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던 스무 날의 기억 - 프놈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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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던 스무 날의 기억 - 프놈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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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킬링 필드와 뚜얼슬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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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6일 목요일

 

전날 예약해 둔 메콩 익스프레스 버스를 타고 프놈펜으로 향했다. 11달러 하고도 3000리엘 짜리 버스이니 굉장히 비싼 셈이다. 하지만 훨씬 저렴한 다른 회사 버스들도 많이 있는 듯하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추천해 주는 대로 예약을 한 건데 조금 후회가 됐다. 대신 아주 깨끗하며 간식과 물을 제공해 준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 게다가 한 가지 재미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바로 안내원 총각이 영어와 크메르어로 중간 기착 도시들과 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 그리고 인근의 주요 문화재나 자연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는 사실이다. 크메르어 억양이 짙게 베어 있는 영어로 나긋나긋하게 설명을 하던 그 총각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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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휴식을 취했던 캄퐁톰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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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9명의 초대형 뚝뚝 - 3인용 의자가 3줄 놓여 있는 것도 놀랍지만 실제론 10명이 넘는 사람들을 태운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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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퐁톰 시장 안의 미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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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군만두 비슷한 모양의 음식 안에 다진 새우와 야채 같은 것들이 들어 있고 굉장히 맛이 좋았다. 이름을 물어 봤지만 노점 청년이 name이라는 영어조차 못 알아들어 끝내 이름을 알아내지 못했다>

 

프놈펜에 도착하자 호객을 하는 뚝뚝 기사들이 달라 붙는다. 딱히 정해 놓은 숙소도 없었기 때문에 호객꾼을 따라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싶어, 기사에게 게스트 하우스를 물었더니 준비된 팜플렛을 보여주며 연신 최고로 좋은 곳이라고 말한다. 내 지도를 보여주며 위치를 찍어 보라고 했더니 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을 가리킨다. 일단 게스트 하우스까지 2달러에 가기로 하고 그의 뚝뚝에 올라탔다. 프놈펜은 그래도 한 나라의 수도답게 제법 큰 도시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관심이 있는 곳은 오직 킬링 필드와 뚜얼슬렝 박물관뿐이다. 시간이 있다면 다른 곳도 둘러보고 싶지만, 20일의 일정 중에 프놈펜에 허락된 건 단지 하루뿐이다. 그렇게 오케이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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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이 게스트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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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짜리 팬룸은 작긴 하지만 깨끗했고 로비에 위치한 레스토랑을 가득 메우고 있는 서양 여행객들 덕분에 나름 괜찮은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체크 인을 하고 잠시 대기시켰던 뚝뚝 기사에게 가서 킬링 필드와 뚜얼슬렝까지 가는 요금을 흥정한다. 숙소까지 왔던 요금을 포함해서 11달러에 합의를 본다.

 

사실 캄보디아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킬링 필드였다. 앙코르 유적도 무척이나 보고 싶은 곳이었고 결과적으로 킬링 필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곳이었음을 확인했지만 나에게 캄보디아는 킬링 필드의 나라였을 만큼 어렸을 적에 보았던 영화 킬링 필드의 인상은 강렬했다. 우리를 포함해 아시아의 모든 나라들의 근현대사가 아픔으로 얼룩져 있지만 (심지어 제국이자 전범국이었던 일본조차 피폭국이라는 아픔을 지니고 있다) 킬링 필드로 대표되는 캄보디아의 비극은 그 중에서도 최악의 사건이 아닌가 싶다. 나는 불편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현장을 꼭 방문하고 싶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지구상 그 어느 곳에서도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빌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으로 인해 수백 명이 죽어가고 있다. 어떤 인간들은 여전히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고 있지 않은 듯하다.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한 킬링 필드는 무척이나 작고 조용했다. 고인들의 유골이 모셔진 곳이니 당연히 엄숙해야 할 터이지만 그곳의 적막함은 묘지의 엄숙함이 아닌 오래된 작은 정원의 고요함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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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들이 모셔져 있는 위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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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먹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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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설명하기도 끔찍한 일이 자행된 나무 여행객들이 설명이 적힌 간판을 읽고 있다>

 

시외곽에 위치한 킬링 필드와 달리 뚜얼슬렝 박물관은 시내에 자리하고 있다. 킬링 필드를 떠나 숙소로 돌아오기 전에 들른 그곳에서 난 심히 난처한 상황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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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얼슬렝 박물관 학교였던 곳을 수용소이자 고문실로 개조해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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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으로 사용된 교실 한쪽 벽의 칠판이 이곳이 학교 교실이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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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 너머의 풍경 갇힌 이들의 시선이 이랬을까?>

 

각종 사진과 고문 도구 그리고 사료들을 보고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불편해진 마음을 가누며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뚝뚝을 향해 나섰다. 그때 걸인 한 명이 나타나 구걸을 했다. 심한 화상을 입은 듯한 그의 외모를 보는 순간 내 몸은 얼어 붙었다.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놀랐던 것 같다. 마음 같아선 다만 얼마라도 꺼내 주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몸은 다르게 반응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고는 필사적으로 빠른 걸음으로 뚝뚝을 향해 걸었다. 하지만 그 걸인은 집요하게 날 따라왔고 내가 그냥 뚝뚝에 오르자 욕설일 것이 분명한 격한 소리를 내뱉고 사라졌다.

 

가뜩이나 불편했던 내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숙소로 돌아온 뒤에도 한 동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래도 여행인데 우울하게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산책을 나섰다가 게스트 하우스 주변에 있는 마사지 가게로 들어갔다. 자전거로 고생했던 다리에 보상을 해주자 싶어 발 마사지를 부탁해 받았다. 태국 외의 국가들은 마사지가 별로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아로마 오일 향도 좋았고 마사지도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무거웠던 몸도 마음도 많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다음 날 크라티에로 가는 버스를 7달러에 예약했다. 이제 캄보디아에서 하려던 일정은 모두 끝난 셈이다. 크라티에는 라오스로 가기 위해 거쳐 가는 곳. 라오스 씨판돈에 도착하기까지의 이틀이 조금 지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대를 가져 보며 또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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