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여행기]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13 (Hsipaw)
오늘은 딱히 이벤트가 없어서 재미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사진은 절대 안올라가네요...
http://lkfar.tistory.com/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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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1등! 하긴 이곳 옥상에서 해뜨는걸 볼려고 5시반에 일어나서 올라오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거다. 문도 잠겨있어서 열고 들어왔다. 다행히 차는 보온병에 조금 남아있길래 한잔 따라서 자리를 잡는다.
저번에 해 뜨는게 잘 보이지 않았었나? 해지는거였나? 건물들이 시야를 가려서 해뜨는걸 제대로 보기는 힘들겠다.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혼자 조용히 아침의 냄새를 맡으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이 기분이 좋아서 올라온거다. 한국에도 새소리가 이리 많이 들렸었나? 아침을 깨우는 새소리가 한국에 가면 많이도 그리울거다.
숙면을 취하는데 필요한 요소 중 하나가 다른 룸메이트들과의 친화성도 필요한가보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인사도 못 나눈체 잠을 자서 그런지 보통 취침시간인 10시를 훌쩍 넘기고 거의 한시가 되어서 잠이 들었다. 바간에서 다른건 몰라도 잠은 정말 잘 잤었다. 거기에 편안한 룸메이트들도 하나의 이유였나보다. 정리하면 숙면을 위한 필수요소는, 푹신한 침대, 어느정도 두께가 있는 이불,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에어컨, 그리고 어느정도 친분이 있는 코를 골지 않는 룸메이트, 이렇게 될듯하다. 이거 뭐, 쉽지 않겠구먼.
오늘은 Hsipaw로 떠나는 날. 또 다시 5시간 버스 여행이다. 뭐 어디든 대충 5시간인가보다. 그쪽으로 가기로 결정한게 잘한거겠지? 사실 트레킹이 좋다는거 말고는 아는 정보도 별로 없다.
단, 어제 잠시 구글링해서 찾은 정보에 의하면 그쪽도 게스트하우스의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한다. 두개의 게스트하우스가 거의 독점을 하고 있고, 그로 인하여 트레킹 중계를 해주면서 수수료를 50% 이상을 가져가고 있단다. 만약 네고를 한다 하더라도 걔네 수수료에서 깍이는게 아니라, 트래킹 가이드 개인의 수수료에서 깍아주게 된다.
한때 이슈가 됐던 배달 업체 문제처럼, 중계로 인하여 한 산업이 발전한다면 당연히 그거에 대한 댓가, 즉 수수료는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독점이 되어서 횡포가 시작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러면 불평등이 심해지고 양극화가 시작된다. 뭐 나 하나가 다른 곳에 간다고 크게 변화가 생길가만은, 다른 게스트하우스 쪽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요즘 '21세기 자본론'을 굉장히 흥미있게 보고 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인구의 증가가 경제 발전, 정확히는 전체 경제 생산품의 증가에 결정적인 요소라는 것을 예전에는 깨닫지 못하였다. 그리고 인구 증가폭이 역사적으로 연2%가 넘으면 정말 많은 거였고, 지금은 아프리카의 분발로 1%대라는 것도 나름 신선하다. 그럼에도 복리의 마법으로 인하여 몇년 지나면 절대적인 증가치는 엄청나게 된다.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인구 증가폭이 적을 수록 이론적으로는 부의 불평등이 심해진다는거. 한마디로 인구가 그대로 유지될 시 부가 세대를 통하여 상속되게 되고 또한 새로운 활동이 발생하지 않게 되어 부자는 계속 부자로, 가난은 계속 가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아직 초반을 읽고 있지만 역시 사회과학은 흥미롭다. 특히 부의 재분배가 원활하지 못한 것이 사회의 성장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믿기에 더 관심있게 보고 있다.
어느새 해는 뜨고, 여자 스탭 두분이 와서 청소를 시작한다. 미얀마는 청소를 참 빡시게 한다. 식사를 준비하시는 동안 책을 피고 몇자 더 본다.
곧 아침이 나온다. 여기 아침 사실 그다지 별게 없는데도 나쁘지 않다. 그냥 계란을 담근 토스트와 과자 하나인데 뭔가 정성이 담긴 느낌이다. 앉아서 아침을 깔끔하게 해치우고, 토스트도 두개를 추가로 먹는다. 오늘 이동하니 배를 잘 채워놔야지.
다 먹고 나서 빈 그릇을 들고 스탭분들한테 갖다준다. 사실 이건 버릇처럼 하는건데 이것만 해도 스탭들은 매우 좋아한다. 이제는 내 인상을 확실히 남겼는지, 내 얼굴만 보면 다들 호의적인 표정을 짓는다. 어디든 좋은 인상을 남기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8시가 되니 살짝 더워지기 시작해서 방으로 돌아온다. 다 자고 있구나. 이놈들은 아침 안먹나? 남자들만 있는 방은 확실히 들어오면 땀냄새가... 나도 여기 일조할려나. 아니, 나는 그래서 어제 빨래를 했지. 난 깔끔한 남자니까.
여행 와서 처음으로 배탈이 났다. 어제 먹은건 그 맛있던 새우 밖에 없는데. 간만에 생맥주를 먹어서 그런가? 그러고보니 생막걸리 처럼 생맥주도 유산균이 들어가나? 화장실을 3번을 간다. 근데 또 SS는 아닌거 보면 그냥 많이 먹어서 장이 정상적으로 작용을 하는건가 싶기도 하다.
내 위층에는 아침에 동양인이 하나 왔다. 한국인인가? 한국인 아니면 일본인인거 같은데. 이제 여행에 익숙해져서 말 걸지 말지도 그다지 고민 안한다. 그냥 땡기는데로. 잠시 누워서 개인 정비를 조금 더 하다가 말을 살짝 걸어본다.
역시 일본인이다. 미얀마에 왔다간 한국인들 여행기를 꽤나 본 기억이 나는데 이들은 다 어디 있는걸까? 단 한명도 못 만났다.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한국인은 내가 처음이란다. 여기서 만나면 굉장히 반가울듯 한데 아쉽다.
짧은 일본어로 이 친구와 여러 얘기를 나눠본다. 이름은 '히로', H2의 주인공이랑 같다고 내가 좋아한다. 잠시 얘기를 나누고 있으니 이 친구의 일행인지 싶은 서양인들이 들어온다. 일행인가? 여튼 그들이 무슨 복싱을 보러 간다고 한다. 어? 여기 막 스트리트 복싱 같은게 있나? 순간 급 관심이 생겨서 물어본다. 타이복싱 같은거 있냐고 하니까 무슨 소리냐며 오늘 중요한 매치 있지 않냐고 되묻는다. 아, 갑자기 세기의 창과 방패의 대결 '마이웨더 vs 파퀴아오'가 이쯤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 시합이란다. 오, 동남아에서 파퀴아오의 시합을 볼 수 있다니, 이것은 진정 행운이다. 물어보니 현지 식당에서 볼 생각이라고 한다. 당연히 합류해도 되냐고 물어보고 숫가락을 얹는다. 제주도에서 김연아 올림픽 경기를 봤듯이 이것도 꽤나 잼있을듯 하다. 기대 만빵!
이들을 따라 나선다. 은근히 그룹이 크다. 로비에 서양인이 5명이 앉아있는데 딱 보니 다 영국인 같이 생겼다. 이제 좀 만나다보니 억양과 외모를 보면 대충 감이 잡힌다. 물어보니 역시 다 영국인이다. 한명은 여자친구랑 같이 다니고 있다. 여자가 꽤나 미인인데, 누구를 닮았는데 기억이 안난다.
영국인이라 어김없이 지숑팍을 물어보니 박주영을 오히려 얘기한다. 아스날 쪽에 산단다. 호 그래도 박주영이 잊혀지지는 않았구나. 그러고보니 외국인들이 한국에 갖는 이미지를 하나 발견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거의 다 이스포츠에 대해 물어본다. 정말로 대형 경기장에서 그렇게 보는지. 니네가 그게 얼마나 잼있는지 몰라서 그랴. 아 그때가 그립다. 홍진호 팬으로서 임진록은 정말 잼있었는데. 코카콜라배 잼있었지.
히로와 같이 합류하여 7명이 앞에 식당으로 간다. 이미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시합을 기다리고 있다. 자리가 없어서 두리번 거리고 있으니 종업원들이 앞쪽의 현지인들과 합석을 해준다. 제일 좋은 자리다. 오, 좋군 하며 먼저 있던 분들한테 인사를 하고 앉는다. 사실 마이웨더, 파퀴아오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하도 주변에서 얘기를 하니 관심은 많이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예전에 짧지만 6개월 정도 복싱을 배운 적이 있다는거, 물론 스파링도 못하고 끝났지만.
현지인들 앉아있다가 뒤쪽으로 옮긴다. 왜지? 우리가 불편했나보다. 이러면 너무 미안한데... 하지만 우리가 쫓아낸것도 아니고 이 자리를 우리가 온 것도 아니니 책임감은 안갖는다.
무슨 시합 시작하는데 백만년이 걸린다. 원래 권투라는게 메인 메치 전에 한첨 걸리는걸 알고는 있었지만 전에 시합들이 다 끝난 상황인데도 한참이다. 뭔놈의 공식 소개를 3번이나 하냐...
아, 갑자기 여자분 누구 닮았는지 생각났다. 비긴 어게인의 그 케이틀리 뭐시기 배우를 닮았다. 생각나서 바로 얘기하니 누군지를 모른다. 지금 6개월째 여행 중이라 영화 같은건 못 봤단다. 그러고 보면 이들은 참 오래 여행 잘 다닌다. 여자친구랑 같이 다니는 것도 생각보다 괜찮아보인다. 오늘 아침부터 노여사가 엄청 보고 싶더니, 뭔가 나중에 기회되면 같이 1년 세계일주를 하는 것도 꽤나 잼있을거 같다. 물론 돈이 문제겠지만.
드디어 시합 시작! 그새 구경하는 사람들은 더 모였다. 이거 시작 전에 하도 양념을 쳐놔서 막상 시작할때 되니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선수들이 위빙, 더킹 연습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따라하고 있다. 사실 펀치만 배우고 수비는 배우지도 않았다. 뭐 그래도 잼있잖아.
1회전이 시작하자마자 스타일 파악이 된다. 마이웨더는 전형적인 수비 위주의 아웃복싱, 파퀴아오는 인파이터인데다 왼손 잡이인 사우스포이다. 이거 잼있겠다. 그런데 서양인들도 모두 파퀴아오 편이다. 경기 스타일 상 마이웨더 팬은 거의 없어보인다. 현지인들이야 당연히 파퀴아오에 열광한다.
2회전, 3회전, 쭈욱 11회전까지 형태가 동일하다. 마이웨더는 막고, 파퀴아오는 뚫을려고 하고. 펀치가 적중되거나 아깝게 빗나갈때마다 식당에 환호와 아쉬운 탄식이 이어진다. 우리도 모두 이들과 동화되어 똑같이 기뻐하며 안타까워하며 경기를 지켜본다. 생각해보면 누가 한명 얻어터지는데 환호를 하는거긴 하지만 이건 정당한 스포츠니 괜찮다.
아쉽게도 무엇이든 뚫는 창은 무엇이든 막는 방패를 결국 뚫지 못하였다. 홍진호를 항상 응원했지만 3연벙에 무너졌듯이 모두가 파퀴아오의 경기 스타일에 환호했지만 승리는 영리한 플레이를 한 마이웨더에게 돌아갔다. 사실, 나도 보면서 마이웨더에 감탄했다. 하루종일 싸워도 얼굴 한번 제대로 때리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압도적인 수비였다. 특히 경기 초반에 얼굴 한대 맞고 작정하고 얼굴 몸을 완벽 방어할때는 감탄이 나왔다. 무패라는 타이틀이 괜히 주어진게 아니다.
이제 슬슬 밥 먹고 갈 준비를 해야 해서 내 차값 500키얏을 주고 먼저 일어난다. 벌써 시간이 11시반이다. 아 너무 덥다. 10시가 넘으면 절대 밖에 있으면 안된다. 찌는듯한 햇빛을 뚫으며 숙소로 돌아온다.
혼자 밥을 먹으러 간다. 그래도 만달레이를 왔는데, 처음 점심 먹었던 그 친구네 한번은 가야하지 않겠나. 카메라와 지갑만 들고 터벅터벅 걸어간다. 이 동네 이틀 밖에 안있었는데 미얀마 전체에서 가장 익숙하고 편한 장소가 되었다. 바간에서는 그리 오래 있었는데도 끝까지 불편하더니. 진짜 익숙해지는 것은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저번에 왔을때와는 다르게 익숙하게 두가지 고기반찬과 두가지 채소를 고르고 자리에 앉는다. 이번에는 점심 시간 근처에 와서 그런지 오이, 고추 등 무한 리필 되는 공짜 야채가 자리마다 있다. 음식을 받고 내 자리에 온 이후 야채가 없길래 익숙하게 옆 테이블에서 가지고 온다.
여기 처음에 먹었을때는 맛이 그렇더니 이번에는 아무 생각 없이 익숙하게 먹어서 그런지 꽤나 맛있다. 오, 이 정도면 훌륭한데. 물론 1200키얏에 10,000키얏 이상을 줬던 고급 식당하고 비교하면 안된다. 하지만 한끼 적당히 떼우기에는 아주 흡족하다. 특히 5각형으로 되어 있는 여기서 처음 보는 고추가 특이하고 맛있다. 약간의 전분맛도 나는게 식감이 독특하다.
이번에는 나오면서 능숙하게 "제주디마래'를 외친다. 여기를 오니 내가 미얀마에 적응했다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음식도 맛이 있어지고, 사람들도 익숙하고, 공기 자체도 익숙하다.
숙소로 돌아온다. 근데 장이 확실히 탈났나보다. 화장실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간다. 5시간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큰일이다. 잘못하면 버스에서 지옥을 맛볼지도 모르겠다. 미얀마에서 버스 기사를 붙잡고 울면서 세워달라고 하기 싫은데...
이제 가야 할 시간이다. 이층에 있는 'Yuan'이라는 영국인도 저녁 버스로 'Hsipaw'로 온다. 잘하면 만날 수도 있겠다. 그쪽을 독점하고 있다는 'Mr. Charlie'로 갈지 말지, 일단 도착해서 알아봐야겠다. 유안한테는 기회되면 다시 보자고 하고 나머지에게는 안전한 여행을 하라고 인사한다.
내려오는 길에 여자 스탭 둘을 만난다. 몇번의 노력(?) 끝에 둘과 친해져서 이제 나한테 말도 건다. 체크아웃 하냐고 묻길래, 걱정말라고 곧 또 돌아온다고 한다. 어디로 가냐고 물어서 'Hsipaw'로 간다니 잘가라고 인사도 해준다. 이 분들 그러고 보니 말하는거 처음 들은거 같기도 하다. 확실히 사람은 마음을 열어줘야 상대방도 마음을 열어준다.
버스를 기다리러 1층 로비로 내려온다. 유일하게 하루종일 에어컨이 틀어져있는 쿨링룸. 여기서 애들하고 수다를 떨면서 버스를 기다린다. '로키'라고 부르는게 마음에 안들어서 이름을 물어본다. '쪼우마', 외워야겠다. 내 이름도 물어봐서 알려는 주는데, 내 이름 제대로 발음하는 사람은 본적이 없다. 그냥 첫글자인 'Key'라고 부르라고 한다. 어차피 다시 올거라서 여기 메일 주소를 적어간다. 만석이 될지 모르니 오기 전에 꼭 메일하란다. 흠, 한번도 꽉찬걸 본적이 없는데... 너무 자신감이 과한거 아닐런지. 그래도 예약해서 나쁠건 없으니 출발 하루 전에 메일 보내야겠다.
근데 1시반이 됐는데 왜 내 오토바이 택시는 안오는거지? 쪼우마한테 얘 왜 안오냐고 물어보니 옆에 이미 와있단다. 아니, 아까부터 옆에 앉아있던 현지인이 그 운전수였어? 아니 이 미련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말을 해야지. 내가 키보드를 치고 있으니 중요한 일 하는 줄 알고 방해 안했단다. 아니 난 그냥 더워서 에어컨 빵빵한 이곳에 와서 기다리면서 글 좀 쓴거 뿐인데.
엄청 미안해서 미안하다고 대여섯번 말하고 출발하자고 한다. 쪼우마가 밖에까지 따라나와서 여권은 챙겼냐, 버스 표는 어디있냐, 손에 쥐고 가라 하면서 엄마처럼 챙겨준다. 아, 이래서 이곳을 잊을 수가 없다. 다시 오기 전에 꼭 메일 부터 보내라고 당부한 다음에 내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들어간다.
기사 아저씨도 매우 순박하다. 근데 여기 현지인들 앞니가 누렇게 뜨는건 왜 그런지 모르겠다. 쪼우마도 그래서 로키라고 불리는거 같던데, 건강에 안좋은거 아닌가.
이 아저씨는 운전도 순박하다. 조심스레, 안전하게 운전해서 나를 데려다 준다. 보아하니 버스 정거장에 내리면서 이곳에 돈도 낸다. 내가 2000키얏 주고 여길 왔는데 여기서 또 뭘 뺏지. 이럴때는 너무 싸게 다니는게 아닌가 싶은 죄책감이 든다.
버스가 완전 고급이다. 이야, 미얀마에도 이런 버스가 있구나. 오늘은 좀 럭셔리하게 갈 수 있겠다. 버스를 타러 가니 표를 확인 후 저쪽으로 가라고 한다. 표를 교환해야 하는건가?
교환하러 가니 교환이 아니라 시간이 이르니 저기 앉아서 기다리란다. 시장 같이 되어 있는 곳에 앉아서 어김없이 키보드를 핀다.키보드를 피면 경계심 가득하던 근처 꼬마들이 모여든다. 이번에도 서너명이 오더니 옆에 와서 앉는다. 밍글라바를 외쳐주고 웃어주니 수줍게 웃는다. 이때 카메라가 주머니에서 떨어져서 애가 줏어준다. 이왕 이리 된거, 꼬마한테 내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니까 막 수줍어 하며 도리도리하며 카메라를 주고 도망간다. 아니 나 셀카가 너무 없다고. 좀 찍어주지 뭘 이리 수줍어 한댜.
바간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미얀마 사람들의 순박함이 다시 느껴진다. 인도에서 그리 보이던 "원달라"도 여기서는 단 한번도 못 봤다. 어찌 보면 그래도 다들 의식주는 해결되는거라고 봐도 될려나. 이곳도 여행자로 인해 어느순간 물들겠지. 여행자로서 이런 곳은 언제까지나 지키고 싶은 마음이다. 현지인들 모여있는 시장 한복판에 떡하니 앉아 있어도 친근한 시선과 마주할 수 있는 곳, 한 저녁에도 신변의 위험을 느낄 수 없는 곳, 인도와는 확연하게 다른 매력이 있다.
2시가 지나고 나서 버스 문이 열리길래 들어간다. 아 더운데 에어컨이 나오는 버스라 다행이다. 안에는 막상 그렇게 생각만큼 호화롭지는 않다. 서울에서 본다면 그냥 일반적인 고속버스이다. 하지만 뭔가 여기서 보니 느낌이 다르다. 럭셔리한 자리와 시원한 에어컨, 거기에 커다란 버스의 몸체까지, 다 마음에 든다.
자리를 찾아보니 맨 뒤다. 아 맨 뒤 많이 흔들거려서 싫은데 별 수 없다. 외국인은 나 말고 독일어를 쓰는 3명이 탔다. 그 중 한명은 오른쪽 팔이 팔꿈치부터 잘려있다. 나도 4년간 장애인을 가르친 경험이 있지만 이런 경우 참 난감하다. 도와주고 싶지만 도와주면 안되고. 정답은 도와달라고 요청할때 도와주는거겠지.
바로 옆에도 한 할아버지가 앉고 왼쪽에도 다 현지인들이 앉는다. 한 젊은 남자분이 내 옆에 앉는데 표정이 이상하길래 보니까 내 자리랑 바꼈다. 내가 자리를 잘못 봤나보다. 미안하다고, 자리를 바꾸자고 하니 괜찮단다. 가운데 자리라 불편할텐데... 덕분에 5시간 조금 더 편하게 가게 되었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그 아저씨는 옆에 앉더니 핸드폰을 열고 사천성을 한다. 미얀마에도 사천성이 있구나. 그리고 핸드폰이 노트4다...
노여사의 사진을 배경으로 해놨더니 핸폰을 켤때마다 사람들이 보고 집중한다. 역시 남자들 눈은 똑같다. 이쁜건 알아가지고. 오늘 결혼식에서도 다 같이 찍은 사진 카톡으로 보내주기에 혼내준다. 결혼식에서 이런 이쁜 애는 사진에 나오지 말아야지, 민폐다.
그러고보면 6년 전 인도에서 만났을때 첫눈에 반하였고, 한달동안 다니면서 가치관에 반했었다. 근데 이건 내 얘기고, 얘는 내 어떤 면에 매력을 느낀걸까? 친구들이 이승기 닮았다고 하는 귀여움? 가끔 이서진 닮았다고 하는 부티크한 외모?
생각해보니, 연애 초기에 헤어질뻔한적이 꽤 있었다. 당시, 나는 내 잘난 맛에 살던, 세상에 내가 전부인줄 아는 한량아였다. 사람들을 만나면 일단 무조건 그들의 존재 위에 내가 군림하고자 하였고, 그로 인해 상처 받는 사람들의 상처는 오히려 훈장처럼 여겼다. 본질적으로 나쁘지는 않았던거 같은데 무의식적으로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도 잘 몰랐던 나의 이런 점이 노여사를 만나면서 수면으로 확 드러났다. 그 친구의 직접적인 지적에 나는 내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진정한 강함은 겉으로 드러나는게 아니라 내 자신 안에 있다는 걸 몰랐었다. 솔직히 지금도 이러한 '병'을 완전히 치유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인천에서 올라온 순수한 처녀의 '간호'로 인하여 나름 인간이 많이 되었다고 믿는다.
이번 버스도 5시간이 걸린다. 항상 5시간이다. 만달레이에서 바간도 5시간이었고, 이번에 시포도 5시간이다. 무슨 이유가 있는걸까? 버스를 하도 타다 보니 그냥 익숙해졌다. 한국에서는 부산 가는 버스 5시간 타고 나면 이틀을 쉬어도 피곤한데, 여기는 타고 가고 다음날 바로 타고 올 수도 있다.
원래 시포는 10시간짜리 기차여행이 유명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끄트머리에 있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나무로 만든 다리를 건너는 과정이 하나의 관광상품이다. 하지만 그 하나만을 위해서 10시간을 타는건 좀 오바 같아서 나는 버스를 타고 시포를 간 후, 돌아올때 핀오린이라는 동네까지만 기차를 탈려고 한다. 4시간 기차 여행에 그 다리를 건너게 됨으로 중요한 부분은 보게 되고, 시간도 여유가 생긴다. 물론 예상대로 됐을때겠지.
2시간 타고 가니 버스가 휴게소에 멈춘다. 굳이 내리기 싫은데 모두가 내려야 해서 따라 내린다. 아 이상하게 이번 버스 여행은 좀 지겹다. 미니버스가 아닌 대형버스라서 멍 때린는 느낌이 안나서 그런걸까나.
20분이 지나고 다시 버스에 올라탄다. 근데 여인 두명이 추가로 탄다. 맨 뒤에 앉는데, 이러면 왼쪽에 있던 할아버지가 탈 자리가 없어진다. 뭔가 자리배치에 문제가 생긴걸까? 내가 불안해하고 있으니 현지인들끼리 뭐라뭐라 하더니 합의를 본듯하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조금 있다 할아버지가 오니 혼란이 생긴다. 아니 뭘 합의 본 것 처럼 행동한거지. 이리 저리 한참 얘기를 하다가 결국 내가 창가자리로 가고 할아버지는 앞에 자리로 간다. 뭐 나야 좋아하는 창가자리로 왔으니 좋다.
왼쪽으로 슬슬 해가 질려고 한다. 버스는 계속에서 산으로 올라간다. 시포가 산동네였던가. 조사를 거의 안하고 왔더니 아는 정보가 없다.
이제 거의 여행을 반쯤 하고 나니 어떤 과정에서 감정의 기복이 약해졌다. 어찌 보면 내가 항상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에서 여행을 일상처럼 느끼게 된거겠지. 그럼에도 하루 하루 뭔가 새로운 모험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하게 되는게 또 여행인가보다. 시포에서의 트래킹은 또 얼마나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생길까? 아니면 일상처럼 평온한 일들의 연속일까. 아직은 모르겠다.
핸드폰이 부르르 울린다. 산간 지방인데 3G 연결이 됐나보다. 노여사한테 카톡이 와있다. 집안일을 이것저것 했다고 한다. 그 게으르던 아이가 내가 없으니 이것저것 부지런해졌다. 역시 사람은 상대적이다. 누군가 일을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한테 의존하게 되지만 그 사람이 사라지면 또 그 일을 잘 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할까나. 직장인의 가장 큰 착각이 '나 없으면 회사 안돌아간다'이다. 걱정마라, 아주 잘, 매우 잘 돌아간다. 나도 예전에 회사 나올때 내가 여기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리 큰데 나가면 일에 문제가 생기는거 아니야 하고 걱정 많이 했었는데, 조금 삐걱거리긴 했지만 무난히 잘 돌아가더라.
같은 의미로 좀 서글픈 얘기지만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세상은 전혀 꿈쩍하지도 않는다. 세상에 아무리 많은 변화를 남긴 사람이라도 다 똑같다. 일부 사람들이 기억할지 모르지만, 부모가 아닌 이상은 곧 잊고 자기 길을 살아간다. 그러하기에 현재 내가 살아있는 동안 행복한게 제일 중요하다.
이제 시포에 거의 다 와가나? 6시가 지나니 주변에 경관들이 바뀐다. 완전한 숲속을 가는듯 하며 길도 꼬불꼬불 매우 꺽여있다. 두차가 동시에 못 지나가서 반대편 차가 오면 잠시 기다렸다가 지나간다. 해는 그 와중에도 마지막 주황색 오오라를 뿜으면서 산 밑으로 내려갈 준비를 한다. 7시반 도착이니 이제 거의 다 오긴 왔나보다. 이런 산골 지방은 보급을 어떻게 받는지 궁금해진다. 여기도 태국의 섬들처럼 물가가 엄청 비싼거 아니야? 미얀마에서 핸드폰도 사고 하면서 예상외 지출이 많아서 좀 절약해야 할거 같은게 갑자기 걱정이 든다. 그나저나 이 좁은 길을 트럭들이 양방향으로 다니니 매우 아찔하다. 빠이 가는 길 보다 여기가 훨씬 위험해보인다. 무사히만 가다오.
근데 이거 이래서 언제 간다냐. 안전하게 가는건 좋지만 길이 워낙 험해서 5분마다 멈춰서 반대쪽 차가 가기를 기다린다. 어쩐지 직선 거리는 200키로 정도인데 왜 이리 오래 걸리나 싶었다. 그래도 안전이 제일이지. Safe Trip!
얼마나 올라온걸까? 달이 산 꼭데기 매우 가까운 곳에 떠 있다. 이리 가깝게 달이 떠 있으니 뭔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밖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우리는 아직도 산 중간 어딘가에 있다. 어두운 와중에도 사람들이 사는 집들이 몇몇 보인다. 불도 안키고 어떻게 살아갈런지. 하도 오래 타서 엉덩이가 아프다. 예전에 외할머니가 그랬듯이 왼쪽 다리를 의자에 올리니 좀 낫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힘든 버스 이동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왜 이곳에서도 별은 그다지 안보이는거지? 이왕 이렇게 오지로 왔으면 별이 좀 많이 보였으면 좋을텐데 아쉽다.
도시의 빛이 꽤 보이기 시작한다. 아 저긴가? 드디어 도착인건가? 버스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더니 결국 멈춘다. 아 5시간 걸린다더니 그 정도 걸리네. 근데 사람들은 안내리고 버스 스탭만 내린다. 스탭이 트렁크를 열더니 뭔가를 꺼내 한 가게에 넘기고 돈을 받는다. 그리고 다시 출발. 미얀마 택배 시스템인가보다.
이거 도데체 언제 도착하는거야. 슬슬 사람들이 일어나있기 시작한다. 다른건 괜찮은데 엉덩이가 아파서 힘들다. 근데 여기 마을이 있기나 한건지 모르겠다. 가끔 지나가는 작은 마을들도 전구 하나에 의존하는 집들이 대부분이어서 여기에 여행자들이 방문할만한 규모의 마을이 있다는게 상상이 잘 안된다.
이번에는 진짜인가보다. 좀 큰 마을에 들어서더니 사람들이 슬슬 짐을 싸기 시작한다. 아 힘든 여정이었다. 여기서는 좀 오래 지내야겠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다시 이 버스를 탈려면 심신의 안정이 필요하다. 다른 버스는 다 괜찮았는데 이번 버스는 힘들다.
진짜로 보스가 멈추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안 마신 물이 있길래 살짝 가방에 넣고 (버린거 담은거니 괜찮겠지) 세컨드 백을 메인백에 넣는다. 예약을 안하고 가는거라 좀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리자마자 역시 이곳을 장악하고 있다는 'Mr. Charlie'의 스탭들이 대기하고 있다. 가면 바로 태워준단다. 도미토리는 7달라, 싱글룸은 없단다. 이곳에 올때 여기서는 왠만하면 싱글룸에 있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도미토리가 싫은건 아닌데 한 이삼일은 좀 남들 눈치 안보고 편하게 쉬고 싶다. 그리고 그걸 떠나서 좀 주류에서 벗어나고 싶다. 괜히 바간에서의 'Ostello Bello'의 느낌이 날 곳이 뻔한 곳을 들어가고 싶지 않다. 게다가 미얀마에서 게스트하우스 이름이 찰리가 뭐냐 찰리가.
정중하게 거절하고 가방을 짊어지고 이동한다. 시포의 첫 인상은, '어둡다.' 바간에서도 아무리 저녁이라도 번화가는 뭔가 밝았는데 이곳은 전체적으로 어둡다. 그리고 두번째 인상은 그래도 있을건 다 있다는거다. 슬쩍 보니 식당에 주점에 핸드폰 가게까지 왠만한건 다 갖춰져있다. 왠지 내가 찾던 곳일 확률이 커보인다.
위치를 볼려고 핸드폰 지도를 실행하고 현재 위치를 누른다. 만달레이가 나온다. 이런, XXX. 내가 지금 만달레이에 있는 것처럼 보이니, 이 7만원짜리 메이드인 차이나 핸드폰아! 어쩔 수 없다. 재래식으로 물으면서 찾아가야지.
길에 앉아있는 아주머니들이 보이길래 접근한다. 어느 나라나 아주머니들은 말하기를 좋아하고, 물어봤을때 잘 알려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접근하니 환한 웃음을 지으시길래 역시 "밍글라바" 기술을 사용한다. 역시 바로 경계 해제, 여기서도 통한다.
내가 원래 찾았었던 '에버그린 게스트하우스'를 물어보니 서로 막 얘기하더니 아 거기, 하는 표정을 모두 일시에 짓는다. 서로 깔깔 거리며 막 얘기하다가 누군가 전화기를 든다. 뭐하시나 봤더니 전화해서 방 있나 물어봐주겠단다. 아니 이런 과잉 친절은 부담이... 게다가 좀 걷고 싶다. 괜찮다고 위치만 알려달라니까 게중에 영어가 좀 되시는 상대적으로 젊은 미얀마 미시분이 쭉 가다가 오른쪽으로 꺽어서 3거리를 가세요, 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역시 길은 아주머니들한테 물어봐야 한다.
생각보다 멀지 않다. 한 5분 걸었더니 근처에 온듯 하다. 내가 아는 또 하나의 꿀팁, 해당 숙소 이름의 와이파이가 잡히면 근처에 온거다. 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안쪽에 '에버그린 게스트하우스'가 눈에 들어온다.
첫인상은 마음에 안든다. 여기 오기 전에 숙소가 하나 보여서 물어보니 1인실에 5달라를 불렀는데 그냥 거길 갈걸 그랬나? 너무 체계적으로 보여서 마음에 안든다. 그래도 일단 오늘 하루는 여기 자고 내일 동네 분위기도 볼겸 한번 둘러봐야겠다.
들어가니 중국계 사장님이 맞이해준다. 이것도 뭔가 마음에 안든다. 외국 자본의 침입인가? 방을 물어보니, 1인실 기준, 화장실이 없는 방이 7달라, 개인 화장실 있는 방이 15달라란다. 화장실 밖에 있으면 어떤가. 어차피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거지 혼자만의 화장실을 가지고 싶은건 아니다. 7달라 짜리 방을 좀 보여달라고 한다.
방은 보니 딱 7달라짜리다. 뭐 그래도 빠이에서의 마이 숙소보다는 백배 낫다. 돌이켜보건데, 마이야 넌 사기꾼 기질이 좀 있었던것 같아. 여튼 방은 좋진 않지만 이정도면 일단 하루는 있을만하고 화장실을 보여달라고 한다.
화장실에 가자 마자 표정관리를 시작한다. 이 화장실은, 어릴때 시골 가면 할머니집에서 가끔 보던 그런 화장실. 인간적으로 그래도 양변기는 하나 있어야지. 옵션이 없으면 이것도 고려해보겠지만 지금 기준에서 이거는 내가 갈 길이 아니다. 게다가 샤워실은 그냥 구석에 샤워기 하나 달랑 달려있다.
아, 아무리 그래도 15달라짜리 방은 너무한데. 머리속이 복잡해진다. 지금이라도 찰리 도미토리를 가, 아니면 오는 길에 있던 5달라짜리 방을 갈까? 여기 사장님, 마음을 읽는 기술이 있나보다. 난 아무말도 안했는데 갑자기 15달라짜리 방을 13달라에 주시겠단다. 하긴 보아하니 파리 날리고 있더만.
방을 보니 여긴 뭐 완전 궁궐이다. 양변기에 침대도 퀸 사이즈, 뭐 완벽하다. 하지만 느낌 상 지금 네고파워는 나에게 와 있음을 느낀다. 이제 딜을 한번 시작해볼까?
일단 과감하게 10달라를 부른다. 사장님 놀래면서 그러면 아침을 못 준단다. 아침 포함 10달라를 다시 한번 부른다. 안된단다. 나 오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몇일 있을건지, 미리 계약하면 해주겠단다. 아 그건 또 안돼지.
그냥 아쵬 없이 10달라로 딜을 마무리한다. 이정도면 그래도 선방한거겠지? 몇일 있을거면 모르겠는데, 느낌 상 여기는 절대로 내일 나오지 싶다. 일단 현지분들과 교류도 하면서 있고 싶은데 스탭도 중국인에서 에러, 위치도 메인에서 벗어나 있고, 일단 분위기가 마음에 안든다.
이제 밥 먹으러 가야지. 사장님한테 근처 식당을 물어보고 길을 나선다. 사실 오는 길에 이미 스카우트를 대충 해서 번화가가 어딘지 충분히 알고 있다. 걸어가면서 다시 보니 이 동네 뭔가 마음에 든다. 바간처럼 너무 관광객 친화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또 너무 아무 것도 없는 것도 아닌, 내가 말한 중용의 미덕을 가지고 있는 동네가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 팍팍 든다. 물론 숙소만 잘 찾는다면.
메인 거리에서 아무데나 들어간다. 잘 모르니 아무데나 들어가는거지만, 사실 첫 인연이 향후 몇일을 좌지우지하기에 중요하다. 그렇다고 고민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들어간다.
프리미어리그를 현지인들과 관광객 몇명이 같이 보고 있다. 분위기는 약간 지저분하다. 딱 내 스타일이군. 일하는 종업원이 꽤나 미인이다. 오케이, 여기 단골로! 물론 난 임자가 있으니 여자 종업원분하고는 아무 상관없다. 그냥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앉아 있어도 메뉴판을 안주시길래 여자 종업원을 불러서 메뉴를 달라고 한다. 미안하다고 하길래 괜찮다고 한다. 메뉴를 보니 저렴하다. 오리구이가 3500키얏, 게다가 생맥주가 있다. 단돈 600키얏에!
여자종업원을 다시 불러서 오리구이와 생맥주를 하나 주문한다. 조금 앉아있으니 오리는 나오는데 생맥주가 안나온다. 여자종업원을 불러서 생맥주 안나왔다고 한다. 미안하다고 또 사과하길래 에이 뭐 그런거 가지고 하면서 괜찮다고 한다. 근데 자꾸 여자종업원 쓰기 너무 긴데 이름이라도 물어봐야 하나? 글 쓰기 편하기 위해서.
치맥이 아닌 오맥을 먹으면서 오늘 하루 정리를 쓰면서 축구를 보니 여기가 천국이다. 사장님, 매우 친근하셔서 오셔서 이것저것 말을 거신다. 한국인이라니 한국 여자들 너무 이쁘다고 해서 여자친구 사진을 보여줄려고 하는데, 핸드폰 배터리를 바꾸느라 못 보여준다. 에잇, 아쉽군.
티비에 갑자기 한국 드라마 광고가 나온다. 신소율 나오는 드라마인데, 뭐지? 난 처음본다. 여튼 이 오지에서도 한국 드라마 광고를 보니 매우 반갑다. 여기서는 한국인 만날 수 있을려나? 못 만난 덕분에 영어 회화 연습은 겁나게 하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인과 소주 한잔이 먹고 싶어지는 타이밍이다.
맥주 한잔 더! 여긴 기준이 330cc 라서 한잔은 너무 적다. 그래도 어제도 마셨으니 두잔으로 끝내야지. 여기 있는 꼬마 하나가 있는데 완전 귀엽다. 근데 하는 행동이 딱 미운 7살이다. 갑자기 냅킨을 막 뽑더니 바닥에 좀 혼나야겠다. 여자종업원 분의 딸일까 동생일까. 괜히 궁금해진다. 물어볼까?
여기 고양이가 두마리가 있다. 한마디 좀 만져줬더니 갑자기 폴짝 테이블 위로 올라온다. 잘 생겼구먼, 만져주니 좋아라한다. 근데 오리고기는 줘도 안먹는다. 털도 괜찮고, 키우는 아이인가? 근데 다른 놈은 눈병이 좀 있다. 털도 안좋고. 얘가 독식하나. 안타깝다. 에고. 또 우리 고양이들 생각나네...
피부 좋은 애는 좀 만져줬더니 아예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잔다. 이놈 이쁨 받는 방법을 아는구먼. 나한테서 고양이 좋아하는 오오라가 있나? 두마리 다 내 옆에 딱 붙어서 가지를 않는다. 하긴 내가 쓰담쓰담에 특별한 재능이 좀 있긴 하지. 내가 개발한 고양이 만지기 필법! 공짜로는 못 푼다.
맥주 두잔을 비우고 자리를 일어선다. 여기 단골로 만들까? 고민된다. 이래서 처음 가는 식당이 중요하다. 큰 이변이 없으면 단골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일 생각해봐야겠다.
어찌 보면 여행 다니면서 제일 늦은 시간의 귀가 같다. 10시 이후에 들어가는건 처음이다. 중간 중간에 현지인들이 많이 보이지만 미얀마에서는 무서울 일이 없다. 이 시간에도 "밍글라바"를 외치며 집으로 향한다.
아까 청소한다고 시간이 좀 필요하다 했으니, 지금쯤은 됐겠지? 돌아가니 스탭이 있다가 날 알아보고 여권을 준다. 와이파이 비번을 알려달라니 어디다 적어줘야 하는지 헤맨다. 그냥 쿨하게 손바닥에 적어달라고 한다. 뭘 그런걸 가지고.
오늘은 피곤하니 글만 올리고 바로 자야겠다. 숙소에 들어와서 짐을 푼다. 슬쩍 둘러보니 뭔가 아까랑 느낌이 다르다. 창문은 열리는건가? 닫을수도 열수도 없는 창문이다. 그 짧은 순간에 모기에 두방 물린다.
아 여기 좀 그런데? 그래도 나한테는 홈매트가 있으니까. 꼽았는데 불이 안들어온다. 이거 뭐지, 불이 나갔나? 혹시나 싶어서 핸드폰을 꼽으니 꼽는 방향성에 따라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그때 바닥에 거미 두마리와 커다란 바퀴벌레가 지나간다. 여기 뭐야... 무서워....
냉장고는 있는데 킨지 5년은 되어보인다. 왜 아까 청소하라고 시간을 달라고 했는지 알겠다. 청소는 하긴 한건가? 이불을 들추니 죽은 벌레 두마리의 시체가 보인다. 후 불어서 밑으로 떨어뜨린다.
마이야 미안해, 너희랑 비교할만한 곳이 아니었구나. 네가 그립다. 나, 진짜 왠만하면 아무 신경 안쓰고 잘 자는데, 여기 찝찝하다. 뭔가가 있다. 일단 머리를 굴려서 전선을 잘 조작하여 홈매트와 핸드폰 둘다 연결에 성공한다. 역시 사람은 머리를 굴려야 한다.
일단 씻으러 가볼까? 뜨거운 물 표시는 있는데, 지금까지 분위기 봐서는 안나오겠지? 역시 난 눈치 백단이다. 나올리가 없다. 뭐 이건 괜찮다. 뜨거운 물 따위야 없어도 아무 상관없다. 아까 얘기했지만 나 왠만해서는 찝찝해하지 않는다.
여기 유일한 장점은 와이파이가 그나마 잘 터지는거와 양변기 뿐이다. 그렇다면, 내일 근심을 잘 해결하고, 사진을 좀 올리고 떠야겠다. 사장님 자꾸 왜 연박을 물어봤는지 알겠다. 아 그래도 이건 아니지요... 여기 왜 스탭이 4명이나 있는거지? 그리고 아고다에 좋은 평 올린 놈들은 뭐여.
자본주의고 지랄이고 내일 당장 찰리네부터 한번 가봐야겠다. 역시 독점은 괜히 독점이 되는게 아니다. 뭔가 좋으니까 사람들이 가고 그러면서 독점으로 이어지는거다. 내 생각이 짧았다. 잘못했어요. 오늘 밤에만 잘 넘어가주세요.
처음으로 이불을 못 덮겠다는 생각이 든다. 날씨가 그나마 더워서 다행이다. 더워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다니... 일단 안되면 패딩이라도 빼서 입어야겠다. 어쨌든간에, 나의 시포에서의 첫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진은 절대 안올라가네요...
http://lkfar.tistory.com/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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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1등! 하긴 이곳 옥상에서 해뜨는걸 볼려고 5시반에 일어나서 올라오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거다. 문도 잠겨있어서 열고 들어왔다. 다행히 차는 보온병에 조금 남아있길래 한잔 따라서 자리를 잡는다.
저번에 해 뜨는게 잘 보이지 않았었나? 해지는거였나? 건물들이 시야를 가려서 해뜨는걸 제대로 보기는 힘들겠다.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혼자 조용히 아침의 냄새를 맡으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이 기분이 좋아서 올라온거다. 한국에도 새소리가 이리 많이 들렸었나? 아침을 깨우는 새소리가 한국에 가면 많이도 그리울거다.
숙면을 취하는데 필요한 요소 중 하나가 다른 룸메이트들과의 친화성도 필요한가보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인사도 못 나눈체 잠을 자서 그런지 보통 취침시간인 10시를 훌쩍 넘기고 거의 한시가 되어서 잠이 들었다. 바간에서 다른건 몰라도 잠은 정말 잘 잤었다. 거기에 편안한 룸메이트들도 하나의 이유였나보다. 정리하면 숙면을 위한 필수요소는, 푹신한 침대, 어느정도 두께가 있는 이불,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에어컨, 그리고 어느정도 친분이 있는 코를 골지 않는 룸메이트, 이렇게 될듯하다. 이거 뭐, 쉽지 않겠구먼.
오늘은 Hsipaw로 떠나는 날. 또 다시 5시간 버스 여행이다. 뭐 어디든 대충 5시간인가보다. 그쪽으로 가기로 결정한게 잘한거겠지? 사실 트레킹이 좋다는거 말고는 아는 정보도 별로 없다.
단, 어제 잠시 구글링해서 찾은 정보에 의하면 그쪽도 게스트하우스의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한다. 두개의 게스트하우스가 거의 독점을 하고 있고, 그로 인하여 트레킹 중계를 해주면서 수수료를 50% 이상을 가져가고 있단다. 만약 네고를 한다 하더라도 걔네 수수료에서 깍이는게 아니라, 트래킹 가이드 개인의 수수료에서 깍아주게 된다.
한때 이슈가 됐던 배달 업체 문제처럼, 중계로 인하여 한 산업이 발전한다면 당연히 그거에 대한 댓가, 즉 수수료는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독점이 되어서 횡포가 시작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러면 불평등이 심해지고 양극화가 시작된다. 뭐 나 하나가 다른 곳에 간다고 크게 변화가 생길가만은, 다른 게스트하우스 쪽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요즘 '21세기 자본론'을 굉장히 흥미있게 보고 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인구의 증가가 경제 발전, 정확히는 전체 경제 생산품의 증가에 결정적인 요소라는 것을 예전에는 깨닫지 못하였다. 그리고 인구 증가폭이 역사적으로 연2%가 넘으면 정말 많은 거였고, 지금은 아프리카의 분발로 1%대라는 것도 나름 신선하다. 그럼에도 복리의 마법으로 인하여 몇년 지나면 절대적인 증가치는 엄청나게 된다.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인구 증가폭이 적을 수록 이론적으로는 부의 불평등이 심해진다는거. 한마디로 인구가 그대로 유지될 시 부가 세대를 통하여 상속되게 되고 또한 새로운 활동이 발생하지 않게 되어 부자는 계속 부자로, 가난은 계속 가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아직 초반을 읽고 있지만 역시 사회과학은 흥미롭다. 특히 부의 재분배가 원활하지 못한 것이 사회의 성장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믿기에 더 관심있게 보고 있다.
어느새 해는 뜨고, 여자 스탭 두분이 와서 청소를 시작한다. 미얀마는 청소를 참 빡시게 한다. 식사를 준비하시는 동안 책을 피고 몇자 더 본다.
곧 아침이 나온다. 여기 아침 사실 그다지 별게 없는데도 나쁘지 않다. 그냥 계란을 담근 토스트와 과자 하나인데 뭔가 정성이 담긴 느낌이다. 앉아서 아침을 깔끔하게 해치우고, 토스트도 두개를 추가로 먹는다. 오늘 이동하니 배를 잘 채워놔야지.
다 먹고 나서 빈 그릇을 들고 스탭분들한테 갖다준다. 사실 이건 버릇처럼 하는건데 이것만 해도 스탭들은 매우 좋아한다. 이제는 내 인상을 확실히 남겼는지, 내 얼굴만 보면 다들 호의적인 표정을 짓는다. 어디든 좋은 인상을 남기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8시가 되니 살짝 더워지기 시작해서 방으로 돌아온다. 다 자고 있구나. 이놈들은 아침 안먹나? 남자들만 있는 방은 확실히 들어오면 땀냄새가... 나도 여기 일조할려나. 아니, 나는 그래서 어제 빨래를 했지. 난 깔끔한 남자니까.
여행 와서 처음으로 배탈이 났다. 어제 먹은건 그 맛있던 새우 밖에 없는데. 간만에 생맥주를 먹어서 그런가? 그러고보니 생막걸리 처럼 생맥주도 유산균이 들어가나? 화장실을 3번을 간다. 근데 또 SS는 아닌거 보면 그냥 많이 먹어서 장이 정상적으로 작용을 하는건가 싶기도 하다.
내 위층에는 아침에 동양인이 하나 왔다. 한국인인가? 한국인 아니면 일본인인거 같은데. 이제 여행에 익숙해져서 말 걸지 말지도 그다지 고민 안한다. 그냥 땡기는데로. 잠시 누워서 개인 정비를 조금 더 하다가 말을 살짝 걸어본다.
역시 일본인이다. 미얀마에 왔다간 한국인들 여행기를 꽤나 본 기억이 나는데 이들은 다 어디 있는걸까? 단 한명도 못 만났다.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한국인은 내가 처음이란다. 여기서 만나면 굉장히 반가울듯 한데 아쉽다.
짧은 일본어로 이 친구와 여러 얘기를 나눠본다. 이름은 '히로', H2의 주인공이랑 같다고 내가 좋아한다. 잠시 얘기를 나누고 있으니 이 친구의 일행인지 싶은 서양인들이 들어온다. 일행인가? 여튼 그들이 무슨 복싱을 보러 간다고 한다. 어? 여기 막 스트리트 복싱 같은게 있나? 순간 급 관심이 생겨서 물어본다. 타이복싱 같은거 있냐고 하니까 무슨 소리냐며 오늘 중요한 매치 있지 않냐고 되묻는다. 아, 갑자기 세기의 창과 방패의 대결 '마이웨더 vs 파퀴아오'가 이쯤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 시합이란다. 오, 동남아에서 파퀴아오의 시합을 볼 수 있다니, 이것은 진정 행운이다. 물어보니 현지 식당에서 볼 생각이라고 한다. 당연히 합류해도 되냐고 물어보고 숫가락을 얹는다. 제주도에서 김연아 올림픽 경기를 봤듯이 이것도 꽤나 잼있을듯 하다. 기대 만빵!
이들을 따라 나선다. 은근히 그룹이 크다. 로비에 서양인이 5명이 앉아있는데 딱 보니 다 영국인 같이 생겼다. 이제 좀 만나다보니 억양과 외모를 보면 대충 감이 잡힌다. 물어보니 역시 다 영국인이다. 한명은 여자친구랑 같이 다니고 있다. 여자가 꽤나 미인인데, 누구를 닮았는데 기억이 안난다.
영국인이라 어김없이 지숑팍을 물어보니 박주영을 오히려 얘기한다. 아스날 쪽에 산단다. 호 그래도 박주영이 잊혀지지는 않았구나. 그러고보니 외국인들이 한국에 갖는 이미지를 하나 발견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거의 다 이스포츠에 대해 물어본다. 정말로 대형 경기장에서 그렇게 보는지. 니네가 그게 얼마나 잼있는지 몰라서 그랴. 아 그때가 그립다. 홍진호 팬으로서 임진록은 정말 잼있었는데. 코카콜라배 잼있었지.
히로와 같이 합류하여 7명이 앞에 식당으로 간다. 이미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시합을 기다리고 있다. 자리가 없어서 두리번 거리고 있으니 종업원들이 앞쪽의 현지인들과 합석을 해준다. 제일 좋은 자리다. 오, 좋군 하며 먼저 있던 분들한테 인사를 하고 앉는다. 사실 마이웨더, 파퀴아오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하도 주변에서 얘기를 하니 관심은 많이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예전에 짧지만 6개월 정도 복싱을 배운 적이 있다는거, 물론 스파링도 못하고 끝났지만.
현지인들 앉아있다가 뒤쪽으로 옮긴다. 왜지? 우리가 불편했나보다. 이러면 너무 미안한데... 하지만 우리가 쫓아낸것도 아니고 이 자리를 우리가 온 것도 아니니 책임감은 안갖는다.
무슨 시합 시작하는데 백만년이 걸린다. 원래 권투라는게 메인 메치 전에 한첨 걸리는걸 알고는 있었지만 전에 시합들이 다 끝난 상황인데도 한참이다. 뭔놈의 공식 소개를 3번이나 하냐...
아, 갑자기 여자분 누구 닮았는지 생각났다. 비긴 어게인의 그 케이틀리 뭐시기 배우를 닮았다. 생각나서 바로 얘기하니 누군지를 모른다. 지금 6개월째 여행 중이라 영화 같은건 못 봤단다. 그러고 보면 이들은 참 오래 여행 잘 다닌다. 여자친구랑 같이 다니는 것도 생각보다 괜찮아보인다. 오늘 아침부터 노여사가 엄청 보고 싶더니, 뭔가 나중에 기회되면 같이 1년 세계일주를 하는 것도 꽤나 잼있을거 같다. 물론 돈이 문제겠지만.
드디어 시합 시작! 그새 구경하는 사람들은 더 모였다. 이거 시작 전에 하도 양념을 쳐놔서 막상 시작할때 되니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선수들이 위빙, 더킹 연습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따라하고 있다. 사실 펀치만 배우고 수비는 배우지도 않았다. 뭐 그래도 잼있잖아.
1회전이 시작하자마자 스타일 파악이 된다. 마이웨더는 전형적인 수비 위주의 아웃복싱, 파퀴아오는 인파이터인데다 왼손 잡이인 사우스포이다. 이거 잼있겠다. 그런데 서양인들도 모두 파퀴아오 편이다. 경기 스타일 상 마이웨더 팬은 거의 없어보인다. 현지인들이야 당연히 파퀴아오에 열광한다.
2회전, 3회전, 쭈욱 11회전까지 형태가 동일하다. 마이웨더는 막고, 파퀴아오는 뚫을려고 하고. 펀치가 적중되거나 아깝게 빗나갈때마다 식당에 환호와 아쉬운 탄식이 이어진다. 우리도 모두 이들과 동화되어 똑같이 기뻐하며 안타까워하며 경기를 지켜본다. 생각해보면 누가 한명 얻어터지는데 환호를 하는거긴 하지만 이건 정당한 스포츠니 괜찮다.
아쉽게도 무엇이든 뚫는 창은 무엇이든 막는 방패를 결국 뚫지 못하였다. 홍진호를 항상 응원했지만 3연벙에 무너졌듯이 모두가 파퀴아오의 경기 스타일에 환호했지만 승리는 영리한 플레이를 한 마이웨더에게 돌아갔다. 사실, 나도 보면서 마이웨더에 감탄했다. 하루종일 싸워도 얼굴 한번 제대로 때리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압도적인 수비였다. 특히 경기 초반에 얼굴 한대 맞고 작정하고 얼굴 몸을 완벽 방어할때는 감탄이 나왔다. 무패라는 타이틀이 괜히 주어진게 아니다.
이제 슬슬 밥 먹고 갈 준비를 해야 해서 내 차값 500키얏을 주고 먼저 일어난다. 벌써 시간이 11시반이다. 아 너무 덥다. 10시가 넘으면 절대 밖에 있으면 안된다. 찌는듯한 햇빛을 뚫으며 숙소로 돌아온다.
혼자 밥을 먹으러 간다. 그래도 만달레이를 왔는데, 처음 점심 먹었던 그 친구네 한번은 가야하지 않겠나. 카메라와 지갑만 들고 터벅터벅 걸어간다. 이 동네 이틀 밖에 안있었는데 미얀마 전체에서 가장 익숙하고 편한 장소가 되었다. 바간에서는 그리 오래 있었는데도 끝까지 불편하더니. 진짜 익숙해지는 것은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저번에 왔을때와는 다르게 익숙하게 두가지 고기반찬과 두가지 채소를 고르고 자리에 앉는다. 이번에는 점심 시간 근처에 와서 그런지 오이, 고추 등 무한 리필 되는 공짜 야채가 자리마다 있다. 음식을 받고 내 자리에 온 이후 야채가 없길래 익숙하게 옆 테이블에서 가지고 온다.
여기 처음에 먹었을때는 맛이 그렇더니 이번에는 아무 생각 없이 익숙하게 먹어서 그런지 꽤나 맛있다. 오, 이 정도면 훌륭한데. 물론 1200키얏에 10,000키얏 이상을 줬던 고급 식당하고 비교하면 안된다. 하지만 한끼 적당히 떼우기에는 아주 흡족하다. 특히 5각형으로 되어 있는 여기서 처음 보는 고추가 특이하고 맛있다. 약간의 전분맛도 나는게 식감이 독특하다.
이번에는 나오면서 능숙하게 "제주디마래'를 외친다. 여기를 오니 내가 미얀마에 적응했다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음식도 맛이 있어지고, 사람들도 익숙하고, 공기 자체도 익숙하다.
숙소로 돌아온다. 근데 장이 확실히 탈났나보다. 화장실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간다. 5시간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큰일이다. 잘못하면 버스에서 지옥을 맛볼지도 모르겠다. 미얀마에서 버스 기사를 붙잡고 울면서 세워달라고 하기 싫은데...
이제 가야 할 시간이다. 이층에 있는 'Yuan'이라는 영국인도 저녁 버스로 'Hsipaw'로 온다. 잘하면 만날 수도 있겠다. 그쪽을 독점하고 있다는 'Mr. Charlie'로 갈지 말지, 일단 도착해서 알아봐야겠다. 유안한테는 기회되면 다시 보자고 하고 나머지에게는 안전한 여행을 하라고 인사한다.
내려오는 길에 여자 스탭 둘을 만난다. 몇번의 노력(?) 끝에 둘과 친해져서 이제 나한테 말도 건다. 체크아웃 하냐고 묻길래, 걱정말라고 곧 또 돌아온다고 한다. 어디로 가냐고 물어서 'Hsipaw'로 간다니 잘가라고 인사도 해준다. 이 분들 그러고 보니 말하는거 처음 들은거 같기도 하다. 확실히 사람은 마음을 열어줘야 상대방도 마음을 열어준다.
버스를 기다리러 1층 로비로 내려온다. 유일하게 하루종일 에어컨이 틀어져있는 쿨링룸. 여기서 애들하고 수다를 떨면서 버스를 기다린다. '로키'라고 부르는게 마음에 안들어서 이름을 물어본다. '쪼우마', 외워야겠다. 내 이름도 물어봐서 알려는 주는데, 내 이름 제대로 발음하는 사람은 본적이 없다. 그냥 첫글자인 'Key'라고 부르라고 한다. 어차피 다시 올거라서 여기 메일 주소를 적어간다. 만석이 될지 모르니 오기 전에 꼭 메일하란다. 흠, 한번도 꽉찬걸 본적이 없는데... 너무 자신감이 과한거 아닐런지. 그래도 예약해서 나쁠건 없으니 출발 하루 전에 메일 보내야겠다.
근데 1시반이 됐는데 왜 내 오토바이 택시는 안오는거지? 쪼우마한테 얘 왜 안오냐고 물어보니 옆에 이미 와있단다. 아니, 아까부터 옆에 앉아있던 현지인이 그 운전수였어? 아니 이 미련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말을 해야지. 내가 키보드를 치고 있으니 중요한 일 하는 줄 알고 방해 안했단다. 아니 난 그냥 더워서 에어컨 빵빵한 이곳에 와서 기다리면서 글 좀 쓴거 뿐인데.
엄청 미안해서 미안하다고 대여섯번 말하고 출발하자고 한다. 쪼우마가 밖에까지 따라나와서 여권은 챙겼냐, 버스 표는 어디있냐, 손에 쥐고 가라 하면서 엄마처럼 챙겨준다. 아, 이래서 이곳을 잊을 수가 없다. 다시 오기 전에 꼭 메일 부터 보내라고 당부한 다음에 내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들어간다.
기사 아저씨도 매우 순박하다. 근데 여기 현지인들 앞니가 누렇게 뜨는건 왜 그런지 모르겠다. 쪼우마도 그래서 로키라고 불리는거 같던데, 건강에 안좋은거 아닌가.
이 아저씨는 운전도 순박하다. 조심스레, 안전하게 운전해서 나를 데려다 준다. 보아하니 버스 정거장에 내리면서 이곳에 돈도 낸다. 내가 2000키얏 주고 여길 왔는데 여기서 또 뭘 뺏지. 이럴때는 너무 싸게 다니는게 아닌가 싶은 죄책감이 든다.
버스가 완전 고급이다. 이야, 미얀마에도 이런 버스가 있구나. 오늘은 좀 럭셔리하게 갈 수 있겠다. 버스를 타러 가니 표를 확인 후 저쪽으로 가라고 한다. 표를 교환해야 하는건가?
교환하러 가니 교환이 아니라 시간이 이르니 저기 앉아서 기다리란다. 시장 같이 되어 있는 곳에 앉아서 어김없이 키보드를 핀다.키보드를 피면 경계심 가득하던 근처 꼬마들이 모여든다. 이번에도 서너명이 오더니 옆에 와서 앉는다. 밍글라바를 외쳐주고 웃어주니 수줍게 웃는다. 이때 카메라가 주머니에서 떨어져서 애가 줏어준다. 이왕 이리 된거, 꼬마한테 내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니까 막 수줍어 하며 도리도리하며 카메라를 주고 도망간다. 아니 나 셀카가 너무 없다고. 좀 찍어주지 뭘 이리 수줍어 한댜.
바간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미얀마 사람들의 순박함이 다시 느껴진다. 인도에서 그리 보이던 "원달라"도 여기서는 단 한번도 못 봤다. 어찌 보면 그래도 다들 의식주는 해결되는거라고 봐도 될려나. 이곳도 여행자로 인해 어느순간 물들겠지. 여행자로서 이런 곳은 언제까지나 지키고 싶은 마음이다. 현지인들 모여있는 시장 한복판에 떡하니 앉아 있어도 친근한 시선과 마주할 수 있는 곳, 한 저녁에도 신변의 위험을 느낄 수 없는 곳, 인도와는 확연하게 다른 매력이 있다.
2시가 지나고 나서 버스 문이 열리길래 들어간다. 아 더운데 에어컨이 나오는 버스라 다행이다. 안에는 막상 그렇게 생각만큼 호화롭지는 않다. 서울에서 본다면 그냥 일반적인 고속버스이다. 하지만 뭔가 여기서 보니 느낌이 다르다. 럭셔리한 자리와 시원한 에어컨, 거기에 커다란 버스의 몸체까지, 다 마음에 든다.
자리를 찾아보니 맨 뒤다. 아 맨 뒤 많이 흔들거려서 싫은데 별 수 없다. 외국인은 나 말고 독일어를 쓰는 3명이 탔다. 그 중 한명은 오른쪽 팔이 팔꿈치부터 잘려있다. 나도 4년간 장애인을 가르친 경험이 있지만 이런 경우 참 난감하다. 도와주고 싶지만 도와주면 안되고. 정답은 도와달라고 요청할때 도와주는거겠지.
바로 옆에도 한 할아버지가 앉고 왼쪽에도 다 현지인들이 앉는다. 한 젊은 남자분이 내 옆에 앉는데 표정이 이상하길래 보니까 내 자리랑 바꼈다. 내가 자리를 잘못 봤나보다. 미안하다고, 자리를 바꾸자고 하니 괜찮단다. 가운데 자리라 불편할텐데... 덕분에 5시간 조금 더 편하게 가게 되었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그 아저씨는 옆에 앉더니 핸드폰을 열고 사천성을 한다. 미얀마에도 사천성이 있구나. 그리고 핸드폰이 노트4다...
노여사의 사진을 배경으로 해놨더니 핸폰을 켤때마다 사람들이 보고 집중한다. 역시 남자들 눈은 똑같다. 이쁜건 알아가지고. 오늘 결혼식에서도 다 같이 찍은 사진 카톡으로 보내주기에 혼내준다. 결혼식에서 이런 이쁜 애는 사진에 나오지 말아야지, 민폐다.
그러고보면 6년 전 인도에서 만났을때 첫눈에 반하였고, 한달동안 다니면서 가치관에 반했었다. 근데 이건 내 얘기고, 얘는 내 어떤 면에 매력을 느낀걸까? 친구들이 이승기 닮았다고 하는 귀여움? 가끔 이서진 닮았다고 하는 부티크한 외모?
생각해보니, 연애 초기에 헤어질뻔한적이 꽤 있었다. 당시, 나는 내 잘난 맛에 살던, 세상에 내가 전부인줄 아는 한량아였다. 사람들을 만나면 일단 무조건 그들의 존재 위에 내가 군림하고자 하였고, 그로 인해 상처 받는 사람들의 상처는 오히려 훈장처럼 여겼다. 본질적으로 나쁘지는 않았던거 같은데 무의식적으로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도 잘 몰랐던 나의 이런 점이 노여사를 만나면서 수면으로 확 드러났다. 그 친구의 직접적인 지적에 나는 내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진정한 강함은 겉으로 드러나는게 아니라 내 자신 안에 있다는 걸 몰랐었다. 솔직히 지금도 이러한 '병'을 완전히 치유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인천에서 올라온 순수한 처녀의 '간호'로 인하여 나름 인간이 많이 되었다고 믿는다.
이번 버스도 5시간이 걸린다. 항상 5시간이다. 만달레이에서 바간도 5시간이었고, 이번에 시포도 5시간이다. 무슨 이유가 있는걸까? 버스를 하도 타다 보니 그냥 익숙해졌다. 한국에서는 부산 가는 버스 5시간 타고 나면 이틀을 쉬어도 피곤한데, 여기는 타고 가고 다음날 바로 타고 올 수도 있다.
원래 시포는 10시간짜리 기차여행이 유명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끄트머리에 있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나무로 만든 다리를 건너는 과정이 하나의 관광상품이다. 하지만 그 하나만을 위해서 10시간을 타는건 좀 오바 같아서 나는 버스를 타고 시포를 간 후, 돌아올때 핀오린이라는 동네까지만 기차를 탈려고 한다. 4시간 기차 여행에 그 다리를 건너게 됨으로 중요한 부분은 보게 되고, 시간도 여유가 생긴다. 물론 예상대로 됐을때겠지.
2시간 타고 가니 버스가 휴게소에 멈춘다. 굳이 내리기 싫은데 모두가 내려야 해서 따라 내린다. 아 이상하게 이번 버스 여행은 좀 지겹다. 미니버스가 아닌 대형버스라서 멍 때린는 느낌이 안나서 그런걸까나.
20분이 지나고 다시 버스에 올라탄다. 근데 여인 두명이 추가로 탄다. 맨 뒤에 앉는데, 이러면 왼쪽에 있던 할아버지가 탈 자리가 없어진다. 뭔가 자리배치에 문제가 생긴걸까? 내가 불안해하고 있으니 현지인들끼리 뭐라뭐라 하더니 합의를 본듯하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조금 있다 할아버지가 오니 혼란이 생긴다. 아니 뭘 합의 본 것 처럼 행동한거지. 이리 저리 한참 얘기를 하다가 결국 내가 창가자리로 가고 할아버지는 앞에 자리로 간다. 뭐 나야 좋아하는 창가자리로 왔으니 좋다.
왼쪽으로 슬슬 해가 질려고 한다. 버스는 계속에서 산으로 올라간다. 시포가 산동네였던가. 조사를 거의 안하고 왔더니 아는 정보가 없다.
이제 거의 여행을 반쯤 하고 나니 어떤 과정에서 감정의 기복이 약해졌다. 어찌 보면 내가 항상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에서 여행을 일상처럼 느끼게 된거겠지. 그럼에도 하루 하루 뭔가 새로운 모험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하게 되는게 또 여행인가보다. 시포에서의 트래킹은 또 얼마나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생길까? 아니면 일상처럼 평온한 일들의 연속일까. 아직은 모르겠다.
핸드폰이 부르르 울린다. 산간 지방인데 3G 연결이 됐나보다. 노여사한테 카톡이 와있다. 집안일을 이것저것 했다고 한다. 그 게으르던 아이가 내가 없으니 이것저것 부지런해졌다. 역시 사람은 상대적이다. 누군가 일을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한테 의존하게 되지만 그 사람이 사라지면 또 그 일을 잘 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할까나. 직장인의 가장 큰 착각이 '나 없으면 회사 안돌아간다'이다. 걱정마라, 아주 잘, 매우 잘 돌아간다. 나도 예전에 회사 나올때 내가 여기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리 큰데 나가면 일에 문제가 생기는거 아니야 하고 걱정 많이 했었는데, 조금 삐걱거리긴 했지만 무난히 잘 돌아가더라.
같은 의미로 좀 서글픈 얘기지만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세상은 전혀 꿈쩍하지도 않는다. 세상에 아무리 많은 변화를 남긴 사람이라도 다 똑같다. 일부 사람들이 기억할지 모르지만, 부모가 아닌 이상은 곧 잊고 자기 길을 살아간다. 그러하기에 현재 내가 살아있는 동안 행복한게 제일 중요하다.
이제 시포에 거의 다 와가나? 6시가 지나니 주변에 경관들이 바뀐다. 완전한 숲속을 가는듯 하며 길도 꼬불꼬불 매우 꺽여있다. 두차가 동시에 못 지나가서 반대편 차가 오면 잠시 기다렸다가 지나간다. 해는 그 와중에도 마지막 주황색 오오라를 뿜으면서 산 밑으로 내려갈 준비를 한다. 7시반 도착이니 이제 거의 다 오긴 왔나보다. 이런 산골 지방은 보급을 어떻게 받는지 궁금해진다. 여기도 태국의 섬들처럼 물가가 엄청 비싼거 아니야? 미얀마에서 핸드폰도 사고 하면서 예상외 지출이 많아서 좀 절약해야 할거 같은게 갑자기 걱정이 든다. 그나저나 이 좁은 길을 트럭들이 양방향으로 다니니 매우 아찔하다. 빠이 가는 길 보다 여기가 훨씬 위험해보인다. 무사히만 가다오.
근데 이거 이래서 언제 간다냐. 안전하게 가는건 좋지만 길이 워낙 험해서 5분마다 멈춰서 반대쪽 차가 가기를 기다린다. 어쩐지 직선 거리는 200키로 정도인데 왜 이리 오래 걸리나 싶었다. 그래도 안전이 제일이지. Safe Trip!
얼마나 올라온걸까? 달이 산 꼭데기 매우 가까운 곳에 떠 있다. 이리 가깝게 달이 떠 있으니 뭔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밖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우리는 아직도 산 중간 어딘가에 있다. 어두운 와중에도 사람들이 사는 집들이 몇몇 보인다. 불도 안키고 어떻게 살아갈런지. 하도 오래 타서 엉덩이가 아프다. 예전에 외할머니가 그랬듯이 왼쪽 다리를 의자에 올리니 좀 낫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힘든 버스 이동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왜 이곳에서도 별은 그다지 안보이는거지? 이왕 이렇게 오지로 왔으면 별이 좀 많이 보였으면 좋을텐데 아쉽다.
도시의 빛이 꽤 보이기 시작한다. 아 저긴가? 드디어 도착인건가? 버스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더니 결국 멈춘다. 아 5시간 걸린다더니 그 정도 걸리네. 근데 사람들은 안내리고 버스 스탭만 내린다. 스탭이 트렁크를 열더니 뭔가를 꺼내 한 가게에 넘기고 돈을 받는다. 그리고 다시 출발. 미얀마 택배 시스템인가보다.
이거 도데체 언제 도착하는거야. 슬슬 사람들이 일어나있기 시작한다. 다른건 괜찮은데 엉덩이가 아파서 힘들다. 근데 여기 마을이 있기나 한건지 모르겠다. 가끔 지나가는 작은 마을들도 전구 하나에 의존하는 집들이 대부분이어서 여기에 여행자들이 방문할만한 규모의 마을이 있다는게 상상이 잘 안된다.
이번에는 진짜인가보다. 좀 큰 마을에 들어서더니 사람들이 슬슬 짐을 싸기 시작한다. 아 힘든 여정이었다. 여기서는 좀 오래 지내야겠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다시 이 버스를 탈려면 심신의 안정이 필요하다. 다른 버스는 다 괜찮았는데 이번 버스는 힘들다.
진짜로 보스가 멈추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안 마신 물이 있길래 살짝 가방에 넣고 (버린거 담은거니 괜찮겠지) 세컨드 백을 메인백에 넣는다. 예약을 안하고 가는거라 좀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리자마자 역시 이곳을 장악하고 있다는 'Mr. Charlie'의 스탭들이 대기하고 있다. 가면 바로 태워준단다. 도미토리는 7달라, 싱글룸은 없단다. 이곳에 올때 여기서는 왠만하면 싱글룸에 있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도미토리가 싫은건 아닌데 한 이삼일은 좀 남들 눈치 안보고 편하게 쉬고 싶다. 그리고 그걸 떠나서 좀 주류에서 벗어나고 싶다. 괜히 바간에서의 'Ostello Bello'의 느낌이 날 곳이 뻔한 곳을 들어가고 싶지 않다. 게다가 미얀마에서 게스트하우스 이름이 찰리가 뭐냐 찰리가.
정중하게 거절하고 가방을 짊어지고 이동한다. 시포의 첫 인상은, '어둡다.' 바간에서도 아무리 저녁이라도 번화가는 뭔가 밝았는데 이곳은 전체적으로 어둡다. 그리고 두번째 인상은 그래도 있을건 다 있다는거다. 슬쩍 보니 식당에 주점에 핸드폰 가게까지 왠만한건 다 갖춰져있다. 왠지 내가 찾던 곳일 확률이 커보인다.
위치를 볼려고 핸드폰 지도를 실행하고 현재 위치를 누른다. 만달레이가 나온다. 이런, XXX. 내가 지금 만달레이에 있는 것처럼 보이니, 이 7만원짜리 메이드인 차이나 핸드폰아! 어쩔 수 없다. 재래식으로 물으면서 찾아가야지.
길에 앉아있는 아주머니들이 보이길래 접근한다. 어느 나라나 아주머니들은 말하기를 좋아하고, 물어봤을때 잘 알려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접근하니 환한 웃음을 지으시길래 역시 "밍글라바" 기술을 사용한다. 역시 바로 경계 해제, 여기서도 통한다.
내가 원래 찾았었던 '에버그린 게스트하우스'를 물어보니 서로 막 얘기하더니 아 거기, 하는 표정을 모두 일시에 짓는다. 서로 깔깔 거리며 막 얘기하다가 누군가 전화기를 든다. 뭐하시나 봤더니 전화해서 방 있나 물어봐주겠단다. 아니 이런 과잉 친절은 부담이... 게다가 좀 걷고 싶다. 괜찮다고 위치만 알려달라니까 게중에 영어가 좀 되시는 상대적으로 젊은 미얀마 미시분이 쭉 가다가 오른쪽으로 꺽어서 3거리를 가세요, 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역시 길은 아주머니들한테 물어봐야 한다.
생각보다 멀지 않다. 한 5분 걸었더니 근처에 온듯 하다. 내가 아는 또 하나의 꿀팁, 해당 숙소 이름의 와이파이가 잡히면 근처에 온거다. 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안쪽에 '에버그린 게스트하우스'가 눈에 들어온다.
첫인상은 마음에 안든다. 여기 오기 전에 숙소가 하나 보여서 물어보니 1인실에 5달라를 불렀는데 그냥 거길 갈걸 그랬나? 너무 체계적으로 보여서 마음에 안든다. 그래도 일단 오늘 하루는 여기 자고 내일 동네 분위기도 볼겸 한번 둘러봐야겠다.
들어가니 중국계 사장님이 맞이해준다. 이것도 뭔가 마음에 안든다. 외국 자본의 침입인가? 방을 물어보니, 1인실 기준, 화장실이 없는 방이 7달라, 개인 화장실 있는 방이 15달라란다. 화장실 밖에 있으면 어떤가. 어차피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거지 혼자만의 화장실을 가지고 싶은건 아니다. 7달라 짜리 방을 좀 보여달라고 한다.
방은 보니 딱 7달라짜리다. 뭐 그래도 빠이에서의 마이 숙소보다는 백배 낫다. 돌이켜보건데, 마이야 넌 사기꾼 기질이 좀 있었던것 같아. 여튼 방은 좋진 않지만 이정도면 일단 하루는 있을만하고 화장실을 보여달라고 한다.
화장실에 가자 마자 표정관리를 시작한다. 이 화장실은, 어릴때 시골 가면 할머니집에서 가끔 보던 그런 화장실. 인간적으로 그래도 양변기는 하나 있어야지. 옵션이 없으면 이것도 고려해보겠지만 지금 기준에서 이거는 내가 갈 길이 아니다. 게다가 샤워실은 그냥 구석에 샤워기 하나 달랑 달려있다.
아, 아무리 그래도 15달라짜리 방은 너무한데. 머리속이 복잡해진다. 지금이라도 찰리 도미토리를 가, 아니면 오는 길에 있던 5달라짜리 방을 갈까? 여기 사장님, 마음을 읽는 기술이 있나보다. 난 아무말도 안했는데 갑자기 15달라짜리 방을 13달라에 주시겠단다. 하긴 보아하니 파리 날리고 있더만.
방을 보니 여긴 뭐 완전 궁궐이다. 양변기에 침대도 퀸 사이즈, 뭐 완벽하다. 하지만 느낌 상 지금 네고파워는 나에게 와 있음을 느낀다. 이제 딜을 한번 시작해볼까?
일단 과감하게 10달라를 부른다. 사장님 놀래면서 그러면 아침을 못 준단다. 아침 포함 10달라를 다시 한번 부른다. 안된단다. 나 오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몇일 있을건지, 미리 계약하면 해주겠단다. 아 그건 또 안돼지.
그냥 아쵬 없이 10달라로 딜을 마무리한다. 이정도면 그래도 선방한거겠지? 몇일 있을거면 모르겠는데, 느낌 상 여기는 절대로 내일 나오지 싶다. 일단 현지분들과 교류도 하면서 있고 싶은데 스탭도 중국인에서 에러, 위치도 메인에서 벗어나 있고, 일단 분위기가 마음에 안든다.
이제 밥 먹으러 가야지. 사장님한테 근처 식당을 물어보고 길을 나선다. 사실 오는 길에 이미 스카우트를 대충 해서 번화가가 어딘지 충분히 알고 있다. 걸어가면서 다시 보니 이 동네 뭔가 마음에 든다. 바간처럼 너무 관광객 친화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또 너무 아무 것도 없는 것도 아닌, 내가 말한 중용의 미덕을 가지고 있는 동네가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 팍팍 든다. 물론 숙소만 잘 찾는다면.
메인 거리에서 아무데나 들어간다. 잘 모르니 아무데나 들어가는거지만, 사실 첫 인연이 향후 몇일을 좌지우지하기에 중요하다. 그렇다고 고민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들어간다.
프리미어리그를 현지인들과 관광객 몇명이 같이 보고 있다. 분위기는 약간 지저분하다. 딱 내 스타일이군. 일하는 종업원이 꽤나 미인이다. 오케이, 여기 단골로! 물론 난 임자가 있으니 여자 종업원분하고는 아무 상관없다. 그냥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앉아 있어도 메뉴판을 안주시길래 여자 종업원을 불러서 메뉴를 달라고 한다. 미안하다고 하길래 괜찮다고 한다. 메뉴를 보니 저렴하다. 오리구이가 3500키얏, 게다가 생맥주가 있다. 단돈 600키얏에!
여자종업원을 다시 불러서 오리구이와 생맥주를 하나 주문한다. 조금 앉아있으니 오리는 나오는데 생맥주가 안나온다. 여자종업원을 불러서 생맥주 안나왔다고 한다. 미안하다고 또 사과하길래 에이 뭐 그런거 가지고 하면서 괜찮다고 한다. 근데 자꾸 여자종업원 쓰기 너무 긴데 이름이라도 물어봐야 하나? 글 쓰기 편하기 위해서.
치맥이 아닌 오맥을 먹으면서 오늘 하루 정리를 쓰면서 축구를 보니 여기가 천국이다. 사장님, 매우 친근하셔서 오셔서 이것저것 말을 거신다. 한국인이라니 한국 여자들 너무 이쁘다고 해서 여자친구 사진을 보여줄려고 하는데, 핸드폰 배터리를 바꾸느라 못 보여준다. 에잇, 아쉽군.
티비에 갑자기 한국 드라마 광고가 나온다. 신소율 나오는 드라마인데, 뭐지? 난 처음본다. 여튼 이 오지에서도 한국 드라마 광고를 보니 매우 반갑다. 여기서는 한국인 만날 수 있을려나? 못 만난 덕분에 영어 회화 연습은 겁나게 하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인과 소주 한잔이 먹고 싶어지는 타이밍이다.
맥주 한잔 더! 여긴 기준이 330cc 라서 한잔은 너무 적다. 그래도 어제도 마셨으니 두잔으로 끝내야지. 여기 있는 꼬마 하나가 있는데 완전 귀엽다. 근데 하는 행동이 딱 미운 7살이다. 갑자기 냅킨을 막 뽑더니 바닥에 좀 혼나야겠다. 여자종업원 분의 딸일까 동생일까. 괜히 궁금해진다. 물어볼까?
여기 고양이가 두마리가 있다. 한마디 좀 만져줬더니 갑자기 폴짝 테이블 위로 올라온다. 잘 생겼구먼, 만져주니 좋아라한다. 근데 오리고기는 줘도 안먹는다. 털도 괜찮고, 키우는 아이인가? 근데 다른 놈은 눈병이 좀 있다. 털도 안좋고. 얘가 독식하나. 안타깝다. 에고. 또 우리 고양이들 생각나네...
피부 좋은 애는 좀 만져줬더니 아예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잔다. 이놈 이쁨 받는 방법을 아는구먼. 나한테서 고양이 좋아하는 오오라가 있나? 두마리 다 내 옆에 딱 붙어서 가지를 않는다. 하긴 내가 쓰담쓰담에 특별한 재능이 좀 있긴 하지. 내가 개발한 고양이 만지기 필법! 공짜로는 못 푼다.
맥주 두잔을 비우고 자리를 일어선다. 여기 단골로 만들까? 고민된다. 이래서 처음 가는 식당이 중요하다. 큰 이변이 없으면 단골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일 생각해봐야겠다.
어찌 보면 여행 다니면서 제일 늦은 시간의 귀가 같다. 10시 이후에 들어가는건 처음이다. 중간 중간에 현지인들이 많이 보이지만 미얀마에서는 무서울 일이 없다. 이 시간에도 "밍글라바"를 외치며 집으로 향한다.
아까 청소한다고 시간이 좀 필요하다 했으니, 지금쯤은 됐겠지? 돌아가니 스탭이 있다가 날 알아보고 여권을 준다. 와이파이 비번을 알려달라니 어디다 적어줘야 하는지 헤맨다. 그냥 쿨하게 손바닥에 적어달라고 한다. 뭘 그런걸 가지고.
오늘은 피곤하니 글만 올리고 바로 자야겠다. 숙소에 들어와서 짐을 푼다. 슬쩍 둘러보니 뭔가 아까랑 느낌이 다르다. 창문은 열리는건가? 닫을수도 열수도 없는 창문이다. 그 짧은 순간에 모기에 두방 물린다.
아 여기 좀 그런데? 그래도 나한테는 홈매트가 있으니까. 꼽았는데 불이 안들어온다. 이거 뭐지, 불이 나갔나? 혹시나 싶어서 핸드폰을 꼽으니 꼽는 방향성에 따라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그때 바닥에 거미 두마리와 커다란 바퀴벌레가 지나간다. 여기 뭐야... 무서워....
냉장고는 있는데 킨지 5년은 되어보인다. 왜 아까 청소하라고 시간을 달라고 했는지 알겠다. 청소는 하긴 한건가? 이불을 들추니 죽은 벌레 두마리의 시체가 보인다. 후 불어서 밑으로 떨어뜨린다.
마이야 미안해, 너희랑 비교할만한 곳이 아니었구나. 네가 그립다. 나, 진짜 왠만하면 아무 신경 안쓰고 잘 자는데, 여기 찝찝하다. 뭔가가 있다. 일단 머리를 굴려서 전선을 잘 조작하여 홈매트와 핸드폰 둘다 연결에 성공한다. 역시 사람은 머리를 굴려야 한다.
일단 씻으러 가볼까? 뜨거운 물 표시는 있는데, 지금까지 분위기 봐서는 안나오겠지? 역시 난 눈치 백단이다. 나올리가 없다. 뭐 이건 괜찮다. 뜨거운 물 따위야 없어도 아무 상관없다. 아까 얘기했지만 나 왠만해서는 찝찝해하지 않는다.
여기 유일한 장점은 와이파이가 그나마 잘 터지는거와 양변기 뿐이다. 그렇다면, 내일 근심을 잘 해결하고, 사진을 좀 올리고 떠야겠다. 사장님 자꾸 왜 연박을 물어봤는지 알겠다. 아 그래도 이건 아니지요... 여기 왜 스탭이 4명이나 있는거지? 그리고 아고다에 좋은 평 올린 놈들은 뭐여.
자본주의고 지랄이고 내일 당장 찰리네부터 한번 가봐야겠다. 역시 독점은 괜히 독점이 되는게 아니다. 뭔가 좋으니까 사람들이 가고 그러면서 독점으로 이어지는거다. 내 생각이 짧았다. 잘못했어요. 오늘 밤에만 잘 넘어가주세요.
처음으로 이불을 못 덮겠다는 생각이 든다. 날씨가 그나마 더워서 다행이다. 더워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다니... 일단 안되면 패딩이라도 빼서 입어야겠다. 어쨌든간에, 나의 시포에서의 첫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