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6. 뉴욕
- 뉴욕 가는 길 -
2014년 5월 11일(일). 뉴욕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이른 아침에 형편없는 조식으로 아침을 해결한 다음 택시를 불러 타고 살렘역 → 기차 → 보스턴 북역 → 지하철 → 보스턴 남역에서 버스터미널로 이동한 다음 그레이하운드를 탔다. 소요시간은 4시간이다.
중간에 버스에 이상이 생겨서 옮겨 타는 곡절 끝에 드디어 뉴욕에 도착. 그동안 말로만 들어왔던, 그래서 어느 정도는 동경심마저 가지고 있던 뉴욕에서 맞은 첫인상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교통정체였다. 버스가 맨해튼에 들어서자 옴짝 달싹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정해진 도착시간이라는 것은 이미 의미를 잃었고, 버스는 예정시간을 훨씬 넘겨서 제 마음대로 종착점에 이르렀다. Port Authority Bus Terminal.
여기서 예약한 숙소는 다리 하나 건너에 있는 뉴저지에 있었다. 하지만 사전에 정보를 정확하게 갖지 못한 우리 가족은 호텔까지 가는데 다시 4시간이 걸렸다. 걸어갔어도 이것보다는 빨리 도착했을 것이다.
Super8 Motel. 이곳의 주변 환경은 맨해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사진이란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담는 속성이 있는지라 앵글에 담긴 모습은 그래도 그럴듯하다.
다소 지저분한 주변 환경과 달리 방안의 상태는 매우 좋았다. 뉴욕에서 숙소를 잘못 구하면 바퀴벌레나 베드버그 뛰어다니는 곳을 만날 수도 있다는데, 이곳의 청결도면에서는 최상이었다.
조식도 제공은 되지만 이런 수준이었다. 싼 호텔의 continental breakfast라는 것이 이렇다. 사실 여행만큼 돈의 가치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 비행기, 호텔, 식사... 이 모든 것들은 지불한 돈 만큼의 서비스만을 제공한다.
맨해튼 시내를 오가는 방법은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요금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1인당 3불. 우리 가족은 하루에 기본 교통비만으로도 24불이 들었다. 우리로 치면 마을버스같은 개념인데, 뉴저지에 살면서 뉴욕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위해 이런 것을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도 보스턴에 비하면 상황이 많이 좋아진 것이다. 거기서는 기본 교통비가 택시+기차로 67불이었다. 앞에서도 말했듯 교통은 생각하지 않고 싼 숙소만 찾다가는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
셔틀버스가 내려준 곳은 Port Authority Bus Terminal. 이곳은 고속버스, 시내버스, 지하철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이다. 이곳에서 메트로카드 7일권을 구입했다. 가격은 31불. 버스와 전철을 7일동안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키 112cm 이상의 아이들은 표를 구입해야 했는데, 우리는 어른만 두 장을 샀다. (사실은 표를 구입하는 것도 못해서 쩔쩔매다가 청소부 아줌마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가 애들은 안사도 된다고 가르쳐줬다. 영어가 서툰 나... 이곳에서 나는 청소부만도 못한 존재였다... 그래서 슬펐다...)
뉴욕의 지하철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일단 너무 더러웠다. 바닥에 시커멓게 때가 절어 있는 것은 기본이고, 여기저기서 물이 줄줄 샜다. 그리고 어디선가 풍겨오는 지린내. 도대체 이 안에서 날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복잡하기까지 했다. 한국의 지하철이 정해진 역에서는 같은 기차만 오는 것과 달리 뉴욕의 지하철은 같은 자리에서도 갖가지 노선의 열차가 왔다. 쉽게 말해서 한국의 버스 정류장에 서로 다른 번호의 버스가 오듯이 뉴욕은 지하철이 그랬다.
- 뉴욕 시내관광(1) -
2014년 5월 12일(월). 원래 [뉴욕시티]라 하면 맨해튼, 브랑스, 퀸즈, 브룩클린, 스테이튼 아일랜드 이렇게 다섯구를 포함하는 말이지만, 대부분의 볼거리들이 맨해튼에 집중된 까닭에 이번 뉴욕 시내관광은 맨해튼으로 한정하였으며, 가장 남쪽에서 시작했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다운타운방면으로 달리면 종착역은 South Ferry.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눈에 들어온 모습은 마천루이다.
Lower Manhattan이라 불리는 맨해튼의 남쪽 끝에 서면 멀리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고, 부근에는 배터리 파크가 있다. 공원은 공사중이라 어수선했는데, 이곳의 볼거리는 공원 내에 있는 요새. Battery는 보통 건전지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요새(Fort)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내부에는 1812년에 뉴욕항을 방어하기 위해 영국군이 지은 Castle Clinton이 있다.
보울링 그린(Bowling Green). 보는 바와 같이 작은 공원이며, 뒤로 난 길은 너무나도 유명한 브로드웨이(Broad Way)의 시작점이다.
이곳의 특별한 볼거리는 돌진하는 황소(Charging Bull)상인데, 이 황소의 불알을 만지면 복을 받는다는 속설이 있다.
여기까지 보고 났더니 11시반이 되었다. 이제는 자유의 여신상을 볼 차례이다. 자유의 여신상을 보는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17불의 요금을 내고 유람선을 타는 것이다. 이러면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섬(Ellis Island)에 상륙도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스테이튼 아일랜드로 가는 배를 타는 것이다. 이 배를 타면 동상을 앞으로 지나가면서 볼 수 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이 배는 무료이다. 따라서 우리 가족은 후자를 택했다.
선착장 안으로 들어가면 2층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여기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월요일 오전에는 운항이 없어서 12시가 오늘 운항의 시작이었다. 승객들 중에는 Staten Island로 일을 보러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관광객이었다. 마침내 출항... 떠나온 곳을 바라보면 맨해튼의 마천루가 보인다.
전방을 바라보면 멀리 있던 자유의 여신상이 점점 가까워지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래도 너무 멀리 보였다. 배의 진행방향의 오른쪽 난간에는 사람들이 빼곡한데, 도대체 뭐가 보인다는 것인지...
줌으로 한껏 당겼는데도 이렇게 보인다. 망원렌즈였다면 모를까 일반렌즈로는 이 정도가 최대이다. 당연히 여신상을 배경으로 인물 사진을 찍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 역시 돈을 들여서 유람선을 탔어야 했다. 그렇다고 내려서 다시 유료를 타기도 그렇고... 왜냐하면 그렇게까지 해야할 만큼 저것이 대단한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점심은 노점에서 해결했다. 길가에 노점이 많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밥줘라는 이름의 한국음식노점도 있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인사까지 나눴다. 근데... 너무 비싸... 바로 옆의 중국음식노점에서도 밥을 팔았다. 옛말에 할아버지가 파는 떡이라도 싸야 사먹는다고 했다. 미안...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팠다. 거지도 아니고 길바닥에서 이게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노점에서 파는 저런 밥도 가격은 8불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여행만큼 돈의 가치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다. 더욱 슬픈 것은 이 와중에도 저 밥이 너무 맛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날 이후부터는 자발적으로 저런 노점을 찾게 되었다... 사람은 그렇게 적응하면서 변해가는 거다...
밥 먹는 바로 앞의 노점에서는 저런 것을 놓고 팔았다. 하지만 우리가 저곳에 머무른 1시간 동안 단 1장도 팔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지하철 Bowling Green역은 이렇게 예쁘게 생겼다.
우리가 이동한 곳은 트리니티 교회(Trinity Church). 성당을 개축한 것으로 현재의 모습은 1846년에 지어진 것이다.
안에 들어가 보면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가 햇빛을 적당히 투과시켜서 멋스러움이 한층 돋보인다.
교회 밖으로 나오면 세계 금융의 중심, Wall Street이다.
멀리 교회가 보이는 바로 이 거리.
1789년 4월 30일에 건립된 연방홀(Federal Hall). 앞에 서 계신 분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연방홀의 맞은편에는 뉴욕증권거래소(New York Stock Exchange)가 있다. 세계증시뉴스에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지만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감동은 덜했다.
지하철을 타고 좀 더 북쪽으로 움직였다. 뉴욕시청을 찾아 왔는데, 찾는데 실패하고 꿩대신 닭으로 들어간 곳은 대법원. 들어가기 전에 가방검사까지 했다. 사진 촬영도 금지한다고 카메라까지 보관 당했는데, 다행히 핸드폰이 있어서 천장의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다.
이 부근의 명소는 영화(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Last Exit to Brooklyn)로도 유명한 브루클린 다리이다. 1869년 완공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1,053m)였던 이 다리는 맨해튼 남쪽과 브루클린을 이어준다.
이 다리에서 바라보는 맨해튼의 풍경도 멋진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관광객이 많고 자전거를 타고 또는 달리기로 건너는 이들도 많아 생각만큼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았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북쪽으로 달려서 도착한 곳은 유니언 스퀘어 파크. 그러나 정작 모습은 보는 바와 같이 몇몇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있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다. 특별히 흑인이 또는 걸인이 많았기 때문일까? 들어가서 벤치에 앉으려다 그만뒀다.
내가 원하던 모습은 공원 아래의 광장에 있었다. 생각보다 넓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젊은이들이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고, 또 많은 이들이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내와 큰 애도 그들 속에 들어가서 함께 어울렸다. 다만 활동이 끝나고 나면 우리를 위해 수고한 그들에게 1-2불 정도의 팁을 주는 것이 예의이다.
이번에는 지하철을 타고 조금 남쪽으로 내려왔다. 이곳의 이름은 Soho. South of Houston의 앞글자를 딴 말이니 [휴스턴 거리의 남쪽]이다. 고급 갤러리와 명품 가게가 모여 있는 곳이다.
소호는 원래 공장지대였고, 이후에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곳이어서 아직도 그런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북쪽으로 이동. 저녁을 먹기 위해 코리아타운으로 갔다. 34th St. Herald Square역에서 내려서 지상으로 올라오면 우리를 맞는 것은 <우리은행 뉴욕지점>이다. 정말 얼마나 반갑던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저녁식사는 [큰집설렁탕]에서 했다. 보는 바와 같이 우리식으로 밑반찬부터 나와서 식욕을 돋우고 이어 설렁탕 등장. 그런데... 다 좋은데 국물이 뜨뜻하다... 다른 나라 음식을 먹을 때는 원래의 맛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거나 먹어도 상관이 없는데, 한국 음식은 맛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불편하다. 지금도 국물이 뜨겁지 않으니까 기분이 안 좋더라구.
가격은 10.95불. 지붕이 있는 음식점에서 파는 음식치고는 상당히 저렴하다. 맥도널드 햄버거가 7불, 노점에서 파는 볶음밥이 8-9불인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도 식당에는 사람이 넘쳐나서 기분이 참 좋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말고도 현지인 손님들도 많았기에 더욱 기분이 좋았다. 맛있게 설렁탕 한 그릇을 비우고 찾아간 곳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1층 엘리베이터 앞의 모습은 이렇다.
1931년에 완공하여 1973년에 세계무역센터가 완성되기까지 42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군림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유명했던 영화 [킹콩]의 무대가 바로 이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9.11 때문에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서 다시 뉴욕에서는 가장 높은 빌딩이 되었다. 하지만 막상 가서 보면 생각만큼 높아 보이지 않는다. 내가 그동안 좋은 데를 너무 많이 가봐서 그런 모양이다. (토론토의 CN타워, 시카고의 시어즈타워와 존 핸콕 빌딩, 방콕의 바이욕 스카이... 다 올라가 봤다)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는 타임즈 스퀘어. 과거에 뉴욕타임즈의 본사가 있었던 곳이며, 현재는 야경을 보기 위해 밤마다 사람들로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다. 아직 야경을 보기에는 약간 이른 시간이었으나 하루종일 힘들고 지친 가족들은 빨리 보고 숙소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광장의 중앙에 설치된 빨간 계단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고 주변의 경관을 보고 있으면 정말 멋있었다. 더구나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 <삼성>의 광고도 연신 번쩍이고 있어서 더욱 기분이 좋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란 참으로 다양했다.
사족:
1) 뉴욕을 여행하며 나는 미국에 대해 가졌던 생각의 대부분을 바꿨다. 그들은 대부분 친절하지 않았다. 아주 가끔 친절한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2) 그들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았다. 보행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에게 경적을 울렸고, 보행자도 신호에 상관없이 무단으로 횡단했다. 운전자와 보행자가 똑같은 놈들이었다.
3) 뉴욕의 지하철은 너무나 더러워서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것을 타고 다닐 수 있는지 신기했다.
4) 뉴욕 지하철에도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그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5) 뉴욕을 여행하며, 나는 내가 지난 6개월간 살아온 텍사스 주 샌마커스가 얼마나 좋은 동네인지를 깨달았다. 그들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친절하다. 그들은 건물에 들어갈 때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도 문을 잡아주고, 사람이 오면 차는 그들의 신호에서도 대부분 멈춰선다. 남들이 이상한 주장을 펴면 그래도 들어주고, 논쟁도 하며, 심지어 조롱을 할지라도 무관심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