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44. 옐로스톤 국립공원
그랜드티턴 국립공원과 이웃하고 있는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1872년 3월 1일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정된 국립공원이다. 넓이가 8,990 제곱킬로미터로 충청남도의 면적 8,598 제곱킬로미터보다 약간 더 크다. 따라서 셔틀버스의 운행은 없고 관광객들은 자신의 차를 이용해야 한다.
이윽고 나타난 현판. 인증샷을 찍기 위해 차를 세우고 줄을 섰다. 이미 현판 앞은 사진을 찍고 있는 단체관광객으로 인해 북새통이다. 내 앞에 서 있던 서양인이 내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왔고, 지금은 텍사스에서 산다고 했다. 그는 내가 저 난리를 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은 팀인줄 알았던 모양이다. 저들은 중국인들이다.
현판을 지나 좀 더 달리면 매표소가 나타난다.
매표소를 지나 캠핑장을 향해 이동하면서 본 주변의 풍경들. 루이스 폭포라고 있었는데, 시시했고, 오히려 이런 풍경들이 더 마음에 든다.
드디어 Grant Village Campground 도착. 8월 성수기라서 그런지 이미 예약된 상태에서 체크인을 하는데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수속을 마치고 배정된 사이트에 와서 텐트를 쳤다. 미국의 모든 캠핑장 사이트에는 피크닉테이블과 그릴이 기본으로 설치되어 있다. 하룻밤에 27불. 3만원이다. 이번에 이용한 국립공원 캠핑장 가운데 가장 비싸다. 아무래도 유명세가 있으니까... 하지만, 전기와 수도가 없다는 같은 조건에서 내가 주로 이용하는 KOA와 비교하면 그래도 반값이다.
저렇게 고기를 구워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면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다.
밤에 화장실에서 본 경고문. 들소가 순해 보이지만 행동을 예측할 수 없고 위험하니까 조심하라고 한다.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들소에게 받힌다고 한다.
2015년 8월 13일(목). 밤새 사시나무 떨듯 하면서 보냈다. 바깥의 밤기온은 7도 정도. 그랜트 빌리지 캠핑장의 해발고도는 2,377m로 로키산의 모레인 캠핑장(2,484m)과 비슷한 수준. 따라서 이곳의 평균기온을 생각하면 7도는 오히려 높은 편이었다. 실제로 우리가 떠나고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서 8월 19일에는 영하 2도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바지를 두 개, 양말도 두 켤레, 위에는 겨울잠바까지 입고 잤는데도 얼마나 추웠는지 모른다. 그나마 로키산에서 나름 적응이 되었을 텐데도 밤새 떨었다.
아침을 먹고 샤워장에 갔다. 이곳에는 화장실에 샤워시설이 없는 대신 첫날 체크인할 때 한 사이트당 1박에 2명씩 샤워할 수 있는 쿠폰을 준다. 우리는 네 명이기 때문에 쿠폰이 부족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러면 돈을 내야 한다. 4불.
샤워를 하려면 샤워장 맞은편의 세탁소에 가서 쿠폰을 체크하거나 돈을 낸다. 따라서 샤워장 앞에는 지키는 사람이 없다. 그냥 양심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구경할 시간이다. 먼저 가장 많은 볼거리가 몰려 있다는 Old Faithful로 갔다. 차를 세워놓고 주변을 보니 호텔이 있었다. Old Faithful Inn. 중국인 단체관광객 때문에 복잡한 것만 빼면 시설은 좋아보였다. 세금을 포함해서 대략 1박에 30만원쯤 지불하면 저런 곳에서 춥지 않게 잘 수 있다. 고급스러운 느낌의 레스토랑이 함께 있는 것은 기본. 내가 연기 맡아가며 그릴에 불을 지필 때 누군가는 이런 곳에서 칼질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미국만큼 자본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곳도 없는 것 같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볼거리. 간헐천을 볼 차례이다. 간헐천(Geyser)은 지하수가 마그마에 의해 가열되어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지표로 분출되는 온천이다. 대중목욕탕에서 볼 수 있는 유황탕이 자연에서 존재하는 격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는 이런 것들이 상당히 많은데, 특히 집중되어 있는 곳이 바로 Old Faithful이다. 따라서 관광객들은 화산재 위를 걷거나 보드워크를 따라 걸으며 Geyser(간헐천), Pool(웅덩이), Spring(샘)이라 구분되어 이름이 붙은 것들을 본다.
Belgian Pool. 보는 바와 같이 색깔이 대단히 아름다운데, 신기한 것은 저런 색깔이 미생물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펄펄 끓는 물임에도 불구하고 생물이 산다는 것이 신기한 일인데, 이들 박테리아는 사람을 비롯한 대부분의 생물들에게 해롭다고 한다.
Ear Spring.
온천 가운데 아름답기로 소문난 Morning Glory Pool이다. 문제는 사람들의 무지와 몰지각한 행동으로 인해 나팔꽃이 특유의 아름다운 빛을 잃어간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저곳에 무언가를 던져서 구멍이 막혔기 때문이다. 그러면 물이 순환되지 않아 썩는다.
한바퀴를 돌고 제자리로 돌아오니 Old Faithful Geyser 앞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간헐천의 분출시간이 다가온 모양이다. 안내원까지 나와서 설명을 하는데, 들어보니 이 지역의 지각 두께는 3마일(5km)에 불과하다고 한다. 대륙지각의 평균 두께가 35km이고, 고원지대의 경우는 60~70km에 이르는 점을 생각하면 옐로스톤 지역의 지각이 얼마나 얇은지를 알 수 있다. 참고로 그랜트 빌리지 캠핑장의 해발고도는 2,377m로 고원지대이다. 또한 이곳은 지각의 경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화산활동이 나타났는데, 이유는 열점(Hot Spot)이기 때문이다. 하와이와 같은 경우이다.
Old Faithful Geyser가 한번 분출하면 물기둥의 높이가 30~55m이고, 방출되는 물의 양이 최고 3만 리터에 이를 만큼 엄청나서 관람객들이 물벼락을 맞는다고 한다. 솟구칠 때는 뜨거운 물이지만 지표로 나오면서 급격히 식기 때문에 떨어지는 물을 맞아도 화상을 입지는 않는다고 한다. 문제는 가끔 기다린 보람도 없이 허망하게 끝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Old Faithful Geyser를 떠나 차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면 미드웨이 간헐천(Midway Geyser Basin) 지역이 나온다. 이곳에는 옐로스톤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진 Grand Prismatic Spring이 있다. 유황냄새가 코를 찌르고, 뜨거운 열기가 얼굴에 와 닿지만 풍경은 매우 아름답다.
미드웨이 간헐천에서 좀 더 북쪽으로 가면 Fountain Paint Pots가 나온다. 입구에 있는 말라죽은 나무에서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흰색 물감을 쏟아놓은 듯한 풍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흰색의 정체는 Silica라고도 불리는 이산화규소( )이며, 지각을 구성하는 풍부한 화합물로 주로 석영의 형태로 존재한다. 참고로 노란색과 빨간색 등은 물속에 들어있는 박테리아 때문에 생기는 색깔이다. 이 공원의 이름인 <노란돌>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다.
Madison 삼거리에서 Norris 방면으로 길을 잡으니 폭포가 나온다. Gibbon Falls. 낙차는 26m. 나이아가라폭포랑은 비교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풍경은 멋있다.
이어 Norris Geyser Basin으로 길을 잡았다. 이제는 간헐천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봐도 별로 감동이 없다. 사실은 넓게 트인 풍광이 상당히 멋진 곳이었는데...
캐니언 빌리지를 지나 타워-루즈벨트 쪽으로 길을 잡으니 고도가 점점 높아진다. Dunraven Pass에 이르니 해발고도는 2,700m. 길옆으로는 낭떠러지기이다. 겨울이 오면 이 도로가 통제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금은 여름이어도 좀 위험해 보였다. 다만 지대가 높으니까 전망은 매우 좋다.
결국 차를 돌렸다. 타워-루즈벨트에서 212번 도로를 따라 달리면 야생동물을 많이 볼 수 있다고는 하나, 이미 시간은 늦었고, 길도 위험했기 때문에 계속 갈 필요가 없었다. 멀리 옐로스톤의 대협곡(Grand Canyon of the Yellowstone)이 눈에 들어왔다.
Canyon Village를 향해 내려오는 길도 경치가 좋았다.
대협곡을 따라 내려오면 두 개의 폭포를 만나게 되는데, 그것들은 각각 Upper Falls와 Lower Falls이다. 이후에 이들은 옐로스톤 강을 이루며 하류로 흘러가서 마침내 옐로스톤 호수에 이른다. Upper Falls(33m) 보다 Lower Falls(93m)가 높이도 더 높고 유량도 많다. 1분에 850만 리터의 물을 흘려보낸다고 한다. (참고로 나이아가라 폭포의 분당 방류량은 1억6천8백만 리터. 저 폭포의 20배)
옐로스톤 강을 따라 아래로 내려오니 멀리 옐로스톤 호수가 보인다.
주변으로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는데, 말로만 듣던 들소들이 여럿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들소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은 길가에 차를 대고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다.
한참 구경을 하고 다시 차에 올랐는데, 길이 완전히 막혔다. 어디서 사고가 났나? 아니면 들소가 차도로 올라왔나?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차의 바로 옆으로 들소가 나타났다.
아이들은 무서워하면서도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나는 이렇게 나타나 준 들소에게 고마웠다. 이곳에 오기 전에 각종 야생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아이들에게 많이 해줘서 기대감만 잔뜩 부풀려 놓았는데, 실상 이곳에서 본 동물은 들소 몇 마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운전 20년 만에 들소의 뒤를 따라가기는 처음이다. 아울러 차가 이렇게 막히는데도 즐겁고 행복하기도 또한 처음이다.
다음날 아침에는 West Thumb을 둘러보았다. 어제 간헐천과 온천을 너무 많이 본 까닭에 별 흥미도 없었지만 그래도 여기를 빼 놓을 수는 없었다. 멀리 보이는 옐로스톤 호수와 온천물이 조화를 이룬다는데,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사족
1) 8월 13일 밤이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부스럭거리는 소리... 발자국 소리같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저 소리는 사람이 내는 것이 아니라는 거. 나는 무섭기도 하면서 한편 궁금했다. 소리가 아주 가까이에서 들리는 것으로 보아 지퍼만 열고 나가면 바로 바깥에 무언가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끔 쓸데없는 호기심 때문에 사람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것을 여러번 보았기 때문이다.
2)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죽은 듯이 가만히 누워 있었다. 야생돌물이 가만히 있는 텐트를 공격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3) 잠시 후 어느 여인의 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라는 소리. 비명소리는 아니었지만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4) 아침에 일어났더니 아내도 그 여인의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고 했다. 무엇이었을까... 곰이었을까? 만일 내가 그 시간에 텐트 밖에서 소변을 보고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한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궁금하다.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