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29. 칼스배드동굴 국립공원
- 칼스배드 동굴 가는 길 -
2014년 12월 24일(수). 아침에 일어나 보니 들판에 서리가 내렸고, 차 유리에는 성에가 가득했다. San Marcos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아침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했다. 방안에 부엌이 없으니 밖에서 해야 했는데, 추위가 장난이 아니었다. 나중에 여행에서 돌아와 확인해 보니 이 날의 아침기온은 화씨 17도. 그러니까 섭씨 영하 8도였다. 이런 날씨에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려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지하수라서 아주 차갑지 않다는 점. 안 그랬으면 손가락이 끊어지는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오늘의 행선지는 칼스배드 동굴 국립공원. 캠핑장으로부터의 거리는 꼭 100마일.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153km)보다 멀다. 단지 동굴을 보겠다고 하루에 이런 거리를 왕복한다는 것은 한국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겠으나, 미국에서는 차로 2시간 거리라고 하면 가까운 거리에 속한다.
텍사스 54번 고속도로(TX54)를 따라 북쪽으로 달렸다. 말은 고속도로라고 해도 한국의 국도처럼 생긴 왕복 2차선의 도로이다.
여기서 인상적인 부분은 주변의 풍광. 도로 옆으로는 철조망 안으로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고, 그 안에 사막식물이 자라고 있다. 철조망은 야생동물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쳐 놓은 것. 초원을 병풍처럼 둘러싼 산맥의 모습은 정말 희한하다.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것 같은데도 설명이 불가하다. 이곳의 지명은 시에라 디아블로 야생동물 보호구역(Sierra Diablo Wildlife Management Area).
뉴멕시코로 넘어오기 전 텍사스의 끝자락에서도 멋진 풍광을 볼 수 있었다.
- 칼스배드 동굴 국립공원 -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표지석 뒤로 보이는 건물은 방문자 센터.
방문자 센터에서 앞을 바라보면 멀리 지평선과 함께 넓은 평야가 나타난다.
방문자 센터로 들어오면 먼저 표를 구입해야 한다. 입장료는 어른 10불, 15세 이하는 무료이다.
나는 국립공원 연간회원권을 구입했다. 가격은 80불. 이것으로는 앞으로 1년 동안 미국의 모든 국립공원을 4명까지 추가비용 없이 드나들 수 있다.
방문자 센터에서 동굴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래 사진의 앞에 보이는 문으로 나가서 조금 걸으면 나타나는 동굴입구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기서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다.
동굴 입구는 이렇게 생겼다. 지그재그로 닦여진 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면 된다. 지하 800피트(240m). 내려가는 길은 2km이니 30분 정도 걸린다.
엘리베이터 타는 곳에는 주의사항이 적혀 있다. 물만 먹을 수 있을 뿐 껌도 씹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각종 음식물로 인한 오염도 문제겠지만, 음식물은 스컹크를 비롯한 야생동물들을 동굴 안으로 불러들이는 원인이 된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건 걸어서 내려가던 두 길은 휴게소에서 만난다. 지하 깊은 곳이지만 각종 기념품과 함께 음식물도 판매한다.
약 2억 8천만년 전부터 2억 5천만년 전 사이에 형성된 300여 개의 석회암동굴 가운데 하나인 칼스배드 동굴은 1898년에 짐 화이트라는 이름의 16살짜리 소년이 처음 발견하였다. 처음에는 동굴의 존재에 대해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으나, 그 후 사진사 레이 데이비스가 짐과 함께 동굴에 들어가서 찍은 사진을 공개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빅룸이라 불리는 동굴 내 코스는 거리가 1.3마일(2.1km)에 이르며,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굴이다.
동굴의 모습은 한국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했다.
동굴 속의 여러 모습들에는 이름이 붙어 있다. 그 중 이것은 Chinese Theater.
여름에 왔다면 동틀 무렵과 해질 무렵에 동굴을 들고 나는 박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Bat Flight Program. 동굴 입구에 있는 야외극장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는 태양의 위치가 바뀌니까 오전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솔직히 내 생각에는 동굴보다 디아블로 야생동물 보호구역의 병풍처럼 늘어선 산맥의 모습이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서산으로 해가 저무는 가운데 캠핑장에서 바라보이는 뒷산의 모습이 절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