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이야기 #001 - 여행 중에 떠나는 여행.
어디보자, 어느새 서울을 떠나온지 두달이 넘었다.
캄보디아에서 보낸 열흘, 라오스에서 보낸 한달, 그리고 한달이 다 되어가는 태국에서의 시간들.
무언가 항상 부족한듯 했던 캄보디아, 라오스와 다르게 태국에서 보내는 날들은 내가 서울에서 누리던 것들을 누릴 수 있어
쉽게 매너리즘에 빠져버린다. 방콕에 가면 친구들이 있고, 24시간 하는 세븐이 있고, 쇼핑센터, 커피전문점… 이런 것들에서
잠시 벗어나 보고자 떠났던 여행인데 태국에서의 날들은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다 느끼던 나의 서울 생활과 별반 다를바 없다.
난 여기까지와서 스타벅스커피나 빨고 앉았다.
여행이라는 하루하루가 매일매일 새로워 즐겁기만 해야할 일정이 너무 길다고 느낀다.
한달 반이 넘어가던 시점.
라오스 여행을 마치고 태국 북부에서 보름정도를 머물다 미얀마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 방콕으로 돌아왔던 그 때.
서서히 지치는 몸과 마음은 양곤행 비행기를 타는 6월 27일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했다. 두달을 내리 동행인과 함께하다 보니,
아무리 사이가 좋고 여행 스타일이 맞아도 한달 반을 넘어서니 동행인과 같이 있는 중간중간 14층 발코니에서 풀장으로
밀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리적으로 지쳐간다. 혼자가 되고 싶어 떠난 여행에서 혼자 있을 수 없다는 아이러니함.
혼자인 것 처럼 고독하게 있어도 옆에 누군가 있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 우울하기까지 하다.
라오스에서 태국 북부로 넘어오면서 방콕에 여행 온다는 친구와의 일정이 틀어져서 결국 떨어져 있을 시간이 없었던 동행인과 나는
서로에게 지쳐가고 있었다. 리프레쉬를 하고 싶어 미얀마 비자를 신청해 놓고 잠깐이나마 방콕에서 가까운 해변인 차암과 후아힌에
다녀오는 각고의 노력도 했지만, 내게 필요한건 “혼자있는 시간”... 단지 그것 뿐이었다.
양곤으로 떠나기 전날 후아힌에서 돌아와 미얀마로 떠날 짐을 꾸린다.
둘이 아니고 혼자가 되는데다가 이동이 잦은 여행이 될테니 최대한 기동성 좋게 다니라며 나의 45리터 배낭을 동행인의
35리터 배낭과 바꿔 메었다. 가져가도 쓸모없을 넷북과 지난 여행에 필요했던 가이드북, 다 읽은 책들을 정리하고
미얀마에서의 동선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당분간 나의 동행인, 그리고 태국도 잠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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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27일, 방콕에서 양곤으로 떠나는 날.
떠나는 날 처음 찍은 사진이 동대문에서 먹은 밥사진임 (...)
오후 4시 50분 에어아시아. 수왓나품에서 떠나는 비행기. 카오산에서 가까운 쌈센의 숙소에 묵었던 터라 동대문에 가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열흘동안 태국음식도 그립겠지만 오랜만에 한국음식 먹고 가라며, 미얀마로 떠나는 날
점심은 김치말이 국수와 김밥을 먹었다. 그리고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으로 향하기 전에 잠깐의 작별인사를 주고 받는다.
“잘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미얀마는 자동로밍 안된다 하니까- 다녀와서 만나요.”
밥먹고 택시타러 가는 길에 담은 카오산의 일상적인 풍경들. 왠지 그리울 것 같아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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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막상 공항에 오니 기분이 이상하다.
뭐랄까, 공항은 내가 떠나거나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장소여서 그런지 항상 특유의 정서가 있다.
10키로가 넘는 배낭은 수하물로 부쳐버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미얀마로 떠난다.
한가할 날 없는 수왓나품-
내 배낭, 이렇게나 무거웠나 -_-;;;
16:50 AirAsia YANGON FD3772
날 양곤으로 데려다 줄 비행기-*
긴 여행을 계획하면서 이번 여행의 핵심은 단연 “미얀마 여행” 이라고 입이 아프도록 얘기했는데,
6개월간의 긴 기다림 끝에, 내가 그 곳을 향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다.
바간의 일출을 담은 한장의 사진에 마음이 흔들려 그 곳에 가기로 결심했다. 아침잠이 많아 그 풍경을 담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지만, 그래도 지는 해라도 바라보고 올거라 생각하니 동행인의 부재에
잠깐 불안했던 마음이 설렘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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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곤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말레이시아 할아버지의 입국카드를 대신 써드렸다.
영어를 못하시는 분이라 말은 절대 통하지 않았지만 뭔가 계속 대화를 하게 되는게 내가 초능력이라도 있는 줄 알았네.
이것이 미얀마 입국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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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심사를 마치고 수하물을 찾고 있는데, “한국분이시죠?” 라는 익숙한 우리나라말을 듣게 되었다.
아 맞는데요, 그래요? 그럼 택시쉐어 안하실래요?
공항에서 시내까지 들어가는 택시요금이 천차만별이라던데, 흥정따위 적성에도 안맞는데다가 이미 라오스에서
로컬버스로 단련된 몸. 픽업트럭을 타고 시내버스로 갈아타서 술레파야까지 가려고 했는데.
택시쉐어라…잠깐 망설여진다.
“택시 말고, 로컬버스 안탈래요?”
나의 급제안이 마음에 들었는지 순식간에 공항을 빠져나가 호객하는 택시아저씨들을 뒤로하고 픽업트럭 타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 분명 오기 전에 대중교통으로 시내들어가는 법을 읽고 온 것 같은데 머릿속이 하얗다.
생각해보니 이런 부분은 두달 내내 동행인이 같이 기억해 주었는데. 지금 나 혼자였지…
공항을 등지고 왼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이라는 문장밖에 생각이 안난다.
일단 걷다가 경찰아저씨가 보이길래 묻는다.
“술레파야 가고 싶어.”
“술레파야? 택시택시.”
“노노. 버스버스.”
그 때, 공항에서 만나 나때문에 로컬버스를 타게 될 Y군.
“세마이!”
(공항에서 세마이행 픽업트럭을 타면 시내버스 갈아타는 곳에서 내려준다.)
Y군이 여행 직전에 적어 두었다는 메모에 로컬버스 이용법도 적어둔 것이다. 럭키.
“아아아아~ 세마이!”
좀 더 걸어가서 픽업트럭 타란다. 처음 만난 미얀마 사람들, 혹시라도 우리가 길을 못찾을까 싶어 타고 있던
자전거, 오토바이 끌고 뒤따라 오면서 방향을 가르쳐 준다.
“저거야 저거, 저거 타.”
도착하자마자 친절한 아저씨들 덕분에, 현지인들과 무릎을 맞대고 1인당 100짯을 주고 세마이까지 가는 픽업트럭을
탈 수 있었다. 아, 그러고보니 나 달러밖에 없는데- 망했다. 로컬버스 타겠다고 신나가지고 너무 급하게 나오느라
공항에서 조금이나마 환전 한다는걸 깜박했네…
하지만 세마이까지 가는 픽업트럭도 그리고 세마이에서 술레파야까지 가는 시내버스 요금도 친절한 Y군이
대신 내주었다. 비행기에서 Y군의 옆자리에 계셨던 한국분이 환율 좋게 쳐서 바꿔주셨다며- 여행 잘하라는 의미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술레파야까지 가는 길은 한시간 정도.
터질 것 같은 배낭을 메고 역시나 미어 터질 것 같은 버스에 올라타니 내가 어지간히 불편해 보였는지 친절한
미얀마 청년이 자리를 내준다. 배낭을 따로 둘만한 공간이 없어 무릎 위에 올려 두었더니 가방무게 때문에 무릎이 저릿하다.
태국보다 조금 덥게 느껴지는 저녁공기, 서서히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바깥 풍경에 눈을 돌려본다.
새로운 공기가, 새로운 거리가, 새로운 사람들이 내가 미얀마에 도착했음을 실감하게 한다.
지금 타라고 하면 난 아마 택시 타겠지 -ㅅ-;
전력사정이 좋지 못해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져있는 술레파야 주변을 헤매고 있자니 안그래도 은근 방향치인
나는 방향잡기가 더 어렵다. Y군과 함께 가이드북이 뚫려 나갈 지경으로 쳐다보고 있으니 노련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미얀마 청년 둘이 짠 하고 나타난다. (대개 도움을 주는 미얀마 사람들은 정말 짠 하고 나타난다.)
“어디 찾니? 도와줄까?”
“오키나와 게스트하우스를 찾고 있어. 지도상으로는 여긴데…방향을 모르겠어.”
“아-여기서 조금만 가면 되는데 금방 갈 수 있을거야. (블라블라 길 설명)”
덕분에 크게 헤매지 않고 도착한 오키나와 게스트 하우스에는…
방이 싱글룸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어째 오늘 하루 너무 잘풀린다 했지.
이 숙소 말고 다른 숙소를 알아보지 않았던 나는 쉐어룸도 없냐고 몇번이나 묻지만 오늘은 힘들겠다는 말만 돌아온다.
“저 그럼 제가 다른 숙소 알아볼게요, 피곤하실 텐데 여기 묵으세요.”
Y군은 정녕 천사같은 청년이었다.
30줄에 들어선 나를 20대로 봐준 것도 고마웠는데 (풉-) 어리버리하게 환전도 안한 나 때문에 그 소중한 여행경비로
내 버스비까지 내주더니 심지어 숙소까지 양보를 해주었다.
“아…괜찮으시겠어요? 미안해서…”
“아니예요, 저는 여기 말고 다른데도 알아봤으니까 괜찮아요.”
“정말 고마워요 ㅠㅠㅠ 그리고 낼 환전해서 버스비 드릴테니 잠깐 뵐까요?”
“아니예요- 여행 잘하시라고, 덕분에 저도 재밌게 왔으니까, 선물이라 생각하세요.”
Y군의 “여행 잘하라”는 마음과 함께 시작한 미얀마 여행은 여행을 마치는 그 날까지 내게 정말 보석같은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이 글을 통해 다시한번 이야기 하지만 정말 고마워요. :)
조금 불편한 구조의 오키나와 게스트하우스에서 짐을 풀어두고, 숙소까지 정해지고 나니 긴장이 살짝 풀려 배가 고프다.
오키나와 게스트하우스의 소문대로 푹 꺼지던 매트리스...아침에 일어나 침대에서 허우적거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_-
근데, 나 환전 안했잖아…ㅠㅠ
맥주 마시고 싶다 ㅠㅠ
그렇게 미얀마에서의 첫날 밤이 시작되었다.
술레파야 앞에서 길 가르쳐 주던 미얀마 청년들도 고마워요 :)
p.s_ 여행에서 돌아온지 두달째, 이제서야 미얀마 이야기를 해볼 생각이 들어서 시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