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33. 조지타운
2014년 12월 10일(수). 이미 방학을 맞은 나와 달리 아이들은 아직도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따라서 가족이 함께 무엇을 하기는 곤란한 터라 나는 혼자서 그동안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을 시도했다. 다름이 아니라 시내버스를 타고 근교 여행하기.
아침 일찍 샌마커스 터미널에 가서 시내버스 One-Day Pass를 구입했다. 6불. 이거 하나만 있으면 오늘 하루 종일 시내버스를 제한 없이 탈 수 있다.
고속도로를 통해 어스틴까지 가는 시외버스는 그냥 시내버스랑 달리 이렇게 생겼다.
요즘 세상에도 이런 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있을까? 저것이 통화가 되기는 하는 걸까? 씌어 있는 대로라면 멕시코까지도 연결되어야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아련하게 옛 생각이 난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실업자로 지낼 때 삐삐와 핸드폰이 처음 나왔다. 그 때만 해도 지금처럼 “1인 1전화”의 시대가 오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버스는 어스틴 CARTS에 도착했다. CARTS는 Capital Area Rural Transportation System의 약자로 대도시 주변의 교통망을 의미한다. 과연 여기 사는 사람들은 CARTS의 뜻을 알까? 안으로 들어가니 크리스마스트리가 불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썰렁하다. 게시판을 보니 기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문이 있는데, 임금이 시간당 10불이다. 그러면 한 주에 40시간, 한 달에 160시간을 꼬박 일한다고 해도 160만원을 번다는 얘기인데, 그 돈으로는 4인 가족이 텍사스에서 살아갈 수가 없다. 따라서 맞벌이를 하던지 투잡을 뛰어야 한다.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명목상의 미국은 1인당 GNP가 5만 달러를 넘는 부자나라이지만, 실제로 국민들의 많은 수는 생각만큼 부자로 살지 못한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다수가 아니다.
어스틴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얼마를 더 달렸다. 도중에 요즘 한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IKEA 매장을 보았고, 텍사스주립대의 또 다른 캠퍼스가 있는 Round Rock을 지나 마침내 최종 목적지인 Georgetown에 도착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한 블록 안으로 들어가니 조지타운의 중심가인 Downtown Square이고 그 중심에 법원이 있었다.
Williamson County Courthouse. 건축가 C.H.Page가 설계하여 1911년에 완공한 네오클래식 양식의 3층 건물이다. 구리로 된 돔이 있는 지붕을 이오니아식의 기둥들이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 제법 웅장하다.
법원을 중심으로 하여 단층 또는 2층의 건물들이 사각형 모양으로 늘어서 있다. 그 중 <여행안내소>에 들어갔다. 일단 지도라도 있어야 구경을 다닐 것이 아닌가? 안에는 나이가 많은 여자분이 계셨다. 마침 손님도 없는 상황에서 내가 정적을 깬 모양이라 약간은 계면쩍었다. 자료는 여러 개를 구했지만 A Walking Tour of Historic Downtown이 쓸모가 있어 보였다.
법원에서 세 블록 떨어진 곳에는 1888년에 건립된 Old Williamson County Jail이 있다. 감옥은 석회암으로 지어졌다. 보통 prison은 <교도소>를 jail은 <구치소>를 의미하는데, 우리 동네에 있는 감옥에는 law enforcement라고 씌어 있기도 하다. 이 구치소는 현재 의료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감옥 구경을 하고 돌아가는 길에 본 예쁜 집.
이 집 주인장은 텍사스 A&M 대학교를 졸업한 모양이다. 미국에서도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가문의 영광인데, 이런 경우 아예 드러내놓고 자랑을 한다.
점심은 타운 스퀘어에 있는 버거집에서 먹었다. 건물은 1896년에 지어진 M.B. Lockett Building으로 빅토리아 양식의 멋이 느껴진다. (가게 이름은 Burger University이고, 2012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내부의 모습은 이렇다. 내가 조용히 자리에 앉아있으니까 종업원이 와서 여기서는 직접 일어나서 벽에 적힌 메뉴를 보며 주문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주문을 도와줬다. 버거집에 왔으니 당연히 버거를 주문했는데, 맛이 없다.
예쁘게 꾸며진 상점. 부끄러워서 들어가 보지는 않았는데, 밖에서 들여다봐도 마음이 산뜻해진다.
법원을 중심으로 사각형으로 늘어선 건물들은 저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건물 위쪽의 숫자들은 <번지>가 아니라 <연도>이다.
1900년에 지어진 Masonic Lodge.
1902년에 지어진 Evans Building.
1885년에 지어진 Crry Pharmacy.
1884년에 지어진 Lesesne-Stone Building.
Downtown Square에 있는 건물 중 25개는 1800년대에 지어진 것들이다. 그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870년에 지어진 Shafter Saddlery Building. 하지만 오래되었다는 점 이외에 다른 특징은 찾아보기 힘든 소박한 모습이다.
문화유적에 속하지는 않지만 1926년에 지어진 First Baptist Church (제일침례교회)도 겉모습을 보면 다니고 싶은 마음이 우러난다.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는데 있어서 미국을 따라갈 나라가 또 있을까? 오래된 건축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의 정성은 정말 눈물겹다.
버스에서 내려 조지타운을 돌아본 시간은 불과 2시간 남짓. 짧은 여행을 끝내고 다시 돌아오는 버스에 올랐다. 자리에 앉아서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데, 시각장애인 손님이 왔다. 기사는 맨 앞자리에 앉은 사람을 뒷자리로 보내고, 장애인을 그 자리에 앉혔다. 지적당한 사람도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양보해주고.
약자에 대한 이러한 배려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나라... 여기가 바로 미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