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여행기]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19 (Pyin Oo L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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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여행기]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19 (Pyin Oo Lwin)

아랑다리 4 2221
시포를 떠나니 미얀마를 떠난 느낌이네요.

미얀마도 이제 3일 정도 남았습니다....

http://lkfar.tistory.com/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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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음에 잠이 깬다. 이번 여행에서 빠이 이후로 맞이하는 두번째 폭우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다. 10시쯤 잠들었으니 한 4시간 자고 깬건가?

밤새 천둥 소리가 끊임 없이 나서 잠을 방해하더니 결국에 정전이 된다. 에어컨이 꺼진걸 깨닫고 잠이 깬다. 어차피 지금 시원해서 괜찮은데, 정전이 풀리면서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로 추정되는 굉음이 또 다시 계속 잠을 깨운다. 이별 신고식 참 거하게 한다.

5시쯤 완전히 잠이 깬다. 밤에 정전이 되서 핸드폰 충전이 제대로 안되어 있다. 오늘 기차 여행을 장기간 해야 해서 완전히 충전시키고 가고 싶다. 충전시키면서 이것 저것 확인한다.

여행 내내 멀쩡하다가 갑자기 이제와서 물갈이가 시작된거 같다. 그것도 장기 기차 여행을 목전에 둔 오늘 말이다. 이건 무슨 조화냐. 5시부터 화장실을 두세번 들락날락 거린다. 어제 저녁에 먹었던 식사가 문제가 된걸까.

한 것도 없는데 어느덧 7시다. 기차가 9시 50분이라고 한 거 같으니 여유 있게 9시쯤 숙소에서 출발하면 될듯하다. 더이상 누워있어봤자 잠도 안오고 옥상으로 올라간다.

밤에 한바탕 비가 와서 그런지 날씨가 꽤나 쌀쌀하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7시인데도 아무도 안올라와있다.스탭들도 안쪽에서 수다를 떨고 있다. 왜 휴일 같은 분위기이지?

스탭들에게 가서 헛기침을 하고 내가 왔음을 알린다. 한참 수다를 떨다가 깜짝 놀란 스탭들이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풍성하지만 그다지 맛 없는 이곳의 조식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커피를 한잔 타서 마신다. 이곳에 오래 있었지만 옥상에서 제대로 시내를 보지는 못했던것 같다. 난간 근처로 가서 고개를 내밀고 바라보니, 일주일이나 있었던 이곳의 모습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어제 저녁을 먹었던 현지 식당은 아침부터 만석이다.

식사를 가지고 왔길래 먹으면서 스탭에게 확인차 오늘 기차 시간을 한번 물어본다. 이번 스탭은 잘 모른다. 하지만 내선 전화로 한참 전화를 하는게 알아보는거 같다. 그러더니 기차가 9시란다. 어, 내가 알아본 거에서 50분이나 차이난다. 이러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데. 8시반에는 출발해야 한다고 해서 서둘러 식사를 마무리한다.

아무리 급해도 인사는 제대로 해야지. 이때까지도 옥상 식당에는 나 혼자다. 스탭들에게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를 한다. 지금부터 하는 인사는 진짜 인사다. 더 이상 앞으로 못 보기에 하는 인사다. 하나 하나에 진심을 담는다.

방으로 돌아오니 벌써 8시다. 마지막을 급하게 떠나고 싶지 않은데 이리 되서 안타깝다. 그래도 여기저기 인사할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일단 짐을 빨리 싼다. 녹차가 역시 부담이 된다. 이걸 다 가져가기도 어렵고,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 반을 뚝 떼서 두개는 이곳 스탭들한테 선물로 주기로 결정한다.

짐을 싸고 잠시 침대에 앉아있으니 이제 진짜 떠난다는 실감이 갑자기 든다. 어제는 실감이 안되서 아무렇지도 않았나보다. 뭔가 울컥 울컥하는게 가슴 속에서 아까부터 계속 올라오려하지만 무시한다. 아직 아니야. 

8시 15분, 보보네 가서 인사도 하고 갈려면 이제 진짜 떠날 시간이다. 이제는 조금 무거워진 인생의 무게를 다시 한번 어깨에 짊어지고 6년간 나와 함께 산전수전을 겪어온 쪼리를 신고 방을 나선다. 나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침대를 돌아본다. 잘있어.

내려오니 어제 걸레질 하던 꼬마 여자애는 지금은 바닥을 쓸고 있다. 정말 너는 하루종일 청소만 하는구나. 또 청소해? 라는 표정을 담아 웃어주니 얘도 따라 웃는다. 내가 없어도 이곳의 하루는 조금의 변화도 없다. 스탭들한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몇일간 정들었던 이곳을 떠난다.

거리를 천천히 걸어서 보보네로 향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내가 어제 저녁을 먹었던 곳에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고, 개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바닥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다. 햇볕은 여전히 따사롭고 거리의 가게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분주하다.

갑자기 이곳 시포에게 굉장히 섭섭해진다. 나에게는 오늘이 이렇게도 아쉬운데 너는 그냥 어제와 같은 오늘일 뿐이구나. 이곳에서의 추억은 나만의 것이었던 거였니. 정을 준거는 나 혼자 뿐이었던 거였을까. 내가 이곳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했음을, 내가 없는 이곳이 조금도 변화가 없는 일상이라는 현실을 깨달으니 깊은 곳에서 서러움이 솟구친다.

보보네로 걸어간다. 그래도 이곳에서 내가 가장 마음을 많이 줬던 곳이다. 들어서니 남편만 있고, 마보사, 해태, 조조 모두 자리에 없다. 남편에게 물어보니 마보사는 자고 있단다. 깨워서라도 인사를 하고 싶은데 이기적인 생각이겠지. 남편한테 나 이제 가기에 인사하러 왔다니까, 시크하게 그래 잘가 라고 얘기해준다.

이게 결정적이다. 가방을 메고 기차를 타러 가는 길에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억지 부리는거 알고, 이게 무슨 감정인지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사랑을 원없이 줬는데도 그 사랑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서글프다. 여행은 짝사랑이다.

이번에는 굳이 참지 않고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내비둔다. 나도 모르게 여기에 정말 사랑을 많이 줬나보다. 미얀마에서의 반을 이곳에서 보내야겠다고 생각해서 있었던게 아니라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니 일주일이 되었다.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기찻길로 가면서 여행에서의 첫번째 눈물을 흘린다. 유치한거 안다. 쿨하지 못해 미안하다.

많이 생각날거다. 트래킹도 아닌, 보트투어도 아닌, 그렇다고 해태나 조조도 아닌, 그냥 시포가 생각날거다. 오르차가 나에게 항상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듯이 시포 또한 항상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할거다. 하지만 다시는 안와. 이 바람둥이 같으니라고.

이대로 기차역으로 가기는 좀 그래서 잠시 앉아서 감정을 추스린다. 하지만 내가 어떻든 시간은 흐르고, 기차는 올거며, 세상은 또 언제나 처럼 무자비하게 앞으로 간다. 나도 이제 기차역을 찾아야 한다.

엊그제 조조가 트래킹 끝나고 오면서 알려줬던 길을 더듬어 걸어간다. 헌데, 기찻길은 찾았는데 기차역이 안보인다. 시간이 그렇게 여유있지 않아서 사람들한테 물어보지만 영어 울렁증으로 모두 당황하고 도망간다. 한 아저씨가 보더니 왼쪽으로 가라고 한다.

왼쪽으로 가면서 반대쪽을 힐끔보니 사람들이 모여있는게 보인다. 저기가 기차역 같은데? 아저씨가 잘못 알려줬나? 왠지 그냥 가면 안될거 같아서 일단 사람들이 모여있는 쪽으로 향해본다. 대형 배낭을 밴 서양 여행자들이 많이 보이기에 이쪽이 맞는듯 하다. 아까 아저씨 말 들으면 큰일날뻔했다.

역무서에 들어가서 물어보니 역시 맞다. 표는 9시부터 판매한다고 한다. 아직 8시 40분 정도라 앉아있는 여행자들 사이에 꼽사리 껴서 자리를 잡는다.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했나? 언제나 그렇듯이 키보드를 펴고 글을 좀 쓸려고 하니 뭔가 나에 관련된 얘기인듯한 얘기가 들린다. 괜히 이상한 말 들리기 전에 알아들을 수 있는걸 미리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그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입을 연다.

"혹시 기차에서 밥 파는지 아나요?"

정말 궁금했던 거기도 하다. 어, 근데 여자애 중에 하나가 무척 낯이 익다.

"어? 낯이 익은데. 우리 어디서 보지 않았나요?"
"어 그러게요. 어디지? 다른 나라인가?"

낯은 익은데 어디서 만났는지 둘다 기억을 못한다. 그러다가 그 여자애가 먼저 기억을 한다.

"아! 바간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

나도 바로 떠올린다. Ostello Bello에서 두번째 게스트하우스로 옮기고 첫번째 날인가, 아침을 먹고 있는데 한 미국인 소녀가 와서 얘기를 잠시 했었다. 걔는 그날 떠나는 거여서 길게 얘기를 못했는데 그 아이이다.

그러고 보니 그 여자랑 같이 있는 다른 여자도 뭔가 낮이 익다. 얘는 또 어디서 만난거지? 이번에도 그 여자애가 먼저 기억을 한다. 확실히 내 인상이 강렬하긴 한가보다. 얘는 Ostello Bello에서 내 윗층에 자던 여자애다. 애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좀 많긴 하지만 뭐 나보다는 어릴거다. 이 둘이 같이 다니는거 보니 여행지에서의 인연은 참 특이하다.

그런데 나는 이곳에서 일주일이나 있었는데 어떻게 만난거지. 물어보니 인레호수를 들려서 왔단다. 아, 나는 인레호수 스킵하기로 했어, 라고 하니 주변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 뭐 안가면 안되는 곳이야? 난 안가!

돌이켜보니 안가기를 잘한거 같다. 어제만 해도 갔어야 했나 살짝 고민을 했지만 그랬으면 어제의 하루를 못 지냈을거고, 시포와의 제대로 된 마무리도 못했을거 같다. 그깟 호수, 서울 가면 석촌호수나 한번 들려주지 뭐.

9시가 되서 표를 끊기 위해 줄을 선다. 얘네가 아무것도 모르기에 내가 오늘 오전에 조사한데로, 뷰가 오른쪽이 더 좋다, 라고 얘기를 해준다. 한국인과 연애도 하고 친구도 많다는 한 남자애가 "역시 한국인은 모든 것을 알아!"라고 얘기한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런거 조사는 잘하는거 같다. IT강국이 아니라 인터넷 강국이라 그렇겠지 뭐.

이 친구들 모두 핀요린으로 간다. 하지만 거기 머무를려고 하는 애는 나 하나다. 나머지는 내려서 인레호수로 직행하거나 만달레이로 직행한다. 나는 핀요린에 석양이 멋진 식물원이 있다고 하길래 거기에 들러볼까 한다.

어찌 보면 시포를 떠나는 순간, 미얀마에서의 여행은 끝난거 같다. 지금부터는 덤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추억이 생길려나. 하지만 나는 시포, 그놈 같은 바람둥이가 아니라서 그렇게 쉽게 다른 곳과 사랑에 빠지지 못한다.

내 말을 듣고 오른쪽 한줄로 쭉 앉게 표를 끊고 차를 기다린다. 기차표는 2750키얏이니 그리 비싸지는 않다. 이곳과의 이별은 기차역까지 걸어오는 그 순간이었나보다. 지금은 이미 떠났다는 생각에 기차가 오는 쪽을 멍때리며 쳐다본다.

9시반쯤 되서 기차가 드디어 들어온다. 기차는 생각보다 자그마하다. 사람들이 짐을 들고 우르르 일어서길래 나도 따라서 짐을 메고 기차에 올라탈 준비를 한다.

우리나라 우등 버스 같이 왼쪽에 두자리가 붙어있고, 오른쪽에는 한자리가 독립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다 같이 자리를 잡고 앉는다. 바깥에 아이들이 다니면서 물과 간식을 판다.

그러고 보니 물을 하나 사야 해서 보니 이미 지나갔다. 앉아서 조금 기다리니 물을 든 아이가 다가온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400키얏이란다. 여기는 이런데라고 더 비싸게 안파는게 좋다. 돈을 지갑에서 꺼내고 있는데 기차 소리가 들린다.

"푸우푸우"

진짜 이런 전통적인 기차 소리를 듣게 될줄은 몰랐다. 정감 가는 소리다. 빅뱅이론의 쉘든한테 내가 이 기차를 탔다고 자랑을 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소리다. 돈을 꺼내서 소녀에게 주고 물을 받자마자 기차가 출발한다. 소녀와 다행히 거래를 끝냈다는 안도의 미소를 주고 받는다.

기차는 선로 위를 그냥 달리는거 아닌가? 헌데 왜 흔들리는걸까? 조금 흔들리는게 아니라, 좌우로 심하게 흔들린다. 5분 지났는데도 살짝 멀미가 올 정도이다. 뭐 아직까지는 이런 낯설은 경험이 즐겁다.

다른 아이들은 사진을 찍고 난리가 났을때 나는 키보드를 열고 드디어 제대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을 써야 이곳과의 이별도 완전히 끝나는거기에 감정이 남아있을때 써야 한다.

쓰다보니 아까의 감정이 살아나서 또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이번에는 참아보려 하지만 잘 안된다. 아씨, 이놈 때문에 두번이나 눈물을 보인다. 맨 뒷자리라 괜찮을듯 하지만 다른 애들이 볼까봐 어색하게 눈을 가린다. 아 진짜 뭐 이리 찌질하다냐. 그래도 이제 진짜 정리 끝이다!

기차가 얼마 안가서 왜 기차를 꼭 한번 타라고 했는지, 그리고 왜 오른쪽이어야 하는지 바로 깨닫는다. 일단 왼쪽은 절벽으로 가려져있는 경우가 많고 오른쪽으로 시야가 열려있다. 만달레이에서 올때는 왼쪽, 만달레이로 향할때는 오른쪽, 이건 필수다. 거기에 기차 선로가 자연이나 사람들이 사는 주거지와 멀리 떨어져있지 않기 때문에 정말 말 그대로 미얀마를 느낄 수가 있다. 괜시리 우쭐해져서 앞에 앉은 애들에게 "오른쪽!" 하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니 애들도 엄지를 척 들어올려준다.

왜 힘들게 트래킹을 한걸까. 트래킹에서 내가 경험한 미얀마는 불타오른 황무지라면, 기차에서 보는 미얀마는 초록색이 펼쳐진 무한한 자연이다. 게다가 트래킹 처럼 힘들게 없으니 그냥 바라보면 된다. "덜컥덜컥" 베이스에 소리와 가끔씩 울리는 "뿌우뿌우"의 솔로를 배경음악 삼아 창을 향해 멍때리며 앉아있는다. 오늘 기차를 안타고 인레로 버스로 직항할까 고민도 잠깐 했었는데 놓쳤으면 큰일날 뻔했다.

차가 하도 흔들리니 가방 큰 애들은 고정을 하거나 가끔 손으로 잡아줘야 한다. 헌데 여기에 배낭 메고 바퀴 달린 손잡이 있는 관광객들이 끌고 다니는 그 가방을 들고 온 사람도 있다. 아까 한국인과 친하다는 애, 인도 한달을 포함해서 두달째 여행한다더니 이게 가능하구나. 어쩐지 모양새가 너무 말끔하더라.

기차가 멈추고 스탭들이 내린다. 사람들이 나가서 무슨일인가 보니 앞에 나무가 하나 선로를 막고 있단다. 뭐 큰일은 아니라서 금새 채우고 다시 "뿌우뿌우" 소리를 내면서 출발한다. 워낙 선로가 독립적이지 않다보니 이런 일이 비일재일하단다. 그러니 오래 걸리는거겠지.

보트 탔을때와 마찬가지로 기차도 지나가면 아이들과 현지인들이 손을 마구 흔든다. 아예 손을 흔들려고 기차가 오는 소리를 듣고 구경오는 아이들도 있다. 그래도 여행자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매번 그리 신기할까?

첫번째 메인 기차역에 도착한다. 현지 소녀 둘이 차에 올라타더니 영어 연습을 하려는지 사람들한테 돌아다니며 말을 건다. 나를 스윽 보더니 지나친다. 야, 미국 여자애 말고는 내가 영어는 제일 잘하는거 같은데 뭐니. 나도 니네 싫다 뭐.

기차가 선 김에 가치의 화장실을 가본다. 아주 내츄럴한 화장실이다. 그냥 선로로 구멍이 뚫려있다. 아, 물갈이는 끝난 거겠지? 배야 배야, 5시간만 더 참아다오. 도착하면 원하는데로 화장실에서 살아줄께. 여기는 아니야.

뭐라도 좀 사 먹을까 하다가 괜히 장에 안좋을까봐 오늘 기차에서는 굶기로 마음 먹는다. 기차에서는 사람들의 교류가 활발하다. 여행자들은 이런 상황에서는 일단 서로 얘기를 나누고 교류를 시작한다. 다들 석달 이상 한 애들인데 어디를 갔다 왔냐 어디가 좋냐 서로 얘기 중이다.

여행이 보름이 넘어가면서 뭔가 그냥 교류 자체가 싫어진거 같다.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좋은 사람인지 알 수도 없거니와 그런다 하더라도 같이 일행이 되지 않는 이상은 어차피 이삼일 만나고 헤어지는거, 가벼운 만남이 좀 귀찮다. 일행은 왠만해서는 만들 생각도 없는지라, 그냥 혼자가 편하다. 여행 초기와 달라진 점은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을 의식하다가 이제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내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가? 처음에 말을 걸던 사람들도 조금 지나면 나를 그냥 내비둔다. 홀로 여행자의 느낌이 나나보다. 이번에도 처음에는 얘기를 좀 하더니 그냥 나를 두고 자기들끼리 얘기한다. 이게 나도 더 편하다. 얘기하는 중간에 베트남의 '사파'가 제일 좋았다는 얘기가 들리기에 그것만 살짝 메모해놓는다.

살짝 졸음이 와서 선글라스를 끼고 잠깐 잠이 든다. 열차가 좌우로 많이 흔들리지만 이게 의외로 자는데는 그리 방해가 안된다. 그러다 가슴쪽에 뭔가 따끔한 느낌이 와서 놀래서 잠에서 깬다.

화들짝 놀래서 가슴쪽을 탁 치니 어떤 벌레가 휘리릭 날라간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무슨 벌레인지는 못 봤다. 가슴쪽에 보니 뭐에 쏘인듯한 흔적이 있고 따끔하다. 부어오르지는 않는거 보니 벌은 아닌듯 한데 워낙 산간동네라 갑자기 걱정이 된다.

조금 지켜보지만 부어오르거나 색이 바뀌지는 않는다. 뭔가 마비 증상이 있는듯 해서 손발을 휘둘러 보는데 이게 그냥 내가 신경써서 그런 느낌이 나는건지 실제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여행에서는 안전이 제일 중요한데 조금 걱정이 된다. 조금 유심히 지켜봐야겠다. 스파이더맨 보면 이렇게 슈퍼파워가 생기던데, 나도 혹시...? 근데 진짜 뭐였을까.

이런 기차여행에서는 책이 제일 좋은 친구다. '연금술사'를 보는데 매우 마음에 드는 일화가 나온다.

'한 소년이 현자에게 행복에 대한 비밀을 물으러 간다. 현자는 시간 시간이 없으니 2시간만 자기의 성을 둘러보라고 한다. 대신, 숫가락에 두방울의 기름을 주고 흘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소년은 두시간 동안 숫가락을 신경쓰며 돌아다니다가 현자에게 돌아온다. 현자가 자기 성의 멋진 장식들과 활발한 사람들을 잘 구경했냐고 하니, 소녀는 부끄러워하며 숟가락에 집중하느라 아무것도 못 봤다고 고백한다. 현자는 한번 더 보고 오라고 한다.
이번에 소년은 숟가락 보다 주변을 보면서 돌아다닌다. 멋진 성 구조물도 보고 화려한 묘기를 자랑하는 사람들도 본다. 두시간 후에 돌아오니 현자가 역시나 잘 보고 왔냐고 물어본다. 소년은 이번에는 모두 잘 봤다고 대답한다. 현자가, 그런데 숫가락에 기름 두방을 어디 갔냐고 하니 소년이 구경하느라 어느새 없어졌다고 대답한다.
현자는 행복이란, 숟가락의 기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성도 잘 둘러보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여행은 분명 현실에서 삭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매우 큰 활력소가 된다. 하지만 여행에 빠져서 현실을 잃어버리면 안된다. 현실은 한달을 비우든, 일년을 비우든, 끈질기게 그 자리에 그대로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가끔 여행자들이 여행에 중독되어서 현실을 외면하고 돌아다니는 경우를 많이 본다. 다 살아가는 방식이겠지만, 어쨌든 현실은 언젠가 다가온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이 책, 여행다니면서 보기 딱 좋은 책 같다.

책을 읽다보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이곳이 변하지 않기를 원하면서도 나한테는 영향을 받기를 원하는구나. 난 특별하니까 내가 주는 영향은 상관없다고 여기고 있구나. 만약 이곳이 나처럼 자기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계속 해서 영향을 받는다면, 여기 본연의 모습을 지킬 수 있을까?

여행자로서 나는 이들의 삶을 멀리서 관찰하기 보다는 깊숙히 들어가서 보고 느끼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싶어한다. 항상 이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이게 여행자로서 올바른 자세인가 싶은 고민이 든다. 어차피 우리는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너무 깊숙히 들어가서 영향을 주기보다는 그냥 멀리서 관찰하는게 맞는건가. 혼란스럽지만 아직은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1시가 되서 또 정차한다. 조금 가다가 이삼십분 정차하고 또 움직이고, 이런 식이다. 그러니 같은 거리를 가도 버스에 비해서 한참 오래 걸린다. 조금 배고픈데 뭐라도 먹을까. 일단 이번에도 패스하기로 한다. 이동시에는 물도 안마시는게 좋다.

아까 물린 곳은 상처도 붓기도 빠지고 마비 증상 같은 기타 증상이 없는거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나보다. 벌에 쏘였을때와 같은 물리적인 통증만 조금 남아있다. 뭐였을까? 나도 초능력이 생길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아쉽군.

점심을 스킵하려고 했는데 큰대야에 볶음국수를 수두룩하게 담고 머리에 이고 다니는 이동 판매 아주머니가 나타난다. 연금술사를 보다보니 뭔가 이걸 '징조'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무슨 중국영화 보고 나와서 쿵후하는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 먹지 뭐. 먹고 속 안좋으면 정말 아무나 쉽게 체험할 수 없는 선로에 직접적으로 흔적 남기기 하면 되지 뭐. 까짓거.

기차가 출발한다. 어, 아주머니 안내리시나? 아마 다음 정거장까지 가시나보다. 근데 이 흔들거리는 기차 내에서도 균형을 딱 잡고 국수를 잘 담아주신다. 500키얏인데 5,000키얏짜리 밖에 없어서 당황하니 걱정말라며 거슬러주신다.

이거 은근히 맛이 괜찮다. 게다가 500키얏이다. 진짜 이곳은 바가지가 없다. 정말 훌륭히 한끼 식사를 마무리하고 다시 기차여행으로 돌아온다. 이제 속이 괜찮기만을 기도해본다.

한시간 정도를 더 가니 기차가 또 다시 기적 소리를 내더니 잠시 멈춘다. 멀리 세상에서 2번째로 높다는 그 유명한 다리가 보인다. 이야, 이거 무슨 롤러코스터 돌입하기 직전에 잠시 멈춘 느낌의 스릴감이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읽던 책을 덮고 준비를 한다.

멈춰 있던 기차가 커다란 기적 소리와 함께 다시 덜컹거리며 천천히 움직인다. 역시 오른쪽 자리가 명당이다. 안전한거겠지? 어린이대공원 놀이기구는 절대 안타는 나로서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물론 그와 함께 스릴감도 증폭된다.

조금 더 지나니 다리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아직 조금 거리가 있다. 하지만 조금씩 다가온다. 갑자기 동굴을 하나 지나간다. 그 동굴에서 나오니 또 다른 동굴을 지나간다. 동굴이 나오면서 이제 진짜 다리 앞이다.

다리 앞에는 여행자인듯한 사람들이 앉아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구경한다. 같이 손을 흔들어준다.

드디어 다리 위로 올라간다. 다리가 생각보다도 훨씬 높다. 오금이 저려오지만 앞쪽, 뒤쪽을 보면서 사진을 찍는다. 모두가 사진을 찍는다고 난리다. 아래를 바라보니 까마득하다. 열차가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가고 있어서 즐길 시간을 충분할거 같다.

정신 없이 사진을 찍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본다. 전방의 확 뚫린 시야가 눈앞에 펼쳐져있다. 미얀마의 자연을 한눈에 담을 수 있을거 같다. 사진을 찍기 위해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 이미 사진은 충분히 찍었기에 잠시 내려놓고 물끄러미 쳐다본다.

하늘을 날아가는 기차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 들까. 앞에 전경에 집중을 하니 주변에 사진기 소리와 사람들 소리가 희미해지며, 산속에서 들리는 바람소리와 새의 지저귐이 들려온다. 눈을 감으니 바람이 얼굴을 시원하게 흝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인간과 자연의 합작품이 감동으로 밀려온다.

어느 순간 무서움도 잊는다. 좀 더 지속되었으면 좋겠지만 기차는 멈추지 않는다. 다리를 지나가 다음 정거장으로 들어간다. 그쪽에서도 여행객과 현지인들이 우리를 보고 반겨준다.

아쉽지만 충분히 눈에 담은듯하다. 미얀마의 최고 관광 명소는 바간이나 인레가 아닌 여기여야 하는거 아닌가 싶다. 이 기차에 지금 앉아있는 것을 감사한다. 3000원 정도에 여유를 가지면서 미얀마의 모습을 관찰하고 하늘을 날아가는 경험을 하였다. 그리고 역시 오른쪽 자리에 탄것을 감사해한다.

어? 그런데 다리를 지나고 조금 더 가니 왼쪽에 똑같은 다리가 나타난다. 아니 이거 무슨 조화지? 5분 밖에 안지난거 같은데 한바퀴를 돌았을리는 없는데. 기차는 다리를 무시하고 자기 방향을 찾아서 달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지만 이 미스테리는 깊숙한 곳에 묻어두기로 한다. 뭐지?

'Alchemist' 책에 빠져 읽다보니 어느새 5시가 되었다. 책의 반 이상을 한자리에서 읽어버렸다. 왠지 오늘 전부 읽기 아까워서 잠시 덮어둔다.

이 책이 이 순간 나에게 전달된 이유가 있을까. 무척 유명한 책이어서 이미 읽었을법한데, 계속 미루다가 지금 꿈에 대한 생각과 행복에 대한 가치관이 흔들리는 이 순간 이 책을 펼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를 살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 꿈은 목표라기 보다는 과정이다, 같은 내용이 그대로 이 책에 나오고 있다. 그런 내용이 더 눈에 잘 들어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뭔가 하나의 메시지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번 여행 내내 했던 생각들과 꿈에 대한 생각들을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되새겨보게 된다.

책은 내용 못지 않게 어떤 분위기에 어디서 먹냐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곳, 덜컹거리는 미얀마의 기차만큼 이 책을 읽기 적합한 곳은 없다.

계속 그래왔듯이 한 아이가 또 바깥에서 손을 흔든다. 눈이 마주쳐서 나도 손을 마주 흔드니 내가 반응을 했다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방방 뛴다. 항상 봐왔던 광경이지만 여전히 볼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5시간이 걸린다던 기차는 결국 7시간 반이 걸려서 핀요린에 도착한다. 이 칸에 외국인을 몰아넣었는지 한 기차 역무원이 같이 있다가 목적지가 다가오니 알려준다. 참 이래저래 외국인에 대한 배려가 많은 나라다.

꽤 긴 기차 여행이었지만 전혀 피곤하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하나의 즐거운 경험을 한거 같아서 기분이 상쾌하다. 나에게는 트래킹 보다 이 기차여행이 훨씬 더 미얀마를 느끼게 해준 경험이었다. 이대로 4시간 더 가서 만달레이로 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듯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핀요린에서 하룻밤을 지내기 위해서 내린다.

아까 탈때 같이 인사를 나눴던 아이들은 기차여행 내내 서로 외면했었다. 하지만 이제 얘네는 만달레이로 버스를 타고 가니 내가 먼저 인사를 나눈다. 미국 소녀는 4달 여행을 내일모레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간단다. 만감이 교차할듯 하다. 집에 도착하는 마지막까지 안전하게 여행을 하라고 인사를 한다.

핀요린 기차역은 느낌이 뭔가 다르다. 시포 같은 시골의 느낌이 아니다. 밖으로 나오니 택시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고, 특이하게 마차가 몇몇 보인다. 론리에서 이곳의 마차 투어가 유명하다더니 그래서 그런가보다.

역시 게스트하우스 예약을 안하고 왔다. 아니, 카드를 모두 정지시킨 상태라 못하고 왔다는게 정확하겠다. 어차피 아고다로 검색해보니 모든 방이 30달라 이상으로 나와서 현장에서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제부터 배낭을 어깨에 메고 숙소헌팅을 나서야 한다.

처음 오는 길이지만 이제 미얀마 자체가 익숙해졌는지 그냥 대충 눈짐작으로 가도 알 수 있을거 같다. 가다가 길가에 한명한테 질문을 해서 확신을 얻고 가는 길에 계속 게스트하우스를 스캔해본다.

하나 기차역 근처에 있길래 바로 들어가본다. 상태가 좋아보인다. 물어보니 방이 없단다. 아 오늘 토요일이라 사람들이 많나? 방이 없는건 알지만 그래도 있으면 얼마냐고 물어보니 11달라란다. 뭐 그리 나쁘진 않은듯 하다.

다시 길을 나선다. 15분정도 걸어가니 메인거리가 나온다. 여기는 시포 같은 시골동네가 확실히 아니었다. 론리에서 읽어보니 식민지 시대에 윗사람들의 여름 휴양지였다고 하더니 중간 중간에 화려한 카페도 보이고, 꽤나 번화한 도시다. 만달레이 느낌도 난다. 게다가 마차는 생각보다 많이 보인다.

특이한 점은 인종이 굉장히 다양해 보인다는 거다. 피부 색이 꽤 검은 사람도 많고, 나랑 구분이 안될 정도인게 중국계로 보이는 사람도 보인다. 물론 일반적인 버마인도 많다. 다양한 인종이 모이는 교통의 요충지라는 첫인상을 받는다.

호텔이 또 보여서 들어가서 물어본다. 여기는 외국인한테 방을 대여하는 라이센스가 없다고 한다. 나가서 다른 곳을 물어보니 이곳도 마찬가지로 라이센스가 없다. 게스트하우스를 물어서 찾아가니 방이 없단다.

한시간 해맨 끝에 이곳 방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미얀마에서, 아니 이번 여행에서 처음 겪는 위기이다. 뭐 내 한몸 뉘울 곳이 없겠어, 하며 마음 편하게 있다가 6시가 넘어가고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급해진다. 그래도 어딘가는 이 한몸 받아줄 곳이 있겠지.

보이는 곳마다 들어간다. 일단 게스트하우스와 호텔이 그리 많지가 않고, 좀 괜찮아보인다 싶으면 무조건 방이 없다. 이곳은 현지인들도 많이 오는 느낌이다. 이제는 좋은 곳은 물어보지도 않고 정말 쓰러지기 직전인 곳만 찾아서 들어간다.

정말 이상한 곳이 하나 보이지만 들어가본다. 방이 있냐고 물어보니 있다면서 나를 리드한다. 정말 허름한 곳이지만 지금 가릴때가 아니다. 따라가는데 여기 방이 모두 비어있다. 이거 무슨 자고 나면 콩팥 하나 없어지고 그런거 아니야? 약간의 서늘한 느낌이 들지만 따라가본다.

이상한 구석에서 계단을 올라가고 통로를 지나서 또 계단을 올라가더니 가장 구석에 있는 방을 준다. 구조가 매우 신기하다. 괜찮겠지? 그래도 미얀마 사람을 믿어보자. 가격을 물어보니 7달라다. 방에 화장실도 딸려있는데 너무 싼거 아닌가 싶지만 일단 계약을 한다.

침대는 한 두세달 전에 청소하고 안한듯 하지만 하룻밤인데 견딜만하다. 일단 짐을 놔두고 나온다. 이곳은 쉬는 숙소가 아니라 밤이슬을 피하는 곳이다. 게다가 내 홈메트만 있으면 어디든 모기프리 지역으로 바꿀 수 있다.

항상 그렇듯이 프론트에 내일 만달레이 가는 버스를 예약할 수 있을까 물어보니 옆에 버스 회사가 있으니 가서 물어보란다. 하도 걸어서 온건지라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지만 바로 옆에 있다니 나가서 걸어가본다.

5분이 아니라 2분 걸어가니 있다. 할아버지 5분이 안에 있다. 손님도 없는데 뭘 이리 많이 있는지, 미얀마는 항상 사람이 많다. 물어보니 이건 미니버스라서 시간 이런건 상관없고 사람이 있어야 간단다. 일단 내 호텔을 알려드리고 내일 아침에 다시 와서 확인하기로 한다. 생각해보니 버스를 못 타면 기차를 타면 된다. 기차 타고 가는건 문제가 아닌데 도데체 언제 이곳에 도착하는지를 모른다는게 문제가 되긴 한다.

이제 배를 채워야지. 저녁을 먹으러 식당을 둘러본다. 이곳 꽤나 큰 도시라서 그런지 오면서 정말 화려하고 사람 많은 식당들을 많이 봤다. 하지만 그곳까지 가기도 귀찮아서 일단 주위를 둘러본다.

그냥 골목길을 돌아다니다보니 미얀마 생맥주를 파는 곳이 눈에 띈다. 이름도 모르겠지만 안에 현지인들이 꽤 많이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다. 뭐 동네에 있는 흔한 술집인듯하다. 갑자기 맥주 한잔이 땡겨서 들어가본다.

메뉴판을 달라고 하니 사장 아저씨 뭔가 당황하신다. 서랍속을 막 뒤지시더니 그래도 영어메뉴판을 꺼내주신다. 근데 메뉴판에 가격이 없다. 의심병이 도져서 가격을 물어보니 대략 4000키얏 정도란다. 좀 비싼데... 술집이고 도시라 그런가. 현지인들이 많이 있는거 보니 바가지는 아닐듯 하다. 맥주를 물어보니 600키얏이다. 콜!

메뉴가 너무 복잡해서 그냥 하나 추천해달라고 하니 이번에는 진심 당황하신다. 영어가 너무 길었나보다. 잠시 앉아있으라고 하고 한참 후에 주방에서 나오신 분이 얘기를 들어준다. 그냥 조금 매콤하고 고기 들어가는 맛있는거 아무거나 추천해주세요, 라고 부탁한다. 노여사와 데이트할때도 그렇지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게 사실 '아무거나'다. 노여사, 맨날 아무거나 먹자고 하면서, "그럼 피자 먹을까?" 하면 "피자는 빼고..." 이런 식이다. 하지만 난 그런 남자 아니니 걱정마세요. 아저씨, 뭔가 삘 받으셨는지 알겠다고 하면서 메뉴 이름도 안가르쳐주시고 주방으로 사라지신다.

일단 맥주 한잔을 들이켜본다. 아, 여기 맥주, 다른데에 비해 맛있다. 미얀마 생맥주라더니 지금까지 먹은거와 다른가보다. 아 오늘은 콩팥 떼일지도 모르니 몸가짐을 조심해야 하는데. 아닌가? 오히려 만취하면 콩팥을 더러워서 안떼가려나?

키보드를 펴고 글을 쓰니 역시 언제나 그렇듯이 모두가 집중한다. 뭐 이제는 익숙하지 못해, 집중 안하면 뭔가 이상하다. 글을 좀 쓰고 있으니 음식이 도착한다.

다진 돼지고기, 밥, 국, 그리고 반찬 하나다. 고기를 먹어보니, 아저씨 내 취향 딱 맞췄다. 아주 맛있다. 엄지 번쩍! 국물도 시원하니 좋다. 따로 주신 반찬도 고수향이 깊이 어려있는 것이 완전 마음에 든다. 아 이곳 대충 왔지만 잘 고른듯 하다.

밥 나오기 전에 맥주 하나를 다 먹어서 두번째 잔을 주문한다. 돌아보니 이곳 사람들은 맥주에 양주를 섞어마신다. 우리나라 소맥 같은건가보다. 맥주 한잔과 밥을 먹고 글을 쓰다보니 기분 좋게 취해간다.

이때, 왠 서양 아가씨들이 들어온다. 아저씨 또 당황하신다. 그런데, 나야 그냥 아무데나 왔다 치고 이 아가씨들은 여기 왜 온거지? 론리에서 추천하는 곳만 해도 엄청나게 많던데. 뭐 나처럼 모험을 즐기는 여성분들인가보다.

역시 영어 울렁증이 있는 사장님 급하게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아까 그 영어 잘하시는 주방장님을 모시고 왔다. 주방장님, 또 한참을 설명하시더니 끄덕이며 주방으로 가셨다. 살짝 엿들으니 여기는 중국음식점이라는거 같다. 어쩐지 주방장님이 중국 사람 같더라. 사장님 외국인이 두팀이나 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뭔가 자세에서 뿌듯함이 느껴진다.

맥주 두잔과 주어진 음식을 탈탈 털어먹고 나는 자리를 일어선다. 5500키얏, 예상했던 만큼 나왔다.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왠지 8시쯤 되면 자동으로 귀가를 하게 된다.

근처에서 먹었던지라 큰 어려움 없이 숙소로 돌아온다. 여기 보아하니 의외로 조식도 제공이고 와이파이도 된다. 와이파이는 방에서 안잡힐거 같고 되도 정말 슈퍼 느림보로 예상되며, 조식도 과연 퀄리티가 의심되지만 그래도 7달라에 하룻밤과 한끼를 해결하는거면 훌륭하다. 여행을 연장하는 바람에 돈을 아낄 필요가 생겼다.

방으로 돌아오니 역시 어마어마한 후질근함이 나를 기다린다. 다른건 괜찮은데 창밖에서 들리는 차소리와 이불이 문제다. 여기 대도시라 밤새 차가 지나다닐듯 한데 잘 수 있을까? 이불이야 언제나 그렇듯 패딩을 꺼내면 될듯하다. 고무적인 것은 이 동네가 약간 날씨가 선선해서 그런지 홈매트를 키지 않아도 모기가 없어보이는 것과 대도시라 그런지 의외로 빠른 3G 속도다. 생각해보니 오늘 이후로는 굳이 3G가 크게 필요없지 싶다.

여행지에 내가 마음을 안주면 그네들도 나한테 마음을 안주나보다. 치앙마이도, 이곳 핀요린도 나를 그깟 원나잇 정도로 생각하는거야, 라는 섭섭함을 이리 표현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나 저러나 마음을 줬던 빠이와 시포가 살짝 그리워진다. 하지만 내 여행은 아직 반이 지나지 않았다. 아마도?
4 Comments
데어데블 2015.05.10 03:49  
잘읽었습니다
전글보다좀더 여행에대한 생각이 깊어지는거같네요ㅎ
여행지가 바람을핀다는 표현이 정말 와닿는것같습니다
짝사랑이라는 표현도 제가생각은하지만 표현못하였던걸 딱 끄집어내주시네요
글을잘쓰시는것같아  정말 부럽습니다
앞으로남은 여행 잘 하시고 글도 부탁드릴께요
아디다스와초장 2015.05.10 14:39  
지난 4월 여행에서 제가 그 섬을 나오면서 훌쩍여 울었던 이유를.. 이번 편에서 정확히 그 감정이 이런 거였구나 알게 되었어요. 다시금 저의 첫 미얀마 여행에 조바심을 내어봅니다.
디아맨 2015.05.10 18:11  
미얀마를 그닥 가고싶지 않앗는대..
생각이 바뀌네요^^ 마치 제가 여행하는 기분이 드네요..
필리핀 2015.05.11 20:34  
여행 보름차면... 슬슬 향수병이 도질 때지요...

기분이 왠지 센치해지면서 외로움도 많이 타게 되고...

이때 한국 라면 하나 먹어줘야 거뜬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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