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의 아름다운 모습은 낮뿐만 아니라 밤의 아름다움도 있습니다.
아마도 밤이 아름다워 고성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명은 화장과 마찬가지로 숨기고 싶은 곳은 어둠 속으로 감춰버리고 들어내고 싶은 곳은 화려한 등으로 원래의 모습보다
더 강조를 하기에....
그래서 佳人도 어둠 속에서 빛나는 조명 아래 서서 사진 한 장 찍어 올립니다.
그런데 佳人의 사진 속 모습을 보니 아예 모두 어둠 속에 윤곽만 보이는 실루엣으로만 처리하고 싶군요.
우리도 어둠이 내리자 다시 주섬주섬 챙겨 고성으로 나옵니다.
이곳 펑황고성(봉황)은 퉈지앙이라는 강으로 말미암아 그 아름다움이 배가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윈난의 리지앙이나 어제 다녀온 쩐위엔 고성도 수로나 강이 없었다면 그 아름다움은 반으로 줄어들었을 겁니다.
이런 아름다운 고성을 걷다 보면 누구나 자유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까요?
자유롭다는 것.
그것은 구속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있는 것일 겁니다.
구속이란 어떤 것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이란 미리 잘못될 것을 예상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걱정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우리가 여행할 때 자유롭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여행한다는 것은, 현실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되는 일이잖아요.
현실의 도피와는 많이 다른 의미겠지요.
여행하며 어디에 매여 있고 잘못될 것을 생각하고 여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가끔 너무 무리한 계획과 힘든 일정으로 힘겹게 다녀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꼭 해야만 한다.'라는 생각만 버리면 여행의 부담에서 한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냥 마음 편하게 보고 싶은 것 있으면 가다가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냥 군것질하고,
가다가 해가 저물면, 그곳에서 하룻 밤 신세를 지며 다니다 보면 참 편한 여행이 될 테인데 말입니다.
자유롭게 여행하는 일...
그것은 바로 부담없이 다니는 일입니다.
그런데 여행을 하다 보면 계획에서 벗어났다고 조바심내고 짜증을 부리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더군다나 배낭여행이란 단체여행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며 다니기 위해 떠난 여행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떠났지만, 바로 그 자유여행도 또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자신을 보고
때로는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자유스러워지고 싶어 떠난 여행이 결국, 또 계획의 노예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자유로워지고 싶어 떠난 여행이 왜 자유롭지 못하지요?
아직도 부담스럽고 두려운 마음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계획이라는 틀을 만들고 그 안에 나를 넣어버리는 일이 자유여행이 아닐진데 우리는 그렇게 계획하고 다닙니다.
언어와 습관과 음식과...
모두 우리와는 많이 다른 곳이라서 그럴까요?
사람 사는 것은 작은 차이는 있어도 근본은 크게 다름이 없을 텐데 말입니다.
여행이란 결국, 다른 언어,다른 습관, 다른 음식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서는 일이 아닐까요?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다니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아지겠지요.
차라리 뛰어들던가...
아니면, 강가에 의자라도 만들어 앉혀 놓던가...
지나가는 사람 불안하게 왜 이렇게 만들어 놓았습니까?
슬쩍 밀어버릴까요?
작가의 의도가 佳人처럼 생각하며 보라는 뜻인가요?
이제부터라도 자유롭게 다녀야겠습니다.
자유를 만끽하며 즐겨야겠습니다.
한 발만 더 가까이 다가서면 자유로워질 것같습니다.
봉황 고성의 밤은 다른 곳처럼 대부분 유흥음식점뿐입니다.
우리 같은 나이 든 사람에게는 이곳도 조명외에는 밤이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이곳 퉈지앙에서도 불장난을 하는군요?
소원이 이런 종이배에 실린 불로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소원이라는 녀석은 언제나 가까이 다가가면 또 멀리 떨어지며 늘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더군요.
만약에 누가 불을 붙여 퉈강에다 종이배를 띄우며 소원을 빌기 전에 옆에 서 있다가 마음 속으로 먼저 빌어버리면 우찌 될까요?
누구의 소원을 들어줄까요?
혹시 대법원 판례라도 있습니까?
밤에 산책하며 보는 봉황 고성의 모습은 또 새로운 얼굴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밤에 또 고성으로 나와 걸어야 합니다.
그래서 봉황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밤낮으로 피곤하게 만드는 곳이 봉황 고성입니다.
날씨가 쌀쌀합니다.
옷깃을 여미고 목도리라도 하시고 佳人과 함께 봉황의 밤길을 더 돌아다니시죠?
뉴질랜드 출신 중국 공산당원인 르위 엘리(Rewi Alley)도 감탄한 아름다운 봉황 고성이 사실은 말 잘 듣는 먀오족과
말 안 듣는 먀오족을 분리하려고 만든 남방장성을 행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만든 성이라는군요.
아픈 역사가 이렇게 아름다운 고성을 만들었습니다.
행복이란 불행을 먹고 자란 녀석인가요?
불행이 행복을 키우고 있는 것인가요?
그 근본은 같은 것인가요?
그러니 지금 흐르는 퉈강은 성벽 밖으로 흐르는 강으로 해자와 같은 역할을 하고요.
그 성벽은 또 퉈강이 범람하여 고성이 침수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하고요.
서로가 도움 주고받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이런 아름답지 못한 역사를 지닌 봉황 고성은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보호받고 있다네요.
소수민족을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이렇게 당당히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면 서로 돕고 행복하게 살았다면 이런 마을은 생겨나지도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까?
이곳은 대부분 먀오족과 투자족(토가족:土家族)이 사는 후난 성 유일의 소수민족 자치구라고 하네요.
토가족이라고 하면 주로 장가계 주변에 살며 마지막까지 산적질로 먹고 살던 민족이 아닙니까?
앉아서 천리를 내다 봤다는 장자방이 토사구팽 당하고 이곳으로 도망와, 산적으로 살던 토가족을
사람 만든다고 교육시켰다고 장가계라고 한다는데...
자기 앞날도 모르면서 무슨 앉아서 천리입니까? 그러면 서면 우짤낀데요?
佳人은 누워서 만리 밖에 있던 무라바크가 자빠지는 것도 보았는데....
봉황은 물론 지금은 한족도 많이 살고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 먀오족이 제일 많다고 하네요.
봉황 고성은 元, 明 때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淸代에 들어와 돌로 쌓고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문을 만들어
그 문 위에 각각 누각을 만들어 규모를 갖추었다고 하네요.
지금은 북문과 동문을 연결하는 성벽만 남아 있습니다.
바로 퉈강을 따라 길을 걷다 보면 성벽이 있는데 바로 그 성벽입니다.
밤에 봉황은 어찌 지내나 꼬락서니를 보러 왔습니다.
잠도 자지 않고 버티기에 들어갔습니다.
메뚜기라고 놀렸더니 화가 많이 난 모양입니다.
메뚜기~ 그래 밤이 깊었으니 이제 쉬는게 어떨까?
펑황 고성은 리지앙 고성과는 같은 분위기가 좀 나지만 다른 느낌입니다.
그러니 같으면서 다른 분위기....
리지앙처럼 작은 수로들이 있는 게 아니라 무식하게 도시 중간에 큰 강이 흐르는 게 특징입니다.
성문과 성벽이 없는 리지앙과는 다르게 고성으로써의 구비조건도 갖추었습니다.
오히려 리지앙보다 더 아름다운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곳까지 찾아오는 게 정말 힘들었지만 올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이곳에서는 봉황이 배출한 걸출한 작가인 션총원(심종문:沈從文)의 변경의 군대생활과 소수민족의 생활상을 담은
대표적인 소설인 삐엔청(변성:边城) 뿐 아니라 많은 TV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합니다.
밤에 바라보는 홍치아오(홍교:虹桥)도 멋이 있군요?
퉈지앙을 가로지르는 홍치아오는 봉황의 얼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본래 이름이 워홍치아오(卧虹桥)로 명(明) 태조(太祖, 주원장) 때에 건축이 되었다는군요?
다리는 2층으로 되어 있어 1층은 보행자 통로이며 양쪽으로는 기념품 가게가 자리 잡고 있어 다리 위에서 강을 바라볼 수
없게 되어 있지요.
그러나 2층으로 올라가면 다리를 관망할 수 있지만, 차를 파는 찻집이며 돈을 내고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 주변을 빙빙 돌며 사진이나 찍습니다.
봉황 고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홍치아오에서 완밍타(만명탑:万名塔) 방향일 겁니다.
그 옆으로는 완숴궁(만수궁:万寿宫)이 있고 그 건너편으로는 강남수향(江南水乡)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조각루와
건물이 강을 따라 연이어 이어져 있습니다.
많은 미술학도가 그 모습을 스케치하고 캔버스에 담기 위해 언제나 바글거리는 곳입니다.
여행하다가 곤란하고 어려운 일을 당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해결할 방법이 없다면, 그 또한 걱정해도 소용이 없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여행 중에는 무조건 걱정하지 말고 다녀야 합니다.
홍치아오(홍교:虹桥)에서부터 북쪽으로 이어지는 큰길에는 초저녁부터 많은 가게가 야시장을 이룹니다.
여러가지 과일도 팔고...
식사도 하며 술도 한 잔 마실 수 있습니다.
가끔 우리 눈에는 이상하게 보이는 모습으로 통째로 털코트 벗고 냉큼 올라앉아 있기도 합니다.
자는 듯 누워 있지만, 자는 게 아닙니다.
구제역이 생기면, 살처분하고...
좋은 시절에는 맛난 식재료가 되어 콜라겐이 많다고 껍데기까지 홀랑 벗기고...
삼겹살은 한국에서 국민식품이고, 내장은 순대 만들고, 가죽은 돈피라고...
태어나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고 가는 아름다운 돼지.
이곳 봉황 고성은 그 부근에 있는 남방장성에서 얼마 전 바둑시합이 열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기사의 바둑두는 모습이 청동조각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상대는 중국의 고수들이겠죠.
그 당시 흰옷과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바둑 수순에 따라 차례로 뛰어나와 대형 바둑판 위에
돌이 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중국은 인건비가 싸다고...
그곳이 바로 봉황고성 부근이었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원하고 바란다고 우리의 목표가 다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원하고 바라지도 않았는데도 목표가 저절로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늘 꿈을 꾸어야 하며 또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언제나 노력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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