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 여행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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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 여행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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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띠아이 쓰레이 (Banteay Sr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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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시기 : 967년

▷건축왕 : 준공: 라젠드라바르만 2세(944~968) 완공 :자야바르만 5세(968~1001)

▷건립자 : 브라만 승려 야즈나바라하(Yajnavaraha)

▷종교 : 힌두교

▷건축양식 : 반띠아이 쓰레이

 

명칭 : 반띠아이는 성채, 쓰레이는 여인 즉 "여인들의 성채"라는 이름은 여자와는 무관하며, 분홍빛 사암과 붉은 라테라이트석을 사용하여 사원 전체가 분홍빛 연꽃처럼 대단히 정교하고 아름다운 여성적 분위기의 부조로 온통 장식되어 있다는 점에서 여인이란 명칭이 연관된 듯하다.

개요

"크메르 건축 예술의 보석". 반테이 스레이 복원작업을 하던 프랑스 고고학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쉬바 신에게 봉헌된 쓰레이는 "보석"이란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고 정교하고 완벽하다. 그만큼 쓰레이의 부조는 크메르 조각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마치 천재적 재능을 가진 조각가가 분홍빛 사암에 자신 있게 칼을 대어 완성한 걸작품 같다. 무엇보다 부조를 아주 깊게 파내었음에도 델리케이트한 라인을 유지하며 사실적 묘사를 충분히 표현해 내기 때문에 부조는 마치 살아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분홍빛 사원과 분홍빛 연꽃의 아름다운 대비는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쓰레이는 1914년 프랑스인에게 발굴되었지만 워낙 울창한 밀림 속에 자리 잡아 방치된 와중에 도굴사건이 발생했다. 1923년 프랑스 인을 주축으로 한 유럽계 고고학 탐험팀이 쓰레이로 들어와 홍보석같은 사원의 상인방(문틀위)을 떼 내어 도망쳤다. 공식 탐험단의 몰상식한 행위는 프랑스 정부를 격노케 했고 이들은 프놈펜에서 체포되어 감금되었고 부조를 비롯한 도굴품을 죄다 찾은 후 석방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 정보는 하루 빨리 쓰레이를 발굴을 해야겠다고 결정 대대적인 발굴 작업을 실행 오늘날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특기할 것은 쓰레이의 복원에 도입된 아나스틸로시스 공법(Anastylosis)은 당시로서는 최신예 유적 재건축 기법이었다. 붕괴된 원래의 조각들을 모아 원형을 추정한 뒤 하나하나 끼워 맞추는 기법으로 프랑스 고고학계가 인도네시아의 족자카르타 인근의 보르부드르 유적 복원에 처음 도입하여 성공한 기법으로 앙코르 유적 중에선 최초로 쓰레이에 도입했다. 지금도 꿰어 맞추기 위해 모아둔 돌들에는 분류번호가 매겨진 채 사원 곳곳에 놓여 있고 갈 때마다 금접 라인이 바뀌어 쳐져 있으며 조심스레 나무들을 베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형태 : 쓰레이 건축의 특징은 짙은 분홍색 사암과 붉은 라테라이트를 전체적으로 사용했다. 또 부조의 섬세함이 극에 달하고 무엇보다 대단히 화려하고 마치 미니아쳐(축소판)처럼, 건물들이 아주 작고 낮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 인도 건축 양식을 상당 부분 혼합했으며 벽감을 많이 사용했고 상인방의 부조 내용을 충실히 했으며 주로 힌두교 대서사시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의 내용을 표현했다. 쓰레이 사원 전체가 힌두 신화를 알리는 하나의 거대한 경전 역할을 한다.

 

감상 :

①벽 : 쓰레이는 직사각형의 길다란 사원으로 두 겹의 외벽과 두 겹의 내벽으로 둘러져 있는데 제1외벽은 완전히 유실되었다. 또 성소를 에워싼 제2 내벽은 그렇잖아도 축소판 같은 사원에서 가장 축소판 같은, 아주 나즈막한 담 모양새이고 그나마 거의 죄다 허물어졌다. 벽도 붉은 라테라이트를 사용하여 전체적으로 홍보석 같은 느낌이다.

 

②탑문 : 동쪽 고푸라문이 주 출입구이며 제1 외벽에서부터 성소를 지나 서쪽 끝 고푸라 문까지 주욱 이어지는 형상이다. 성소를 둘러싼 제2 내벽에 난 문을 제외고는 모두 각 방향으로 출입구가 난 십자가형 고푸라 탑문이며 제1,2 외벽 사이의 보도 중간 즈음에 남북쪽으로 출입구를 냈다. 1936년 제1 외벽의 동문에서 발견된 비문에 의하면 쓰레이의 원래 이름은 이스바라푸라(Isvaraputa)로서 왕족 출신의 승려이자 쟈야바르만 5세의 스승이 건립했다고 한다. 제1외벽에 난 동쪽 문의 동쪽 현관 상인방(문틀위)에는 번개와 홍수의 신이자 약한자의 수호신인 인드라(Indra, 불고의 제석천)가 자신의 신성한 탈 것인 아이라바타(Airavata, 머리 셋 달린 코끼리)를 탄 장면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③통로 : 동쪽 고푸라 문을 들어서면 긴 보도가 이어진다. 보도 좌우로 기둥으로 떠받혀진 갤러리(회랑)이 길게 나열되며 그 중간에 사암으로 지은 기둥에 떠받혀진 자그마한 탑문이 남북으로 나 있었지만 거의 유실되었다. 탑문 너머로는 아직도 붕괴된 부분을 꿰맞추기 위한 작업과 검은 세월의 때를 벗겨내는 작업이 계속되는 가운데 숲 속에선 장님악단의 전통악기 연주가 관광객의 흥을 북돋운다. 남쪽 탑문 너머로는 직사각형 건물 세 개가 나란히 위치하고 북쪽 탑문 너머로는 하나의 직사각형 건물이 위치하는데 상인방에 비쉬누 신의 4번째 화신인 나라싱하(Narashingha, 머리는 사자, 몸은 인간)가 악마 히란나야카시푸를 죽이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오른쪽 갤러리 끝 부분에는 상인방 하나가 복구순서를 기다리며 땅에 놓여져 있는데 힌두 신화의 대서사시「라마야나」 중 비쉬누 신의 여섯 번째 화신인 인간 라마의 아내 시타(Sita, 락쉬미 여신의 화신)가 악마왕 라바나에게 유괴되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문지방의 신 나라싱하>

히란나야카시푸(Hiranayaksipu)를 총애한 창조의 신 브라흐마는 "신, 인간, 동물 그 어떤 존재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며, 밤에도 낮에도 죽이지 못하며, 집 안에서든 집 밖에서든 죽이지 못하는 영생의 권능"을 부여한다. 교만해진 그는 악행을 일삼고 심지어는 아들 프라흘라다가 비쉬누 신을 숭배하자 격노하여 아들마저 죽이려 한다. 그의 불의를 보다 못한 비쉬누는 브라흐마의 예언을 피해 그를 칠 묘안을 짜낸다. 우주 질서 유지의 신 비쉬누의 권능 중 하나가 불의가 발생하거나 난국에 처할 때 그 상황에 맞는 상태로 환생하는 권능을 갖고 있다. 비쉬누는 브라흐마의 예언 중에서 결점을 찾아, 신도 인간도 동물도 아닌 반사자 반인간의 몸을 갖고 밤도 낮도 아닌 황혼 무렵에 집 안도 집 밖도 아닌 문지방에서 그를 단숨에 살해한다.

④내벽과 해자 : 제2 외벽의 동문을 통과하면 '여인들의 성채'라는 이름에 걸맞는 아름다운 정경이 펼쳐진다. 나즈막한 내벽은 해자(연못)로 빙둘러 격리되어 있는데 붉은 라테라이트 내벽과 분홍 연꽃의 조화가 너무나 싱그럽다. 여기에 악센트를 주듯 황색 가사를 입은 스님들의 모습까지 더하니 한폭의 수채화가 따로 없다. 해자를 지나 내벽 동문을 들어서면 아기자기한 이미지의 붉은 건물군이 나타난다. 내벽 안쪽으로, 동쪽과 서쪽 탑문 좌우로 선 4개의 직사각형 건물은 참배객들의 휴게소 용도이며 남북으로 선 두 개의 별관은 명상을 하는 용도로 지어졌다.

 

⑤장서각 : 쓰레이의 심장부를 마주한 관광객은 감탄을 마지않는다. 내벽이라고 부르기엔 좀 부족한 나즈막한 담은 거의 허물어졌지만 건물 전체가 정교한 부조로 가득한 건물들은 완벽하게 꿰맞춰져 쓰레이의 명성이 과장되지 않음을 증명한다. 좌우로 마주보는 아름다운 건물이 장서각이다. 크메르 건축물에서 장서각이란 실제로 책을 쌓아두는 곳이 아닌 상인방이나 벽에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그림으로 신화를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건물 전체가 한 권의 책이며 쓰레이의 장서각은 힌두교의 2대 서사시인의 「라마야나」와 "「마하바라나」라는 두 권의 책인 셈이다. 단아한 장서각은 서쪽문(뒷편)만 열려있고 나머지는 가짜문 형식으로 새겨져 있다. 벽은 평범한 벽돌로 쌓아올려 상인방의 화려한 부조와 대조를 이루게 했다. 완벽하게 복원된 성소와 장서각에는 금접의 줄이 쳐져 다가서진 못한다. 쓰레이 유적발굴팀의 걱정은 태산 같다. 쓰레이의 정교한 부조는 골동품업자에겐 군침을 흘리는 보물인데다가 다른 사원과는 달리 모든 것이 미니어쳐(축소판)여서 슬쩍 집어가거나 잘라가져 가는 데도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할 것이다.

 

남쪽 장서각의 부조: 남쪽 장서각은 「라마야나」책이다.

동쪽문 상인방 :

<카일라사 산 흔들기> 전설이 새겨져 있다. 첫 번째 단에는 원숭이 수문장이 한 손을 들어 라바나를 저지하면서 언쟁이 생기고 원숭이 수문장이 라바나가 언젠가는 원숭이의 손에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저주를 내리는 장면부터 시작하여 분노한 라바나(여러 개의 머리와 팔을 가진 형상)가 카일라사 산(피라미드 모양의 숲을 배경으로 가진 부조)의 밑둥을 잡고 뒤흔드는 장면, 놀란 산 속의 동물들이 숲 속으로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는 장면, 겁에 질린 파르바티 여신이 남편 쉬바 신 곁에 바싹 다가가 어깨에 기댄 채 떨고 있는 모습, 그리고 쉬바신이 발가락으로 가볍게 카일라사 산을 눌러 건방진 라바나를 짓눌러 버리는 장면, 교만함을 깨닫은 라바나가 1천년 동안 쉬바를 찬양하는 항복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그 외 장면은 쉬바 신 아래쪽에 명상 중인 신도들, 짐승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가진 형상이 새겨져 있다.

 

<카일라사 산 뒤흔들기 전설>

머리 10개, 팔이 20개, 다리가 4개나 되는 스리랑카의 왕 라바나(Ravana)는 천하무적의 힘에 출중한 용모까지 겸비한 자로서 창조의 신 브라흐만의 숭배자였다. 그는 머리를 모두 떼어내어 브라흐만에게 바치며 찬송한 덕분에 브라흐만은 그를 총애하여 "자신을 포함한 어떤 천상의 신이라도 그를 해치거나 죽이지 못한다"는 권능을 내렸다. 때문에 라바나는 점점 교만해진다. 어느날 라바나는 쉬바신의 거처가 있는 신성한 카일라사 산에 들어가려 하자 원숭이 머리의 수문장에게 저지 당한다. 자존심이 상한 라바나가 격노하여 대들자 원숭이 수문장은 "언젠가 네 운명은 원숭이에 의해 파멸될 것이다"라는 저주를 내린다. 분한 라바나가 카일라사 산 밑둥을 잡고 마구 흔들자 파르바티 여신이 겁에 질리고 화가 난 쉬바 신이 온몸의 힘을 실어 발까락으로 카일라사 산을 꾸욱 누르자 라바나는 산 밑에 깔려 힘을 쓰지 못한다. 놀란 라바나는 당장에 머리를 읖조리며 쉬바 신의 권능을 찬양하는 노래를 1천년 부르자 비로소 쉬바 신은 그를 놓아준다. 라마야나」는 힌두교인으로서 지켜야할 덕목이나 도리에 대해 총체적으로 설명하는 이야기인데 이중 이 카일라사 산 흔들기 부분은 신에 대한 절대적 순종을 얘기하고 있다. 결론은 감히 신에 대항하고 악행을 저지른 라바나를 처치하기 위해 브라흐만의 권능을 피해 인간 라마 왕자로 환생한 비쉬누신에 의해 실행되며 라마왕자를 돕는 원숭이 족에 의해 라바나는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니 예언은 실현되고 정의는 언제나 승리함을 깨우쳐 준다.

 

서쪽문 상인방 :

쉬바 신과 최초의 샥티(신의 아내)에 관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원래 힌두교 3신은 싱글이었는데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처녀 파르바티가 명상 중인 쉬바를 유혹하여 아내가 된 다음부터 신들이 아내를 취하게 되었다. 쉬바가 그의 신성한 거처 카일라사 산(히말라야)에서 고요히 명상에 잠겨 있다. 파르바티가 그를 유혹하려 드나 불가하자 사랑의 신 까마(Kama)에게 협조를 부탁한다. 까마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 꽃 모양의 사랑의 화살을 쉬바의 심장에 적중시킨다. 이로 인해 명상을 방해받은 쉬바는 화가 나 가운데 눈(쉬바는 세 개의 눈을 갖고 있으며 이마에 난 눈은 사물을 꿰뚫어보는 혜안이며 섬광을 발산하는 무기를 겸한다)으로 빛을 쏘아 까마를 태워죽인다. 이렇게 눈을 뜬 순간 쉬바는 아름다운 파르바티를 보게 되고 사랑을 느껴 결혼하게 되고 코끼리 신 가네샤와 전쟁의 신 스칸다 그리고 사랑의 신 카마데바의 세 아들을 얻는다. 또한 쉬바는 까마의 공의 인정하여 그의 생명을 되돌려 준다.

 

북쪽 장서각의 부조 - 북쪽 장서각은 「마하바라타」책이다.

동쪽 상인방 위쪽부터 하늘의 신이자 비의 신인 인드라(Indra)가 동물들로 가득한 숲에 신성한 비를 내리는 장면(평행으로 난 빗금)이 묘사되어 있다. 인드라는 구름과 바람(파도 무늬)에 둘러싸인 채 자신의 탈 것인 머리 셋 달린 영물 코끼리 아이라바타(Airavata)가 끄는 마차를 타고 있으며 새들의 날개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고 그 빗속에서 물의 정령 나가(뱀)가 하늘로 향해 치솟고 있다. 아래쪽에는 아름다우면서도 평범하고 목가적인 풍경이 새겨져 있다. 동물들에게 둘러싸인 아기 크리쉬나와 형 발라라마(쟁기를 쥔 사람)가 숲 속에 내리는 비의 신선함을 음미하고 있는 장면이다.

서쪽문에는 캄사 왕(Kamsa)의 궁으로 장면이 전개된다. 기둥으로 떠 받혀진 이층짜리 궁전의 묘사는 크메르 부조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두 개의 장면이 조각되어 있는데 하나는 성인이 된 크리쉬나가 깜사 왕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그를 옥좌에서 끌어내려 죽이고 그 옆에는 한 여인(크리쉬나의 생모)은 놀라움과 두려움에 떨면서도 의아한 모습으로 바라본다. 또 다른 장면은 크리쉬나와 형이 덩치 큰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이다. 그리고 각 코너에는 전차를 탄 전사들이 동물들에 둘러싸인 채 지켜보고 있다.

 

<크리쉬나의 탄생 전설>

우주 질서의 신 비쉬누는 불의를 처벌하기 위해 여러 화신으로 탄생하는데 그 여덟 번째 화신이 크리쉬나(Krishina)이다. 크리쉬나는 탄생 때부터 고난을 거듭한다. 마투라 왕국의 왕자 캄사는 아버지를 투옥하고 왕좌를 차지한다. 그의 여동생 데바키 공주(Devaki)는 바수데바(Vasudeva)라는 귀족과 결혼을 하게되는데 캄사 왕은 "데바키 공주가 낳을 여덟 번째 아들로 인해 아버지에게 저지른 죄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라는 불길한 예언을 듣는다. 불안해진 캄사 왕은 여동생에게 감시꾼을 붙이고 데바키가 아들을 낳을 때마다 죽여 버린다. 그러나 신의 예언은 언제나 실현되게끔 진행되는 것이 힌두교 정의의 섭리이다. 신들은 여덟 번째 아들이 태어나는 날 어둠을 일찍 불러와 파수꾼들을 잠재우고 폭풍우를 내리쳐 시야를 가린다. 그 사이 바수데바는 아기를 가로채어 야무나 강가의 시골에 사는 난디의 집으로 향했다. 신들은 그를 위해 야무나 강물을 갈라 길을 터주고 바수데바는 친구의 갓난 딸아이와 크리쉬나를 바꿔치기 해 궁으로 돌아온다. 다음날 캄사 왕은 아기 탄생 소식에 서둘러 온다. 데바키는 여자애가 무슨 나쁜 짓을 하겠냐며 살려주길 애원하지만 캄사는 사정없이 돌로 아기를 쳐 죽이려하는 순간 아기가 떨어져 하늘로 솟구치고 신들이 거둔다. 하지만 아기가 바꿔짐을 안 캄사 왕은 푸트나라는 여인으로 하여금 젖에 독을 발라 생일이 같은 날 태어난 모든 아기를 죽이는데 아기 크리쉬나도 그녀의 젖을 빨았으나 외려 그녀가 사망하고 아기는 무사하자 양부모는 범상치 않음을 알게 된다. 크리쉬나는 성인이 된 다음 탄생의 비밀을 알게되고 캄사 왕을 친 다음 외할아버지를 석방시키고 평화를 되찾는다. 이 전설은 크리쉬나를 통해 형제, 부부, 부자간의 우애와 지켜야할 덕목을 얘기한다.

 

⑥성소탑 :

두 장서각 사이 건물이 중앙성소이며 성소의 뒤쪽으로 세 개의 탑을 가진 사당이 날개처럼 연결된다. 성소 군(<群)은 겹띠를 가진 높지 않은 기단 위에 붉은 라테라이트 벽돌로 4단의 탑층을 쌓아올렸다. 성소 문은 동쪽으로 열려 있고 중앙 성소에는 쉬바 신의 상징인 링가(Linga, 남근 모양의 돌)이 모셔져 있다. 세 개의 사당 중 두 개는 쉬바신에게 나머지 하나는 비쉬누 신에게 바쳐졌다. 성소 건물의 각 입구에는 짐승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가진 석상이 무릎을 꿇고 존경심을 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들 중 중앙성소 북쪽에 놓인 것만 진품이며 나머지는 모조품으로 진품은 국립박물관에 옮겼다. 성소탑 코너마다 섬세한 부조가 새겨져 있는데 특히 벽감의 여신과 남신들 부조는 걸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의 여신들은 풍성한 주름의 단순한 옷차림에 땋은 머리 혹은 묶은 머리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앙코르의 사원에 등장하는 수만 명의 천녀 부조 중에서 없는, 반띠아이 쓰레이에서만 볼 수 있는 헤어스타일이라고 한다. 또 큼직한 귀걸이의 무게에 못이겨 귓볼이 추욱 쳐지는 볼륨감도 잘 포현하고 있으며 진주 장식의 허리 벨트와 팔과 발목에도 장신구를 착용하고 또 목걸이는 세공까지 한 장면들이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정교하고 리얼하다. 반면 남신들은 위엄있고 남성적인 이미지를 물씬 풍긴다. 손에 창을 들거나 연꽃 또는 기타 상징물을 들고 서 있는 남신들의 옷차림은 훨씬 심플하며 머리는 뒤로 묶어 동그랗게 마무리했고 표정에는 위엄이 어려있다. 벽감을 둘러 기둥 장식이, 그리고 전체적으로 원숭이 형상의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그 중 중앙성소탑 코너의 남신(수문장) 부조는 대단히 선명하며 걸작품이다. 머리는 뒤로 묶고 한손에는 창을, 다른 손에는 연꽃을 들고 쉬바 신전을 지키고 서 있으며 상인방에는 「라마야나」중에서, 원숭이 왕국의 발리 왕와 수그리바 왕의 전투 장면(북쪽면), 시타의 유괴 장면(서쪽면), 멧돼지(남쪽)가 조각되어 있다.

 

<발리와 수그리바 형제의 전투>

「라마야나」의 한 장면이다. 원숭이 왕국 키슈킨다의 왕자인 수그리바는 형 발리 왕자가 동굴에서 악마와 교전할 때 형이 죽은 것으로 착각하여 동굴을 막고 귀환, 아버지 사후 왕위에 올랐으나 귀환한 발리는 동생이 왕좌를 노리고 고의적으로 자신을 죽이려했다 오해하여 수그리바를 내쫒고 죽이려 한다. 부하들과 숲속을 방황하던 수그리바는 라마 왕자(비쉬누 신의 화신)를 만나 랑카 왕 라바나에게 유괴된 그의 아내 시타를 찾아주는 대신 형을 처단하고 왕좌를 되찾는다.

tip:

1. 쓰레이는 온통 분홍빛 연꽃 같은 색채를 띄고 있어 환한 빛 보다는 약간 어두스름한한 색채 아래 가장 아름답다. 따라서 대부분의 관광객이 10:30 이전에 또는 두시 이후에 관광한다. 이 시간에 관광객이 몰려든다.

2. 쓰레이는 동메본에서 25km, 시엠립에서 38km나 떨어져 있어 쓰레이에 갈 때는 교통편에 추가요금이 붙는다. 미리 얘기해 줄 것이다. 툭툭이 5달러 택시 10달러 정도 추가. 툭툭이로는 가기 어렵다며 택시를 유도키도 하지만 툭툭이로도 30분 정도. 외려 민가를 감상하며 전원풍경을 즐기기엔 더 좋다. 더운 계절에는 사실 좀 덥긴 하지만...

3. 쓰레이 사원 등지고 왼편의 아무 것도 없는 길을(오른편에는 상가들) 조금만 걸어가면 상상도 못했던 광경이 펼쳐진다. 연꽃으로 가득한 넓은 연못에 전통 크메르 양식의 멋진 건물이 맞이하는데 다리를 건너가면..... 사원만큼 아름다운 이곳은 화장실!!!! 내부는 특급호텔 마냥 깨끗한 서양식 화장실. 앙코르 유적 내에서 가장 깨끗하고 멋진 화장실이다!!! 감동!!! 앙코르 입장권을 보여 달라고 하는데 있으면 무료, 없으면 별도의 사용료를 받는다.

4. 툭툭이를 타고 쓰레이에 가는 길은 기억에 남는다. 좀 덥긴 했지만 좀처럼 대하기 힘든 주민들의 진솔한 삶을 오랫동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잘 꾸민 집들, 텃밭, 연꽃들... 우엉처럼 보이는 커다란 줄기 식물들도, 누런 소들도, 목가적인 풍경이 이어진다. 길목에서 군복이나 피묻은 옷을 입은 허수아비들을 세워놓거나 걸어둔 집을 수 없이 보게 된다. 공산치하 당시 사망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차원이라는데 킬링필드의 아픔을 이렇게 많은 집들이 갖고 있음을 새삼 알 게 한다.

 

 

 

       

   

 

 

롤루오스 유적군 (Roluos)

 

위치 & 명칭 : 롤루오스는 시엠립 시내에서 프놈펜 방향으로 12km에 위치한 마을이다. 롤루오스는 초기 크메르 왕국의 도읍지였던 하리하랄라야(Hariharalaya)가 섰던 곳으로 당시의 건립된 수많은 유적군이 있으며 그 대표적인 사원 세 군데가 바콩, 프레아 코, 롤레이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롤루오스 유적군이란 이 세군데를 지칭한다.

롤루오스의 통치자들 : 서기 802년 첸라국의 왕자인 자야바르만 2세는 프놈 꿀렌(꿀렌산)에서 신성 왕으로서 선서와 함께 크메르 왕조의 문을 연 시조이다. 그는 절대적인 쉬바신 신봉자로서 곳곳에 쉬바 신전을 지어 종교를 통치의 기반으로 삼아 훌륭히 새왕조를 이끌었으나 충분한 농경지 확보가 어려워 새 도읍지를 물색하던 중 롤루스 강을 따라 드넓은 경작지를 가진 이곳을 선택하여 새수도를 지어 천도했다.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이유로 그의 치세에 최소한 3번 이상의 천도가 거듭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며 이곳은 그의 치세에 마지막 도읍지로서 그는 850년에 이곳에서 사망했다.

 

주)하리하랄라야란 지명은 두 명의 힌두교 주신의 합체인 하리하라(Hari-hara)에서 유래되었다. 하리는 우주 질서 유지의 신인 비쉬누를, 하라는 파괴의 신 쉬바를 뜻하며 비쉬누는 머리에 관을 쓴 모습으로 쉬바는 땋은 머리 모양을 한 채 함께 한다. 즉 쉬바 신과 비쉬누 신을 함께 모시는 성스런 수도이다.

 

3대 왕인 인드라바르만 1세는 강물 만으로 농업을 원활히 통제하지 못함을 인식하여 롤루오스 강물을 끌어들어 인공적으로 거대한 인드라타타카 바라이(Indratataka Baray, 저수지)를 축조하고 최초로 성소를 가진 신전 프레아 꼬(서기 879년)와 바콩(서기 881년)을 건립하여 하리하랄라야 시대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 후계자인 야소바르만 1세는 부왕이 축조한 바라이 가운데에 롤레이 신전을 건립하여 오늘날 롤루오스 3대 신전이 형성된다. 따라서 이 롤루오스 유적군은 초기 크메르 왕국의 4대왕이 표명하던, 힌두 신전으로 그 구조나 디자인이 서로 흡사하여 프레아 코 스타일의 신전 양식이란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야소바르만 1세는 905년 롤루오스를 버리고 프놈 바켕에 새 도읍지를 지어 천도함으로서 롤루오스 시대는 겨우 70년 도읍지로서의 생명을 마감한다.

 

롤루오스 건축 양식 : 프레아 코 양식으로 대표되는 롤루오스 건축의 특징은, 정사각형 기단 위에 탑을 높게 세우면서 8각형으로 모양새를 낸다는 것, 장서각(실제로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닌 설화의 내용을 부조로 새겨 열람케 하는 형태)을 설치 및 대칭적으로 두 개씩 나란히 넣는다는 것, 고푸라 탑문을 세울 때 4방향으로 출입문을 내면서 항상 인간의 출입은 동편으로 정하고 나머지 3방향의 문은 가짜문(벽에다 문처럼 형상만 그린) 형식으로 짓는다는 것 그리고 문의 상인방에 부조를 새겨 장식한다는 것 등이다. 부조는 대체적으로 가루다(독수리)를 탄 비쉬누 신이나 깔라(귀면상), 압사라(천녀), 수문장 등이며 기둥도 탑과 마찬가지로 8각으로 모양을 내면서 아주 섬세한 나뭇잎 고리 문양으로 멋을 내었다. 학자들의 소견에 의하면 상인방의 부조로는 롤루우스 유적군의 것이 크메르 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것으로 칭찬한다.

 

 

 

2 Comments
리차드권 2010.03.20 10:17  
1~10여행기가 아니라 장문의 논문수준으로 상세하고 충실한 내용이네요.
물론 매직부스 등에서 가져온 그림들도 조화가 잘 맞구요.
하여간 대단하십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Nophea 2010.03.20 14:04  
굉장한 자료 감사합니다^^ 캄보디아 설날에 앙코르왓을 갈 계획인데 도움이 엄청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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