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53(끝). 하와이
- 하나우마 베이 -
2015년 12월 2일(수). 사실상 하와이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 오전의 행선지는 하나우마 베이(Hanauma Bay). 스노클링으로 유명한 이곳은 하와이에 왔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이다. 그러나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니 당연히 날씨도 춥다. 도저히 스노클링을 할 상황이 아닌데, 그래도 어쩌겠나? 시간이 오늘밖에 없는 것을...
시내버스 22번은 40분마다 한 대씩 다니는지라 정류장에서 한참을 떨면서 기다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근 호텔에서 나온 관광객들이 합류한다. 물론 이들의 대부분은 일본인이다.
조금 있으니 봉고차가 서고, 삐끼가 다가온다. 그리고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가 다니고, 가는데 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내 차는 1인당 5달러만 내면 30분 안에 갈 수 있다.”며 유혹한다. 나는 당연히 고개를 저었다. 그랬더니 그가 내게 말했다. (손가락으로 다른 관광객을 가리키며) “야. 쟤네들도 간다는데 너도 갈래?”하지만 나는 다시 사양했다. 그랬더니 혼잣말로 욕을 하면서 자신의 차로 돌아가더니 쌩~하고 떠나갔다. 아무도 그의 차에 타지 않았다. 허탕이다. 그가 떠나고 나서 조금 있으니까 22번 버스가 왔다. (그는 아마 지금 다음 정거장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여간 나는 8불에 갈 수 있는 곳을 20불을 내고 가지는 않는다.)
하나우마 베이의 전경.
멀리서 보면 한 폭의 그림이다. 정말로 너무너무 아름답다.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이런 것을 타면 편하게 내려갈 수도 있는데, 내려가는데만 1인당 1불이다.
내려와서 보면 이렇다.
입장료는 7.5불. 12세 이하의 어린이는 무료이다.
표를 구입하고 나면, 자연보호에 관한 간단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스노클링 장비 대여. 배보다 배꼽이 커서 이게 입장료보다 훨씬 비싸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1인당 12불.
그리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바닥이 모래로 된 곳에서는 몰랐는데, 조금 더 걸어 나가면 바닥이 돌로 된 곳이 나오고, 그곳에서의 물속 풍경은 장관이었다. TV에서만 보던 형형색색의 열대어들이 떼를 짓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에 돌아다녔다.
비는 그쳤지만 바람이 몹시 불고 추워서 물속에 들어가 있는 편이 따뜻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 모든 난관을 상쇄할 만큼 풍경은 아름다웠다. 스노클링을 마치면 이렇게 샤워를 할 수 있다.
- 점심식사 -
호놀롤루 시내에서 Yelp로 음식점을 검색하면 review 횟수에서 1등은 일본식 우동집이고, 2등은 미국전통음식점인데, 바로 이곳이다. Duke's. 실내도 널찍하고, 아웃리거 와이키키 온 더 비치(Outrigger Waikiki on the beach)라는 긴 이름의 호텔에 달린 식당이라 분위기도 기본 이상은 한다.
조금 일찍 왔으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뷔페를 이용할 수 있었는데, 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은 까닭에 그냥 단품요리를 주문했다.
Korean Tacos. 이름만 보고 궁금해서 시켰는데, 막상 나온 것은 korean과 아무 관계가 없어 보였다.
Mango Ribs. 맛은 정말 좋았는데, 양이 너무 적었다. 미국이 원래 음식의 양으로 이렇게 쩨쩨하지 않은데, 가끔 이런 곳이 있어서 탈이다.
Cilantro Miso Glaze Fish.
Cheddar Burger.
이렇게 먹고 팁까지 내면 90불 나온다. 10만원이 넘는 금액 앞에 작아지는 나. 하지만 여기는 호텔에 달린 음식점이잖아? 하며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 산책 -
점심을 먹고 해변을 걸었다. 마침 눈에 들어오는 동상은 카하나모쿠 공작(Duke Kahanamoku). 하와이 원주민으로 태어나 1912년부터 1932년까지 올림픽 수영 종목에 4번 출전해서 금3, 은2, 동1을 땄으며, 미국, 유럽, 호주에 서핑을 소개하였다. (Father of International Surfing)
이것은 하와이 왕국의 마지막 왕자 쿠히오(Jonah Kuhio Kalaniana Ole)의 동상.
해변을 오른쪽으로 두고 칼라카우아 애비뉴를 따라 계속 걸으면 호놀룰루 동물원 입구가 나온다. 늦은 오후 시간이라 들어가는 사람이 없어서 조금은 적막해 보인다.
동물원에서 해변쪽으로 펼쳐진 카피올라니 공원. 15년 전 신혼여행 때의 그날처럼, 오늘도 이곳에서는 오후를 한가롭게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동물원 근처에서 본 공중전화. 이게 전화가 될까...
여기까지 보고 나서 버스를 탔다. 이번 행선지는 관광객들은 가지 않는 호놀룰루 다운타운이다. 왠지 이곳 사람들의 일상이 보고 싶었다. 쿠히오 애비뉴를 따라 달리니 점차로 도시의 위용이 나타났다. 어제 보았던 주청사와 이올라니 궁전을 지나 버스에서 내렸다.
바다를 향해 조금 걸으니 8번 부두가 나타난다.
알로하 타워가 있는 곳. 옛날 한 시절에는 드나드는 사람들로 북적였을 거리. 하지만 이제 이곳에는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조차도 없다. 그냥 쇠락한 동네이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동네의 운명이 다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일텐데, 이를 되살려보겠다고 세운 것이 알로하타워 마켓 플레이스이다.
불꺼진 몇몇 상점들 사이로 가로등은 초저녁부터 불을 밝혔지만, 인적은 드물다.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남았는데... 한밤중에도 불야성을 이루는 와이키키 지역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윽고 상가 뒤로 모습을 드러낸 알로하 타워.
사람들이 비행기가 아닌 배로 여행하던 시절에 선착장은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아쉬움이 공존하는 장소였으리라. 지금 보아도 알로하타워는 참으로 멋진데, 그 시절에는 전망까지 트였을테니 얼마나 좋았겠나? 시간이 늦어서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운행하지 않았다.
나는 저 엘리베이터를 보면서도 슬펐다. 이제는 올라가 봐도 주변의 고층건물들 때문에 바다말고 8번 부두 밖의 시야는 가려져 있을, 그래서 아무도 더 이상 올라가고 싶어하지 않을, 그래서 더 이상 필요조차 없어진 모습으로 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는 정박해 있는 배들의 모습도 볼 수 있지만,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 배로는 태평양도 건널 수 있을 것 같다.
- 돌아오는 길 -
2015년 12월 3일(목). 가게에서 사온 음식으로 아침을 먹고 호텔 로비로 나왔다. 지난 2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택시를 타고 차창을 통해 본 Ala Wai 운하. 호놀룰루에 운하가 있었나?
아마도 미국은 몰라도 하와이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더 서운하다. 이번에는 벌써 두 번째라고 감흥이 덜했지만,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이곳이 천국의 형상을 가진 곳이라 생각했었다.
호놀룰루 국제공항 아시아나 항공 카운터. 나같은 사람들이 올 때에 이어 갈 때도 국적기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마일리지 카드의 덕분이다. 정말 내가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들을 업어드려도 시원치 않을 것 같다.
국적기는 모든 것이 편안했다. 이륙한지 얼마 되지 않아 승객들에게 메뉴판이 배부되었다. 또 다시 유나이티드 항공에서 겪은 악몽이 살아나며 울컥한다. 일단 첫 번째 식사는 와인을 곁들인 소고기 안심스테이크이다.
비행기만큼 돈의 가치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 돈은 나를 “옆에 앉은 사람이 먹는 샌드위치에도 군침을 흘리는 사람”에서 “스테이크를 썰며 와인을 곁들이는 격조있는 사람”으로 재탄생시켰다. 식사를 마치고 우아하게 커피를 들며 조용히 영화를 감상했다. 악의 연대기.
비행시간이 10시간을 넘는 만큼 식사는 두 번 제공된다. 두 번째 식사는 해산물을 곁들인 파스타. 이번에는 백포도주를 함께 들었다. (배터리가 다 돼서 핸드폰 카메라로 찍었더니 확실히 사진이 어둡다.)
생각해 보면 나는 원래 우아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다만 상황이 불우했을 뿐이다. 영화 한 편을 더 보고 났더니 벌써 인천국제공항이다. 입국 심사관이 “오랜만에 오시네요.”하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이때다 싶어 여권에 입국 스탬프를 찍어 달라고 했다. 2년 전의 출국 스탬프 옆에.
사족
1) 저는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2) 지난 2년 동안 저는 정말로 시간을 쪼개가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겠네요. 공부는 정말 열심히 한 것 같은데, 머릿속에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3) 저는 원래 글을 쓰는 것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손꼽아 보면 그동안 저는 해외여행을 11번 다녔는데, 그때마다 남겨놓은 여행기가 있습니다. 다만 저의 글들을 어디에 올릴 것인지가 늘 문제였죠. 제게 졸필일지언정 마당을 제공해 주신 김영학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4) 제 글을 이곳에 올리며 제 나름대로는 어느 선생님이건 제 글을 보며 유학의 꿈을 품기를 희망했습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대략 10년 전 어느 날. 수원에 있는 과학교육원에서 있었던 연수 때 지금은 수석교사로 계시는 양선환 선생님으로부터 <교원장기해외유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 때부터 꿈을 가졌었습니다.
5)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 이 사업은 중단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저도 면목이 없습니다. 그동안 더러 이 사업이 1년씩 중단된 경우는 있었으나,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동안 어느 순간엔가 사라져버렸던 과학교사 국외연수(미국), 영재교육 담당교사 국외연수(미국 또는 이스라엘)와 같은 운명이 된 것 같습니다.
6) 그동안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7) 마지막으로 노래 한 곡 띄웁니다. 하와이 왕국의 마지막 왕이었던 릴리우오칼라니 여왕께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먼 길을 떠나는 연인과 헤어지는 슬픔을 그리며 만들었다고 합니다만, 이후 하와이 왕국이 멸망하면서 이 노래는 하와이 원주민들에게는 아픔으로 각인된 곡이죠. 이 노래를 부르는 분은 티아 카레레(Tia Carrere)라는 하와이원주민 출신의 가수입니다. 180회에 걸친 연재를 마치는 제 마음을 이 곡에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