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기록하다...중국]04, 17 -황산, 산에서 사람을 보다.
04, 17 -황산, 산에서 사람을 보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부랴부랴 나선다. 황산 여행을 하며 경계해야 될 것이 마음가짐이며, 그 가운데 하나가 '급한 마음'이다.
무엇을 찾고자 혹은 얻고자 할 때,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아는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서는 그 어느 것 하나 만날 수가 없거늘, 문제는 이 모든 걸 머리로서는 알고 있는데, 발걸음은 다른 길을 계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난 6시에 올라, 오후 4시에 닿으면10시간이라 계산을 발에 깔고 걷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탕구에서 다시 운곡사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일정한 시간이 있기 보다 사람이 다 차면 떠남이 옳다고 본다. 이리하여 난 7시 쯤에 운곡사에서 표를 끊고 황산을 오르는 첫 계단에 발을 뗀다. 무엇이 그 토록 사람을 불러 모우는 것일까? 난 차분히 또는 허급지급 발걸음을 올린다. 산을 오르는 길은 잘 다듬어진 계단이다. 그 어느날 누군가가 말했다지, '만민이 산을 오를 수 있도록 하라' 한 사람의 의지가 만 사람의 행동을 낳은 듯 하다.
운곡사에서 [광명정]으로 오르는 길은 힘들고 가까운 길이며, 약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하지만 서쪽의 풍경보다는 낳지가 않은 점이 있어 주저함이 많은 줄 알았는데, 7시에 이미 산 아래는 시끌벅적하다. 산을 오르면서 자주 눈에 마주치는 이들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이들이며, 난 그냥 걷기에도 힘이 든데, 이네들은 내가 보기에 20~30kg 이상을 짊어지고 가는 듯 하다.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옮기는 이네들을 보며, 힘겨움에 대해 한번 생각을 해 본다. 산을 조금이라도 빠릴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오르고, 또 오르곤 한다. 약 2어 시간을 오르니, 운곡사에서 온 케이블카가 닿는 자리에 이르렀다. 밑에서 걸어온 사람, 산 위에서 잠자고 내려온 사람, 케이블카를 타고 온 사람 등이 어울려 만원이 된다. 산의 경치보다 사람의 소란스러움에 밀려 안개가 감싸 앉은 바위마저 멀리하고 다시 위로 올라간다.
소나무숲을 따라가니, 어느새 산을 혼자걷고 있는 느낌이 든다. 산 아래에서는 발디딜 틈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엉뚱한 길로 가지 않았나 할 정도로 산이 조용하다. 길은 어느 길로 따라가든 계단이 놓여 있기 때문에 걷기에는 불편함이 없지만 이정표가 조금 불편하다. 전(全)모습을 그리지 않고 부분 부분 그려놓아 산아래에서 산 지도도 의미가 크게 와 닿지 않고, 아주 단순하게 그린 론리 지도에 눈이 더 간다. 무엇이 많다고 다 좋은 것 만은 아님이 분명하다.
동쪽 우리에 올랐다. 다른 곳으로 오른 이들이 먼저 찾아와 황산의 일흔두 봉우리를 세고 있다. 나이가 가득하신 어른들이 삼삼오오 모여 황산의 안개를 밑그림 그린다. 많은 무리들이 '왔다갔다'는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데, 스케치를 해 가는 모습에 산 만이 이색적이고 아름답게 다가온다그리고 한 구석에 '나도 황산에 올랐다고 당신도걸어오를 수 있다'고 엽서를 쓴다. 내 눈은 지극히 어리석고 폭이 좁아 눈에 보이는 풍경에 크게 감동하고, 직접 두 발로 다가선 자리에서 놀라워 한다. 그리하여 머리 속에서는 눈이 건내오는 풍경을 다시 상념으로 담아낸다.
난 산이 안개에 의해 가려지, 더듬거려진다고. 산에 올라모든 상념을 던져버린다고, 엽서를 쓴다.
잠시 앉아 다시 길을 나선다. 역시나 짭게 짧게 그려진 이정표에 내 발길은 스스로 길을 찾다, 잊어버리고 아주 낯선 곳에 서 있다. 그곳은 길이 끊기고, 계단도 없는데... 분명 바위 틈으로 사람 발길이 그려져 조심스레 들어갔더니, 지금까지 본 풍경은 다 잊어버리고 오직 발 아래 펼쳐지는 기암괴석과 그 사이를 넘나드는 안개를 넋 잃고 바라본다. 길이 있을까 싶은 곳에 섰기 때문일까 사람은 두 서 너 명 밖에 없어 안개의 움직임 마저 들릴 듯 하다.
황산의 봉우리가 72개라 했거늘, 그 절반이 여기에 숨어 있었나 보다. 눈 앞에는 연못에 두 바위가 남매처럼 불쑥 쏫아난 듯 서 있고, 이 너머에는 연못 주위 나무처럼 바위들이 줄줄이 서 있다.
왼편에는 커다란 산이 우뚝 솟아 있는데, 산의 크기 보다 그 허리쯤에 걸쳐 걷고 있는 사람이 아주 작게 보인다는 것이다. 안개는 수시로 바위 사이사이로 넘나들며 그 형색이 무(無)를 찬양하듯 변화무쌍하여 눈을 땔 수가 없다. 아름답다 하면 어느새 다른 자태로 내 앞에 나타나곤 하는데, 바위의 기괴함 속에 안개의 부드러움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사람이 들지 않는 자리, 어찌 내 발은 이곳을 알고 찾아 왔을까, 발 아래 펼쳐지는 구름. 구름 위로 살짝 고개내민 몇 개의 봉우리, 저 너머의 파란 하늘, 난 진정 선경(仙境)의 세계로 입문하려는걸까. 잠시, 시간을 잊고 풍경을 바라본다.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다. 다음에 오른다면, 다시 이 자리에 앉아 두 눈을 감고 있으리라.
서쪽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역시나 사람이 넘쳐 난다. 이미 기괴함과 자연스러움의 극치를 몰래 보고 온지라 사람의 시끄러움에 난 발을 옮긴다. 서쪽의 길은 동쪽의 세 배 정도이며 힘든 길이라,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서쪽은 서해대협곡이라 하는데, 이쪽의 기괴함은 바위와 소나무이다. 소나무가 바위에 붙어 사는 것인지, 바위가 소나무를 키워 내는 것인지, 그 기이함과 생명력이 놀라울 뿐이다. 바위의 둔중함은 열 사람이 밀어도 떨어져 나가지 않을 듯 하며, 그 바위 바위 사이로 밑에서 부풀어 오르는 안개가 선경과 실경을 구분짓기하듯 한다.
아주 천천히 혹은 느리게, 중국 연인들이 손을 잡고 종종 올라오는 모습이 눈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