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이야기 #002 - 양곤에서 보내는 하루.
왠지 피곤한데 그냥 굶을까?
에이 그래도 도착한 첫날인데 밤마실은 해야되지 않을까?
길지 않은 일정동안 이동이 잦은 여행이 될텐데 역시 체력은 비축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밥을 먹기로 하고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갔다.
“지금 환전하고 싶은데 여기서는 안되니?”
안된단다. 이씽.
대신 오키나와에서 큰 길을 세블럭 지나면 왼쪽에 “센트럴 호텔” 이라고 있으니 거기에서 바꿔줄테니 함 가보란다.
얌마 내가 아무리 건강하게 생겼기로 이런 시간에 너무 밖으로 내몬다?
라고 생각했지만 목마른자가 우물을 파는거랬어. 어차피 나가려던 밤마실에 목적도 생겼으니, 걷기로 하자.
낯선 밤길을 나서며 희안하게 위험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제대로 된 신호체계가 없어 길을 건널 때 한없이
망설이게 될 뿐. 적당한 어둠이 깔린 골목골목을 지나며 마주치는 그들과 내가 조금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센트럴 호텔의 낮은 환율덕분에 나는 저녁을 먹을 10달러만 바꿔서 내가 걸어 온 길을
되돌아 약간은 어수선한, 아니, 무질서 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한 양곤의 첫날 밤을 만끽해본다.
깨진 보도블럭 위에 마련된 간이 찻집에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는 아저씨들, 혹은 홀로 무언가 상념에 잠긴 듯한
아저씨들. 이름 모를 음식으로 늦은 저녁을 먹는 사람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버스들, 여행자, 현지인, 어른,
아이, 여자, 노인 할거 없이 수 많은 사람들과 스쳐지나간다.
같은 자리를 몇번이나 맴돌다가 결정 끝에 겨우 들어간 인도요리집은, 마치 우리나라에서 밥을 먹듯 반찬과 국을
준비해 주었고, 배불러서 더이상 먹을 수 없을 지경인데도 계속해서 반찬을 퍼담아 주는 통에 돌아가며 반찬통을
들고 오는 직원들에게 손사래를 몇번이나 치고 나서야 식사를 끝마칠 수 있었다.
남은 밥 다 준거 아니지 -ㅅ-?;;; 말그대로 밥을 그냥 "퍼" 준다.
아, 결국 맥주는 못마셨네?
에이 몰라 피곤해. 그냥 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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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28일.
오키나와 게스트하우스 특유의 스폰지 같은 매트리스 위에서 허우적대며 겨우 일어났다.
1층으로 내려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멍하니 오늘의 일정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계란 안에 빵들었다. 소박하지만 든든한 아침 :)
언니 고민 중이다. 자꾸 안기지 말아줄래.
뭐해야 되드라…체크아웃하고 짐맡기고…
일단 환전.
그리고 만달레이 가는 야간버스 티켓구입하기.
남는 시간동안 쉐다곤 파야 구경하기! 밥먹기!
좋아!
아침을 먹고 폭풍같이 짐을 꾸린 뒤 노련하게 짐을 맡겨놓고 양곤의 아침을 만끽하러? 아니아니, 환전을 위해
보족시장으로 향한다. 가면 타이거마트라고 환율은 잘쳐주는지 모르겠으나 믿을만 하다는 사설(!)환전소가
있다던데, 보족시장에 있는 타이거마트라는 정보 말고는 위치조차도 찾아보지 않고 그냥 왔다는게 생각났다.
이런 젠장, 나 어제부터 대체 왜이러니. 가면 있겠지, 없으면 물어보지 뭐, 사람사는데 다 똑같지.
고민한게 아까울 정도로 바로 보이는 타이거 마트 -_- 너무 쉽게 찾아서 아닌 줄 알고 시장 한바퀴 돌고 왔다.
몇개의 골목을 지나고 지나 도착한 보족시장. 육교를 건너 내려오니 저 끝에 TIGER라는…간판이 하나 보인다. 설마.
타이거가 맥주 타이거를 말하는거 였나.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거였어? 반신반의 하며 들어가니 친절하게도 한글로
환전한다고 써있다. 내가 환전한 금액은 달러당 800짯. 그나마 오기 전 보다 조금 올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준비해 온 200달러를 바꾸고 혹시 몰라 가지고 있던바트도 조금 바꿨다. 아직 미얀마의 물가에 대한 개념이
전혀 서있지 않아서 태국에서 생활하던 생활비에 이동비를 조금 보태서 넉넉하게 가지고 있자는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썼다는 사실.
헤매지 않고 환전을 했으니 다음은 만달레이 가는 버스 티켓 구하기.
튼튼한 두 다리가 장점이니 버스티켓을 살 수 있다는 기차역까지 걷기로 했다.
근데…쫌 멀다?;
아웅산 스타디움(버스 티켓팅을 그 근처에서 할 수 있음)으로 걸어가다 만난 캐논카메라 광고...나영이 언니와의 갭이 ㅠㅠ...
역시나 신호체계따위 일단 무시하고 보는 양곤님의 위엄 덕분에 길 한번 건너는데 천년만년 걸리는 나란 여자.
마지막으로 엄청 큰길이 나왔는데 차들은 멈출 생각도 없고 나는 못건너는데 현지인들은 어찌나 노련하게 건너는지
한 5분을 그렇게 서있자니 오늘중에 길 못건널 것 같다. 하지만, 친절한 미얀마 사람은 “짠”하고 등장한다고 했던가.
“밍글라바(안녕)~ 코리안?”
“응응. 코리안이야.”
“어디가니?”
“만달레이 가는 버스티켓 사러.”
“오 나도 마침 버스티켓 사러 가는데~”
…라고 말을 트자마자 시작되는 아저씨의 한국예찬! 오오 이것이 바로 한류인가!!!
미얀마에서는 한국드라마 주몽과 우리의 박지성님 덕분에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무척 좋다고 해야하나,
뭐라고 해야하나. 한국사람이라는 이유로 폭풍관심과 친절을 한몸에 받을 수 있다. 정말 피곤할 정도로…
드라마를 안보는 나로서는 뭐라고 리액션을 해줘야 할지 난감해서 그냥 웃음으로 화답해주었다.
“이하나! 이하나가 어찌나 예쁜지 미얀마 사람들이 모두 좋아해!”
“하하하..그렇군요…예쁘군요…(근데 이하나가 누구지…)”
아무튼 짠하고 등장한 미얀마 아저씨 덕분에 길도 건너고 만달레이 가는 버스티켓도 무사히 구할 수 있었다.
버스는 저녁 8시에 떠난다고 하니 2시간 전에 다시 티켓을 산 여기로 오면 픽업해서 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버스터미널이 공항보다도 멀리 있던데. -_-… 어차피 픽업 안해주면 혼자 가지도 못할 거리.
나야 데려다 주면 땡큐 쏘 머치.
길건너기 전에 저 멀리서 보고 저건 뭐지...했던 풍경. 버스회사나 목적지 등등이 적혀 있는 것... (으로 추정 된다 -ㅅ-)
아아 뭔가는 글자고 뭔가는 숫자인데...
설마 메탈리카가 남대문에서 이런 기분이었나!!!! ... 싶었다.
(사진출처는 구글) 나도 기념촬영 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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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버스 티켓. 내 이름 정도를 알아 볼 수 있겠다. (내가 썼으니까!)
그리고 역시 난해한 비지니스 카드를 한장 쥐어주며 "혹시 다음에 이용할 일 있으면 이걸 봐." ... 보면...?;;;
“그나저나 나 쉐다곤 파야에 가고 싶은데, 걸어갈 수 있는 거리야?”
“응- 이쪽으로 쭉- 걸어가면 금방 갈 수 있을거야.”
“진짜? 어찌 갈지 고민했는데 걸을 수 있다니 다행이네.”
버스티켓을 받아들고 금방 갈 수 있다는 말에 쉐다곤 파야까지 걷기로 했는데…
론리플래닛을 몇번이나 들여다봐도 도저히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건 기분 탓인가…
…기분 탓일리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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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멀.다.
이건 좀 아닌것 같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많이 걸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라오스에서의 경험상 외국인 여자가 눈에 띄지 않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가 긴바지를 입는 것이었다. 미얀마? 덥다.
나 별로 눈에 띄고 싶지 않아 긴바지 입고 있다. 덕분에 진짜 덥다. 근데 걸어도 걸어도 뭔가 내가 제대로 된 방향을
향해 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에 랜드마크 발견! 살짝 안심을 했지만 뭔가 딱 반 왔다.
한 20분은 걸어온 것 같은데 이게 정말 금방 갈 거리라고 설명할 거리냐고!!!!
…라고 혼자 성질 부려봐야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그냥 걷는거지.
KEEP WALKING. 내가 바로 조니워커.
열심히 걸어 온 끝에 –걷다가 하교하는 미얀마 학생들과 그들을 마중나온 부모님들 인파에 섞여있느라 시간이
더 지체된 것 같다- 저 멀리 쉐다곤 파야가 보인다. 장하다, 나. 튼튼한 두다리. 강인한 체력.
남은 열흘도 이정도 체력이면 걱정 없어.
유적 오타쿠인 나, 그렇게 힘겹게 걸어온 끝에 쉐다곤 파야를 만났다. : ) 다음에 갈때는 택시 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