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함께 하는 북경여행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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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함께 하는 북경여행기(4)

하로동선 0 2363
- 만리장성 -

8월23일 화요일. 어김없이 단잠을 깨우는 모닝콜에 눈을 떠 보니 아침 6시이다. 내가 원래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 평소에 출근할 때도 아내가 흔들어 깨워야 겨우 일어나고, 결혼 전에는 어머니가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소리를 질러야 일어나는 스타일이라 사실 여기 오면서 내심 걱정을 많이 했었다. 아침에 아무도 깨워 주는 사람이 없어서 학생들보다도 늦게 일어나면 어쩌나 하고…
어제와 별로 다를 게 없는 식단에 아침식사를 하는데, 학생들이 별로 보이질 않는다. ‘이것들이 어제도 밤새도록 뛰어다니며 히히덕거리더니 또 늦잠 자는구나.’ 이렇듯 패키지여행을 오면 너무 편해서 탈이다. 생각 같아서는 방마다 돌아다니며 깨우고도 싶은데 그래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차라리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자게 하는 편이 낫겠지 싶다.
아침8시가 좀 넘어서 우리들을 태운 버스는 [만리장성]을 향해 출발한다. 잠시 후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더니 공항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달린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는 분명 반대편 차선으로 달려왔을 텐데도 모든 게 낯선 이곳에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고대 중국을 대표하는 건축물이자 중화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적 우수성을 과시하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만리장성]은 기원전 7세기 경 춘추전국시대부터 북방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되기 시작하여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시황제(始皇帝)를 거쳐 한나라-송나라-당나라를 거쳐 증, 개축되었으며, 명나라의 통치 시기인 16세기말에 이르러 동쪽의 하북성 산해관으로부터 서쪽의 감수성 가욕관에 이르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일찍이 모 택동 주석은 “장성에 올라보지 않은 사람은 사나이가 아니다.(不到長城非好漢)”라고 말했다는데, 그 영향 때문인지 만리장성은 중국인들은 물론이고 북경에 오는 외국인들까지도 성지순례라도 하듯이 모두 기어오르고 마는 명소중의 명소가 되어 버렸다.

만리장성에 오르는 길은 빠따링(八達嶺) 장성, 무텐위(慕田谷) 장성, 쓰마타이(司馬臺) 장성, 진산링(金山嶺) 장성 등이 있고, 이 중 대부분의 관광객이 이용하는 코스는 팔달령 장성이다. 관광지로 가장 많이 개발되어 있는 이 곳을 언젠가 사진으로 보았는데, 장성 위를 가득 메운 인파의 행렬에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 일찍이 공자께서는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게 보인다(登泰山小天下).”고 하셨다는데 그런 분위기에서 이런 감흥을 갖는 것이 가능할까 싶다.
따라서 정말 다행스러운 점은 오늘 우리가 오르는 코스는 팔달령이 아니라 [무텐위장성]이라는 것이다. 1986년에 개방된 이곳은 북경 시내의 중심에서 80km 정도 떨어진 화이로우현에 위치하며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시내를 벗어나자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다. 북경의 전체면적이 서울과 경기도를 합한 면적의 1.5배이니 분명 이곳도 북경임에는 틀림이 없겠으나 방금 전가지 본 도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들녘에는 양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끝없이 이어지는 농장에서는 각종 채소들이 재배되고 있다.
마침내 버스는 장성에 도착했다. 당연히 장성은 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되어 있으므로 지금부터는 그곳까지 등산을  해야 한다. 그런데 등산도 그냥 비탈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돌계단을 오르는 것인데 이게 생각보다 장난이 아니다.
차오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최근에 내가 운동을 게을리 했음을 절감한다. 몸이 힘드니까 ‘케이블카 타러 가는 곳’이란 팻말에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그렇더라도 학생들 앞에서 ‘헥헥’거리는 모습을 보일 수야 있나?
‘오늘은 고생 꽤나 하겠구나…’ 생각하며 마음을 다 잡으며 걷는데, “어? 뭐야” 생각보다는 너무 일찍 장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만일 개인적으로 왔다면 분명 케이블카를 이용했을텐데, 만일 그랬다면 돈이 무척 아깝게 느껴졌을 것 같다.

산등성이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 장성의 모습. 한마디로 장관이라 아니할 수 없다!! 땀을 닦고 물을 한 모금 마신 후에 주위를 둘러보니 나름대로의 성취감이 느껴진다. 올라오는 아이들 데리고 사진도 찍고, 멀리까지는 아니지만 장성을 따라 거닐어 본다. 팔달령만큼 유명하지 않아서 그런지 우리말고는 관광객도 많지 않아서 아주 호젓하니 기분이 너무 좋다.
내려오면서는 노점에서 기념 T셔츠를 샀다. 처음에는 65위안을 불렀는데, 깎아서 15위안을 줬다. 가이드 말로는 10위안 정도면 적정선이라 하는데, 그래도 난 외국인이니까 그걸 감안해서 조금 더 얹어준 것이다. 한국에 가서 한번 입고 빨면, 물도 다 빠지고 아예 걸레로 변할지도 모르겠으나 여행을 갈 때마다 T를 구입하는 것은 나의 기쁨이다.

- 청룡협 -

장성에서 내려와서 향한 곳은 그 이름도 생소한 [청룡협]. 원래 북경에서 널리 알려진 협곡이라면 단연 [용경협]을 꼽는지라, 여긴 대체 뭘 하는 곳인지조차 모르겠다. 아무튼 텅 빈 하지만 엄청나게 넓은 주차장에 내려서니 바람이 시원하고, 무엇보다 산 능선에 모습을 드러낸 장성이 가깝게 보인다.
관광지가 아닌 만리장성은 군데군데 성벽이 허물어진 채 세월의 무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장성은 대부분 명나라 시대에 축조된 것이니 무려 400여 년을 그 자리에서 버텨온 셈이다.

주차장에서 청룡협의 정문을 향하는데 군데군데 아주머니들이 좌판을 벌여 놓고 나물, 과일, 군것질 거리 등을 팔며 우리들을 부른다. 주변이 너무 한적하고 관광객이라고는 우리밖에 없는지라 하나쯤 사 주고도 싶은데, 솔직히 나물이나 과일 같은 것은 우리나라의 시장마다 널려있는 것이 중국산이니 별 매력이 없고, 오히려 한 아주머니가 팔고 있는 호떡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저것이야말로 진정 중국식 호떡이 아닌가? 일단 ‘이따 나오면서 보자’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빠른 발걸음을 재촉한다.

흡사 우리의 남대문처럼 생긴 정문을 통과하니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서울랜드같은 곳에서 본 코끼리 기차이다. 걸어가기에는 많이 먼 거리인지라 관광객들을 배려한 것인데, 막상 타 보니 많이 낡아 있다. 그래도 기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때 마침 불어오는 바람이 더욱 시원해서 기분이 아주 상쾌해진다.
일단 먼저 도착한 곳은 식당. 오늘은 장성에 오르는 것을 감안해서 아침을 나름대로 많이 먹었는데도 배가 무척 고프다. 하지만 진작부터 신물이 난 중국음식인지라 특별히 의욕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럭저럭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보니 눈앞에는 커다란 댐이 보이는데, 벽에는 아주 큰 글씨로 [靑龍峽]이라 씌어 있다.

- 또 다시 낙오되다 -

식사를 끝내자 다시 코끼리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해야했다. 먼저 학생들부터 보내고 나와 선생님들은 다음 차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그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물막이 댐의 한족 옆으로 터져 나오는 시원한 물줄기.
‘야… 저것 봐라?’ 구경꺼리임을 직감한 나는 그 쪽으로 발을 옮겼다. 그리고는 시원스럽게 터져 나오는 물줄기에 황홀해하며 사진도 찍어가며 구경에 전념했는데… 다시 정신을 차리고 제자리로 돌아와 보니 아까까지 이곳에 있던 선생님들이 다 없어진 것이다.
‘아… 어찌 이런 일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별로 걱정이 되진 않았다. 어차피 여기 있으면 데리러 올 테니까. 문제는 “쪽팔림”이다. 여기 올 때부터 대련공항에서 한번 삽질을 했는데 또 다시 이런 청맹과니 같은 짓을 하다니… ‘더군다나 애들도 안하는 짓을 선생이 했으니 이걸 어떻게 설명한담?’

한참을 길 잃은 강아지처럼 식당 앞마당을 배회하며 기차를 기다리니, 이윽고 저 멀리서 기차가 서더니 가이드가 손짓하며 나를 부른다. ‘뭐야, 저기까지 뛰어가야 하는 거야?’ 미안한 마음을 생각하면 전력으로 질주해야 할 상황이지만, 가서 뭐라고 해야 덜 쪽팔릴지 판단이 안 선다. 해서 일단은 터덜터덜 걸었는데,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하는 생각에 뛰기 시작.
기차는 다른 누군가를 내려주러 가 버리고 가이드 혼자서 기다리는데, 참 나 미안해서…
“화장실 잠깐 다녀왔는데, 그 새 가버리셨더라구요?”
“전 선생님이 화장실에서 나온 것 봤는데요?”
“………………” (할 말 없음)
사진 찍으러 간 것이 아니라 그래도 화장실 갔었다고 하면 좀 나을 것 같아서 거짓말을 했는데 들켜 버렸다.

나랑 가이드랑 둘이서 다정하게(?) 기차를 타고 댐 위로 오르니 모터보트 타는 선착장이 보이고, 우리 애들이 와글와글하다. 그들은 나를 보더니 더 시끄러워졌는데, 애들은 그렇다쳐도 같이 간 다른 학교 선생님들 앞에서 안 그래도 창피한데 순간 어느 지지배의 앙칼진 소리.
“아! 선생님 모예여?”

- 모터보트 & 뗏목타기 -

애들 포함해서 모두들 나만 빼고 모터보트까지 탄 지라, 난 가이드랑 둘이서 다른 일반 손님과 함께 모터보트 승선. 그 전에 구명조끼를 입는데, 조끼의 꼴이 말이 아니다. 분명히 그런 부실한 조끼는 물에 빠졌을 때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인명은 재천인 것을…

댐 위로 가둬 놓은 물은 제법 넘실거리는데 그 위로 보트를 타고 달리니 아까의 쪽팔림은 금세 사라지고 기분이 너무 좋아진다. 특히 주변 경관이 너무 멋지다. 아쉽다면 보트를 타는 시간이 너무 짧은 것. 보트에서 내려서 아이들과 함께 댐 아래로 이동하니 뗏목이나 배를 탈 수 있는 곳이 나온다.
깊이라고 해봐야 무릎이하 정도이니 안전사고의 위험은 없다. 하지만 [뗏목타기]를 체험해 본다는 것이 한국에서야 어디 쉬운가? 대나무로 만든 뗏목을 어른 키보다 훨씬 더 긴 대나무로 밀어서 움직이는 것인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할 것도 없이 재미는 만점이다. 다만, 이것이 어딘가를 목적으로 하는 뗏목투어였으면 더 좋았으련만 한정된 범위 내에서 즐기는 ‘체험’이라는 점이 한편으로는 아쉽다.

뗏목을 타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고 있는데 그만 전원이 꺼져 버린다. 어젯밤에 충분히 충전을 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하루를 못 넘긴다. 어찌할까를 고민하다가 할 수 없이 근처에 있는 가게로 갔다.
“Do you have any dry batteries?"
"…………"
주인아저씨는 나이가 지긋한 분인데 영어를 전혀 모르는 모양. 나는 할 수 없이 충전지를 담았던 케이스를 꺼내 보여주며 손짓발짓을 동원했다. 그제야 알아들은 아저씨는 건전지를 건네주는데 하나에 3위안이란다. 나도 잘은 모르지만 뭔가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깎아보려고 하는데 아저씨는 요지부동이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에 300위안을 불러도 사야할 상황. 가게라고는 여기 한군데뿐이고, 다시 사진을 찍으러 여기에 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아쉬운 쪽은 ‘나’다.

뗏목을 좀 타보았으나 이내 심심해진 나는 다시 아까 그 가게로 갔다. 이번엔 하드가 먹고 싶다. 하나에 2위안. 아이스크림도 아니고, 그냥 ‘하드’가 무슨 2위안이나 할까? 게다가 나는 학생들까지 우루루 몰고 간 상황이라 15개 정도가 필요하다. ‘아까 건전지는 그냥 샀다만 이번에는 깎고야 말겠다.’ 속으로 결심하면서 협상 시작.
아저씨도 뭔가를 작심한 듯 내게 볼펜과 종이를 준다. ‘이번에는 필담으로 하자 이거요?’ 흠흠… 근데 이번엔 내 한문 실력에 문제가 있었다. 종이에 “2元 곱하기 15개 = 30元 위에 ×표 하고, 20元” 이라 쓰려는데, ‘개’를 한자로 어떻게 써야할지 난감하다. 평소에 안 쓰니까 ‘個’자도 생각이 안 난다. 10위안을 깎는 게 이리도 힘들다니… 하지만 나도 자존심과 오기기 있는지라 손짓발짓 다 하고, 학생들까지 나서 주니 해결이 되기는 한다. 하하!!

청룡협에서 내려오면서 아까 올라갈 때 봐 둔 호떡을 1위안에 샀다. 안에 뭐 ‘이상한 게’ 들었다느니 심지어 벌레가 들었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먹어보면 알 것 아니겠나? 손님이 너무 없으니까 만든 지 너무 오래 되어서 식은 데다, 기름 속을 얼마나 오랫동안 헤엄쳤는지 기름에 절어 있고, 겉은 또 타고… 하여간 호떡이라고 하나 사긴 했는데 꼴은 영~ 말이 아니다. ‘그래도 맛있으면 그만이지…’
한 입 베어 무는데, 예상 밖의 맛이 난다. 바로 짠 맛!! 호떡 속에 나물인지 채소인지 아무튼 야채가 들어 있는데 이게 보통 짠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모두 내 주위를 에워싸고 나의 반응을 기다리는데 상황이 재미있다. 근데 아무리 맛있어 하는 표정을 보이려 해도 그게 잘 되지 않는다. 하하!!

- 학교 방문 -

청룡협에서 내려와서 향한 곳은 근처의 어느 학교이다. 이번 여행의 주체가 학생들이라 중국의 청소년들과 대화도 하고, 문화교류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것. 사전에 충분한 협의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않았던 관계로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이 학교로 향했다.

학교는 청룡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주변 환경은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다. 교문을 통해 교정에 들어서니 일단의 무리들이 운동장에서 체육 같은 것을 하고 있다.
“와~ 쟤네들은 공중 덤블링을 한다!”
누군가가 그들의 모습을 보며 감탄을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체육을 하는 수준이 장난이 아니게 높다. 공중을 휙휙 날아다니는 수준.
운동장 앞에는 두 동의 건물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기숙사 겸 강의실 같다. 나머지 하나는 우리가 안내를 받고 들어간 체육관. 바닥에는 초록색 매트가 깔려 있고 몇몇 학생들이 간단히 몸을 풀고 있다. 우리 학생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먼저 그들이 장기자랑이 시작된다.

화려한 중국무술이 펼쳐지는데, 정말 입이 딱 벌어진다. 애들이 휙-휙- 날아다니질 않나 자유자재로 공중제비돌기를 하지 않나… 연신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쳤는데, 그것은 예의상 어쩔 수 없이 하는 행동이고, 그 모습을 보는 속마음은 정말 쓰리다.
‘평균적인 중국 학생들의 실력이 저 정도라니…’
가끔은 어제 서커스에서 본 장면들도 연출되는데, 그런 모습에서는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어제는 서커스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봤지만 오늘의 모습은 학생들의 장기자랑 아닌가?
우리나라 학생들 10명과 싸워도 결코 밀리지 않을 실력이다. 진정 저것이 평균적인 중국 학생들의 모습이라면 우리에게 있어서 미래는 없다. 현대사회가 아무리 주먹질로 싸우는 세상은 아니라 할지라도 공중을 날아다니는 13억과 뜀틀도 제대로 못 넘는 5천만이 싸운다면 결과는 뻔한 것이 아닐까?

이제 우리의 차례다. 안 그래도 낯선 환경에 적응이 안 되는데, 중국무술을 보고 잔뜩 쫄고 나니 준비한 것조차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아무튼 1번 타자는 우리 학교 여학생 둘. 얘들은 여기 오기 직전에 ‘전국 중․고생 중국어 노래부르기 대회’ 예선에 참가했는지라 중국말로 노래가 되는 애들이다.
궁금…
애들이 참가한 대회의 예선은 어디에 모여서 하는 것이 아니라 녹음테이프를 보내는 것인데, 내가 학교에서 방송반 업무를 맡고 있는 까닭에 얘들 노래를 녹음해 줬었다. 그러면서 가졌던 궁금증은 ‘과연 얘들이 하는 노래를 중국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였다. 이제 곧 나의 궁금증이 풀리게 될 것이다.
가르쳐줬어도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는데, 마이크도 반주CD도 없이 그야말로 열악한 환경에서 기까지 잔뜩 죽은지라 모기소리로 부른다. 대부분 남학생들인 중국 애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경청.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 정말 ‘우레’와 같은 함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온다.
난 너무나 궁금한 나머지 옆에 있던 중국 측 선생님께 한번 여쭤 봤다.
“Can you understand that song?"
"아 예!! 알아요, 알아요!!“  (뭐야, 한국말을 잘 하잖아?)
우리에 이어 다른 학교에서 준비한 것은 단소연주. ‘아리랑’을 들려주는데 너무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이어서 백댄서까지 함께 나와서 장 윤정의 ‘어머나’를 부르는데, 역시 긴장한 모습이 너무 귀엽고 예쁘다.

장기자랑을 이렇게 대충 끝내고 나서 졸지에 내가 한국측 대표가 되어 인사말을 했다. 난 처음에 영어로 해야 하는 줄 알고 하늘이 노랬으나, 다행히 가이드가 통역을 해 줬다.
“니 하오마!!” (예의상 중국어로 인사를 했으나 아무 반응이 없어서 분위기 썰렁~)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우리는 한국해양소년단 경기북부연맹의 교사와 학생들입니다. 우리는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지난 8월21일부터 이 곳 북경 일대를 여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과의 친선과 문화교류를 위하여 이 곳에 온 만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우리를 초청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솔직히 할 말도 없는데 갑자기 하라고 해서 급히 수첩에 써서 읽은 원고가 이렇다. 마지막으로 연맹에서 준비한 선물을 그 학교의 교장선생님께 전달하고, 단체로 기념촬영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일단 이 학생들은 일반학생이 아니다. 무술을 배우기 위해 어렸을 때 입학한 일종의 특기생들. (이 말을 듣는데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원래 일정은 이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는데, 오늘 저녁에 이 학교에서 영화촬영이 있는 관계로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사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지만 많이 아쉽다. 비록 차 안에서지만 중국어 공부도 했는데…

- 호텔에서 -

저녁식사는 학교 근처에서 했는데, 시골마을에 있어서인지 인심이 너무 좋다. 정규요리 외에도 맛보라고 ‘북경오리구이’도 주고, 또 후식으로 ‘고구마’도 쪄 주고. 우리 같은 단체손님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인지 약간은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런 모습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대부분 해외여행이 처음이고 또 호텔에도 처음 묵다 보니까 신기한 것이 많은 모양이다. 밤늦도록 계속 밖에서는 쿵쾅거리며 복도를 뛰어다니고 히히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호텔에 손님이 별로 없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학생들이 내 방에 놀러 왔다. 자연스럽게 화제는 ‘호텔이용법’이 되었는데 샴푸와 로션을 분간하지 못하는 정도는 기본이고, 침대 옆 탁자 아래 비닐 속에 들어 있던 슬리퍼의 앞덮개를 샤워할 때 ‘때타올’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한다. 또 침대가 워낙 잘 정리되어 있으니까 그 위에서 자는 것인 줄 알고 담요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침대커버 위에서 잔 애들이 대부분이다. 그럼 이불은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화장대 아래서 꺼냈단다. 그건 한 겨울에 추우면 덮으라고 있는 엄청 두꺼운 이불인데… 룸서비스 해주는 사람들이 꽤나 황당했겠다. ‘한 여름에 솜이불이라니, 별 이상한 애들이 다 왔구나…’ 하고.

사족:
1) 흔히 하는 말로 만리장성은 [달에서도 볼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인공구조물]이라는데, 누가 처음 만든 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지구의 반지름은 달의 그것보다 4배 정도 크므로 달에서 보이는 지구의 크기는 우리가 보는 달 크기의 16배 정도가 되는데 그렇더라도 만리장성을 볼 수는 없습니다. 물론 만리장성 말고도 달에서 볼 수 있는 지구상의 구조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2) 저는 중국 사람이면 누구나 쿵푸를 하는 줄 알았습니다. 너무 바보같죠? 어렸을 때 성룡이 나오는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했던 제 생각이 더욱 어처구니가 없네요. 어떻게 13억이 공중제비돌기를 하겠습니까?
3) 중국 학교에 가면 거기 여선생님을 한번 엮어보려고 조 명걸 가이드님에게 부탁해서 배운 간단한 중국어 중 재미있는 것으로 몇 개 소개합니다.
“니찌아오섬머밍즈” (이름이 뭐니?)
“니찌쑤일라” (몇 살이니?)
“니장더헌피아오량” (너 예쁘다)
“니뚜이워만이마” (나 마음에 드니?)
“바니더띠즈게이워” (주소 가르쳐줘라)
4) 결국 사용해 보지 못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아쉽습니다. 근데 이렇게 말했으면 그들이 알아들었을까요?
5) 어쩌면 사용해 보지 못한 것이 잘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나라망신이잖아요?
6) 관광지에서의 사진은 이제 지겨우실 것 같아서 이번에는 우리 학생들이 학교를 방문하여 그곳의 청소년들과 함께 한 것으로 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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