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와트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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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앙코르 와트04.

욘욘 5 2679
전날, 해 뜨는 걸 보는 게 좋았다.

그리하여, 또 보자 하여, 뚝뚝이 기사 아저씨와 아침 4시 반에 호텔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

그리고, 일어난 시간은, 7시.

아저씨는, 집에 가지도 않고, 호텔에 나를 깨워 줄 것을 요청하지도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동안 학습해 왔던 온갖 종류의 미안함의 제스처를 해 보여도 좋았을 테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나쁜년이 되기로 했다.

그것이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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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사이 모기 물린 곳을 긁으며 한국에서 가져 간 티셔츠를 선물했다.

이걸 입고 운전하면 한국인들이 무척 좋아할 것이라고 띄엄띄엄 말해 주었다.

아저씨는 나쁜년에게서 선물 받은 옷을 입고, 좋은 척을 해 주었다.

고마웠고, 이 티셔츠가 앞으로의 그의 사업에 작은 보탬이 되길 잠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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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적지를 도는 마지막 날. 오전 내내 앙코르 와트만 보기로 했다.

진실, 여기가 마지막이었다.

여행의 목적을 이루는 데.

여기서는 꼭 찾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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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중 캡쳐한 부분.

마지막에 양조위가 캄보디아로 가 아무도 모를 비밀을 이야기하고 막아 버린 구멍.



여행을 떠나기 전, 하면서, 하고 나서까지도,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왜 하필이면, 거기냐고.

“그냥요.”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저 간절하게 이 구멍을 찾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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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부터 꼭대기까지 샅샅이 찾았다.

관광객들은 벽의 부조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나도 목적은 다르지만 정신이 없다.

시간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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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들을 샅샅이 찾아야 하는데, 통로에서 쉬는 사람, 졸고 있는 개 때문에 쉽지 않다.

마음만 바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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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간 넘게 뒤졌는데도 못 찾고 있다.

어쩌면 구멍은 어제까지 본 사원들 중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을 수도 있다.

앙코르 와트에서 나왔다.

담배를 한 대 태우며 쉬었다.

이쯤 되면, 마땅히 귀찮아졌어야 한다. 그따위가 뭐라고 초조해질 순 없었다.

그런데, 자꾸만 조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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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내내 가지고 다녔던 스틸 사진. 사원 한 곳을 갈 때마다 관리인에게 보여 주며 이곳의 위치를 물었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화양연화>도, 왕가위도, 양조위도.

앙코르 와트에 다시 들어가 노닥거리고 있는 관리인에게 슬그머니 사진을 내밀었다.

“이곳을 아십니까?”

“구멍이 세 개가 이렇게 있습니다.”

“나는 여기를 찾아야만 합니다.”

관리인이 웃었다. 그리곤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으로 다녔다.

1시간이 지났다. 그도 지치고, 나도 지쳤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 군데만 더 가보자고 했다.

나는 그에게 미안했고, 그래선 안 되었지만 화도 났다.

저쪽에서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에게 사진을 보여 주고 있다.

아주머니가 또 씩 웃는다.

성큼성큼 앞선다. 따라간다. 심장이 뛴다.

아주머니가 손가락을 들어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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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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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인에게 사진처럼 포즈를 취해 줄 것을 부탁했다.

잠시 나를 보더니,

순순히 구멍 쪽으로 돌아서 주었다.

포커스를 잡고 셔터를 누르는 2초 간, 그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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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동안 나를 안내한 관리인과, 2초 만에 구멍을 찾아 준 아주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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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여행을 마친 기분.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원을 다시 둘러보았다.

이제야 졸고 있는 관리인도 보이고, 벽에 붙은 도마뱀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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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던 옥수수를 사 먹었다. 숯불에 구워 코코넛 소스를 묻힌 다음 다시 숯불에 굽는다. 수수한 옥수수. 맛있는 옥수수. 한 알 한 알 빼 먹으니 머리와 심장이 제자리를 찾는다. 이제 놀 일만 남았다.



캄보디아에 와서 해 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영화관에 가는 것이었다.

기사 아저씨에게 극장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아저씨가 다시 묻는다.

띠어러.

최대한 혀를 굴려 다시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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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뚝이를 타고 극장으로 가는 길.

길 옆 그림을 팔고 있는 가게가 보였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치기만 했었는데, 오늘은 한 소년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게 보였다.

지나칠 수 없었다. 아저씨에게 내려달라고 했다.

땀을 흘리며 그림을 그리던 소년이 수줍게 웃는다.

내 친구들 중엔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이 많다,고 얘기해 주고 싶었으나,

소년은 영어를 전혀 못 했고, 나도 그들의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림들을 둘러보았다. 해 뜨고 질 무렵의 앙코르 와트 그림이 많았다.

그들의 눈으로 본 풍경 묘사는 사진에서 얻을 수 없는 감정이 있었다.

그림값을 물었다.

먼저, 그림을 고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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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무렵의 풍경 그림을 골랐다. 같이 오지 못한 남편에게 이곳의 공기와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

다시 가격을 물으니, 검은 민소매 셔츠를 입은 소년이 나타나 10달러라고 한다.

이 소년이 그린 그림이다.

두 점을 사면 얼마인지 다시 물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20달러라고 대답한다. 한 점만 사겠다 하고,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니 포장을 해 달라고 했다.

그동안 10배 이상의 바가지를 경험하여 어느덧 흥정이란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나, 이상하게도 그림값을 깎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소년의 눈, 손, 콧등에 맺힌 땀 때문이었다.

영자 신문으로 정성껏 포장해 준 그림을 받았다.

아, 내 생애 최고의 ‘쇼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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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뚝뚝이를 타고 극장에 도착.

영화는 벌써 시작했다. 뚝뚝이 기사 아저씨와 함께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알아들을 순 없지만, 내용 파악은 충분히 된다.

옆 자리에 앉은 뚝뚝이 기사 아저씨가 영어로 내용도 설명해 주었다.

운명의 장난을 겪는 왕자와 공주 이야기. 공주를 시기 질투한 한 여자가 공주를 가두고 자신이 공주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왕자와 결혼하고, 공주가 낳은 자식이 장성하여 복수를 해 주는. 우뢰매에서나 볼 듯한 특수 효과와 어이없는 백그라운드 뮤직. <시네마 천국> 속 관객들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관객들.

그렇지만, 오, 진정,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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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나와 프놈바켕으로 일몰을 보러 갔다.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대충 자리를 잡고 해가 지길 기다리며 남편에게 엽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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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다.

남편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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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의 마지막 밤.

숙소로 돌아와 압살라 댄스를 보며 저녁을 먹고,

다른 한국 사람들과 클럽에 갔다.

어린 여자애들을 꼬시러 온 서양 남자들, 그들을 꼬시러 온 어린 여자애들, 그들을 꼬시러 온 부르조아 남자애들......

새벽 1시가 될 때까지 그들과 함께 춤을 추었다. 중간 중간 남자애들이 몸을 비비며 다가왔지만, 내 댄스 필살기를 보더니 슬금슬금 도망갔다.



이곳에 와서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모두 마지막 날에 했던 것이다.

그림을 사고, 극장에 가고, 클럽에 가고.



내일은 3시 반에 일어나야 한다.

왔던 길을 돌아 나가야 한다.
5 Comments
넌내꺼 2005.09.20 06:49  
  사진과 그림속에 조그만 감동이 있네요...감사..
조각달 2005.09.20 20:09  
  다시 여행을 하게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님의 여행기를 보는 동안 행복했습니다,^^
방랑벽 2005.09.25 21:13  
  잘봤습니다~

사진기술 정말 부럽네요~~ㅋㅋ전 맨날 뒤통수로만 감상보니 잘 찍기는 힘들겠지만요....
브래드촬리 2005.11.10 15:56  
  답글을 달기 위해 회원가입까지 했습니다. 저는 3일뒤에 캄보디아로 출발하려고 합니다. 꼭 가야 한다는 의지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마롱 2012.03.08 03:13  
그 세개 구멍 있는 곳이 정확히 어느쪽인지 자세한 설명 부탁드릴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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