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도니의 미얀마 여행기 2부 17편-1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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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도니의 미얀마 여행기 2부 17편-18편

도니 0 2952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도니의 미얀마 여행기 2부 17편
                      [ 남부로 가는 험난한 여정 ]

나는 한국사람...그래서 나는 간다....-2-


몰먀인을 떠난 지 두 시간이 넘어서
깜깜해진 딴부자얏 시내로 들어섰다.
트럭 운전사와 그의 어린 조수를 데리고 찻집에 앉아서 러팻예를 마시는데
운전사가 나에게 무섭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물론....무서웠지.... 라고 말하려다가
그렇게 말하면 쪽팔릴 것 같아서 웃으며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트럭운전사가 산적과 마딱뜨리면 줄려고
준비해놓은 돈이라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보인다.
일종의 "통행세"인데 그나마 딴부자얏 밑으로는 안 통한다고 한다.
그쪽의 산적들은(정확히 말하면 산적무리로 변신한
반군게릴라..)인정사정 없다면서
목에다 손을 긋고 죽는시늉을 한다.  끽~~~

오늘도 하루 종일 돌아다녔더니 피곤하다.
게다가 딴부자얏 오는데 긴장을 해서인지 목도 뻣뻣하고.....
그나저나 숙소가 문제다.....
얼마 전부터 개방된 셋세비치(Setse Beach)에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고 들었지만 
지금 이 시간에 거기까지 들어 갈 수는 없고....
현지인 들에게 이곳에 외국인이 머물 수 있는 숙소가
있냐고 물었더니 모두들 모른단다.
음...어쩔 수 없이 현지인이 머무르는 허름한 G.H에
들어가서 사정이야기를 하고 재워달라고 했다.
난감한 표정을 짓던 주인이 내 여권을 가지고 어디론가 다녀오더니 OK란다.
(아마 경찰서와 이민국에 허락을 받고 왔을 것이다...)
삐걱거리는 낡고 좁은 복도를 따라 들어가
방문을 열고 불을 켜니 도마뱀이 순하게 생긴 눈을 굴리면서 나를 반긴다.
후후....구여븐 넘들...

미얀마에서는 방안에 사는 하얀색 도마뱀(에잉먀욱)을 귀하게 여긴다
(우리 나라 집에서 사는 두꺼비를 귀히 여기듯.....) .
아마 그 도마뱀들이 모기나 바퀴벌레등의 해충을
잡아먹기 때문인 것 같은데..........(도니생각)
내가 현재 살고있는 아파트에 처음 이사해보니
서운하게도 도마뱀이 한 마리도 안 보였다
그래서 도마뱀을 다른 집에서 분양(?)받아 기를까 했었는데
어느 날 보니.... 작고 귀여운 새끼 도마뱀 한 마리가 기어다녀서 정말 기뻐한 적도 있다.
도마뱀은 미얀마 사람들의 친구요  같이 먹고사는 소중한 가족이다.

청소한번 안한 것 같은 더럽고 딱딱한 침대에 누었다.
졸음이 몰려온다
......찍찍찍찍....
도마뱀들이 내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금방 잠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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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도니의 미얀마 여행기 2부 18편
                      [ 남부로 가는 험난한 여정 ]

미얀마에서 일본을 생각한다.

창 밖에서 들어오는 따가운 아침햇살이 나의 얼굴을 비춘다.
방안에는 밤새도록 해충들을 잡아먹어
배가 불룩해진 도마뱀들이 여전히 ꡒ찍찍ꡓ소리를
내며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G.H 밖으로 나와 거리의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많은 오토바이들이 시내를 활보하고 있었다.
어젯밤 트럭 타고 오면서 운전기사가
딴부자얏의 젊은 사람들은 거의가
태국을 오가며 국경 밀무역을 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미얀마의 어느 도시보다도 오토바이가 많고 활기차다.
통일된 유니폼을 입고 영업하는 오토바이택시
기사를 한 명 잡아 딴부자얏 시내의 볼거리와
셋세해변 그리고 짜익까미를 가기 위해 흥정을 했다.
약 4$정도 되는 돈으로 하루종일 오토바이를
임대하기로 하고 뒷자리에 앉았다.
먼저 시내를 한바퀴 둘러보았다.
딴부자얏은 지금은 그냥 평범한 도시지만
2차대전 중 많은 연합국 포로(POW)들이 동원되어
태국과 미얀마의 험준한 산악을 가로질러 놓았던
"죽음의 철도(Death Railway=Burma-Siam Rail way)의
미얀마쪽 종착역이었다.
그 당시 16.000명의 전쟁포로들이 죽었을 정도로 악명 높은 난공사였다는데
영화로 우리에게 익숙한 Pierre Boulle's의 소설
ꡒ콰이강의 다리(Bridge on the River Kwai)"를 보면
얼마나 희생이 크고 힘든 공사였는지 알 수 있다.
3년만에 415Km의 철도를 놓고 태국에서 버마전선으로
전쟁물자를 보급하기 위해 잠시 운행되다가
영국군의 폭격과 일본 제국주의의 패전으로
지금은 형태만 약간 남았을 뿐 잊혀진 철도가 되었다.
시내를 돌아본 후 Setse 해변을 가기 위해 딴부자얏 서쪽도로로 들어섰다.
한 10여분을 들어가다 보니 왼쪽으로 잘 정돈된 묘지가 보인다.
바로 "죽음의 철도"를 놓다가 희생된 연합군포로들 중
3771기의 묘가 있는 Htaukkyant war Cemetery이다 ..잠시 내려 묵념을 했다.
누가 가져다 놓았을지 모를 몇 다발의 꽃이 보였고
묘지관리를 하는 미얀마 사람들이  잔디를 깍고 있었다.
언뜻 보면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모습이지만
낮선 이국 땅에서 전쟁을 하고 포로로 잡혀
고생하다가 고통스럽게 죽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착잡하다.
젊은 오토바이 기사가 다가와서 내 옆에 앉았다.
그에게 일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솔직히 대답해보라고 했더니
자기는 일본이 좋단다.돈도 많은 나라이고....일본제 물건도 좋고....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간다.
미얀마도 3년 정도 일본의 식민지였다.
짧은 일제의 식민지배기간동안 죽은 사람이
영국식민시대 100여년 동안 보다 많았다고 하니 얼마나 악랄하게
식민통치를 했을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도 좋다고.....?
- 한국도 일제에 의해 식민지배를 당했기 때문에 그 참상을 잘 안다.
진짜 솔직히 너의 생각을 말해봐라...
많은 너희나라 국민이 고통을 겪었고 죽었는데
그래도 미운 감정이 없느냐? -고 다시 물었다.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그건 옛날일 이란다.
지금 일본이 미얀마에 얼마나 잘하는데
굳이 옛날 일을 들추어 낼 필요가 없다고 하며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일본넘들이 덩실덩실 춤출 일이다......
음....이것도 문화의 차이인가,,,?
그전에도 많은 미얀마친구들과 일본(자빵)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도 모두들
이 오토바이 기사와 같은 생각이었다.
나로서는 도저히 접수가 되질 않는다.
왜일까..?
왜? 그들은 일본을 미워하지 않을까?
내 짧은 생각으로는 아마도
종교적인 영향 때문인 것 같다.
이들은 이승에서의 생활에  별 큰 의미를 두질 않는다.
현세에서의 생활은 "윤회輪回"라는
커다란 수레바퀴에서 아주 짧은 부분일 뿐........
이 짧은 이승에서의 시간을 다음 生을 위하여
수양을 하고 공덕을 쌓는 기간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현생에서의 욕심은 부질없는 것이고
미움은 내가 쌓는 공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아닌가?
아니면 말고...... -_-;;;
(좃선일보가 많이 써먹었던 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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