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재미도 없고 내용도 부실한 佳人의 여행 이야기에 지루하시고 식상 하셨죠?
여행기란 재미있어야 하고 정보도 듬뿍 담겨 있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오늘은 우리 부부가 배낭여행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해보렵니다.
우리 부부가 배낭여행을 다닌 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작년에 23일간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둘이서 배낭만 둘러메고 다녀왔고 1년 만에 이번이 겨우 두 번째입니다.
그러니 초보 중에서도 왕초보인 셈이지요.
이번 여행은 중국 윈난성과 베트남 하노이, 그리고 태국 방콕의 28일 일정이었습니다.
베트남 항공으로 350.000원/1인(유류 할증료등 모두 포함). 1개월간 3개국 탑승요금으로 구매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0년 여름에 우리 부부에게 고약한 운명이 끼어들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마눌님이 쓰러졌고 119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들어가 밤새 CT와 MRI 촬영을 한 후,
의사의 입에서 뇌에 종양이 생겨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말이었습니다.
그때가 IMF가 막바지로 접어들고 우리 부부는 작은 집을 팔고 32평 아파트로 이사준비에 여념이 없던 때라...
이사하는 날을 사흘 앞둔 날이었습니다.
이런 경우를 사람들은 호사다마라고 하던가요?
뇌수술에 대한 사실을 차마 마눌님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말할 수 없었습니다.
새벽에 응급실에서 정신을 차린 마눌님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빨리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졸랐지요.
의사와 상의 후 수술 날짜를 다시 잡기로 하고 우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유는 고생하면 장만한 집에 제일 먼저 입주하는 기쁨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새로 이사할 집에 도배는 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새 아파트는 아니었지만 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일단 이사를 마치고 안정을 취한 후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마눌님의 충격은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겠지요.
처음에는 놀라며 부정을 합니다.
"당신이 날 놀리려고 그러는 거지? 당신이 잘못 들었을 거야! 그렇지?"하고요.
그다음에는 분노를 하지요.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느냐고요.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내게 이런 병이 생겼느냐고요...
그다음에는 현실적인 최선의 방법을 찾습니다.
佳人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면서 이야기합니다.
"나 살 수 있는 거지? 그렇지? 사진이 혹시 다른 사람과 바뀌지는 않았을까?"
그때 남편으로써 그렇게 무능하게 생각된 적이 없었습니다.
佳人은 마눌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울고 있는 마눌님 등어리를 두드리며 "수술만 받으면 괜찮아진데..."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술을 받지 않겠다는 마눌님을 설득하고 수술을 받으려고 하려니까.
이번에는 의약분업이 막 시작된 때라 의료대란이라고 하는 의사들이 파업을 한것입니다.
이렇게 속만 태우다가 또 한 달을 그냥 보내게 되었습니다.
어찌어찌하여 다른 대학병원에 아는 사람을 통하여 수술 일정을 잡고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술 받기 위해 집을 떠나던 날...
그 동안 고생하며 아끼고 모은 돈으로 장만한 새로 이사 온 집을 떠나는 마눌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살아서 다시 돌아와 이 집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방안의 모습을 사진처럼 마음에 담아두려는 듯 찬찬히 살핍니다.
그때까지 50년간 살아온 일들이 마치 활동사진처럼 지나갔을 겁니다.
그때 佳人과 마눌님은 겉으로는 씩씩하게 집을 떠나 병원으로 갔지만 속으로는 펑펑 울었습니다.
수술전에 보호자의 동의서를 받지요?
수술 도중 잘못될 경우에 대비하여...
그리고 수술 후, 후유증으로 걷지 못할 수도 있고 말을 하지 못하거나 등등등....
수술실로 들어갈 때도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애원하는 마눌님의 손을 강제로 뿌리치며 밀어 넣을 때,
이 순간이 살아서 볼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르기에 손을 뿌리치고 또 속으로 울었습니다.
그때 마눌님은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그냥 평범한 부위의 수술도 아니고 뇌수술인데....
"여보! 많이 무서웠지? 사실 괜찮다고 하며 잡은 손을 뿌리친 佳人도 많이 무서웠어...."
마눌님을 들여보내고 6시간 동안 수술실 앞에서 佳人은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니... 그것은 생각이 아니라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왜 사람은 이런 경우에만 후회를 합니까?
만약....
만약에 다시 건강을 회복해 걸을수만 있다면...
그 기도 중 하나가 바로 함께 배낭을 둘러메고 둘이서만 배낭여행을 다니게 해 달라고요.
그때까지 佳人은 마눌님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게 없었습니다.
여행이야기는 남의 이야기였고 책에서나마 읽는 그런 먼 나라 이야기였지요.
일 년에 1주일 정도 주어지는 여름휴가도 바쁘다, 피곤하다, 덥다는 핑게를 대고 기피하곤 했지요.
특히나 해외여행은 배부른 사람의 놀이고, 팔자좋은 사람의 여가생활이라고요.
남자란 그냥 열심히 일만 하고 가족 굶기지만 않으면 그게 최고의 가족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결혼하여 그때까지 20년 동안 오직 아이의 엄마로 佳人의 부인으로만 살아 온 마눌님에게 희생만 강요했지
해 준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사랑은 희생이라지만 한 사람의 희생만 강요하고 살아 온 것이지요.
쥐꼬리만한 월급을 갖다주며 제왕처럼 행동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佳人은 참 나쁜 놈입니다.
옷도 처녀 때 입던 옷 그대로....
살림살이도, 장롱도 모두 시집 올 때 그대로 20년을 살아오며 적은 월급을 알토랑 같이 모아 집을 늘려가기
바로 직전에 쓰러진 것입니다.
수술 후 투병기간이 3년...
그 약이 얼마나 독했던지 하루에도 여러 번 구토를 했고....
그리고 회복기간이 2년...
그 후 다시 걷기 시작한 지 3년...
그 사이에 여자들에게 흔히 오는 우울증까지 와 무척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때,
수술실 앞에서의 후회스러운 기도 중 하나인 여행을 시작한 지 2년째로 작년에 이어 두 번 째입니다.
"여보! 이제 아프지마~ 佳人이 옆에서 언제나 호~~ 해줄게... 그리고 다시는 내 눈에 눈물 흘리게 하지마...
사내가 찔찔거리는 모습은 창피하잖아..."
수술 후, 지금도 손에 쥐는 힘이 없어 설거지를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자꾸 떨어뜨리기에 설거지는 佳人의 몫입니다.
그런데 설거지는 그 때 수술실 앞에서 한 기도 중에는 전혀 포함되지 않는 돌발상황입니다.
佳人의 여행 이야기는 정보도 없이 제 느낌과 부부간의 소소한 이야기들로만 채워져 있습니다.
아마 몇 개월간 다녀온 이야기를 쓰고 이 여행기가 끝나면 이번에는 어디로 갈까를 상의하고 가을이 되면
또 떠나렵니다.
해외로 배낭여행을 다닌다고 하면 흔히 팔자좋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생활비를 아끼면 적은 비용으로도 얼마든지 배낭여행을 다녀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너무 짧습니다.
마치 아침 안개가 몰려왔다 사라지는 그런 짧은 삶입니다.
아침 이슬이 잠시 생겼다가 해가 떠오르면 어느새 금방 사라지는 그런 시간 말입니다.
남자들은 늘 말합니다.
"알았어~ 내가 나중에 잘해줄게~"라고요...
그러나 얄미운 운명은 언제 부부 사이에 끼어들어 훼방을 놓을지 모릅니다.
삶이란 녀석은 늘 그랬습니다.
마치 佳人에게 퍼즐 맞추기처럼 내 삶을 흐트러뜨려 놓고는 다시 맞추어 보라고 합니다.
간신히 맞추어 놓으면 또 흐트러뜨려 놓고 다시 맞추라 합니다.
건강을 시험하고 지름길을 가르쳐주지도 않고 늘 돌아가게 합니다.
우리를 화나게 만들고는 토닥거려주지도 않고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런 얄미운 삶을 아직도 짝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혹시 살아가는 도중에 하시고 싶은 일이 있으시면 즉시 하세요.
아마도 그 일은 우리가 평생 원했던 일이 될는지도 모릅니다.
그 일이 평생 후회로 남는 일이 될는지도 모르고요....
지나간 과거가 내것이 아니 듯, 내일 또는 내년도 내것이 아닐지 모릅니다.
지금이 바로 내 시간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부부간의 사랑은 예약이 아니고 아프터 서비스도 아닌 Just do it입니다.
부부간의 사랑도 리필이 될까요?
지금까지 사랑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반듯하게 해준 것도 없이 세월만 흘러 버렸습니다.
먹고 사는 게 힘이 든다는 핑게만 대고 살아 왔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하는지 방법도 모릅니다.
사랑도 리필이 된다면 그리하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후회로 남을 일, 한 가지는 없엘 수 있으니까요.
부부란 두 사람이 하나의 영혼으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런데 리필을 하려고 하니 이제는 백수가 되어 돈이 없어 리필의 흉내만 냅니다.
모든 것을 다 마련해 놓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적은 여행경비로도 리필을 하고 다녀야죠?
그래서 1년에 딱 한 달정도만 둘만의 배낭여행을 합니다.
우리 부부는 여행경비가 놀라울 정도로 적게 쓰고 다닙니다.
이번 28일간의 세 나라의 여행경비가 비행기 요금을 포함하여 두 사람이 총 165만원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 한 달 생활비 정도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비시즌에 비행기를 타고, 저렴한 숙소에 그리고 식사도 현지인처럼 길거리 음식도 먹고 다닙니다.
우리 부부에게는 장가를 가지 않은 아들만 둘이 있고 아직 함께 살고 있습니다.
두 녀석은 직장에 근무를 하지만, 월급을 따로 관리하게 합니다.
생활비라도 받아야 할까요? 여행경비라도 찬조를 받아야 할까요?
그래도 백수남편과 함께 가쁜 숨을 몰아쉬며 후타오샤를 올라가도 행복하다는데 어쩝니까...
아침에 길거리에 쪼그리고 앉아 죽 한 그릇 먹고 다니고 허름하고 저렴한 객잔에 잠을 자도 행복하답니다.
행복은 돈으로만 사는게 아닌 모양입니다.
함께 하고, 함께 웃고, 함께 바라보고, 함께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산을 오르는 것도 행복입니다.
여행이란 얼마의 경비를 쓰느냐가 아니고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느냐에 달린거니까요.
당신으로 인해 내가 행복하고 내가 있으매 당신이 웃음 지을 수 있는 세상이 행복한 세상 아니겠습니까?
인생은 편도표 한 장 달랑 들고 가는 길이라지요?
그러나 여행은 왕복표를 들고 갔다 오니 이 또한 큰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길이 바로 여행과도 같은 게 아닐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놈이 바로 나쁜 그놈입니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한평생을 살아와 머리카락조차 하얗게 세어버린 못난 놈입니다.
그래도 지금은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습니다.
부부란 전생에 원수같은 사이였답니다.
그래서 살아가는 동안 전생의 죄를 갚기 위해 겁나게 사랑하며 살아야 한데요.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마눌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큰 죄를 짓는 일이잖아요?
그래요....
살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축복입니다.
숨을 쉬는 것조차 축복입니다.
함께 서로 쳐다볼 수 있고 함께 웃으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조차 축복입니다.
세상은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공기처럼 중요함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보 당신을 가만히 안아주며 "여보! 힘들지?"하며 말해보세요.
아마도 "징그럽게 당신 왜 이래?"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고마움의 눈믈을 흘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집 안에는 신중플루보다 더 강한 행복 바이러스가 가득 퍼집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 젊은 시절에는 사랑하기 위해 살고,
나이가 들어서는 살기 위해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우리 삶의 작가이고 감독이고 주인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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