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여행기]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14 (Hsipaw)
아 어제 너무 달려서 오늘 겔겔 거리다가 겨우 일어났네요.
역시 글은 그때그때 써야지 밀려서 쓰니까 고욕입니다.
사진이 없으니 아무래도 인기(?)가 없어지는거 같아 한장이라도 올려볼려고 하다가 결국 또 포기했습니다.
미얀마에서 사진은 아예 꿈도 꾸지 말아야겠습니다.
http://lkfar.tistory.com/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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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생각보다 잠을 잘 잤다. 악몽을 꾸거나, 찝찝해서 잠을 못 들줄 알았는데, 나름 침대는 푹신했고 분위기는 아늑했다. 내가 이제 이런거에 그만큼 익숙해진건지, 이곳이 생각보다 괜찮은건지 모르겠다.
일어나니 6시. 그래도 조금 늦잠을 잤네. 2주간의 여행 결과 몸이 적응해서 지금부터는 어차피 잠이 안온다. 그냥 일어나는게 상책이다. 어차피 아침도 먹어야 하고 동네도 돌아봐야 하고 게스트하우스도 알아봐야 하니 바쁘다.
대충 세수를 한다. 흠, 노여사 어떡하냐. 2주가 지났는데 머리카락이 거의 안자랐네. 그냥 적응해. 대신 수염은 꽤나 자랐어. 훌륭하지? 보다보면 멋있어보일거야.
대충 옷을 갈아입고, 카메라와 지갑만 들고 길을 나선다. 항상 그랬듯이 이곳의 아침은 어제 저녁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지? 문을 잠그고 홈매트를 끄는 것도 잊지 않는다.
큰길로 나가니 길 건너편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 식당인가? 어차피 아침도 먹어야 하니 길을 건너서 가본다. 그러고 보면 항상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었는지라 현지식 아침은 안먹어봤다.
인도 사람 처럼 생긴 아버지와 딸이 운영하나보다. 아버지는 소리를 지르면서 요리를 하시고 딸은 서빙을 하고 있다. 커다란 후라이팬에 있는 물인지 기름인지를 터프하게 맨 바닥에 확 뿌리시고 새로운 요리를 시작하신다. 길에 있는 식당이다 보니 아무래도 위생은 챙기기 힘들겠다. 허나, 현지인들이 꽤나 많이 있는 것이 나름 유명한가보다. 생각해보니 어제 저녁에 들어올때도 여기 사람들이 상당히 모여있는 것을 본 것 같다.
일단 바깥 쪽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시포가 바간이랑 다르다고 느끼는 점이 외국인을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본다. 덕분에 나도 아주 현지인 처럼 생기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근데 메뉴가 있을거 같지는 않고, 뭘 시키지?
일단 옆에 사람들이 무슨 볶음밥에 계란 후라이 얹혀있는걸 먹고 있길래 딸한테 저거 같은거 달라고 손가락질로 알려준다. 딸이 다가오는데, 이 친구 영어를 좀 한다. 인도계라 그런가? 그래서 아예 커피까지 시킨다. 커피도 종류가 몇가지 있길래 그냥 현지식으로 달라고 한다.
아버지 또 소리를 지르시면서 요리를 하신다. 스타일인가보다. 얼마 안있어 볶음밥에, 무슨 양념이 별도로, 그리고 계란후라이가 얹혀진 밥이 나온다. 백김치 같은 반찬 하나와 카레된장국 같은 애도 곁들여 나온다. 커피는 일단 사이드로 두고 밥부터 먹어본다.
그렇지, 볶음밥은 소금으로 간을 해야 제맛이지. 나쁘지 않다. 양념 같이 생긴거는 약간 매콤해서 괜찮고 국은 향신료가 다소 가미된 된장국의 느낌이다. 백김치스러운 반찬도 은근 어울린다. 맛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척 펴서 보여주고 계속 먹는다.
양이 생각보다 많다. 덕분에 든든한 아침을 먹었다. 이제 커피를 마셔볼까? 밥도 먹었겠다, 느긋하게 뒤로 기대 앉아서 아침 햇살을 맞으며 커피를 한모금 삼켜본다. 달달하지만 우리나라 자판기 커피와는 다르게 약간의 향이 가미된듯 하다. 역시 나쁘지 않다. 이곳 괜찮은데? 숙소만 이쪽이라면 아침마다 올만하겠다.
미얀마에도 '단돈 2999키얏!'이 방송이 되고 있다. 홈쇼핑은 이곳까지도 침투했나보다. 근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는데 뭔가 땡긴다. 이불 3개인가에 뭘 또 껴주면서 2999키얏이라니, 나라도 사야 하나? 쓸데 없는 지름의 원흉이 홈쇼핑이지만 또 막상 알뜰살뜰 살림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고 보니 노여사가 저번에 무슨 최첨단초미세강력 '걸레' 세트를 8만원인가에 주고 산 기억이 나는군. 걸레, 8만원, 비성공적.
근데 여기 얼마지? 딸한테 얼마냐고 물어보니 900키얏이란다. 캬, 아름다운 숫자이다. 아침 먹고 커피까지 해서 900키얏이라니, 조식을 빼고 딜하기를 정말 잘했다. 물어보니 인도는 아니고 네팔계인데,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단다. 여튼 그래서 그런지 식사도 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도식 짜파티 같은 것도 있다. 내일은 다른거 먹어볼까?
자, 이제 배도 든든하게 채웠겠다, 숙소 찾아 삼만리를 떠나봐야지. 이곳 지리를 잘 모르지만 일단 그냥 무작정 가본다. 지금 시각이 6시 50분, 뭐 급할거 전혀 없는 시간이다. 게다가 오늘은 아무것도 스케쥴을 정한게 없다.
일단 어제 그 메인 도로를 가본다. 아직 여기저기 오픈 준비가 한창이다. 외국인은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하나도 안보이지만 현지인들은 꽤나 많이 나와있다. 은근히 사람들이 부지런하다.
큰길 오른편에 왠 현대식 호텔이 보인다. 호, 깔끔한데? 들어가볼까, 말까. 어차피 비쌀거 같은데, 괜히 물어보고 표정관리하면서 나오는 것도 피곤한데. 그래도 가격을 알면 레퍼런스로 삼을만 하겠지, 싶어서 한번 들어가본다.
미얀마 미녀 3인이 반겨준다. 혹시나 쫓겨날까 싶어 들어가자마자 영어를 발음을 최대한 굴려서 사용하니 그래도 응대는 해준다. 물어보니 싱글룸 하룻밤에 22,000키얏이란다. 어, 생각보다 그리 나쁘진 않다. 지금 비수기라서 혹시나 싶어서 "디스카운트?"를 외쳐보지만 단호한 "노우"가 돌아온다. 나쁘지 않긴 한데 그렇다고 이곳에서 20달라짜리 방에 묵을 이유는 또 없다.
또 길을 나선다. 근데 이 동네 진짜 게스트하우스가 거의 안보인다. 그래도 영어간판이 여기저기 있는거보니 아주 관광객이 없는건 아닌거 같은데, 진짜 찰리와 릴리가 독점을 해서 그런가. 걔네를 그럼 한번 찾아가볼까 싶어서 둘러보는데 안보인다. 길에 앉아있는 남자가 있어서 다가가니, 나를 보더니 뒷걸음질을 한다. 그래, 영어 울렁증, 내 이해하지. 그래도 꿋꿋하게 다가가서 말을 거니, 왜 하필 나야, 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옆에 친구한테 넘긴다. 친구는 얘는 또 왜 나한테 넘겨, 라는 표정을 지으며 계속 손을 저으며 "노노노노"만 외친다. 알았어, 고문 그만할께. 그냥 한번 찾아봐야겠다.
한 30분을 돌아다녔는데 모르겠다. 스마트폰을 안가지고 나와서 지도를 못 본다. 일단 귀가를 결정하고 지리를 좀 파악한 후에 다시 나와야겠다 생각한다.
돌아오는 길에 'Yeeshin Guesthouse'를 발견한다. 아고다에서 들어본거 같다. 한번 들어가본다. 물어보니 싱글룸이 조식 포함 6달라란다. 확실히 이 동네 가격이 좀 저렴하다. 대신 화장실은 방에 없단다. 한번 보여달라고 한다.
방은 뭐, 감옥에 한방 같이 생겼다. 6달라에 많은걸 기대하면 안되지. 화장실은 그래도 양변기가 있어서 나쁘지 않다. 스탭들도 친절하다. 하나 걸리는건 여기가 메인도로인지라 왠지 저녁에 시끄럽지 않을까 우려된다. 빠이에서 마이네 게스트하우스의 악몽이 떠오른다. 그래도 일단 후보1.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더 이상 다른 게스트하우스는 안보인다. 문을 열고 방을 들어오니, 이곳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된다. 개인 화장실에, 나름 약간 떨어져있어서 조용한 환경, 빠르지는 않지만 방까지 연결되는 와이파이, 넓은 침대, 그리고 이삼일 계약하면 8달라까지 가능할거 같은 가격대, 생각보다 이곳도 나쁘지 않다. 역시 첫날의 인상은 믿으면 절대 안되나보다.
어쩌지? 일단 아직 8시니 좀 쉬어야겠다. 아고다를 살짝 한번 보니 반경 1키로미터 안에 그래도 대여섯개의 게스트하우스들이 보인다. 다들 손님 올까봐 무서워서 꼭꼭 숨어있나보다. 내가 찾아내줘야지! 9시 좀 지나면 나가서 하나하나 다시 좀 탐방을 해봐야겠다.
다시 나가니 아까와는 다르게 햇볕이 무기가 되어 있다. 그래도 지금이 낫다. 오후 되면 정말 다니기 힘들테니 빨리 움직여야겠다.
일단 바로 옆에 리조트 하나가 있기에 찾아가본다. 빵이에서 봤던거와 같은 방갈로다. 아 여기 좋은데, 비싸겠지? 그래도 비수기니까 한번 들어가서 물어보자. 40달라란다. 표정관리하며, 지금 비수기인거 안다, 빨리 진짜 가격을 얘기해라, 라고 독촉한다. 얼마를 원하냐고 되묻기에 20달라를 부른다. 30달라, 이게 마지막이란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나온다. 아무리 그래도 30달라에 머물기에는 무섭다.
시간이 많지 않다. 자 다음다음. 릴리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간다. 나름 이곳에서 유명한 곳이다. 물어보니 15달라에 에어컨룸이 있다. 깍아보니 13달라. 일단 킾. 다음.
찰리 게스트하우스는 이름이 찰리가 아니라 촬스였다. 위치는 매우 안쪽에 있다. 그래도 한번 걸어가봐야지. 제일 유명한데가 어떤지 구경이라도 해야겠다.
걸어가는데 어제 버스에서 만났던 프랑스인 두명을 만난다. 걔네는 날 못 봐서 내가 멀리서 부른다. "Hey guys!" 알아보고 반가워하며 서로 잠시 인사를 나눈다. 지금 어디 있냐고 물으니 Red Dragon에 있다고 한다. 팬 없고 화장실 별도에 7달라, 나쁘진 않다. 한번 가봐야겠다고 얘기하고 인사하고 헤어진다.
몇번 길을 잘못 들어서지만 그래도 발견한다. 보아하니 새로 지은 건물이고 촬스네 바로 앞에 있다. 일단 붉은용 게스트하우스에 먼저 들어가본다.
이미 비수기인걸 자기들도 아는지라 할인 금액으로 부른다. 그러면 거기서 더 할인을 하려 할텐데, 아마추어들이군. 화장실 별도가 7달라, 같이 있는 방이 10달라다. 10달라는 참고로 침대가 두개이며, 에어컨을 쓰면 3달라 추가된다. 방을 보니 화장실이 별도로 있는게 좀 걸린다. 방은 2층인데 화장실은 지하에 있으니 영 불편하고, 샤워실도 한개다. 10달라짜리로 마음을 먹고 흥정을 들어간다.
일단 무조건 그냥 깍아달라고 하면 초보다. 뭔가 로직을 만들어야 한다. 조식이 포함되어 있길래 그러면 빼고 대신에 에어컨을 포함시켜서 10달라로 하자고 한다. 조식이 2달라, 에어컨이 3달라니, 대략 1달라 이득이다. 고민하더니 그리 하자고 한다. 오케이, 또 다시 킾.
마지막으로 그 유명한 촬스네를 가본다. 여긴 뭐 완전 기업이다. 7달라짜리 도미토리 부터 10달라, 14달라, 25달라, 쭈욱 해서 80달라짜리 방까지 있다. 뭐 나랑은 큰 상관 없는 놈들이고, 일단 7달라 도미토리와 10달라 개인방을 보여달라고 한다.
도미토리에 들어서자마자 반가운 얼굴을 만난다. 바닥에 매트리스들만 쫙 깔려있는 형태인데, 중간에 어제 헤어졌던 영국인 Huan이 누워있다가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한다. 이쪽으로 온다더니 결국 왔군! 잠시 여기 어떠냐고 묻고 인사를 좀 나눈다. 근데 반갑긴 한데, 나는 대도시가 아니면 도미토리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혼자만의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인사를 하고 나온다. 시포에서 계속 머물테니 인연되면 또 만나겠지. 이제 1인실을 보여달라고 한다. 9달라짜리 방은 그냥 독방이다. 창문도 없고, 고시원도 이거보단 낫겠다. 창가에 있는 방은 좋긴 한데 15달라다. 그래, 알았어. 갈께.
나와서 잠시 벤치에 앉아서 옵션을 머리속에 그려본다. 그래, 결심했어! 붉은용 10달라짜리 방으로 결심하고 네고를 좀 해보자고 생각하고 찾아간다.
다시 가니 웃으며 반겨준다. 일단 에어컨은 뺀다. 생각해보니 무슨 에어컨이냐. 저녁에는 그다지 안 덥고 낮에도 화장실이 같이 있는 방 같은 경우 그냥 샤워를 자주하면 된다. 대신에 조식을 포함시킨다. 아무래도 오전에 여유있게 옥상에서 먹는 조식은 있는게 좋겠다.
그리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이틀 있을건데 9달라에 안될까, 라며 지긋이 눈을 쳐다본다. 남자 스탭 살짝 마음이 기우는거 같아서 더 빤히 슬프게 쳐다본다. 결국 9달라에 합의본다. 화장실 없는 방이 7달라였으니 이정도면 선방이다.
그러고 있는데 프랑스인 두명이 돌아왔다. 땀에 흠뻑 젖어서 온게 어딜 갔다왔나 싶다. 이 친구들, 나 보자마자 자기들 저녁에 배 타는 투어를 할건데 같이할 생각이 없냐고 한다. 들어보니 2명이든, 4명이든 가격이 같은 시스템인가보다. 뭐 나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지. 그러자고 한다. 근데 언제 에버그린까지 가서 짐을 가지고 오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일단 한시간 정도 후에 보자고 약속하고 길을 나선다. 아 덥다, 너무 덥다. 역시 10시를 넘기면 안되는거였다. 올때는 그냥 모토바이크 택시 타고 올까? 나와서 생각해봐야겠다.
숙소로 돌아오니 또 뭔가 이곳도 짧게나마 정들었다고 아쉽다. 하지만 여기는 조식 제외하고 네고해서 겨우 10달라에 들어왔다. 비교가 안된다. 주인아저씨한테 미안하니 슬쩍 10달라를 손에 쥐고 없을때 스탭한테 넘기고 벗어나야겠다. 일단 너무 힘드니 선풍기를 틀고, 땀을 좀 닦은 후 글을 쓰면서 쉰다.
자, 이제 출발해보자. 11시반에 만나기로 했으니 30분 안에 걸어가야 한다. 7.5키로를 어깨에 매고 길을 나선다. 날씨가 살인적이지만 익숙하다. 나는 할 수 있다. 여행자 주제에 택시를 탈 수는 없다.
정말 꾸역 꾸역 한발 한발 내딛으며 도착한다. 내가 풀군장으로 다니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이 더위에 이 한낮에 30분은 정말 아니다. 이제는 더 이상 옮기는 일이 없겠지. 물론 시포 안에서는.
프랑스 친구 두명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아 내가 좀 늦었나? 아무리 그래도 바로 일어나기는 쉽지 않아서 일단 잠시 숨을 돌린다. 어차피 가방도 놓고 와야해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열쇠를 받아서 방으로 가본다.
역시 방은 아주 훌륭하다. 침대가 두개 있지만 어차피 그 중에 한개만 쓸거지만 하나는 사물함으로 쓰지 뭐. 밑에 애들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 길게는 못 보고 슬쩍 보고 다시 나가려고 준비한다. 어, 잠깐. 왜 선풍기가 안보이지?
내려와서 물어보니 에어컨방이라 선풍기가 없단다. 아니 에어컨 키는건 3달라라며, 그럼 선풍기도 없고 에어컨도 안키면 어쩌라는거지. 무조건 에어컨을 키라는건가. 이거 좀 애매하지만 일단은 저녁에 와서 다시 자세히 캐보기로 한다.
프랑스인 친구 한명 이름은 '조안'이고 하나는 '알봉'이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내 이름을 물어서 '경훈'이라고 하니까 '똥훈'이라고 부른다. 똥은 아니돼.... 똥은 위험하다고 다시 잘 발음하라고 해도 못한다. 에잇, 이정도면 노력했다. 그냥 'Key'라고 부르라고 한다. 내 이름의 첫글자다.
영어 이름을 별도로 갖는 것은 정말 싫어하지만 한글 이름을 처음부터 영어로 발음하기 좋은 것으로 하는 것은 좋다고 본다. 아버지, 경훈이 뭡니까. '경'은 진짜 발음하기 어렵다. 지훈, 영훈, 지우, 시우 등 쉬운 이름 많은데 하필 경훈이라니. 결국 쿙훈 아니면 귱훈 식으로 불리게 된다.
점심은 이번에 데이투어를 할 그 곳에서 먹는다. 식당도 같이 하나보다. 미얀마 와서 처음으로 면요리를 시켜서 먹어본다. 이곳은 음식 나오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어차피 대화할 사람도 있고 해서 괜찮다. 그러고보니 다른 일행과 이렇게 투어 같은 이벤트를 같이 하는건 이번 여행에서 처음이다.
둘이 친구인데 1년 여행 중이라고 한다. 한 친구는 팔이 어깨부터 절단 됐는데 이유는 굳이 물어보지 않는다. 다른 친구는 자세히 보니 오른쪽 발을 절뚝거린다. 역시 이유는 모르겠다. 그나저나 프랑스의 휴가 제도를 듣고 헉 소리가 난다.
둘다 유명한 은행에서 일을 한다는데, 몇년 일하면 1년에서 3년까지 무급휴가를 가질 수가 있단다. 물론 선택적이지만 이렇게 장기 여행을 하고 돌아올 직업이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퇴직을 하고 회사를 옮기거나 아니면 학교를 휴학하고 가는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법적으로 일주일에 35시간 이상 근무를 못하게 되어 있고 그 이상 일하면 휴가로 빼야만 한단다. 휴가도 일년에 5주로 정해져있단다. 물론 대기업이라 그렇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일주일 휴가도 눈치 보여서 제대로 못 쓰는 것을 생각하면 부러울 수 밖에 없다. 이런게 선진국이지.
이전에 사업을 할때 비수기 무급 장기휴가 제도를 만들었었다. 여행을 다니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최소한 내가 운영하는 사업에서는 한달 이상의 휴가제도를 만들고 싶었지만, 인건비의 비율이 높은 서비스업에서 이러한 이상적인 제도는 당연히 쉽지 않았다. 고민 결과, 겨울에 비수기를 이용해서 지원자들에게만 한달 혹은 그 이상의 휴가를 무급으로 제공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직원들은 원할 시에 한달 이상의 휴가를 직장 잃을 걱정 없이 갈 수 있어서 좋았고, 사업체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비수기의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어서 좋았다. 프랑스의 대기업에서 거의 똑같은 이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니 우리나라 대기업에서도 충분히 도입할 수 있지 않나 싶다. 헌데, 이거 진짜 그냥 내가 엄청 창의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다른데도 많이 보인다. 사람 생각은 정말 다 비슷한가보다.
면 요리가 나와서 먹어본다. 생각보다 꽤나 괜찮다. 미얀마 음식은 태국이나 우리나라 처럼 딱히 자기만의 개성이 강하지는 않지만 근처 나라들의 요리를 많이 도입했다. 그런만큼 처음에는 맛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저기 다녀보니 꽤나 맛있게 하는 집들이 많다.
오늘 보트 투어는 한명이 타나 5명이 타나 같은 35달라라고 한다. 흠, 그렇다면 사람을 더 넣는게 좋지 않을까? 요한과 알봉한테 내가 아는 친구가 지금 도미토리에 혼자 있을지도 모르는데 데려올까, 라고 물어보니 당연히 좋다고 한다. 밥을 먹고 한번 가보기로 한다.
근데 아직 있을까? 오후 1시가 넘은 시간이니 왠지 어디든 나갔을거 같은데. 큰 기대 안하고 문을 열어보니 아까와 마찬가지로 도미토리에서 홀로 외로이 론리플래닛을 보고 있다. 이놈, 버림 받았구나. 내가 구제해줄께. 보트투어에 대해 얘기하니 좋다고 따라붙는다. 수영을 할지도 모른다고 수영복을 입으라고 하니 앞에서 훌렁. 서양인들은 진짜 옷 벗는거에 부끄러움이 없다.
데리고 와서 요한과 알봉에게 소개시켜준다. 이제 출발해야 하는데 햇볕이 장난 아니다. 그래도 4시간 투어이니 2시 전에는 출발해야 6시까지는 돌아올 수 있다.
거기 여사장님한테 얘기를 하고 조안을 따라 강가로 간다. 거기서 배를 만나기로 했나보다. 아 햇볕이 정말 장난아니다. 배를 기다리면서 알봉이 꺼낸 선크림을 빌려서 얼굴과 목 팔 등에 덕지덕지 바른다. 오늘은 선크림이 반드시 필요한 날이다.
조금 있으니 여사장님이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와 아들로 보이는 3살 정도 되는 꼬마를 데리고 온다. 배에 여유가 있어서 같이 돌아다닐 생각인가보다. 그리고 커다랑 창이 달린 루피가 쓰고 다닐만한 모자도 사람 수 만큼 가져온다. 아 잘됐다. 머리에 써보니 머리가 안들어간다. 아 이게 무슨 굴욕이냐. 근데 다들 똑같다. 모자가 작게 만들어졌군. 머리에 얹듯이 올리고 끈을 목에 묶어서 안 떨어지게 한다.
배를 타니 배가 휘청휘청 거린다. 폭아 얇고 길이가 긴 배인데, 이거 전복 안될런지 걱정된다. 다른건 괜찮은데 사진기와 핸드폰 등이 걸린다. 근데 보니 여사장님도 핸드폰을 가지고 있어서 나름 안심을 해본다.
엔진에 시동이 걸리고 큰 소리와 함께 배가 출발한다. "솨아아아" 배가 물을 가르는 소리가 듣기 좋다. 이 강은 꽤나 넓고 생각보다 깨끗해보인다. 주변에 목욕하고 빨래 하는 현지인들이 많이 보이는게 인도 겐지스강과 비슷한 분위기다. 다만 겐지스강보다는 백배 깨끗하다.
배가 지나가면 멀리서 수영하던 아이들이, 목욕하던 어른들이, 빨래하던 아낙내들이 모두 멈추고 우리를 향해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우리다 "밍글라바"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같이 손을 흔들어준다.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 미얀마에서 뭐가 가장 좋았냐고 하면 두번의 고민도 없이 바로 '어이없을 정도로 순수하고 착하고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대답할거다. 이곳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몇년 후에 돌아오면 이 사람들이 더 이상 이 사람들이 아니게 될까.
생각보다 오래 간다. 밥도 먹었겠다, 식곤증이 나른하게 와서 꾸벅꾸벅 존다. 경치가 아무리 좋아도 뭐하나, 똑같은 광경이 지속되면 잠이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거의 30분 넘게 달리던 배가 드디어 엔진을 끄고 속도를 줄인다. 선착장이 따로 없는 오른쪽 어딘가에 배를 대고 끈으로 묶어서 고정시킨다.
드디어 내린다. 첫번째 탐방인가. 여사장님이 이것저것 설명해주시는데 사실 잘 알아듣기 힘들다. 대충 이곳에 어떤 사원을 방문한다는 거 같다.
올라가는 중간에 한 작은 집이 보인다. 거기서 여사장님은 쉬고 따라온 젊은 가이드 하나와 길을 나선다. 여사장님은 자기는 뚱뚱해서 못 올라간단다. 도데체 얼마나 올라갈려고?
집을 나와서 길을 나서는데 그 앞에 어떤 할머니가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신다.뭐지? 구걸하시는건가? 여행 다니면서 생긴 의심병으로 지켜보는데 그냥 웃으시면서 손만 한명 한명 잡고 보내주신다. 뭘까.
자 이제 본격적으로 길을 나선다. 산 정상으로 나 있는 듯한 길을 따라 한반 한발 내딛는다. 바닥이 흙바닥이라 쫄이 신고 걷기가 만만치 않다. 수영복 입으라고는 얘기를 해주고는 왜 운동화 신으라는 얘기는 안해준걸까나. 아 그리고 우리 수영하러 온거 아니었어? 이거 언제까지 올라가는거지.
계속 올라간다. 이제 그만 정상이 나올법 하구먼 끊임 없이 오른다. 중간에 멈추길래 드디어 도착인가 싶었더니 쉬었다 간단다. 이거 트래킹이었나. 쫄이를 신고 무리하게 걸으면 발바닥에 상처가 생기기 시작한다. 내일 트래킹 할려고 했는데 이거 좀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영국의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는 유안은 어린게 확실하다. 올라오는 내내 안 뒤쳐지고 가이드 뒤에 빠짝 붙어서 올라왔다. 궁금해서 나이를 물어본다.
"How old are you?"
"19."
헐, 19살이라니. 십대였던 말인가. 내 나이가 서양식으로 36이니 이건 뭐 진짜 거의 내 나이의 반이다. 체력도 내 두배인가보다. 진짜 여행하면서 말 그대로 'teenager'를 만난건 처음이다.
힘들건 말건, 또 다시 산행은 시작된다. 잔인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올라가면서 계속 여기가 무슨 밭이고 이런거를 설명해주는데 뭐가 뭔지 잘 모르겠거니와 사실 농업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흘려듣는다. 우리 근데 수영은 하긴 하는거지?
또 한참을 오르니 드디어 사원 같은 곳이 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목적지다! 안으로 들어서니 많은 개들이 일단 눈에 띈다. 동남아에서는 어디가든 개들이 있다. 개 무서워 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여행 다니기 쉽지 않을듯 싶다. 우리나라에서 저렇게 개들이 있었으면 이미...
절 안으로 들어간다. 가이드를 따라 부처님 앞에서 절을 세번한다. 나는 무교기에 이런거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 하나의 예절이라 생각한다. 다른 3명은 내가 하는 거를 지켜보기만 한다. 종교가 있나? 뭐, 난 설사 종교가 있다 하더라도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의를 지키는게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굉장히 낡은 절인데, 여긴 관광지가 아닌 실제 절 느낌이다. 이불도 여기저기 있고 스님도 한쪽에서 꾸벅꾸벅 졸고 계신다. 종교적인 장소는 어디를 간다 하더라도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분위기가 난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날은 정말 덥지만 의자에 앉아서 다 같이 소곤소곤 조용히 말을 나누고 있으니 뭔가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조금 있으니 어느 노스님이 차와 과자를 가지고 오신다. 또 의심병이 발동한다. 이건 얼마지? 나갈때 내는건가? 근데 그냥 주시고 온화한 웃음을 지으시며 돌아서신다. 그냥 주는건가?
여행 다닐때 너무 의심을 많이 하고 다녀서 그런지 미얀마는 뭔가 낯설다. 사람들이 이유 없는 호의를 베푸는걸 이곳에서 많이 겪어서 이제는 익숙해질만 하건만 36년을 그리 살아와서인지 매번 볼때마다 당황하게 된다. 조금 있으니 부채도 사람수 만큼 가져다 주신다.
종교를 수행하는 자는 저래야 한다. 네명이서 앉아서 각 나라의 종교에 대해 얘기를 좀 한다. 우연찮게 다 무교이고 알봉만 천주교이다. 나도 30년을 천주교로 살아왔기에 예전에 신부님 옆에서 복사 서던 경험과 주일학교 선생님을 4년했던 경험을 공유한다. 우리나라 기독교의 문제점 같은 것도 얘기를 하며 대화를 나눈다.
이제 일어서야지. 사실 여기를 왜 온건지는 아직까지 미지수지만 막상 나쁘지 않았다. 뭔가 진짜 절에 와서 잠시 힐링하고 가는 느낌이다. 나가면서 쓰레기를 치우고 노스님한테 인사를 한다. 온화한 미소로 한명 한명 인사를 받아주신다. 끝까지 돈에 대한 얘기는 역시 없다.
항상 그러하듯이,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금방이다. 올라올때는 그리 힘들더니 순식간에 내려간다. 그래도 발바닥에 상처가 좀 난거 같아서 신경은 좀 쓰인다.
아까 그 오두막 같은 집으로 돌아왔다. 여사장님은 여기서 아까 그 할머니와 수다를 떨고 있다가 우리를 보더니 자리를 내주고 차를 내오신다. 옆에서 유안이 이 물은 분명 강물로 받았을텐데, 라고 중얼거리지만 무시한다. 여행 다니면서 그런거 일일이 생각하면 못 다녀, 이 티네이져야.
좀 앉아서 아까 그 할머니와 여사장님 그리고 아들까지 다 같이 잠시 대화를 나눈다. 물론 현지어와 영어를 다 할줄 아는건 여사장님 뿐이라 통역을 통한 꽤나 어려운 대화이다. 그래도 인내를 가지면 의사소통은 다 된다.
이 할머니, 여기 사시는 분이란다. 아들 하나에 딸 하나가 있는데 아들은 에전에 무슨 사고로 죽었고, 딸은 사위가 나쁜 놈이라 방문을 안한단다. 어딜 가나 자식들이 문제다. 얘기를 듣고 이 할머니를 보니 몇년 전에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 생각이 나면서 정감이 간다. 그래도 참 곱게 늙으셨다. 내가 이쁘시다고 하니 소녀 같은 수줍은 웃음을 지으시며 손을 절래절래 흔드시지만 싫어하지는 않다. 자고로 여자는 3살부터 90살까지 이쁘다고 얘기하면 절대로 싫어하지 않는다.
여사장님이 여기 올때마다 2000키얏을 주셔서 할머니가 우리를 반기신다고 한다. 2000키얏이면 2000원인데, 이걸로 생활이 되실까. 주변에 야채 이런거 뜯어서 드시고 가끔 배로 물품을 전달해준다고 한다. 근데 내가 보기에는 그런거보다 사람과 정에 굶주리신거 같다. 아까 출발전에 우리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시던 생각이 난다.
내가 사진 하나 찍어도 되냐고 허락을 받고 내 선글라스를 씌워드리고 뒤에서 꼭 안아드린다. 나한테 숫자와 한글을 배우시고 소녀같이 좋아하시던 우리 외할머니, 지금은 좋은 곳에서 행복하시겠지.
여사장님 아들은 숫기가 너무 없다. 어떻게든 친해지려고 얘기를 해보지만 정말 요지불통이다. 여사장님이 자기 아들이 '오바간남'을 좋아한다고 갑자기 쌩뚱맞게 얘기하길래 저게 뭔가 잠시 고민을 해본다. 먹는건가?
여사장님 답답한지 춤을 춘다. 아, '오빤 강남' 이었나보다. 강남스타일은 정말 전세계를 하나로 만들었구나. 대단하다. 이 아들도 한참 머리도 싸이 따라서 깍고 캐릭터 있는 티셔츠 입고 엄청 춤을 췄다고 한다. 내가 능숙한 한국어로 원래 버젼을 조금 불러주니 모두들 좋아한다. 그래도 춤은 못 추겠다. 미안.
이제 또 떠날 시간이다. 할머니를 혼자 두고 떠날려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아 난 정말 울보가 맞나보다. 그래도 여기서 눈물을 흘릴 수는 없지. 꾹 참고 할머니를 다시 한번 안아드리며 한국말로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라고 말씀드린다. 분명히 알아들으신거 같다. 우리 갈때까지 할머니는 뒤에서 계속 손을 흔들어주신다. 이제 할머니는 다음 여행자가 올때까지 이곳을 또 외로이 지키고 계시겠지.
또 배를 타고 나선다. 근데 진짜 우리 수영은 안하나요. 물어보니 이제 수영하러 간단다. 아싸! 너무 덥다. 수영이 절실하다.
목적지에 금방 도착하고 한곳에 배를 대고 다시 끈으로 고정시킨다. 다 같이 내리니 여사장님이 오른쪽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왼쪽에서 수영을 하란다. 아니 뭔 기념 사진. 그래도 궁금해서 가보니 나름 경치가 좋다. 갑자기 앞에서 풍덩 소리가 나서 보니 계속 우리 배를 운전하시던 선장님(?)이 그새 옷을 다 벗고 물에 들어가셨다.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다. 하긴 엄청 더우셨겠지.
기념 사진을 찍는 곳이라 했지만 그냥 몇장 찍고 나도 옷을 벗고 유안하고 같이 물에 들어간다. 프랑스 친구들은 안들어온다. 둘다 몸이 좀 불편하더니 그래서 그런가.
바닥의 미끌미끌한 느낌이 과히 좋지는 않다. 미역 같은 것이 깔려있나보다. 대신 물은 생각보다 깨끗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원해서 좋다. 아까까지 죽을듯 했던 더위가 한순간에 사라진다. 깊이가 생각보다 얕고 물살이 세서 수영을 하기는 좀 힘들지만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사장님이 이제 반대편으로 가자고 일어나신다. 아니, 여기도 충분히 좋은데. 그래도 일단 나와서 반대편으로 따라간다. 와, 여기는 무릉도원에 온듯하다. 경치가 너무 좋아서 잠시 앉아서 지켜본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자연스럽게 간지럽히고, 새들의 지저귐이 귀를 편안하게 한다. 자연이 주는 특유의 냄새가 마음을 편안하게 어루만져준다. 확실히 사람은 자연을 접할때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흙을 밟고, 물을 만지며,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 만큼 좋은 휴식은 없다.
다시 나도 옷을 훌러덩, 이제 또 들어갈 시간이다. 여행 다닐때는 창피하고 이런 것도 없다. 게다가 이번 여행에서는 희한하게 여자 일행이 한번도 안생겨서 (...) 부끄러울 것도 없다. 이번에는 요한과 알봉도 합류하여 들어간다.
한곳에 온천 같이 들어가기 좋게 되어 있길래 그쪽으로 향한다. 여사장님 남편도 따라오고 꼬마도 따라오지만, 안들어갈려고 무섭다고 엉엉 운다. 귀여운 것. 여기 앉아있으니 확실히 아까보다 더 기분이 좋다. 이런게 힐링이지. 이 보트투어 따라오기 정말 잘했다.
젊은 가이드가 밑으로 폭포처럼 되어 있는 곳을 미끄럼틀 처럼 타고 내려가보란다. 너나 내려가, 난 저런 위험한거 안해. 그런데 요한이 이 말에 혹했다. 슬금슬금 가더니 조금씩 내려가본다. 야, 그거 위험해, 라고 만류해도 뭐 괜찮단다. 불안하게 지켜보는데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진다. 걱정되서 일어서서 보니까 밑에 물 아래에서 얼굴이 하나 떠오른다. 자기는 괜찮다고 손도 흔들어서 알려준다.
나도 내려가볼까? 에이 싫어. 여기도 충분히 좋은데, 뭘 또 내려가냐. 그리고 생각해보니 올라오는게 문제다. 요한, 너 어덯게 올라올래. 일단 난 신경 끄고 다시 누워서 지금의 이 순간을 즐긴다. 어떤 거금을 들여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이기에, 여행에서는 현재에 존재하는 것만큼 중요한건 없다.
뭔가 물이 좀 더 깊어서 다미빙 할 수만 있으면 좋을텐데. 꽃보다 청춘에서 갔던 라오스의 방비앙이 생각난다. 경치는 여기도 좋고 사람은 단 한명도 없어서 좋지만 다이빙이 조금 아쉽다. 라오스, 갈까 말까. 갈 수 있는 환경은 되는데 과연 연장을 하고 갈만할지 고민이다. 6년 전에 인도에서도 연장하고 네팔 갈까 말까 하다가 다음에 가야지 하고 지금까지 못 갔다. 그 생각을 하면 가는게 맞지만, 노여사도 보고 싶고 우리 고양이들도 보고 싶다. 역시 이 생각은 며칠 뒤로 미루는 걸로.
이제 갈 시간이다. 요한은 어느새 사라지고, 여사장님은 요한을 찾아 나섰다. 이쪽으로 못 올라오니 돌아서 올려나보다. 옷을 챙겨 입고 요한의 옷과 가방도 들고 떠날 준비를 한다.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돌아본다. 내 평생 다시 이곳에 올일은 없겠지. 한낮의 뜨거운 더위에 꿀맛 같은 휴식을 줘서 고마워.
언덕을 올라가니 저기 멀리서 요한이 맨발로 조심스레 걸어오고 있다. 역시 안내려가길 잘했다. 발바닥 다칠까봐 빨리 가서 신발을 건네준다. 역시 올라오는 길이 없어서 뒤로 한바퀴를 돌아서 왔단다. 뭐 나름 좋은 경험이었을거 같다.
다시 배에 오르고 출발한다. 이제 5시가 넘었다. 슬슬 배도 고프고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다. 그런데 돌아갈줄 알았던 배가 또 중간에 한번 멈춘다. 야 무슨 인단 만원짜리 투어가 이리 알차다냐.
여기는 어떤 현지 부족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여사장님이 소개시켜준다. 난 사실 사람이 사람을 구경한다는 개념을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우위에서 서서 지켜보는거 같기도 하고 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거 같아서 싫다. 그래도 일단 따라서 들어가본다.
조용한 마을이다. 소들이 꽤나 있는거보니 농사를 지어서 생활하시나보다. 가이드를 따라서 마을 안으로 깊숙히 들어간다. 여기저기 현지인들이 보이는데 모두 경계가 아닌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준다. "밍글라바"라고 외치면 똑같이 웃으며 대답해준다. 내가 생각했던 '사람 관광'과는 느낌이 좀 다르다. 그냥 여기 생활하시는 곳에 우리가 손님으로 놀러온듯하다.
중간에 기차역도 있다. 문이 닫혀있는데 우리가 오니까 어느분이 오시더니 열어주신다. 철로가 있긴 한데 이거 기차가 다녀도 되는지 모르겠다. 물어보니 이 철로가 시포에서 만달레이까지 이어진단다. 내가 만달레이에서 기차를 탔으면 이곳을 지나갔겠다. 여기를 떠날때 기차로 이동을 할려고 하니 여긴 한번 더 지나가겠구나.
이제 또 떠날 시간. 진짜 이제는 돌아간다. 배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또 강가에 있는 현지 사람들과 손을 흔들고 인사를 나눈다. 참 한결같이 손을 흔들어준다.
9천원 정도의 투어치고는 매우 알찬 투어였다. 여사장님도 물론 돈을 받고 하시긴 한거지만 정말 적극적으로 해주셔서 너무 고맙다. 여기 있는 동안 그 식당으로 계속 가야겠다. 요한이 돈을 만원씩 걷어서 내더니 나보고는 내지 말고 맥주 한잔을 사라고 한다. 아, 여기 끝나고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한방에 해결됐다. 오랜만에 오늘 좀 달릴려나?
일단 숙소로 와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 만나기로 한다. 유안은 숙소가 달라서 씻고 우리 숙소로 오기로 한다. 다들 별도 샤워실을 이용해야 하지만, 난 오늘 돈 좀 쓴 덕에 개인 샤워실이 있다. 역시 돈은 쓰면 좋은거긴 하다.
샤워를 간단히 하고 빨래도 좀 해놓는다. 어차피 얘네는 시간이 좀 걸릴듯 해서 느긋하게 정비를 한다. 발바닥을 보니 역시 상처가 좀 나있다.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인다. 오늘 좀 무리해서 아무래도 내일 하루는 좀 쉬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려가서 글을 좀 써볼까 하는데 유안이 왔다. 조금 있으니 프랑스인 두 친구도 합류를 한다. 요한은 나를 위하여 강남스타일 티셔츠를 입고 왔다. 배 볼록하니 귀엽다. 자 이체 뒷풀이로 출발!
내가 어제 생맥주 먹은 곳을 얘기했더니 다들 눈이 초롱초롱하다. 조금 먼데 괜찮겠냐니까 걱정 말란다. 하긴 이런 하루를 보내고 생맥주 한잔하면,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세명을 데리고 내가 길을 나서서 어제 고양이 두마리가 있고 이쁜 종업원이 있던 곳으로 향한다.
그 살갑던 사장님은 역시 나를 바로 알아보신다. 자리에 앉아서 일단 맥주 4잔을 달라고 하고 메뉴를 고른다. 각자 하나씩 고르니 생선, 치킨, 오리, 그리고 면요리까지 구색이 갖춰졌다. 어제 오리 요리는 좀 별로였는데 오늘은 맛있으려나.
요리가 오기전에 맥주 한잔을 다 같이 원샷한다. 프랑스식 건배가 특이하다. 다 같이 건배하는게 아니라 한명 한명 눈을 마주치면서 건배를 한다. 이거 묘한 매력이 있다. 나도 처음에는 주춤주춤하다가 이들을 따라서 윙크까지 하며 건배를 한다.
요리가 나왔다. 따로 덜어서 먹어보니, 오 맛있다. 어제 오리가 별로였나보다. 하긴 난 오리요리를 맛있게 먹은적이 없다. 다들 맛있다며 말그대로 흡입을 한다. 하긴 오늘 하루 힘들었으니 뭔들 맛이 없으랴.
어쩌다보니 술 경쟁이 붙는다. 내가 그래도 주량은 이들한테 안밀릴 자신이 있다. 한명이 다 마시면 다 따라 마신다. 호주, 프랑스, 한국의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다. 절대 질 수 없지.
여기는 맥주잔을 항상 새로 가져다준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나중에 계산할때 잔수를 보고 계산을 하기 때문이란다. 그런 이유로, 옆에 잔들이 하나하나 쌓여간다. 옆에 잔을 쌓는것이 은근 중독성이 있다. 서로 맥이지는 않지만 자연스레 마셔댄다.
몇잔을 마셨을까? 이제 은근 취하는데 사장님이 잔을 몇개 가져가신다. 안되요! 라고 외치니 잔이 더 이상 없단다. 우리가 다 거덜냈나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각국의 술마시는 게임에 대해서 얘기를 나눈다. 보아하니 신기한게 다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마피아 게임도 호주에서 똑같은 게임이 있다. 우리나라꺼가 아니었다니. 아이앰그라운드 이중모션을 가르쳐줬더니 무슨 술마시면서 그리 머리 쓰는 게임을 하냐고 뭐라한다.
약간의 문화차이가 있는게 보통 보면 다른 나라 게임들은 자기가 실수를 하면 마시는 스타일인데 반해, 한국은 남과 교류를 하면서 실수를 유발시키고 마시는게 많다. 이것도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문화차이에서 오는 거겠지? 여행 다니면서 이런 얘기를 나누는게 참 좋다.
아 이제 취한다. 슬슬 영어가 힘들어진다. 나도 모르게 한국말로 얘기를 한다. 유안도 꽤나 취한거 같은데, 프랑스 친구 둘 이놈들은 진짜 멀쩡하다. 대단한 놈들.
결국 내가 먼저 GG를 친다. 그래, 니네가 이겼다. 하지만 내가 주량이 한국에서 아주 좋은 편은 아니야. 다음부터 프랑스인이 술 내기 하자고 하면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어떻게 방에 왔을까. 비틀비틀되며 걸어온 기억은 있는데 기억이 희미하다. 오늘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과음을 했다. 이때 소주가 있었으면 딱 꺼내는 순간인데 정말 아쉽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다니고,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과음을 한게 전혀 아쉽지 않다. 술자리도 정말 즐거웠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스펙타클한 하루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내일 숙취는 조금 있겠구나...
역시 글은 그때그때 써야지 밀려서 쓰니까 고욕입니다.
사진이 없으니 아무래도 인기(?)가 없어지는거 같아 한장이라도 올려볼려고 하다가 결국 또 포기했습니다.
미얀마에서 사진은 아예 꿈도 꾸지 말아야겠습니다.
http://lkfar.tistory.com/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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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생각보다 잠을 잘 잤다. 악몽을 꾸거나, 찝찝해서 잠을 못 들줄 알았는데, 나름 침대는 푹신했고 분위기는 아늑했다. 내가 이제 이런거에 그만큼 익숙해진건지, 이곳이 생각보다 괜찮은건지 모르겠다.
일어나니 6시. 그래도 조금 늦잠을 잤네. 2주간의 여행 결과 몸이 적응해서 지금부터는 어차피 잠이 안온다. 그냥 일어나는게 상책이다. 어차피 아침도 먹어야 하고 동네도 돌아봐야 하고 게스트하우스도 알아봐야 하니 바쁘다.
대충 세수를 한다. 흠, 노여사 어떡하냐. 2주가 지났는데 머리카락이 거의 안자랐네. 그냥 적응해. 대신 수염은 꽤나 자랐어. 훌륭하지? 보다보면 멋있어보일거야.
대충 옷을 갈아입고, 카메라와 지갑만 들고 길을 나선다. 항상 그랬듯이 이곳의 아침은 어제 저녁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지? 문을 잠그고 홈매트를 끄는 것도 잊지 않는다.
큰길로 나가니 길 건너편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 식당인가? 어차피 아침도 먹어야 하니 길을 건너서 가본다. 그러고 보면 항상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었는지라 현지식 아침은 안먹어봤다.
인도 사람 처럼 생긴 아버지와 딸이 운영하나보다. 아버지는 소리를 지르면서 요리를 하시고 딸은 서빙을 하고 있다. 커다란 후라이팬에 있는 물인지 기름인지를 터프하게 맨 바닥에 확 뿌리시고 새로운 요리를 시작하신다. 길에 있는 식당이다 보니 아무래도 위생은 챙기기 힘들겠다. 허나, 현지인들이 꽤나 많이 있는 것이 나름 유명한가보다. 생각해보니 어제 저녁에 들어올때도 여기 사람들이 상당히 모여있는 것을 본 것 같다.
일단 바깥 쪽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시포가 바간이랑 다르다고 느끼는 점이 외국인을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본다. 덕분에 나도 아주 현지인 처럼 생기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근데 메뉴가 있을거 같지는 않고, 뭘 시키지?
일단 옆에 사람들이 무슨 볶음밥에 계란 후라이 얹혀있는걸 먹고 있길래 딸한테 저거 같은거 달라고 손가락질로 알려준다. 딸이 다가오는데, 이 친구 영어를 좀 한다. 인도계라 그런가? 그래서 아예 커피까지 시킨다. 커피도 종류가 몇가지 있길래 그냥 현지식으로 달라고 한다.
아버지 또 소리를 지르시면서 요리를 하신다. 스타일인가보다. 얼마 안있어 볶음밥에, 무슨 양념이 별도로, 그리고 계란후라이가 얹혀진 밥이 나온다. 백김치 같은 반찬 하나와 카레된장국 같은 애도 곁들여 나온다. 커피는 일단 사이드로 두고 밥부터 먹어본다.
그렇지, 볶음밥은 소금으로 간을 해야 제맛이지. 나쁘지 않다. 양념 같이 생긴거는 약간 매콤해서 괜찮고 국은 향신료가 다소 가미된 된장국의 느낌이다. 백김치스러운 반찬도 은근 어울린다. 맛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척 펴서 보여주고 계속 먹는다.
양이 생각보다 많다. 덕분에 든든한 아침을 먹었다. 이제 커피를 마셔볼까? 밥도 먹었겠다, 느긋하게 뒤로 기대 앉아서 아침 햇살을 맞으며 커피를 한모금 삼켜본다. 달달하지만 우리나라 자판기 커피와는 다르게 약간의 향이 가미된듯 하다. 역시 나쁘지 않다. 이곳 괜찮은데? 숙소만 이쪽이라면 아침마다 올만하겠다.
미얀마에도 '단돈 2999키얏!'이 방송이 되고 있다. 홈쇼핑은 이곳까지도 침투했나보다. 근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는데 뭔가 땡긴다. 이불 3개인가에 뭘 또 껴주면서 2999키얏이라니, 나라도 사야 하나? 쓸데 없는 지름의 원흉이 홈쇼핑이지만 또 막상 알뜰살뜰 살림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고 보니 노여사가 저번에 무슨 최첨단초미세강력 '걸레' 세트를 8만원인가에 주고 산 기억이 나는군. 걸레, 8만원, 비성공적.
근데 여기 얼마지? 딸한테 얼마냐고 물어보니 900키얏이란다. 캬, 아름다운 숫자이다. 아침 먹고 커피까지 해서 900키얏이라니, 조식을 빼고 딜하기를 정말 잘했다. 물어보니 인도는 아니고 네팔계인데,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단다. 여튼 그래서 그런지 식사도 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도식 짜파티 같은 것도 있다. 내일은 다른거 먹어볼까?
자, 이제 배도 든든하게 채웠겠다, 숙소 찾아 삼만리를 떠나봐야지. 이곳 지리를 잘 모르지만 일단 그냥 무작정 가본다. 지금 시각이 6시 50분, 뭐 급할거 전혀 없는 시간이다. 게다가 오늘은 아무것도 스케쥴을 정한게 없다.
일단 어제 그 메인 도로를 가본다. 아직 여기저기 오픈 준비가 한창이다. 외국인은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하나도 안보이지만 현지인들은 꽤나 많이 나와있다. 은근히 사람들이 부지런하다.
큰길 오른편에 왠 현대식 호텔이 보인다. 호, 깔끔한데? 들어가볼까, 말까. 어차피 비쌀거 같은데, 괜히 물어보고 표정관리하면서 나오는 것도 피곤한데. 그래도 가격을 알면 레퍼런스로 삼을만 하겠지, 싶어서 한번 들어가본다.
미얀마 미녀 3인이 반겨준다. 혹시나 쫓겨날까 싶어 들어가자마자 영어를 발음을 최대한 굴려서 사용하니 그래도 응대는 해준다. 물어보니 싱글룸 하룻밤에 22,000키얏이란다. 어, 생각보다 그리 나쁘진 않다. 지금 비수기라서 혹시나 싶어서 "디스카운트?"를 외쳐보지만 단호한 "노우"가 돌아온다. 나쁘지 않긴 한데 그렇다고 이곳에서 20달라짜리 방에 묵을 이유는 또 없다.
또 길을 나선다. 근데 이 동네 진짜 게스트하우스가 거의 안보인다. 그래도 영어간판이 여기저기 있는거보니 아주 관광객이 없는건 아닌거 같은데, 진짜 찰리와 릴리가 독점을 해서 그런가. 걔네를 그럼 한번 찾아가볼까 싶어서 둘러보는데 안보인다. 길에 앉아있는 남자가 있어서 다가가니, 나를 보더니 뒷걸음질을 한다. 그래, 영어 울렁증, 내 이해하지. 그래도 꿋꿋하게 다가가서 말을 거니, 왜 하필 나야, 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옆에 친구한테 넘긴다. 친구는 얘는 또 왜 나한테 넘겨, 라는 표정을 지으며 계속 손을 저으며 "노노노노"만 외친다. 알았어, 고문 그만할께. 그냥 한번 찾아봐야겠다.
한 30분을 돌아다녔는데 모르겠다. 스마트폰을 안가지고 나와서 지도를 못 본다. 일단 귀가를 결정하고 지리를 좀 파악한 후에 다시 나와야겠다 생각한다.
돌아오는 길에 'Yeeshin Guesthouse'를 발견한다. 아고다에서 들어본거 같다. 한번 들어가본다. 물어보니 싱글룸이 조식 포함 6달라란다. 확실히 이 동네 가격이 좀 저렴하다. 대신 화장실은 방에 없단다. 한번 보여달라고 한다.
방은 뭐, 감옥에 한방 같이 생겼다. 6달라에 많은걸 기대하면 안되지. 화장실은 그래도 양변기가 있어서 나쁘지 않다. 스탭들도 친절하다. 하나 걸리는건 여기가 메인도로인지라 왠지 저녁에 시끄럽지 않을까 우려된다. 빠이에서 마이네 게스트하우스의 악몽이 떠오른다. 그래도 일단 후보1.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더 이상 다른 게스트하우스는 안보인다. 문을 열고 방을 들어오니, 이곳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된다. 개인 화장실에, 나름 약간 떨어져있어서 조용한 환경, 빠르지는 않지만 방까지 연결되는 와이파이, 넓은 침대, 그리고 이삼일 계약하면 8달라까지 가능할거 같은 가격대, 생각보다 이곳도 나쁘지 않다. 역시 첫날의 인상은 믿으면 절대 안되나보다.
어쩌지? 일단 아직 8시니 좀 쉬어야겠다. 아고다를 살짝 한번 보니 반경 1키로미터 안에 그래도 대여섯개의 게스트하우스들이 보인다. 다들 손님 올까봐 무서워서 꼭꼭 숨어있나보다. 내가 찾아내줘야지! 9시 좀 지나면 나가서 하나하나 다시 좀 탐방을 해봐야겠다.
다시 나가니 아까와는 다르게 햇볕이 무기가 되어 있다. 그래도 지금이 낫다. 오후 되면 정말 다니기 힘들테니 빨리 움직여야겠다.
일단 바로 옆에 리조트 하나가 있기에 찾아가본다. 빵이에서 봤던거와 같은 방갈로다. 아 여기 좋은데, 비싸겠지? 그래도 비수기니까 한번 들어가서 물어보자. 40달라란다. 표정관리하며, 지금 비수기인거 안다, 빨리 진짜 가격을 얘기해라, 라고 독촉한다. 얼마를 원하냐고 되묻기에 20달라를 부른다. 30달라, 이게 마지막이란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나온다. 아무리 그래도 30달라에 머물기에는 무섭다.
시간이 많지 않다. 자 다음다음. 릴리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간다. 나름 이곳에서 유명한 곳이다. 물어보니 15달라에 에어컨룸이 있다. 깍아보니 13달라. 일단 킾. 다음.
찰리 게스트하우스는 이름이 찰리가 아니라 촬스였다. 위치는 매우 안쪽에 있다. 그래도 한번 걸어가봐야지. 제일 유명한데가 어떤지 구경이라도 해야겠다.
걸어가는데 어제 버스에서 만났던 프랑스인 두명을 만난다. 걔네는 날 못 봐서 내가 멀리서 부른다. "Hey guys!" 알아보고 반가워하며 서로 잠시 인사를 나눈다. 지금 어디 있냐고 물으니 Red Dragon에 있다고 한다. 팬 없고 화장실 별도에 7달라, 나쁘진 않다. 한번 가봐야겠다고 얘기하고 인사하고 헤어진다.
몇번 길을 잘못 들어서지만 그래도 발견한다. 보아하니 새로 지은 건물이고 촬스네 바로 앞에 있다. 일단 붉은용 게스트하우스에 먼저 들어가본다.
이미 비수기인걸 자기들도 아는지라 할인 금액으로 부른다. 그러면 거기서 더 할인을 하려 할텐데, 아마추어들이군. 화장실 별도가 7달라, 같이 있는 방이 10달라다. 10달라는 참고로 침대가 두개이며, 에어컨을 쓰면 3달라 추가된다. 방을 보니 화장실이 별도로 있는게 좀 걸린다. 방은 2층인데 화장실은 지하에 있으니 영 불편하고, 샤워실도 한개다. 10달라짜리로 마음을 먹고 흥정을 들어간다.
일단 무조건 그냥 깍아달라고 하면 초보다. 뭔가 로직을 만들어야 한다. 조식이 포함되어 있길래 그러면 빼고 대신에 에어컨을 포함시켜서 10달라로 하자고 한다. 조식이 2달라, 에어컨이 3달라니, 대략 1달라 이득이다. 고민하더니 그리 하자고 한다. 오케이, 또 다시 킾.
마지막으로 그 유명한 촬스네를 가본다. 여긴 뭐 완전 기업이다. 7달라짜리 도미토리 부터 10달라, 14달라, 25달라, 쭈욱 해서 80달라짜리 방까지 있다. 뭐 나랑은 큰 상관 없는 놈들이고, 일단 7달라 도미토리와 10달라 개인방을 보여달라고 한다.
도미토리에 들어서자마자 반가운 얼굴을 만난다. 바닥에 매트리스들만 쫙 깔려있는 형태인데, 중간에 어제 헤어졌던 영국인 Huan이 누워있다가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한다. 이쪽으로 온다더니 결국 왔군! 잠시 여기 어떠냐고 묻고 인사를 좀 나눈다. 근데 반갑긴 한데, 나는 대도시가 아니면 도미토리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혼자만의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인사를 하고 나온다. 시포에서 계속 머물테니 인연되면 또 만나겠지. 이제 1인실을 보여달라고 한다. 9달라짜리 방은 그냥 독방이다. 창문도 없고, 고시원도 이거보단 낫겠다. 창가에 있는 방은 좋긴 한데 15달라다. 그래, 알았어. 갈께.
나와서 잠시 벤치에 앉아서 옵션을 머리속에 그려본다. 그래, 결심했어! 붉은용 10달라짜리 방으로 결심하고 네고를 좀 해보자고 생각하고 찾아간다.
다시 가니 웃으며 반겨준다. 일단 에어컨은 뺀다. 생각해보니 무슨 에어컨이냐. 저녁에는 그다지 안 덥고 낮에도 화장실이 같이 있는 방 같은 경우 그냥 샤워를 자주하면 된다. 대신에 조식을 포함시킨다. 아무래도 오전에 여유있게 옥상에서 먹는 조식은 있는게 좋겠다.
그리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이틀 있을건데 9달라에 안될까, 라며 지긋이 눈을 쳐다본다. 남자 스탭 살짝 마음이 기우는거 같아서 더 빤히 슬프게 쳐다본다. 결국 9달라에 합의본다. 화장실 없는 방이 7달라였으니 이정도면 선방이다.
그러고 있는데 프랑스인 두명이 돌아왔다. 땀에 흠뻑 젖어서 온게 어딜 갔다왔나 싶다. 이 친구들, 나 보자마자 자기들 저녁에 배 타는 투어를 할건데 같이할 생각이 없냐고 한다. 들어보니 2명이든, 4명이든 가격이 같은 시스템인가보다. 뭐 나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지. 그러자고 한다. 근데 언제 에버그린까지 가서 짐을 가지고 오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일단 한시간 정도 후에 보자고 약속하고 길을 나선다. 아 덥다, 너무 덥다. 역시 10시를 넘기면 안되는거였다. 올때는 그냥 모토바이크 택시 타고 올까? 나와서 생각해봐야겠다.
숙소로 돌아오니 또 뭔가 이곳도 짧게나마 정들었다고 아쉽다. 하지만 여기는 조식 제외하고 네고해서 겨우 10달라에 들어왔다. 비교가 안된다. 주인아저씨한테 미안하니 슬쩍 10달라를 손에 쥐고 없을때 스탭한테 넘기고 벗어나야겠다. 일단 너무 힘드니 선풍기를 틀고, 땀을 좀 닦은 후 글을 쓰면서 쉰다.
자, 이제 출발해보자. 11시반에 만나기로 했으니 30분 안에 걸어가야 한다. 7.5키로를 어깨에 매고 길을 나선다. 날씨가 살인적이지만 익숙하다. 나는 할 수 있다. 여행자 주제에 택시를 탈 수는 없다.
정말 꾸역 꾸역 한발 한발 내딛으며 도착한다. 내가 풀군장으로 다니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이 더위에 이 한낮에 30분은 정말 아니다. 이제는 더 이상 옮기는 일이 없겠지. 물론 시포 안에서는.
프랑스 친구 두명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아 내가 좀 늦었나? 아무리 그래도 바로 일어나기는 쉽지 않아서 일단 잠시 숨을 돌린다. 어차피 가방도 놓고 와야해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열쇠를 받아서 방으로 가본다.
역시 방은 아주 훌륭하다. 침대가 두개 있지만 어차피 그 중에 한개만 쓸거지만 하나는 사물함으로 쓰지 뭐. 밑에 애들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 길게는 못 보고 슬쩍 보고 다시 나가려고 준비한다. 어, 잠깐. 왜 선풍기가 안보이지?
내려와서 물어보니 에어컨방이라 선풍기가 없단다. 아니 에어컨 키는건 3달라라며, 그럼 선풍기도 없고 에어컨도 안키면 어쩌라는거지. 무조건 에어컨을 키라는건가. 이거 좀 애매하지만 일단은 저녁에 와서 다시 자세히 캐보기로 한다.
프랑스인 친구 한명 이름은 '조안'이고 하나는 '알봉'이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내 이름을 물어서 '경훈'이라고 하니까 '똥훈'이라고 부른다. 똥은 아니돼.... 똥은 위험하다고 다시 잘 발음하라고 해도 못한다. 에잇, 이정도면 노력했다. 그냥 'Key'라고 부르라고 한다. 내 이름의 첫글자다.
영어 이름을 별도로 갖는 것은 정말 싫어하지만 한글 이름을 처음부터 영어로 발음하기 좋은 것으로 하는 것은 좋다고 본다. 아버지, 경훈이 뭡니까. '경'은 진짜 발음하기 어렵다. 지훈, 영훈, 지우, 시우 등 쉬운 이름 많은데 하필 경훈이라니. 결국 쿙훈 아니면 귱훈 식으로 불리게 된다.
점심은 이번에 데이투어를 할 그 곳에서 먹는다. 식당도 같이 하나보다. 미얀마 와서 처음으로 면요리를 시켜서 먹어본다. 이곳은 음식 나오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어차피 대화할 사람도 있고 해서 괜찮다. 그러고보니 다른 일행과 이렇게 투어 같은 이벤트를 같이 하는건 이번 여행에서 처음이다.
둘이 친구인데 1년 여행 중이라고 한다. 한 친구는 팔이 어깨부터 절단 됐는데 이유는 굳이 물어보지 않는다. 다른 친구는 자세히 보니 오른쪽 발을 절뚝거린다. 역시 이유는 모르겠다. 그나저나 프랑스의 휴가 제도를 듣고 헉 소리가 난다.
둘다 유명한 은행에서 일을 한다는데, 몇년 일하면 1년에서 3년까지 무급휴가를 가질 수가 있단다. 물론 선택적이지만 이렇게 장기 여행을 하고 돌아올 직업이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퇴직을 하고 회사를 옮기거나 아니면 학교를 휴학하고 가는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법적으로 일주일에 35시간 이상 근무를 못하게 되어 있고 그 이상 일하면 휴가로 빼야만 한단다. 휴가도 일년에 5주로 정해져있단다. 물론 대기업이라 그렇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일주일 휴가도 눈치 보여서 제대로 못 쓰는 것을 생각하면 부러울 수 밖에 없다. 이런게 선진국이지.
이전에 사업을 할때 비수기 무급 장기휴가 제도를 만들었었다. 여행을 다니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최소한 내가 운영하는 사업에서는 한달 이상의 휴가제도를 만들고 싶었지만, 인건비의 비율이 높은 서비스업에서 이러한 이상적인 제도는 당연히 쉽지 않았다. 고민 결과, 겨울에 비수기를 이용해서 지원자들에게만 한달 혹은 그 이상의 휴가를 무급으로 제공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직원들은 원할 시에 한달 이상의 휴가를 직장 잃을 걱정 없이 갈 수 있어서 좋았고, 사업체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비수기의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어서 좋았다. 프랑스의 대기업에서 거의 똑같은 이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니 우리나라 대기업에서도 충분히 도입할 수 있지 않나 싶다. 헌데, 이거 진짜 그냥 내가 엄청 창의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다른데도 많이 보인다. 사람 생각은 정말 다 비슷한가보다.
면 요리가 나와서 먹어본다. 생각보다 꽤나 괜찮다. 미얀마 음식은 태국이나 우리나라 처럼 딱히 자기만의 개성이 강하지는 않지만 근처 나라들의 요리를 많이 도입했다. 그런만큼 처음에는 맛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저기 다녀보니 꽤나 맛있게 하는 집들이 많다.
오늘 보트 투어는 한명이 타나 5명이 타나 같은 35달라라고 한다. 흠, 그렇다면 사람을 더 넣는게 좋지 않을까? 요한과 알봉한테 내가 아는 친구가 지금 도미토리에 혼자 있을지도 모르는데 데려올까, 라고 물어보니 당연히 좋다고 한다. 밥을 먹고 한번 가보기로 한다.
근데 아직 있을까? 오후 1시가 넘은 시간이니 왠지 어디든 나갔을거 같은데. 큰 기대 안하고 문을 열어보니 아까와 마찬가지로 도미토리에서 홀로 외로이 론리플래닛을 보고 있다. 이놈, 버림 받았구나. 내가 구제해줄께. 보트투어에 대해 얘기하니 좋다고 따라붙는다. 수영을 할지도 모른다고 수영복을 입으라고 하니 앞에서 훌렁. 서양인들은 진짜 옷 벗는거에 부끄러움이 없다.
데리고 와서 요한과 알봉에게 소개시켜준다. 이제 출발해야 하는데 햇볕이 장난 아니다. 그래도 4시간 투어이니 2시 전에는 출발해야 6시까지는 돌아올 수 있다.
거기 여사장님한테 얘기를 하고 조안을 따라 강가로 간다. 거기서 배를 만나기로 했나보다. 아 햇볕이 정말 장난아니다. 배를 기다리면서 알봉이 꺼낸 선크림을 빌려서 얼굴과 목 팔 등에 덕지덕지 바른다. 오늘은 선크림이 반드시 필요한 날이다.
조금 있으니 여사장님이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와 아들로 보이는 3살 정도 되는 꼬마를 데리고 온다. 배에 여유가 있어서 같이 돌아다닐 생각인가보다. 그리고 커다랑 창이 달린 루피가 쓰고 다닐만한 모자도 사람 수 만큼 가져온다. 아 잘됐다. 머리에 써보니 머리가 안들어간다. 아 이게 무슨 굴욕이냐. 근데 다들 똑같다. 모자가 작게 만들어졌군. 머리에 얹듯이 올리고 끈을 목에 묶어서 안 떨어지게 한다.
배를 타니 배가 휘청휘청 거린다. 폭아 얇고 길이가 긴 배인데, 이거 전복 안될런지 걱정된다. 다른건 괜찮은데 사진기와 핸드폰 등이 걸린다. 근데 보니 여사장님도 핸드폰을 가지고 있어서 나름 안심을 해본다.
엔진에 시동이 걸리고 큰 소리와 함께 배가 출발한다. "솨아아아" 배가 물을 가르는 소리가 듣기 좋다. 이 강은 꽤나 넓고 생각보다 깨끗해보인다. 주변에 목욕하고 빨래 하는 현지인들이 많이 보이는게 인도 겐지스강과 비슷한 분위기다. 다만 겐지스강보다는 백배 깨끗하다.
배가 지나가면 멀리서 수영하던 아이들이, 목욕하던 어른들이, 빨래하던 아낙내들이 모두 멈추고 우리를 향해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우리다 "밍글라바"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같이 손을 흔들어준다.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 미얀마에서 뭐가 가장 좋았냐고 하면 두번의 고민도 없이 바로 '어이없을 정도로 순수하고 착하고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대답할거다. 이곳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몇년 후에 돌아오면 이 사람들이 더 이상 이 사람들이 아니게 될까.
생각보다 오래 간다. 밥도 먹었겠다, 식곤증이 나른하게 와서 꾸벅꾸벅 존다. 경치가 아무리 좋아도 뭐하나, 똑같은 광경이 지속되면 잠이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거의 30분 넘게 달리던 배가 드디어 엔진을 끄고 속도를 줄인다. 선착장이 따로 없는 오른쪽 어딘가에 배를 대고 끈으로 묶어서 고정시킨다.
드디어 내린다. 첫번째 탐방인가. 여사장님이 이것저것 설명해주시는데 사실 잘 알아듣기 힘들다. 대충 이곳에 어떤 사원을 방문한다는 거 같다.
올라가는 중간에 한 작은 집이 보인다. 거기서 여사장님은 쉬고 따라온 젊은 가이드 하나와 길을 나선다. 여사장님은 자기는 뚱뚱해서 못 올라간단다. 도데체 얼마나 올라갈려고?
집을 나와서 길을 나서는데 그 앞에 어떤 할머니가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신다.뭐지? 구걸하시는건가? 여행 다니면서 생긴 의심병으로 지켜보는데 그냥 웃으시면서 손만 한명 한명 잡고 보내주신다. 뭘까.
자 이제 본격적으로 길을 나선다. 산 정상으로 나 있는 듯한 길을 따라 한반 한발 내딛는다. 바닥이 흙바닥이라 쫄이 신고 걷기가 만만치 않다. 수영복 입으라고는 얘기를 해주고는 왜 운동화 신으라는 얘기는 안해준걸까나. 아 그리고 우리 수영하러 온거 아니었어? 이거 언제까지 올라가는거지.
계속 올라간다. 이제 그만 정상이 나올법 하구먼 끊임 없이 오른다. 중간에 멈추길래 드디어 도착인가 싶었더니 쉬었다 간단다. 이거 트래킹이었나. 쫄이를 신고 무리하게 걸으면 발바닥에 상처가 생기기 시작한다. 내일 트래킹 할려고 했는데 이거 좀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영국의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는 유안은 어린게 확실하다. 올라오는 내내 안 뒤쳐지고 가이드 뒤에 빠짝 붙어서 올라왔다. 궁금해서 나이를 물어본다.
"How old are you?"
"19."
헐, 19살이라니. 십대였던 말인가. 내 나이가 서양식으로 36이니 이건 뭐 진짜 거의 내 나이의 반이다. 체력도 내 두배인가보다. 진짜 여행하면서 말 그대로 'teenager'를 만난건 처음이다.
힘들건 말건, 또 다시 산행은 시작된다. 잔인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올라가면서 계속 여기가 무슨 밭이고 이런거를 설명해주는데 뭐가 뭔지 잘 모르겠거니와 사실 농업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흘려듣는다. 우리 근데 수영은 하긴 하는거지?
또 한참을 오르니 드디어 사원 같은 곳이 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목적지다! 안으로 들어서니 많은 개들이 일단 눈에 띈다. 동남아에서는 어디가든 개들이 있다. 개 무서워 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여행 다니기 쉽지 않을듯 싶다. 우리나라에서 저렇게 개들이 있었으면 이미...
절 안으로 들어간다. 가이드를 따라 부처님 앞에서 절을 세번한다. 나는 무교기에 이런거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 하나의 예절이라 생각한다. 다른 3명은 내가 하는 거를 지켜보기만 한다. 종교가 있나? 뭐, 난 설사 종교가 있다 하더라도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의를 지키는게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굉장히 낡은 절인데, 여긴 관광지가 아닌 실제 절 느낌이다. 이불도 여기저기 있고 스님도 한쪽에서 꾸벅꾸벅 졸고 계신다. 종교적인 장소는 어디를 간다 하더라도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분위기가 난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날은 정말 덥지만 의자에 앉아서 다 같이 소곤소곤 조용히 말을 나누고 있으니 뭔가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조금 있으니 어느 노스님이 차와 과자를 가지고 오신다. 또 의심병이 발동한다. 이건 얼마지? 나갈때 내는건가? 근데 그냥 주시고 온화한 웃음을 지으시며 돌아서신다. 그냥 주는건가?
여행 다닐때 너무 의심을 많이 하고 다녀서 그런지 미얀마는 뭔가 낯설다. 사람들이 이유 없는 호의를 베푸는걸 이곳에서 많이 겪어서 이제는 익숙해질만 하건만 36년을 그리 살아와서인지 매번 볼때마다 당황하게 된다. 조금 있으니 부채도 사람수 만큼 가져다 주신다.
종교를 수행하는 자는 저래야 한다. 네명이서 앉아서 각 나라의 종교에 대해 얘기를 좀 한다. 우연찮게 다 무교이고 알봉만 천주교이다. 나도 30년을 천주교로 살아왔기에 예전에 신부님 옆에서 복사 서던 경험과 주일학교 선생님을 4년했던 경험을 공유한다. 우리나라 기독교의 문제점 같은 것도 얘기를 하며 대화를 나눈다.
이제 일어서야지. 사실 여기를 왜 온건지는 아직까지 미지수지만 막상 나쁘지 않았다. 뭔가 진짜 절에 와서 잠시 힐링하고 가는 느낌이다. 나가면서 쓰레기를 치우고 노스님한테 인사를 한다. 온화한 미소로 한명 한명 인사를 받아주신다. 끝까지 돈에 대한 얘기는 역시 없다.
항상 그러하듯이,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금방이다. 올라올때는 그리 힘들더니 순식간에 내려간다. 그래도 발바닥에 상처가 좀 난거 같아서 신경은 좀 쓰인다.
아까 그 오두막 같은 집으로 돌아왔다. 여사장님은 여기서 아까 그 할머니와 수다를 떨고 있다가 우리를 보더니 자리를 내주고 차를 내오신다. 옆에서 유안이 이 물은 분명 강물로 받았을텐데, 라고 중얼거리지만 무시한다. 여행 다니면서 그런거 일일이 생각하면 못 다녀, 이 티네이져야.
좀 앉아서 아까 그 할머니와 여사장님 그리고 아들까지 다 같이 잠시 대화를 나눈다. 물론 현지어와 영어를 다 할줄 아는건 여사장님 뿐이라 통역을 통한 꽤나 어려운 대화이다. 그래도 인내를 가지면 의사소통은 다 된다.
이 할머니, 여기 사시는 분이란다. 아들 하나에 딸 하나가 있는데 아들은 에전에 무슨 사고로 죽었고, 딸은 사위가 나쁜 놈이라 방문을 안한단다. 어딜 가나 자식들이 문제다. 얘기를 듣고 이 할머니를 보니 몇년 전에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 생각이 나면서 정감이 간다. 그래도 참 곱게 늙으셨다. 내가 이쁘시다고 하니 소녀 같은 수줍은 웃음을 지으시며 손을 절래절래 흔드시지만 싫어하지는 않다. 자고로 여자는 3살부터 90살까지 이쁘다고 얘기하면 절대로 싫어하지 않는다.
여사장님이 여기 올때마다 2000키얏을 주셔서 할머니가 우리를 반기신다고 한다. 2000키얏이면 2000원인데, 이걸로 생활이 되실까. 주변에 야채 이런거 뜯어서 드시고 가끔 배로 물품을 전달해준다고 한다. 근데 내가 보기에는 그런거보다 사람과 정에 굶주리신거 같다. 아까 출발전에 우리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시던 생각이 난다.
내가 사진 하나 찍어도 되냐고 허락을 받고 내 선글라스를 씌워드리고 뒤에서 꼭 안아드린다. 나한테 숫자와 한글을 배우시고 소녀같이 좋아하시던 우리 외할머니, 지금은 좋은 곳에서 행복하시겠지.
여사장님 아들은 숫기가 너무 없다. 어떻게든 친해지려고 얘기를 해보지만 정말 요지불통이다. 여사장님이 자기 아들이 '오바간남'을 좋아한다고 갑자기 쌩뚱맞게 얘기하길래 저게 뭔가 잠시 고민을 해본다. 먹는건가?
여사장님 답답한지 춤을 춘다. 아, '오빤 강남' 이었나보다. 강남스타일은 정말 전세계를 하나로 만들었구나. 대단하다. 이 아들도 한참 머리도 싸이 따라서 깍고 캐릭터 있는 티셔츠 입고 엄청 춤을 췄다고 한다. 내가 능숙한 한국어로 원래 버젼을 조금 불러주니 모두들 좋아한다. 그래도 춤은 못 추겠다. 미안.
이제 또 떠날 시간이다. 할머니를 혼자 두고 떠날려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아 난 정말 울보가 맞나보다. 그래도 여기서 눈물을 흘릴 수는 없지. 꾹 참고 할머니를 다시 한번 안아드리며 한국말로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라고 말씀드린다. 분명히 알아들으신거 같다. 우리 갈때까지 할머니는 뒤에서 계속 손을 흔들어주신다. 이제 할머니는 다음 여행자가 올때까지 이곳을 또 외로이 지키고 계시겠지.
또 배를 타고 나선다. 근데 진짜 우리 수영은 안하나요. 물어보니 이제 수영하러 간단다. 아싸! 너무 덥다. 수영이 절실하다.
목적지에 금방 도착하고 한곳에 배를 대고 다시 끈으로 고정시킨다. 다 같이 내리니 여사장님이 오른쪽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왼쪽에서 수영을 하란다. 아니 뭔 기념 사진. 그래도 궁금해서 가보니 나름 경치가 좋다. 갑자기 앞에서 풍덩 소리가 나서 보니 계속 우리 배를 운전하시던 선장님(?)이 그새 옷을 다 벗고 물에 들어가셨다.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다. 하긴 엄청 더우셨겠지.
기념 사진을 찍는 곳이라 했지만 그냥 몇장 찍고 나도 옷을 벗고 유안하고 같이 물에 들어간다. 프랑스 친구들은 안들어온다. 둘다 몸이 좀 불편하더니 그래서 그런가.
바닥의 미끌미끌한 느낌이 과히 좋지는 않다. 미역 같은 것이 깔려있나보다. 대신 물은 생각보다 깨끗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원해서 좋다. 아까까지 죽을듯 했던 더위가 한순간에 사라진다. 깊이가 생각보다 얕고 물살이 세서 수영을 하기는 좀 힘들지만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사장님이 이제 반대편으로 가자고 일어나신다. 아니, 여기도 충분히 좋은데. 그래도 일단 나와서 반대편으로 따라간다. 와, 여기는 무릉도원에 온듯하다. 경치가 너무 좋아서 잠시 앉아서 지켜본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자연스럽게 간지럽히고, 새들의 지저귐이 귀를 편안하게 한다. 자연이 주는 특유의 냄새가 마음을 편안하게 어루만져준다. 확실히 사람은 자연을 접할때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흙을 밟고, 물을 만지며,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 만큼 좋은 휴식은 없다.
다시 나도 옷을 훌러덩, 이제 또 들어갈 시간이다. 여행 다닐때는 창피하고 이런 것도 없다. 게다가 이번 여행에서는 희한하게 여자 일행이 한번도 안생겨서 (...) 부끄러울 것도 없다. 이번에는 요한과 알봉도 합류하여 들어간다.
한곳에 온천 같이 들어가기 좋게 되어 있길래 그쪽으로 향한다. 여사장님 남편도 따라오고 꼬마도 따라오지만, 안들어갈려고 무섭다고 엉엉 운다. 귀여운 것. 여기 앉아있으니 확실히 아까보다 더 기분이 좋다. 이런게 힐링이지. 이 보트투어 따라오기 정말 잘했다.
젊은 가이드가 밑으로 폭포처럼 되어 있는 곳을 미끄럼틀 처럼 타고 내려가보란다. 너나 내려가, 난 저런 위험한거 안해. 그런데 요한이 이 말에 혹했다. 슬금슬금 가더니 조금씩 내려가본다. 야, 그거 위험해, 라고 만류해도 뭐 괜찮단다. 불안하게 지켜보는데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진다. 걱정되서 일어서서 보니까 밑에 물 아래에서 얼굴이 하나 떠오른다. 자기는 괜찮다고 손도 흔들어서 알려준다.
나도 내려가볼까? 에이 싫어. 여기도 충분히 좋은데, 뭘 또 내려가냐. 그리고 생각해보니 올라오는게 문제다. 요한, 너 어덯게 올라올래. 일단 난 신경 끄고 다시 누워서 지금의 이 순간을 즐긴다. 어떤 거금을 들여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이기에, 여행에서는 현재에 존재하는 것만큼 중요한건 없다.
뭔가 물이 좀 더 깊어서 다미빙 할 수만 있으면 좋을텐데. 꽃보다 청춘에서 갔던 라오스의 방비앙이 생각난다. 경치는 여기도 좋고 사람은 단 한명도 없어서 좋지만 다이빙이 조금 아쉽다. 라오스, 갈까 말까. 갈 수 있는 환경은 되는데 과연 연장을 하고 갈만할지 고민이다. 6년 전에 인도에서도 연장하고 네팔 갈까 말까 하다가 다음에 가야지 하고 지금까지 못 갔다. 그 생각을 하면 가는게 맞지만, 노여사도 보고 싶고 우리 고양이들도 보고 싶다. 역시 이 생각은 며칠 뒤로 미루는 걸로.
이제 갈 시간이다. 요한은 어느새 사라지고, 여사장님은 요한을 찾아 나섰다. 이쪽으로 못 올라오니 돌아서 올려나보다. 옷을 챙겨 입고 요한의 옷과 가방도 들고 떠날 준비를 한다.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돌아본다. 내 평생 다시 이곳에 올일은 없겠지. 한낮의 뜨거운 더위에 꿀맛 같은 휴식을 줘서 고마워.
언덕을 올라가니 저기 멀리서 요한이 맨발로 조심스레 걸어오고 있다. 역시 안내려가길 잘했다. 발바닥 다칠까봐 빨리 가서 신발을 건네준다. 역시 올라오는 길이 없어서 뒤로 한바퀴를 돌아서 왔단다. 뭐 나름 좋은 경험이었을거 같다.
다시 배에 오르고 출발한다. 이제 5시가 넘었다. 슬슬 배도 고프고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다. 그런데 돌아갈줄 알았던 배가 또 중간에 한번 멈춘다. 야 무슨 인단 만원짜리 투어가 이리 알차다냐.
여기는 어떤 현지 부족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여사장님이 소개시켜준다. 난 사실 사람이 사람을 구경한다는 개념을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우위에서 서서 지켜보는거 같기도 하고 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거 같아서 싫다. 그래도 일단 따라서 들어가본다.
조용한 마을이다. 소들이 꽤나 있는거보니 농사를 지어서 생활하시나보다. 가이드를 따라서 마을 안으로 깊숙히 들어간다. 여기저기 현지인들이 보이는데 모두 경계가 아닌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준다. "밍글라바"라고 외치면 똑같이 웃으며 대답해준다. 내가 생각했던 '사람 관광'과는 느낌이 좀 다르다. 그냥 여기 생활하시는 곳에 우리가 손님으로 놀러온듯하다.
중간에 기차역도 있다. 문이 닫혀있는데 우리가 오니까 어느분이 오시더니 열어주신다. 철로가 있긴 한데 이거 기차가 다녀도 되는지 모르겠다. 물어보니 이 철로가 시포에서 만달레이까지 이어진단다. 내가 만달레이에서 기차를 탔으면 이곳을 지나갔겠다. 여기를 떠날때 기차로 이동을 할려고 하니 여긴 한번 더 지나가겠구나.
이제 또 떠날 시간. 진짜 이제는 돌아간다. 배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또 강가에 있는 현지 사람들과 손을 흔들고 인사를 나눈다. 참 한결같이 손을 흔들어준다.
9천원 정도의 투어치고는 매우 알찬 투어였다. 여사장님도 물론 돈을 받고 하시긴 한거지만 정말 적극적으로 해주셔서 너무 고맙다. 여기 있는 동안 그 식당으로 계속 가야겠다. 요한이 돈을 만원씩 걷어서 내더니 나보고는 내지 말고 맥주 한잔을 사라고 한다. 아, 여기 끝나고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한방에 해결됐다. 오랜만에 오늘 좀 달릴려나?
일단 숙소로 와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 만나기로 한다. 유안은 숙소가 달라서 씻고 우리 숙소로 오기로 한다. 다들 별도 샤워실을 이용해야 하지만, 난 오늘 돈 좀 쓴 덕에 개인 샤워실이 있다. 역시 돈은 쓰면 좋은거긴 하다.
샤워를 간단히 하고 빨래도 좀 해놓는다. 어차피 얘네는 시간이 좀 걸릴듯 해서 느긋하게 정비를 한다. 발바닥을 보니 역시 상처가 좀 나있다.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인다. 오늘 좀 무리해서 아무래도 내일 하루는 좀 쉬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려가서 글을 좀 써볼까 하는데 유안이 왔다. 조금 있으니 프랑스인 두 친구도 합류를 한다. 요한은 나를 위하여 강남스타일 티셔츠를 입고 왔다. 배 볼록하니 귀엽다. 자 이체 뒷풀이로 출발!
내가 어제 생맥주 먹은 곳을 얘기했더니 다들 눈이 초롱초롱하다. 조금 먼데 괜찮겠냐니까 걱정 말란다. 하긴 이런 하루를 보내고 생맥주 한잔하면,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세명을 데리고 내가 길을 나서서 어제 고양이 두마리가 있고 이쁜 종업원이 있던 곳으로 향한다.
그 살갑던 사장님은 역시 나를 바로 알아보신다. 자리에 앉아서 일단 맥주 4잔을 달라고 하고 메뉴를 고른다. 각자 하나씩 고르니 생선, 치킨, 오리, 그리고 면요리까지 구색이 갖춰졌다. 어제 오리 요리는 좀 별로였는데 오늘은 맛있으려나.
요리가 오기전에 맥주 한잔을 다 같이 원샷한다. 프랑스식 건배가 특이하다. 다 같이 건배하는게 아니라 한명 한명 눈을 마주치면서 건배를 한다. 이거 묘한 매력이 있다. 나도 처음에는 주춤주춤하다가 이들을 따라서 윙크까지 하며 건배를 한다.
요리가 나왔다. 따로 덜어서 먹어보니, 오 맛있다. 어제 오리가 별로였나보다. 하긴 난 오리요리를 맛있게 먹은적이 없다. 다들 맛있다며 말그대로 흡입을 한다. 하긴 오늘 하루 힘들었으니 뭔들 맛이 없으랴.
어쩌다보니 술 경쟁이 붙는다. 내가 그래도 주량은 이들한테 안밀릴 자신이 있다. 한명이 다 마시면 다 따라 마신다. 호주, 프랑스, 한국의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다. 절대 질 수 없지.
여기는 맥주잔을 항상 새로 가져다준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나중에 계산할때 잔수를 보고 계산을 하기 때문이란다. 그런 이유로, 옆에 잔들이 하나하나 쌓여간다. 옆에 잔을 쌓는것이 은근 중독성이 있다. 서로 맥이지는 않지만 자연스레 마셔댄다.
몇잔을 마셨을까? 이제 은근 취하는데 사장님이 잔을 몇개 가져가신다. 안되요! 라고 외치니 잔이 더 이상 없단다. 우리가 다 거덜냈나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각국의 술마시는 게임에 대해서 얘기를 나눈다. 보아하니 신기한게 다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마피아 게임도 호주에서 똑같은 게임이 있다. 우리나라꺼가 아니었다니. 아이앰그라운드 이중모션을 가르쳐줬더니 무슨 술마시면서 그리 머리 쓰는 게임을 하냐고 뭐라한다.
약간의 문화차이가 있는게 보통 보면 다른 나라 게임들은 자기가 실수를 하면 마시는 스타일인데 반해, 한국은 남과 교류를 하면서 실수를 유발시키고 마시는게 많다. 이것도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문화차이에서 오는 거겠지? 여행 다니면서 이런 얘기를 나누는게 참 좋다.
아 이제 취한다. 슬슬 영어가 힘들어진다. 나도 모르게 한국말로 얘기를 한다. 유안도 꽤나 취한거 같은데, 프랑스 친구 둘 이놈들은 진짜 멀쩡하다. 대단한 놈들.
결국 내가 먼저 GG를 친다. 그래, 니네가 이겼다. 하지만 내가 주량이 한국에서 아주 좋은 편은 아니야. 다음부터 프랑스인이 술 내기 하자고 하면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어떻게 방에 왔을까. 비틀비틀되며 걸어온 기억은 있는데 기억이 희미하다. 오늘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과음을 했다. 이때 소주가 있었으면 딱 꺼내는 순간인데 정말 아쉽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다니고,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과음을 한게 전혀 아쉽지 않다. 술자리도 정말 즐거웠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스펙타클한 하루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내일 숙취는 조금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