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1.세부로 입국해서 시내에 둥지 틀기까지 신선한 여정
장기여행으로 태국에서만 지내기가 좀 지루해질 무렵 이 나라를 좀 떠야겠다고 생각하고서, 일찌감치 치앙마이–쿠알라룸푸르 편도행 에어아시아는 예약을 한 상태였습니다.
원래 우리의 계획은 말레이시아 동부연안의 섬들... 그러니까 티오만, 르당, 쁘렌띠안을 가려고 작정을 하고 있었어요. 뭐 큰 이유란 건 없었고 8~9월 시기에 말레이시아 동부지역은 강수량이 낮아서 날씨가 좋은 편에 속하거든요. 섬에서는 날씨가 중요하니까, 단지 그 이유뿐...
그러던 중에 치앙마이에서 만난 한 여행자가 우리의 귓구멍에다가 뽐뿌를 살살 불어넣는 바람에, 이놈의 팔랑귀가 대책없이 펄렁펄렁 작동을 하여서 계획에 전혀 없던 필리핀으로 방향을 급선회하게 됩니다.
우리 같은 장기여행자들에게 에어아시아는 마치 ‘오즈의 마법사 속 도로시의 빨간구두’와 같다고 볼 수 있겠어요. ^^ 동남아 구석구석까지 웬만한 여행지를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습니다. 에어아시아가 생기면서 동남아 여행이 획기적으로 편해진거죠.
암튼 어차피 예약을 해놓은 쿠알라룸푸르를 기준으로해서 세부 왕복이 1인당 10만원 정도이니 이참에 필리핀 구경도 해보는 것도 나쁠건 없겠다 싶었지 뭐에요.
그리고 페소는 환율도 매력적. 꾸준히 떨어져서 지금은 1페소 22원 선이에요. 태국 바트는 오히려 쭉 올랐는데 말이에요...
우리나라에서 나올 때 필리핀에 관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나왔으니 론리플래닛도 e-북으로 사고(상세하게 도움되는 내용은 없었지만 어쨌든 뼈대는 책으로 잡아놔야 편함) 여행기도 급하게 읽고 이래저래 부산을 떨다보니 결국 출발날은 점점 다가오고야 말았습니다.
우리가 갈 세부-보홀의 여행기는 대개가 막탄섬의 리조트 중심의 여행이여서 우리의 여행궤도와는 약간(사실은 많이...) 그 결이 다르다고 느꼈고, 한인여행사 상품을 이용하는 건 십분 이해가 되는데 특이하게도 맛사지나 현지 해산물요리를 먹는 식당조차도 한국인업소 이용비중이 상당히 높아서 이게 좀 의외였어요. 뭐 중요한건 아니지만...
같은 동남아권이라서 비행시간이 좀 더 짧지 않을까 했는데... KL-CEBU 3시간 50분이나 걸리는군요. 도착 직전 하늘에서 내려다 본 보홀섬과 팡라오섬, 그리고 팡라오섬 바로 앞에 동그랗게 점을 찍은 듯 생긴 무척 귀여운 발리카삭 섬을 보니 마음이 두근두근... 이 섬들 앞바다는 육안으로만 봐도 뭔가 물이 맑아보였어요
원래는 기내에서 이미그레이션카드를 나눠주는데 그걸 안줘서 공항에 내려 작성 한 게 다르다면 다른점일까나... 입국하기전에 재빨리 훌훌 읽어 내려간 여행기에서, 필리핀은 입국심사 때 왕복항공권을 확인하거나 또는 면세물품 체크를 불쾌한 기분이 들 정도로 과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 내용을 본적이 있었어요. 하여튼 이래저래 입국절차가 좀 그렇다는 내용을 봐놔서 생전 안하던 나가는 항공권 프린트도 하고 좀 신경을 썼는데... 내 평생 이렇게 입국 수속 빨리 해주는 나라는 처음 봤습니다. 이민국 직원들이 전부 여성들이었는데 일처리속도가 거의 lte급이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거에요. 아... 물론 우리 모양새가 배낭여행자니까 그랬을 수도 있는데... 우리 이외에 같은 비행기를 탄 다른 여행자들도 거의 마찬가지로 무사통과였어요. 여행기속에서의 그 깐깐함은? 혹시 한국에서 오는 여행자들에게만... -_-;; 으흠... 세관신고서 조차도 안쓰고 그냥 패스입니다.
태국에 비하면 여행자 한명 통과시키는데 걸리는 시간이 거의 절반이었는데... 헐... 잘됐지 뭡니까. 우리가 낮에 도착해서 그런건가?
출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오니 바로 앞에 글로브 통신사에서 무료 심카드를 나눠준다는 팻말이 붙어있었어요. 그것만 재빨리 받아들고 나가려했더니만 책상 바로 옆에 서있는 프로모션 직원들이 데이터 패키지 요금을 신청하라고 좀 호객을 합니다. 기간이 짧은 여행자는 이걸 그 자리에서 하면 될테고요... 우리는 나중에 할 거라고 했더니... 아~ 그래? 하는 표정으로 그냥 보내주는군요.
작은 공항청사를 빠져나와 대기하고 있는 차량과 기사들로 어수선한 공간을 지나쳐 오른쪽으로 백미터 정도 걸으니 하얀택시가 줄줄이 서있고 인상 좋은 아저씨가 우리 기사가 되었어요.
줄 정리 하는 직원이 무슨 작은 쪽지 같은 걸 주는데 택시번호가 적인 작은 메모장이구만요.
우리 숙소는 세부 중심부 오스메냐 써클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져 위치한 ABC호텔인데요 처음에는 기사아저씨가 호텔위치를 정확히 감지를 못해서 좀 긴장을 탔지 뭐에요. 호텔바우처를 보라고 운전 중인 아저씨한테 내밀었더니, 글이 너무 깨알같이 작아서 안 보인다고... 그 맘 압니다. 저도 노안이 와가지고 말이에요... -_-;;
“시부 벨리즈 호스피탈 맞은편이요~ (현지에서는 세부를 시부라고 하네요)” 하니 금방 위치파악을 하는군요.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래요. -_-;; 공항을 빠져나와서 막탄과 세부를 잇는 다리를 건너는데, 바로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변 가장자리에 웬 사내가 웃통을 벗고 대자로 누워 있는 거에요. 우리랑 기사가 둘 다 살짝 놀래서 무슨일이래... 하고 차창 밖을 잠시 응시하고, 기사도 차를 잠깐 세우고 그 남자를 응시하더니만 금세 우리차는 속도를 내서 다시 달리기 시작합니다.
“술에 취한건가봐요?” 라고 요왕이 말하자...
“아마 취한 걸 수도 있고, 죽은 거 같기도 하고...”라며 택시기사가 말을 흐립니다.
흐미~ 이게 무슨 일이야. 아닐거야, 분명히 그 사내는 취한걸거야.
취한 게 아니라면 내가 방금 뭘 본거란 말인가...
하여튼 호텔로 오는 동안 창밖으로 비춰진 세부시티의 모습은 뭔가 좀 낮선 느낌인데, 티비에서 본 중남미 어느 작은 마을 분위기 같은 곳도 있었고, 인도 뒷골목 같은 모양새의 후미진 골목도 보이고 그렇군요.
사람들은 뭐 동남아시아 사람들이였으니까 외모상 크게 낮선 느낌을 받지는 않았지만요... ^^
공항에서 우리숙소까지 미터는 겨우 220페소 밖에 안나왔는데 300페소을 주니 기사 아저씨가 멋쩍게 웃으며,
“오~ 팁팁 ! 팁 포 미? 오케이?” 그러는데 220에 300은 너무 하잖아요.
그냥 배시시 웃으면서... “에에이~ 오케오케 50페소만 주셍” 그랬더니 땡큐땡큐 하면서 50페소를 거슬러주고 우리도 땡큐하고 나오게됩니다. 생각보다는 미터요금이 적게 나왔는데 아마도 일요일이라서 길이 거의 막히지 않아 그런게 아닌가 싶어요.
예약사이트를 통해 1,650페소나 주고 예약해서 왔더니, 호텔 프론트에는 프로모션 요금이라며 슈페리어룸이 1,500페소라고 붙어 있네요 헐퀴~
우리 숙소는 특이하게도 3층이 프론트인데 건물 1층에는 미니스탑 편의점, 세탁소, 식당 등 편의시설도 잘 되어있네요. 첫날 저녁식사는 편의점에서 돼지고기 튀김 덮밥이랑 신라면 큰컵으로 사먹고, 공항에서 얻어온 심카드에 편의점에서 산 카드로 충전도 각각 100페소씩 한후에 ‘7일 2기가 90페소짜리 데이터상품’도 신청하고 이런식으로 첫날을 보냅니다.
치약이랑 생수 값이 태국에 비해 상당히 비싼편이었지만 일단은 당장에 필요하니 집어들었는데요, 사고나서 생각해보니까 태국의 특이한 점이 편의점 물가랑 마트물가가 거의 비슷하잖아요. 원래가 어느나라든 편의점은 그 편리성 때문에 가격이 높은 편인데 말이에요.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다른나라는 편의점 가격과 마트가격이 차이가 좀 나는 편이니까... 좀 더 큰 몰의 마켓에 가면 저렴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르니 내일은 좀 더 큰 슈퍼마켓 구경가봐야지!!
말레이시아에서는 맥주도 맘 놓고 못 먹었는데 이곳 미니마트에서는 산미구엘 작은병이 단돈 33페소(23밧)정도... 당장 한 병 업어와서 돼지고기튀김이랑 신라면이랑 훌훌 마시고, 티비의 KBS월드 채널에서는 1박2일이 나오고... 완전 한국분위기 돋네요.
이곳 미니스탑은 가게 내부에 테이블을 마련해놨는데, 앉을 수 있는 의자 수가 많더라구요. 거의 식당 반 편의점 반 형태. 밤 11시가 다 된 시간에 내려가봤더니 그 시간에도 사람들이 편의점에서 바글바글... 세부 소문처럼 위험하지 않은거야?
원래 우리의 첫날 계획은 짐을 재빨리 방에다 부려놓고 근처 쇼핑몰인 로빈슨을 구경하거나 아니면 택시타고 쇼핑몰인 아얄라 몰이라도 가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차피 열흘도 넘는 여행이니까 첫날은 숙소에서 몸 사리고 앉아서 공항에서 주워온 안내책자 보며 숨을 좀 가다듬고, 본격적인 여행은 내일부터 하자고 맘먹고 그냥 주저앉게됩니다.
공항에서 주워온 지도와 안내책자를 뒤적이고 있는데 오~~ 한글판이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공항에서 택시 타고 들어오는 길에 한글 간판도 많이 보였어요. 뭐지 매우 한국친화적인 이 느낌은... 그래서 검색을 좀 해봤더니 필리핀 여행출입국 랭킹 넘버원이 우리나라네요. 그 바로 뒤가 미국이고요. 세상에... 태국에서는 중국이 넘사벽 원탑이어서 숫자로는 완전 밀렸는데... 필리핀에서는 한국시장이 제일 큰 마켓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냥 자료검색한거라서 좀 깊이 있는 스토리는 아직 파악이 안 되지만 말이에요.
2016년 기준으로 태국 방문한 한국인 숫자나, 필리핀 방문한 한국인 숫자나 거의 엇비슷한데 여기선 일등 됐구나~~
그나저나 우리숙소는 오픈한지 얼마 안 된 새 숙소 같은데 에어컨은 요즘에도 이런게 나오나 싶은... 벽을 뚫고 붙어 있는 실외기 없는 일체형이에요. 이런 에어컨은 내가 어린이때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던건데 아직도 이 에어컨이 생산이 되고 있는 거 였단 말인가? 워~ 이 모든 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와서 뭔가 새학기를 시작한 신입생이 된 거 같아요. 이 얼마만의 느낌인건지...
쿠알라룸푸르에서 머물렀던 좁디좁은 토끼굴 같던 숙소에서 맨날 침대모서리에 부딪히고 몸을 모로 세워서 다니다가 비교적 널찍한 트윈룸으로 오니 훨씬 쾌적해진 느낌도 좋고요.
공항입국절차도 매우 부드럽고 빠른 편이고 택시기사나 그리고 점원들도 현재까지는 괜찮은 느낌인데 앞으로의 여정은 어떻게 될까... 설마 이날이 필리핀 여행 중 제일 좋은 날이었다...이런 건 아니겠지요. 그럼 큰일인건데... -_-;;
에어아시아를 비롯한 저가항공 전용 공항인 말레이시아의 KLIA2
거기서 사먹은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