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30. 엘패소
- 엘패소 -
2014년 12월 25일(목). 크리스마스 아침이다. 오늘의 예정된 행선지는 빅벤드 국립공원. 그러나 문제는 여기가 캠핑장에서 너무 멀다는 점이다. 거리는 171마일(275km). 서울에서 광주까지의 거리(291km)와 비슷하다. 이 거리를 당일로 다녀온다면 실제로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은 정말로 얼마 안된다. 또 다른 문제는 어제 가스를 틀어놓고 나가는 바람에 다 새서 지금 취사를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거리도 가깝고 가스도 구입할 수 있는 엘패소로 계획을 변경했다.
캠핑장에서 엘패소 시내까지의 거리는 121마일. 여기도 차로 두 시간은 달려야 하므로 짧은 거리가 아니다. 끝없이 길게 뻗은 도로에 차량 한 두 대만 오고 갈 뿐이고, 도로변 황무지에는 사막 식물만이 듬성듬성 피어 있다.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산. 산은 산인데 흙을 쌓아놓은 듯한 모습이다.
그렇게 두 시간정도 달려 도착한 엘패소. 특별히 예정한 곳이 있지는 않은 터라 다운타운의 여행자정보센터로 갔다. 그러나 오늘은 크리스마스. 문을 열었을 리가 없다. 휴일 아침의 엘패소는 인적마저 드물어서 차분하게 가라앉은 모습이었다.
그나마 사람이 오고 가는 곳은 엘패소 버스터미널. 샌 마커스에서 그레이하운드를 타면 이곳에 닿을 수 있다. 왕복요금은 약 15만원이고, 편도시간은 최소 12시간에서 최대 22시간이 걸린다. 미국에서는 버스나 기차를 이용한 장거리 여행은 거의 불가능한데, 보는 바와 같이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돈도 굉장히 많이 든다. 운전해서 간다면 소형차 기준으로는 휘발유값 6만원이면 왕복이 가능하다.
Fire Fighters Memorial Park. 우연히 본 공원이다. 순직한 소방관의 이름과 날짜를 적어놓았다.
큰 기대는 없었지만 그래도 시내로 들어왔다. 엘패소는 텍사스에서 휴스턴-댈러스-샌앤토니오-어스틴에 이어 다섯 번째로 큰 도시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예전에 보았던 미국-멕시코의 국경도시 러레이도와 비슷했다. 남루하고 초라한 이미지... 어떻게 보면 여기가 미국이 맞나 싶을 정도이다.
여기가 국경이다.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면 다리 아래로는 리오그란데 강이 흐르고 멕시코의 국경도시 사우다드 후아레스가 나타난다. 사람은 맨 오른쪽의 보행자 통로로 다닐 수 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볼 수 있는 미국-멕시코 국경의 철제 장벽은 볼 수 없다. 이곳에는 리오그란데 강이라는 자연국경이 있기 때문인가 보다.
그래도 국경이라고 면세점이 있다.
우연히 본 성당. 현판을 보니 Venite Adoremus라고 씌어 있다. 성탄절에 뜻하지 않게 찾은 가톨릭교회. 성탄 미사가 끝난지 한참 지났을 시간이지만 몇몇 신도들은 아직도 남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엘패소는 텍사스 인근에서 채굴된 원유가 모이는 곳이다. 실제 이곳에서는 고속도로 부근에서도 원유를 캐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흰색으로 칠해진 원유저장고를 보면 이곳에서 채굴되는 원유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뉴스에서도 가끔 언급되는 세계 3대 원유 는 영국 북해산 브렌트유, 중동산 두바이유(우리나라에서 주로 수입), 그리고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이다. 영어로는 WTI(Western Texas Intermediate)라고 부르고, 셋 중 품질이 가장 좋으나, 외국으로는 수출되지 않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며, 미국 내에서만 유통된다.
갔던 길을 되돌아 캠핑장으로 돌아오는데, 갈 때와 달리 올 때는 검문소가 있었다. 이것은 러레이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중남미에서 불법으로 입국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검문, 검색을 강화한 모양이다.
크리스마스라고 월마트가 문을 닫는 바람에 가스를 구입하지는 못했지만, 멕시칸마트에서 숯을 간신히 사서 음식을 조리했다.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고 이렇게 고기를 구워서 식사를 하니 집밖에 나와 있어도 불편함이 없고 행복하다. 사람에게 있어서 먹는 것이란 참으로 중요하다. 문틈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오는 캐빈일지라도 이렇게 누워 있으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