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49. 그랜츠
2015년 8월 17일(월). Zion 국립공원 → 420마일(678km) → Grants-Cibola Sands KOA.
이제 여행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제외하면 끝난 셈이다. 하지만 유타 주 자이온 국립공원에서 텍사스 주 샌마커스까지는 너무 멀어서 도저히 하루에는 갈 수 없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차는 애리조나 주로 접어들었다. 연중 기온이 높고 강수량이 적어서 그런지 각종 지형들이 아주 특징적이다.
가다보면 협곡도 나온다. 콜로라도 강이 상류에서는 이런 모습이다.
앞서 자이언 국립공원에서도 보았던 메사(mesa). 우리말로는 <탁상대지>라고 한다. 풍화와 침식에 의해 윗부분은 편평하고 가장자리는 급경사로 이루어진 지형으로 대표적인 곳은 모뉴멘트 밸리. 하지만 애써 거기까지 찾아갈 필요는 없을것 같다. 왜냐하면 길가에 널린 것이 이런 지형이니까.
예를 들어 여기. 이름조차 없지만 제법 멋있다.
여기도 마찬가지.
그렇게 하루종일 달려서 뉴멕시코 주의 Grants-Cibola Sands KOA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예약을 확인했더니 근무하시는 할머니가 내게 “내가 너를 차량으로 텐트 사이트까지 안내하려고 하는데 괜찮겠느냐?”고 하신다. 너무 친절해서 황송할 따름... 그렇게 걸어서 30초에 갈 수 있는 거리를 차량으로 안내를 받아서 갔다. 그러나... 하필이면 캠핑장 바로 옆에 말사육장이 있어서 모기떼가 얼마나 기승을 부리던지... 이럴 때는 빨리 들어가서 모기약 뿌리고 자는 것이 상책이다. 놀이터의 담장 너머가 말사육장이다.
2015년 8월 18일(화). Grants-Cibola Sands KOA → 391마일(629km) → Lubbock KOA
아침에 일어나서 산책삼아 걷다가 현무암 덩어리들을 보았다. 옛날 언젠가에 이 근처에서 화산폭발이 있었나보다.
이 캠핑장의 좋은 점은 아침식사를 제공한다는 것. 비록 콘티넨털 식이지만 맨날 해먹기만 하다가 남이 해주는 것을 먹으니 이게 웬일인가 싶다.
그렇게 또 한참을 달려서 드디어 텍사스 주로 들어섰다.
오늘의 숙박지는 처음에 여행을 시작하며 집을 떠나 묵었던 러벅 KOA이다. 그러니까 거의 보름 만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월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계산대에서 이런 문구를 보았다.
이 사진은 미국이 술에 관해 얼마나 엄격한 사회인지를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텍사스 주의 경우 술은 21살이 넘어야 합법적으로 마실 수 있다. 따라서 그 나이 이하의 젊은 사람들은 술을 구입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팔 수도 없다. 따라서 마트에서 21살 이하의 종업원이 물건을 팔다가 손님이 구매한 물건 가운데 술이 나오면, 예를 들어 맥주, 그 종업원은 옆으로 물러서고, 대신 그 나이 이상의 다른 직원이 와서 바코드로 술을 계산한다. 그리고 다시 원래의 종업원이 나머지 물품을 계산한다. 어찌 보면 코미디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인생 참 불편하게들 산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냥 계산해 버리면 간단하게 끝이니까. 하지만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콜로라도 주에서 마트에 갔더니 40살 이하의 사람들은 술을 구입할 때 종업원의 요청이 있으면 언제든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고 써서 붙여놓았다. 하하... 내 나이는 되어야 비로소 술도 얼굴도장만 찍고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모양이다.
2015년 8월 19일(수) Lubbock KOA → 398마일(673km) → San Marcos
처음 여행을 떠날 때 지났던 길을 따라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같은 여정이라도 경로는 다를 수 있으니까... 처음 여행을 떠날 때 가졌던 설렘이 사라지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느낌은... 뭐랄까... 아마도 그 느낌은 서운함이었을 것이다. 언제 이 길을 또 다시 달려볼 수 있을까...
사족
1) 이번 여행을 통해 미국 여행은 자동차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일단 비용이 가장 저렴하다. 소형차(현대 악센트)의 경우 하루당 유류비는 하루종일 운전을 해도 30불을 넘기가 어렵다. 더욱 중요한 점은 여행의 백미가 관광지를 구경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고 가는 길에서 보는 이름 없는 풍경들에서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그런 곳은 너무나 많았는데, 왜 이렇게 멋진 곳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
2) 미국 사람들의 캠핑문화를 직접 접할 수 있었다. 일단 텐트가 매우 소박하다. 나의 텐트가 월마트에서 150불 주고 산 것인데,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 텐트를 사용한다. 록키산이나 옐로스톤에서는 춥다는 이유로 바닥에 깔아야 하는 타프를 지붕에 덮기도 하고, 그것으로 아예 텐트를 싸매는 사람도 많았다. 그렇게 하면 영락없는 노숙자로 보이는데도 다들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3) 설거지를 하러 가면 주변이 얼마나 깨끗한지 ‘여기 오늘 사용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나중에 오는 사람을 위한 배려심에 여러 차례 감동을 받았다. 아울러 식사시간에도 떠들고, 부어라, 마셔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들 설거지 꺼리가 많지가 않다. 내가 제일 많았다. 나의 가족들도 사실은 그렇게 미친듯이 먹어대는 사람들이 아니었는데...
4) 미국의 캠핑장에는 기본적으로 그릴, 피크닉 테이블, 그리고 의자가 구비되어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텐트만 들고 다닌다. 그리고 아주 특별히 마니아가 아니라면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겨울에는 캠핑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전기난로 같은 것을 들고 다니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그런 것 때문에 불이 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5) 미국의 캠핑장에서는 밤 10시부터 아침 6시 사이를 Quiet Time으로 지정하여 운영한다. 이 시간이 되면 정말로 조용하다. 이 시간에 화장실에서 대화하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거기서도 그들은 조용조용 이야기한다.
6) 미국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양치질 하는 것을 보고도 놀랐다. 이들은 치약을 칫솔에 묻혀 거품을 내서 닦는 것까지는 우리와 같지만, 물로 입을 헹구지 않는다. 헹궈도 한번 정도만 헹구거나, 아니면 그냥 입주위에 묻은 치약만 닦고 끝낸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세면대에 자기의 입을 헹군 물을 수차례에 걸쳐 뱉고 심지어 가래까지 게워내어 뱉는 행동은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무식한 짓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지난 2년간 나는 학교 도서관 화장실에서 점심시간에 양치질하는 사람을 한번도 못봤고, 세수하면서 세면대에 코 푸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그냥 손만 씻고 간다.
7) 내가 그동안 한국의 캠핑장에서 보았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캠핑을 왔는지 장비를 자랑하러 나왔는지 알 수 없는 모습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그릴에 불부터 붙이고 평소에는 고기를 먹어보지 못했던 사람들처럼 연신 구워대며 부어라 마셔라 웃고 떠들고, 밤 12시가 넘어 새벽 1시가 되어도 계속 즐겁기만한 사람들... 게다가 텐트 사이트는 왜 그리 비좁은지 옆 텐트가 정말로 바로 옆에 있다.
8) 미국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하고 가장 다른 점이라면 이들은 남을 배려한다는 사실이다. 그게 몸에 배어 있다. 이것은 내가 지난 2년 동안 관찰한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미국인들의 특징이다. 나는 이 사람들의 이런 면이 미국을 세계 최강으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