pigeon Point 등대 등등 이 구간의 아름다운 뷰포인트를 거쳐서 우리가 도착한곳은 몬터레이Monterey였다.
미국 중산층의 분위기가 강하게 흐르는 그림처럼 예쁜도시 몬터레이...
17마일이라 불리는 유료 드라이브도 있는데 이 구간은 비싼 저택들과 골프장 그리고 리조트 같은 게 간격을 두고 위풍당당하게 서있었다. 의외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한국음식점도 눈에 보이는 중소도시였다.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숙소에서 워낙 자주 밥을 지어먹었던지라 이제 한국음식에 대한 포부는 다 사그라 들었는데, 이곳에서도 한국식당이 수요나 있나? 하는 의문은 좀 들었다. 아마 잘 몰라서 그렇지 한인커뮤니티가 있거나 여행자들이 간간이 오는지도 모르지...
오늘은 처음으로 미국식 다이너인 데니스Denny's에서 식사를 했는데 몬터레이 들리기 바로 전에 있는 해안도시 산타크루즈Santa Cruz에서 먹었다. 미쿡음식을 아주 전방위적으로 해내는 곳인지라 누군가는 미국식 김밥천국이라고도 하는데 그 정도 레벨은 아니고 좀 더 고급이라 봐야할 듯... 티비 광고도 하니까 말이다. 2-4-6달러에 불과한 아주 저렴한 식사메뉴들도 있긴한데 그런것만 골라먹기엔 체면이 안서니까 ‘올아메리카 슬램’과 ‘씨푸드 플레터’에 음료수 2잔 여기에 세금과 팁 하니 더도 덜도 말고 30달러다.
미국음식이란게 보통의 우리나라 식생활과도 꽤 겹치는 게 있어서 계란후라이, 감자튀김 이런게 막 생소할건 없었는데, 그 특유의 분위기... 그러니까 미국영화에서 엄청 자주 보던 그 다이너 분위기 속에 있으니까 기분이 상당히 묘했다. 정말 별거 아닌데 마치 티비프레임안에 우리가 쏙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오래전부터... 나는 첫 동남아여행을 앞둔 여행자들의 싱숭생숭한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내 눈에는 이미 일상적이고 별로 유별난 것도 없는 풍경들인데 뭐가 저리 신기해서 저토록 생경해할까? 싶어 다소 의아하고 심드렁한 맘이었는데 오랜만에 우리가 초보여행자가 되보니 다시금 알 것 같다. 타인의 일상이 내겐 환상이라는 걸...
고칼로리 음식으로 배도 채우고 몬터레이의 부티나는 전경과 골프장으로 눈도 채우고...
마침 그날은 주말이어서 이곳에서는 결혼식도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들러리들도 예쁜 분홍드레스를 입고 입장하고 신랑친구들도 턱시도를 입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
미국에서의 결혼식 문화로 볼 때 이 정도면 그냥 중산층인걸까? 아니면 좀 더 부자들...?
비정상회담에 타일러가 나와서 하는 말을 보면 미국은 주마다 엄청 다르다고 하니 여기서는 일반적인 일이 다른 주의 사람이 보기에는 럭셔리해 보일수도 있겠지.
피젼포인트 등대
몬터레이의 전경과 돈내고 들어가서 보는 17마일을 꼼꼼히 둘러보고나니 이제 피곤하기도해서 우리는 숙소로 가야했는데...
한국에서 숙소를 알아 볼 때 이곳 몬터레이의 높은 숙소비에 좀 질려서 여기서 약 30킬로나 떨어진 내륙도시 ‘살리나스Salinas’에 예약을 해뒀다. 그런데 알고보니 몬터레이에도 중저가 숙소가 아주 줄줄이 포진해 있는 거 였다. 바닷가근처의 이쁜 숙소는 비싸지만 도시 한켠에 줄줄이 포진해있는 거리의 모텔은 다른도시와 크게 다를 게 없어보였는데... 흑흑...
몬터레이를 빠져나와 한참 달리니 저녁 무렵이 되어있었고, 내비가 이끄는 대로 살리나스의 국도근처 모텔 주차장에 도착한 순간... 우리는 얼어붙었다.
이 숙소는 전형적인 2층 구조의 모텔이었는데
그 2층 난간에는 정말 백퍼센트의 싱크로율로 영화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것 같은 자들이 다닥다닥 모여있었다...
그러니까 스트릿 갱들 복장을 한 흑인과 히스패닉 무리들이 난간에 오종종하게 모여서는
서서히 진입하는 우리의 빨간차를 내려다보며 워워워워~~ 하는 것이었다.
정말 미드에서나 보았던 그들...
차를 그대로 돌려나갈까했는데 그러기에는 이미 늦었고...
사람은 원래 움직이는 대상을 자연스레 보는 습성이 있는데, 그들 입장에서는 빈 주차장에 빨간 차가 들어오니까 그저 우리를 그냥 주시한 걸 수도 있겠으나 그 당시 우리는 정말 너무너무 무서웠다.
솔직히 그들 복장이나 말투나 표정으로 보아하건데 바지춤에서 총을 꺼낸다해도 하나도 이상할게 없는 분위기였다. 지금까지는 다 가족적인 숙소에서 지냈는데... 이게 뭐야. 진짜 미쿡이구나.
혹시나 차가 털리는 게 아닐까?
혹시 자는데 방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건 아닐까? 하는 망상이 순간적으로 들었지만 애써 무표정하고 담담하게 차에서 내렸다.
너무 후달거려서 트렁크만 손에 쥐고는 우리의 식료품 봉투는 미처 챙기지도 못한 채로...
체크인 할 때도 제발 2층이 아닌 1층으로 배정되길 바랬는데 1층은 우리가 예약한 타입의 방이 없다고...
우리는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미국 중상류층들의 저택들 사이를 헤메고 다니면서 부내 킁킁 맡고 다녔는데 갑자기 이게 뭔 변괴람...
밤이 늦어도 이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헤이 맨 웟더 헬~~ 블라블라 쿵쿵쿵 소음은 잠잠해지지 않았는데 어느순간 보니 조용해졌다. 그들이 자러 간 건지 뭔지는 몰라도 이때 나갔다와야해...
요왕이 용기를 내서 주차장으로 후다닥 내려가 미쳐 못 챙겨온 식료품 보따리를 안고 올라왔다. 커텐사이로 요왕의 무사귀환을 바라면 빼꼼히 바라보는 내 모습은 고양이가 있는 부엌 구멍에 숨은 배고픈 쥐새끼랑 비슷했을 것 같다. 식량을 손에 넣은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빙구처럼 냉동식품을 데워먹고, 오늘밤 아무일 없이 무사히 지나가길 정말 진심으로 바라며 잠이 들었다.
우리는 그날 정말 쫄았었다. 어떻게 미국사람들은 일반인들도 영화배우랑 비슷하게 생긴거지? 외국인들도 우리 얼굴보면 어쩜 애네들은 영화에 나오는 동양인들이랑 이렇게 똑같이 생긴걸까? 라고 생각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