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여행기]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10 (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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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여행기]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10 (바간)

아랑다리 2 1937
lkfar.tistory.com
하루 더 지난 것 뿐인데 9일과 10일은 느낌이 많이 다르다. 이제 여행의 1/3을 하게 된 셈이다. 연장을 안한다면.

여기 확실히 좋다. 침대도 편안하고, 사살은 친절하고, 에어컨도 적당하게 나온다. 이불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뽀송뽀송하고 푹신한 이불이다. 서양 여행자들에게는 이곳이 천국임이 확실하다. 동양인인 나에게는? 어떻게 보면 괜찮고 어찌 보면 별로고.

하지만 도미토리에서 자면 확실히 밤새 푹 자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주변에 잡다한 소리가 들리기에, 또 아침 일찍 나가는 사람들도 있어서 나같이 예만한 사람은 깼다 잤다 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어제 10시쯤 잠들었기에 잠은 충분하다.

6시쯤 자리에서 일어난다. 호주 누님은 어제 들어오는거 못 봤는데 아직 자고 있다. 어제 좀 달리셨나? 세컨드백만 소리 안나게 주의하면서 살짝 짊어지고 나온다. 화장실도 가고 싶지만 여기 화장실은 호텔 처럼 방 안에 있어서 들어가면 뭔가 시끌시끌하다. 근심을 털어넣으러 갔다가 근심만 싸여서 나올 곳이다.

아직 아침 일찍이라 그런지 아무도 안보인다. 일단 화장실에 가서 간단히 세수를 한다. 어제 저녁에 샤워 제대로 했으니 이정도면 충분하다. 충분하겠지...?

자리를 잡고 앉는다. 어제는 서양애들이 장악하는 바람에 앉지 못했던 메인 테이블 한 가운데 딱 자리 잡고 앉는다. 먼저 자리 잡는 자가 임자다. 지네가 오던가.

여기 쉐프 같은 분이 와서 아침 먹을거냐고 물어본다. 역시 굉장히 친절하다. 브리티스 액센트로 얘기하시는데 뭔가 멋있기까지 하다. 메뉴는 없다길래 한 접시 달라고 하고 커피를 한잔 타서 자리로 가져온다.

오늘은 어쩌지? 이곳은 여러가지 이유로 안 끌리는데, 사실 제일 큰 이유는 서양 여행자가 아니라 너무 현대적이라는거다. 낮에 사원을 돌아다닐때는 Traveller의 느낌이라면 저녁에 게하로 들어오는 순간 Tourist가 된 느낌이 든다. 숙소를 옮기든지, 동네를 옮기든지 해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앉아있는데 어제 그 스위스 청년이 엄청나게 피곤한 표정으로 지나간다. 인사를 살짝 하니 알아보고 옆에 앉는다. 이 친구, 어제 술 퍼마실때 이리 될줄 알았다. 어제는 내가 인사해도 무시하더니. 조금 있다 그 친구의 여자친구도 오고 (여자친구 맞겠지?) 같이 아침을 먹는다.

이 친구들은 조금 있다 7시에 인레호수로 간단다. 여자는 6주 여행 중이고 남자는 2주란다. 여자분 2주 후 쯤에 태국 남부 섬으로 갈 예정이란다. 어? 나도 그쪽으로 갈 예정이라고 혹시 만날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정말 0.003% 정도의 가능성이지만 만약을 대비하여 통성명을 한다. 외국인들은 '경'을 발음 못한다. 'ㄱ'도 힘들고 'ㅕ'도 힘들다. 보통 "쿙", 혹은 "굥", 이리 발음한다. 그러면서도 꼭 해볼려고 노력한다. 한참을 버벅이기에 그냥 "Key"라고 부르라고 한다. 최근에 만든, 첫번째 글자를 딴 이름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외국 이름을 만드는거, 매우 매우 싫어한다. 데이비드 리, 이런거 말이다. 난 기본적으로 이름에는 약간의 마법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무슨 해리포터 처럼 날라다니는 마법은 아니고, 어릴 때 부터 계속 듣고 자랐던, 자기를 지칭하는 명칭이라면 그리 쉽게 바꿔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래서 어린 애들이나 후배들도 형, 오빠 보다는 이름을 부르라고 하는데, 사실 못하는 애들이 많다. 노여사도 나보다 많이 어리지만 나보고 항상 '경훈'이라 하고, 몇몇 유두리 있는 동생들도 '경훈'이라 부른다. 호칭은 지칭하는 자가 많겠지만 이름은 나 하나다. (동명이인이 있겠지만 여기 없으니) 그런 의미에서 영어 이름도 본인의 이름에서 조금 바꾸는건 모르겠지만 아예 외국식 이름은 별로다. 실리적으로도, 동양계라는 본인의 어찌 보면 강점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을 포기하는 거 같다.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여자분 이름은 에블린이다. 남자가 옛날 이름이라고 약올린다. 우리나라에 에블린 속옷 브랜드가 있다고 얘기하니, 남자가 할머니들 입는 브랜드냐고 물으며 약올린다. 아주 젊은 처자들이 색시게하게 입는 고급 브랜드라고 하니, 에블린이 좋아한다. 남자분은 이름이... 잊었다. 아 왜 이러지.

둘은 7시 버스라 후딱 먹고 일어난다. 난 이제 자리에 앉아서 숙소를 좀 찾아본다. 어제 얼핏 Mya Thida라는 게스트하우스에 9달라짜리 도미토리를 본거 같은데, 아고다와 트립어드바이져 다 검색해봐도 도미는 안나오고 30달라짜리 방만 나온다. 이러면 못 옮기는데.

이럴때는 모든 것을 다 아는 구글형님한테 의지해야 하는 법이다. 구글링을 좀 하니 바로 나온다. Bookings.com에서는 도미토리가 나온다. 왜 숨겨놓은거지? Bookings 어플도 설치하고 예약을 한다. 얘네는 여기서 돈을 지불하는게 아니라 예약하고 현장 지불이라 좋다. 근데 그러면 취소하는 사람이 엄청 많지 않을려나.

하나 문제는 Mya Thida는 메인 탬플 근처라서 근처에 식당도 하나인가 밖에 없다고 한다. 근데 이거는 오히려 장점 아닌가? 어차피 좀 조용히 있고 싶고, 사람을 사귀더라도 한두명을 진득하게 사귀고 싶은거니까.

앉아있는데 또 어떤 사람이 지나가면서 인사하길래 같이 앉아서 대화를 한다. 이번에는 칠레 사람이다. 남미가 과연 위험한가, 주제를 가지고 잠시 얘기를 한다. 근데 얘기를 하다보니 다들 20달라 입장료를 바간에 들어오면서 냈단다. 난 안냈는데?

옆에 여자분도 대화에 끼는데 이게 약간 복불복인가 보다. 이 여자분도 표가 없는데 가끔 돌아다니다보면 경찰이 불신검문을 한단다. 어제 자기 한번 걸려가지고 숙소에 놔두고 나왔다 하니 얼마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물어봐서 다행히 대답을 잘 했다고 한다. 후딱 칠레 친구의 표를 받아서 사진을 찍어놓는다. 이거 20달라짜린데, 하루 숙박비다. 무시 못하지.

미얀마는 보면 현지인들이 먹는건 저렴한데, 정부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벌려고 하는 의도가 많이 보인다. 숙소도 그래서 비싸고, 관광지도 비싸다. 그 비싼 돈은 현지인들에게 가는게 아니라 다 정부에게 간다.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 따위에게 굳이 일부러 돈을 헌납할 필요는 못 느낀다. 차라리 현지 식당에서 한번 더 먹어주는게 도움을 주는거겠지.

확실히 이곳, 각국의 사람들과 교류하기에는 꽤나 괜찮은 곳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깊게 친해지기에는 좀 힘들어보인다. 너무 산만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많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여기 앉아서 "Have a safe trip."을 6번은 외쳤다. 나도 이제 슬슬 일어나야지.

돌아다니기에는 시간이 좀 이르고, 아까 그 숙소나 한번 둘러볼까? 지도를 보니 생각보다 근처다. 뭐여, 굉장히 먼줄 알았더니. 가방을 매고 지도를 보며 길을 나서본다.

햇볕이 아직은 따사롭다. 오늘 오전에 해돋이 보러 갈걸 그랬나? 숙소를 옮길거라 말았는데, 생각해보니 이 무슨 게이른 짓인가. 이제부터는 무조건 해돋이를 봐야겠다. 늦잠 잔것도 아니고 어차피 6시에 일어났는데, 하루를 낭비했군.

숙소는 금방 찾는다. 흠, 나쁘지 않은데? 온라인 평에 안좋다는게 와이파이가 느리다와 리셉션이 불친절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일단 부킹을 할려고 하는데 아무도 안나온다. 흠, 진짜 불친절한가? 서양인이 한명 옆에 서있길래 와이파이 비번 물어보고 이것저것 물어본다. 뭐 나쁘지 않단다. 와이파이도 접속해보니 이정도면 양호하다. 아니, 이사람들 12달라에 뭔 기대를 하고 왔길래 이정도에 불평불만이지?

조금 있다가 리셉션이 와서 방을 보여달라고 한다. 모든 방들이 가운데를 향하여 발코니가 있는 것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방도 괜찮고, 화장실도 깔끔하다. 이정도가 딱이다. Ostello Bello는 뭔가 모든게 부담스러웠다면 여기는 적당하다.

일하는 애들이 다 젊다. 20대 초반? 얘기를 걸어보니 왜 불친절하다고 하는지는 알겠다. 그런데 불친절하다기보다는 그저 과하게 친절하지 않을뿐이다. 자본주의에서의 서비스에 익숙하다보니 이런 불친절이 아닌 무친절이 어색한가보다. 조금 얘기를 해보니 좋은 친구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또 바로 소녀시대, 티아라 얘기를 한다. 이 친구는 특이하게 티아라 팬이다. 티아라 인기가 한국에서 많이 없어졌다고 얘기를 해준다. 개인적으로 그정도로 마녀사냥할만한 일인가 싶지만, 뭐 그건 논외로.

이 친구들도 역시 아이유를 모른다. 본업을 잊으면 안돼지. 아이유, 한국의 최고 가수다, 얘를 알아야 너도 트랜드 리더다, 또 한번 설교를 한다. 안듣는거 같다. 그래, 아직 모르겠지만 너도 곧 지은이의 매력에 빠질거란다. 두고 보렴.

일단 다시 초호화 리조트 Ostello Bello로 돌아온다. 오늘 어쩌지? 좀 쉬다가 점심 먹으러 가면서 옮겨볼까? 오늘은 바이크를 하루 임대해서 점심 이후에 좀 돌아다녀볼까 한다. 그늘 찾아서 책도 좀 보고, 내일 오전에 해돋이도 보면 좋을듯 하다. 이곳은 일단 이틀 정도 더 있을까 싶지만, 뭐 그건 상황 봐서 결정하자.

그래도 마지막 떠나기 전에 이 호화로움을 좀 즐겨야지. 숙소로 가서 빵빵한 에어컨을 맞으며 푹신푹신한 침대에 잠시 누워서 뒹굴거린다. 근데 왠지 여행 다닐때는 이리 뒹굴거리면 죄책감이 든다. 사실 여행을 현실처럼, 현실을 여행처럼, 나의 이 모토처럼 살려면 이런 뒹굴거림은 여행의 필수요소인데 말이지.

에이 모르겠다. 누워서 책이나 좀 봐야지. 21세기 자본론을 다시 핀다. 이번 여행 끝나기 전까지 다 보고 말리라!

근데 호주 누님 안보인다. 떠났나? 그래도 인사는 하고 가고 싶은데. 조금 있으니 화장실에서 나온다. 씻었나보다. 그래도 이틀 같이 다녔는데 인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른 숙소 잡았다고 얘기한다. 이럴때 뭔가 살짝 미묘하게 어색하다. 그쪽으로 오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안오라고 하기도 애매한... 개인적으로는 혼자 가고 싶다. 아직도 일행은 싫다. 일단 아침 먹으러 가시기에 "Later" 하고 인사한다.

옆침대 홀란드 여성분 이제 일어나서 씻으러 간다. 9시인데, 게으르군. 근데 샤워를 하네. 역시 여자들이란. 근데 씻으러 가니 그분 알람이 울린다. 앞에 다른 남자 하나 자고 있는데 방해될까봐 살짝 올라가서 알람만 끄고 내려온다. 핸드폰이 거지꼴이다. 여행자들 핸드폰 아이패드, 안깨진걸 거의 못 봤다. 오래 다니면 다 저리되나?

근데 그러고 보면 미얀마에서 모두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는게 굉장히 신기하다. 엄청 외진 곳에서도 깔끔하게 차려놓은 텔레콤 사무실은 쉽게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스마트폰 보급이 민주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이곳도 예전처럼 완전한 통제하에 국민들을 억합하는건 불가능할지 싶다. 몇년 후, 주민들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기대가 되면서도 걱정도 된다.

사람들이 한둘 나가더니 도미에 나 혼자 있게 되었다. 아싸! 이 럭셔리한 곳에도 내 근심과 흔적을 남기고 가야지. 하지만, 편안함에 익숙한 내 몸은 이런 환경이 오히려 낯설은가보다. 에잇 , 저렴한 몸뚱아리 같으니라고.

10시, 숙소를 옮겨야겠다. 마당이 좋아보이던데 거기서 쉬는 것도 괜찮지 싶다. 다시 메인 가방을 짊어지고 방을 나선다. 단 하루 있었지만 그래도 편안한 밤을 제공해줘서 고맙구나, 안녕.

로비로 나와서 맡겨놨던 5000키얏 디파짓을 돌려받는다. 호주 누님이 보이길래 인사를 한다. 어쩌다보니 이틀을 같이 다녔다. 사실 많은 얘기를 한건 아닌데, 여행이라는건 짧게 같이 있어도 뭔가 정이 들게 하는게 있다. Have a safe trip.

길은 햇볕이 쏟아진다. 점심 먹고 오늘은 사원을 가볼까 했는데 이거 괜찮을까? 그늘로 슬쩍 슬쩍 옮겨다니며 새로운 숙소에 도착한다. 지난번 숙소에 비해 확실히 조용하다. 물론 더 지저분하지만.

내 방인 105호 문을 열고 들어간다. 한 동남아 친구가 앉아있다. 인사를 하고 잠시 얘기를 나눈다. 베트남 청년인데 영어가 서툴지만 대화는 가능하다. Ostello Bello에서 왔다니까 그쪽은 서양인들이 많아서 거시기하다고 한다.

뭔가 어색하다. 하... 그리 서양인을 욕해놓구서는 나도 뭔가 일본인이나 한국인과 같이 방을 쓰기를 원했었나보다. 이 친구가 앞으로 4일 있을거라 하는 얘기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는 실망감이 마음에 깃들었다. 한심한 놈. 사람은 참 간사하다는걸 다시 한번 느낀다.

웃긴 것은 여행 다니면서 현지인들과 어울리는건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그들이 동격이 되면서 여행 동료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나는 여행 가서 관광하고 '체험'하는 동네에 사는 '하층민'이 감히 나와 같은 등급으로 있으려 한다니, 뭐 이런거겠지. 짜증나는군. 아까 순간적으로 들었던 내 마음의 소리에 다시 한번 반성해본다.

편견이 차별로 이어지고 차별은 무시와 우월감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핍박으로 연결된다. 뭐가 더 우월한건지, 서양인은 우리보다 우월하고, 우리는 동남아인보다 우월하고 그런건 아니지 않나. 인종도 개인의 한 구성요소 중 하나일뿐 전부는 아니잖아. 태국으로 섹스 관광을 떠나는 수없는 쓰레기들이나 동양여자는 꼬시기 쉽다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양놈들이나 다 이런 생각이 바탕에 있겠지. 아 생각할 수록 아까 잠시 그 생각을 했던 스스로가 짜증나고 한심하다. 내 안에도 그런 우월감이 있었다니.

사람은 주변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무의식이 자신을 지배하게 두면 안된다. 자기 자신을 계속 의심하고 고민하고 발전해야, 비로서 인간다워진다. 부정이 변화를 가져오고 그 변화가 진정한 자신을 만든다.

이곳에 하루 있을지 이틀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둘이 쓰는 방, 친해지려고 노력해봐야겠다. 물론 같이 다니거나 그런건 원치 않지만 맥주 한잔 정도는 같이 하면서 얘기를 나누는 것도 괜찮겠지.

뭔가 작은 깨달음이 온거 같기도 하다. 이상하게 속이 시원하다. 그래, 완벽한 사람이 어디있나. 이럴려고 여행 다니는거지 뭐.

앞에 대나무 의자에 앉아서 잠시 쉰다. 바람이 불때마다 나뭇잎 소리가 들리며 새들의 청량한 지저귐도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이제 좀 내 장소를 찾은듯 하다.

서양애들 몇명이 여기 스탭이랑 친해졌는지 농담으로 여기 리뷰 안좋게 올릴거라고 협박한다. 스탭이 어차피 와이파이 여기 느려서 올릴 수도 없다고 자체디스한다. 역시 불친절이라기 보다는 무친절이다.

베트남 애는 어딘가로 떠나고 혼자 숙소에 좀 앉아있으니 서양인 둘이 들어온다. 오늘 새로 온 애들이다. 좀 얘기를 들어보니 한명은 미국인, 한명은 영국인이다. 미국인은 한국에서 물리 강사(읭?)를 하기도 하고 지금은 일본에서 강의를 하고 있단다. 한국어는 진짜 조금하고, 일어는 꽤나 한다. 성격이 워낙 활발해서 친해지기 쉽겠다.

날씨가 좀 덥지만 오늘은 바간을 좀 봐야겠다. 전기 자전거를 빌리러 가서 물어보니 하루에 5000키얏이란다. 나쁘지 않네. 지금이 12시 가량이니 빌려서 오늘 해돋이를 보고 내일 일출까지 보면 딱이겠다 싶다. 근데 다시 물어보니 빌린 시간을 기준으로 하는게 아닌지라 무조건 8시에는 반납해야 한단다. 빌린 시간과 상관없이. 무슨 시스템이 이러지? 그럼 당연히 반일을 빌리지. 3,000키얏을 주고 반일 빌린다.

이제 한번 가볼까? 일단 점심을 먹으러 한바퀴를 돌다가 눈에 보이는데 대충 들어간다. 뭘 시킬지 몰라서 커리와 치킨 뭐시기를 시킨다. 조금 기다려서 나온거 보니 역시 커리와 치킨이다. 역시 미얀마 음식은 아직 정이 안간다. 도데체 어딜 가야 맛있는걸 먹을 수 있는걸까?

햇볕이 장난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 나가봐야겠다. 식사를 마치고 전기자전거에 올라타서 길을 나선다. 정말 덥다. 그래도 이틀째인데, 내일 있을지도 모르는데 악으로 깡으로 가야만 한다.

가면서 그늘이 보이면 조금 쉬고, 또 움지이고 하면서 올드바간쪽으로 향한다. 중간 중간에 사원이 드문드문 있어서 굳이 어딜 가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한번 가본다. 이쁜 사원이 있으면 멈추고 누워서 보다 가기도 한다.

중간에 지도를 한번 보고 제대로 가고 있음을 확인한다. 뭐 사실 길이 여러개 있는 것도 아니라서 틀어질 가능성도 크지 않다. 그냥 큰길로 쭉 가면 된다.

조금 더 가다보니 오른편에 다른 것 보다 조금 더 큰 사원이 보인다. 여기 한번 들려볼까? 스쿠터는 어떤 곳이든 쉽게 갔는데, 전기자전거라 그런지 조금만 언덕이어도 올라가기를 버거워한다. 올라가다가 한번 넘어지고, 그리고 다시 올라간다.

흠 ,근데 여기가 어디쯤이지? 중간 정도는 온건가? 한번 확인해보기 위해 노트4를 꺼내려고 손을 주머니에 넣는다. 없다. 없다!

왜 없지? 없을리가 없는데. 확인한지 얼마 안됐고, 떨어지는 느낌도 없었는데, 이럴리가 없어.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진다. 산지 얼마 안되서 돈도 돈이지만, 오늘 중간 중간 썼던 그 글들, 사진들, 앞으로의 일정을 위해서 넣어놨던 지도들 모두 어째야 하나 눈이 캄캄해진다. 일단 정신 차리고 좀 찾아봐야겠다.

흥분하지 말자. 찾으면 나올거야, 희망을 갖자. 일단 근처를 스윽 둘러보는데 없다. 아까 잠시 누웠던 정자에 있나? 전기 자전거에 올라타고 길을 자세히 살피면서 가본다. 정신이 없어서 그런지 가다가 한번 넘어진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고 발목쪽에 살짝 상처만 났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계속 왔던 길을 되짚으며 가본다.

아까 그 정자에 도착했다. 여기 있을거야.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본다. 없다.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본다. 역시 안보인다. 역시 아까 그 큰 사원에 있는걸거야. 올라가는 길이 꽤나 가파라서 충분히 주머니에서 빠질만 했어.

다시 또 돌아간다. 역시 자세히 살피면서 간다. 흙으로 되어 있는 길이지만 천천히 살펴보며 간다. 아까의 그 큰 사원에 다시 온다. 아까는 대충 보고 바로 출발했기에 주변을 샅샅이 흝어본다. 없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거지. 다시 돌아가며 살펴본다. 주변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 아무도 날 도울 사람이 없다는게 서글프다. 좀 도와주지. 짚풀이라도 잡을 심정으로 길에 있는 현지인한테 혹시 봤냐고 물어본다. 봤을리가 없는걸 알면서도 혹시나 기대를 한다. 뭐라 뭐라 하는데 순간 있나, 하는 기대감에 들뜬다. 다시 들어보니 '폴리스', 경찰에 가서 신고하라는 얘기다. 좌절한다.

그래, 일단 경찰에 신고하자. 이 나라 사람들 착하니까 줏으면 경찰에 맡길지도 몰라. 역시 자세히 살피면서 간다. 내가 오고 갔던 길에는 다 없다. 누군가 줏었다는 확신이 든다. 경찰에 도착한다.

경찰서라고 하기에는 너무 허름하다. 딱히 자리를 지키는 사람도 없고 한 현지인이 누워 자다가 내가 오니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뭔일로 왔지, 하는 눈빛이기에 상황을 설명한다. 이분 영어를 한마디도 못한다. 잠시 누구를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내기에 기다려 본다.

침착하자. 어차피 사건은 벌어졌고, 이제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영어 하는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정신을 차려보려 애쓴다. 일단 심카트에 비밀번호를 걸어놨으니 재부팅하면 그때부터 못 쓸거고, 개인적인 자료는 프라이버시 기능에 지문으로 묶어놨으니 걱정이 없을듯 하다. 문제는 이번 여행이다. 돈이야 나중에 생각할 문제고, 앞으로 20일 가량 남은 여행을 어찌 해야 하지. 어찌 보면 여행기 쓰는게 나에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에 절대로 멈추고 싶지는 않다. 손으로라도 써야 하나.

왜 블렉베리를 안가져오고 노트4를 가져왔을까. 잊으려 하지만 또 자학이 시작된다. 아니면 백업으로 아이패드 가져오려고 했던 것을 왜 뺐을까 싶기도 하다. 왜 주머니에 넣었을까, 빠이에서 약간 불안해서 항상 체크하며 다녔으면서도 결국에는 소 잃고 외양간을 돌아본다. 아 이 미련한 놈.

영어하는 경찰이 와서 다시 설명을 한다. 어떤 종이에 끄적끄적 쓰는데 이걸 다시 볼까 싶다. 사실 신고는 하지만 기대는 안한다. 누가 이걸 가지고 오겠는가. 부품으로 팔아도 꽤나 나올텐데.

신고를 하고 일단 돌아선다. 혹시나 싶어서 아까 점심을 먹었던 식당으로 돌아간다. 사실 중간에 지도 확인을 했기에 여기는 아닌게 확실하지만 정말 혹시나 싶어 가본다. 뭐, 당연히 없다. 뭔가 묻는거 자체가 의심하는 늬앙스를 풍긴듯 해서 미안하기만 하다.

더위에 지치고, 땀에 쩌들어서 숙소로 돌아온다. 거울을 보니 얼굴은 햇볕에 벌겋게 익어있고, 땀은 전신을 적시고 있다. 숙소에는 아무도 없다. 일단 목욕을 하고 눕는다.

그래, 사건은 생기는거야. 그 사건으로 인하여 이번 여행을 망치지 말자. 기껏해야 50만원 주고 산 핸드폰 때문에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한달의 여행을 무너뜨리지 말자. 혼자 다짐을 해보지만 정신이 피폐하다. 여행 와서 처음으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평상심을 유지하며 여행을 다닐려면 그래도 패드든, 싸구려 폰이든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쉬다 나가서 여기 숙소 스탭한테 혹시 중고 상태 안좋은거 파는거 없냐니가 뭔 소리냐고 한다. 그래, 여긴 좀 그렇고 오늘 오전에 옮겼던 Ostello Bello로 가보자. 거긴 외국인들이 엄청 다니니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서 물어보니 역시 없단다. 하긴 누가 그런거를 팔기 위해 가지고 다니겠는가. 다시 숙소로 와서 혹시 근처에 폰 파는데 있냐고 물어보니 바로 옆에 있단다. 일단 지금은 좀 지쳐서 쉬었다가 해가 좀 지면 나가봐야겠다.

에어컨 방에 누워있는데 나도 모르게 살짝 잠이 든다. 룸메이트들이 모두 들어오는 바람에 잠에서 깬다. 오전에 하도 돌아다녀서 그런지 머리가 살짝 아프다. 두통약을 꺼내 먹을까 하다 만다.

애들한테 상황을 얘기하니 다 안타까워한다. 혹시 저렴한 버리는 핸드폰 없어, 라고 물으니 다 당연히 없다고 하는데, 베트남 애가 뭘 갑자기 꺼낸다. 어, 있나? 꺼내는걸 보니 넥서스7이다. 아 저정도면 훌륭하지!

얼마에 팔거냐고, 내가 지금 필요한 상황이니 네가 먼저 가격을 불러달라고 한다. 뭔 소리니, 하며 날 쳐다본다. 파는게 아니라 빌려주는걸로 들었단다. 하, 그럼 그렇지. 그래도 매우 고맙다. 하지만 어차피 내가 바간을 떠나거나 얘가 떠나면 의미가 없어져서 괜찮다고 얘기해준다.

5시다. 그래, 그래도 일상을 찾아가자. 폰 가게 가서 한번 물어보고 일몰을 보러 가야겠다. 전기 자전거에 올라타고 바로 옆 폰 가게를 간다.

나를 보더니 인상 좋은 아가씨와 아저씨가 얘는 뭐지, 싶은 표정으로 쳐다본다. 내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니 다급히 밖으로 가시더니 어떤 키큰 아저씨를 끌고 온다. 이 아저씨가 영어가 조금 되나보다. 전시되어 있는 폰의 설명을 들으면서 한번 둘러본다.

생각보다 싸다. 메이드인 차이나라 그런지 저렴한건 6키얏, 비싼건 13키얏 정도이다. 7만키얏 짜리를 골랐다가 옆에 화면도 더 커보이고 괜찮아 보여서 8.5만키얏을 잡고 흥정을 한다. 애교도 부리고 하면서 8만키얏까지 깍는다.

일단 혹시 몰라서 지금 사는건 아니고, 경찰을 내일까지 기다려보고 사겠다고 한다. 알겠다고 하시기에 자리를 털고 나온다. 그래도 백업플랜을 만들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이제 일몰을 보러 간다. 하지만, 나는 성격이 냉면을 먹을때 계란과 고기를 마지막에 먹는 성격이다. 안좋은 일은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좋은 일은 즐기고 싶어한다. 뭔가 찝찝한게 이대로 일몰을 볼 수 있을까 싶다. 억지로 본다 해도 그건 또 자기 자신을 속이는게 아닐런지.

결국 중간까지 갔다가 돌아온다. 그래, 차라리 하루를 버릴거 제대로 버리고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하자. 아까 그 스토어로 간다. 사겠다고 하고 현금으로 80,000키얏을 드린다. 이럴때는 억지로라도 웃어야지. 마음씨 좋은 분들과 핸드폰을 들고 활짝 웃는 표정으로 기념사진까지 찍는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찍은 기념사진이다. 그래, 미얀마에서 산 핸드폰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겠어. 유니크 아이템 득템했다 생각하자.

심카드를 사겠냐고 해서 와이파이로 그냥 하겠다고 한다. 방으로 가지고 와서 한번 열어본다. 뭐 조금 느리긴 하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쓸만하다.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구글스토어를 들어간다. 로그인을 해도 아무것도 안나온다.

뭐지, 싶다가 나라의 문제인가 싶어서 새로 계정을 만들어서 로그인 하니 나온다. 제일 궁금한건 낮까지 쓴 글이 남아있냐다. 없어졌으면 다시 쓸 엄두는 절대 안난다. 에버노트를 검색한다. 안나온다. 뭐야... apk를 직접 받아볼까 싶어서 구글에서 검색하니 미얀마에서는 에버노트가 금지되어 있단다. 아니 통제 통제 하지만, 쌩뚱맞은 곳에서 통제를 제대로 느낀다.

사설 사이트를 검색해서 apk를 다운 받을려고 하는데, 속도가 어머어마어마하게 느리다. 이건 뭐 97년도의 58.6K 모뎀보다 느리다. 조금 참아보다 결국 지급을 들고 나선다.

심카드를 산다. 유심 3000키얏에 500메가 정도를 또 3000키얏에 충전한다. 데이타는 그리 비싸지 않지만 느리다고 경고한다. 그건 뭐 어쩔 수 없겠지. 이곳 자주 오다보니 뭔가 아저씨와 처자랑 정들겠다.

다시 심을 끼우고 시도를 한다. 에버노트를 다운 받고 로그인 할려니 또 로그인이 안된다. 허... vpn까지 깔아야 하는걸까? 이거 하나 받을려면 몇시간인데... 일단 무시하고 다른걸 먼저 세팅한다.

한글은 구글 단모음 키보드를 깔고 싶지만 검색이 안된다. 알키보드는 희한하게 미얀마 구글플레이에도 있어서 받아 설치한다. 되긴 되는데 터치감이 엉망진창에 또 무지 느리다. 욕심 부릴 필요는 없다. 되기만 하면 된다.

티스토리, 크롬 등을 걸어놓고 밥을 먹으러 나선다. 사진 넘기는 eyefi mobi는 또 스토어에 없어서 apk를 찾아서 받는다.심이 있어서 그래도 밖에서도 할 수는 있다. 밥 먹으면서도 정신 없이 이것저것 설정한다. 오늘 이상은 절대로 희생하고 싶지 않다. 오늘 모두 마무리할거다.

다시 돌아와서 걸어놓는다. 그래도 덕분에 책은 많이 보게 된다. 새삼스레 우리나라 인터넷 속도의 소중함도 깨닫는다. 이거 아마 밤새도록 받아야 하지 싶다. 오늘 잠을 제대로 잘 수는 있을까?

문득 문득 짜증이 난다. 그냥 다 버리고 아날로그 여행으로 돌아갈까 싶기도 하다. 인도 여행 갈때는 오히려 순수 아날로그 여행을 테마로 해서 사진기도 구식 폴라로이드만 가지고 갔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이대로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을 멈추고 싶지 않다. 조깅할때 5키로를 정했으면 다리가 다쳐도 무조건 5키로 뛰어야 하는 성격에 이걸 이리 포기하고 나면 뭔가 계속 신경쓰일거 같다. 하기로 한건 하자.

일단 내일 하루는 바간에 더 머물러야겠다. 경찰 연락은 거의 기대하지 않지만 이것 저것 정리도 좀 하고, 일출도 그래도 한번 보고 싶다. 이번 여행 앞으로 어찌 될까? 여행은 정말로 단 한번의 사건이 전체 여행을 망치게 하는거 같다. 그래서 조심 조심 했건만, 안타깝다.

잘 마무리하고 다시 오늘 하루를, 현재를 즐기는 여행이 되도록 해보자. 시간은 잃어도 여행은 잊지 말자. 돈은 잃어도 추억은 잊지 말도록 하자. 여행 와서 가장 외로운 밤이다.
2 Comments
디아맨 2015.05.03 10:46  
ㅜ.ㅜ 폰 찿기를 바라며 다음편으로 넘어갑니다..
레몬커피 2015.05.04 15:06  
저도 ㅠㅠ 폰 찾으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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