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자오싱은 지저분한 인상을 줍니다.
어쩌면 이게 사람 사는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냇물은 전혀 관리하지 않아 염색물과 생활 오, 폐수로 무척 지저분하고 냄새까지 납니다.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자오싱의 대표선수인 개천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런 게 자연을 그냥 두고 보호하자는 말은 아닐 겝니다.
그러나 밤은 더러움과 냄새마저 감추어 줍니다.
자오싱에도 아름다운 밤이 찾아왔습니다.
우선 자오싱이라는 동(侗)족마을은 입장료가 없습니다.
자오싱의 자오는 동족 말로 '시작이나 제일 먼저'라는 의미라 합니다.
그러니 자오싱은 동족의 박물관이나 다름없습니다.
자오싱이라는 마을의 중요성은 동(侗)족이 처음으로 자리 잡고 마을을 만든 곳으로 그 존재가치가 있습니다.
장충동 족발집에 가면 모두 자기집이 원조라 합니다.
동족의 원조는 자오싱이라고 누구 하나 태클 들어오지 않습니다.
부근에 동(侗)족이 많이 살고 있지만, 제일 먼저 마을다운 곳을 만들고 함께 모여서 시작한 곳이 자오싱입니다.
이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동(侗)족의 선조가 무리를 이끌고 떠돌다가 이곳 자오싱에 오게 됩니다.
당시 자오싱은 대나무와 가시덤불이 무성하게 자라던 곳이었답니다.
사람이 전혀 살지 않았던 곳이라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다 압니다.
원조 할배가 지세를 살피고 천기를 둘러보니 이곳에 터를 잡으면 동족이 자손대대로 번창하고 잘 먹고 잘 살 것 같더랍니다.
"그래! 바로 여기야~" 하며 신천지를 개척했지만...
그러나 그 후의 보호하고 관리하는 문제는 후손에 일러주지 않았나 봅니다.
처음에는 뭐 사람이 전혀 살지 않았던 곳이니 오죽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지금도 자오싱은 동족의 고향치고는 너무 초라한 편입니다.
전혀 관리를 하지 않은 세월에 그대로 노출되어 먼지가 수북이 쌓였고 청소조차 하지 않은 천연의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원조 할배가 후손이 번창하는 땅은 골랐지만, 그 땅에 살면 게을러진다는 것을 알지 못했나 봅니다.
이곳에 제일 먼저 온 동족의 조상은 이곳에 도착해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네.. 바로 우물을 파고 가시덤불을 정리하며 개간을 하여 농지로 만듭니다.
처음 마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하였겠습니까?
그 덕분에 후손은 쉽게 자리 잡고 살아갈 수 있었겠지요.
주로 우물가에 모여 살며 점차 인구가 늘어 주변에 새로운 동족마을이 생기게 되었다고 하여
자오싱은 글자 그대로 제일 먼저 시작한 마을이라는 의미라 한다는군요.
제일 먼저 마을을 일군 할배가 가시덤불을 개간하며 한 일이 우물부터 파고 그 주변에서 사랑을 시작했기에
후손들도 우물가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사랑은 우물가에서 시작하는 게야~
우물에서 샘이 솟듯, 사랑아 펑펑 샘 솟아라~
그래서 동족은 물가에 산다는 말이 생겼다 합니다.
지금은 자오싱에 게으른 후손이 8백여 호에 4천여 명이 살고 있답니다.
그다음이 고루와 화교라고 부르는 풍우교입니다.
다른 곳보다 자오싱은 풍우교라는 말보다 화교라고 부릅니다.
다리와 고루는 늘 한 세트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고루는 동(侗)족 사람의 성씨를 의미합니다.
보통 한 마을에 하나의 고루가 있으며 대부분 하나의 성씨가 그 마을에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처음에야 그랬겠지만, 지금은 많이 변했겠지요.
그러나 이곳 자오싱은 특이하게 5개의 고루와 화교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동(侗)족의 원조마을이기에 5개의 성씨가 모여 살아가는 마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동(侗)족마을을 찾아볼 때 우물과 고루, 풍우교라는 화교는 꼭 둘러보아야 동(侗)족마을을 제대로 둘러보는 일입니다.
대부분 관광객은 자오싱처럼 동족 마을을 찾아갈 때 대부분 고루나 풍우교를 보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동족을 느끼기에 50%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동족을 제대로 느끼시려면 그 마을에 우물을 보아야 합니다.
우물이야말로 동족의 뿌리나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생각되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마을 입구에는 채문(寨門)이라고 하는 문이 있습니다.
마치 풍우교와 비슷한 모습입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는 대부분 강을 건나야 하기에 다리가 있고 다리에는 풍우교라고 부르는 다리가 있습니다.
마을 사람이 모여 대화도 주고받고 회의도 할 수 있고 더운 여름 땀도 식힐 수 있는 곳입니다.
비도 피할 수 있고 풍우교 안에는 그림으로 역사나 풍습, 생활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놓았습니다.
예쁘게 그렸다고는 하지만, 무척 어설퍼 보이는 그림입니다.
그래도 예쁘게 봐 달라는 의미로 풍우교를 다른 말로 화교(花橋)라고도 한다 합니다.
선조를 기리기 위한 고루에는 각각 仁義禮智信의 의미를 지칭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仁團, 義團.... 등으로 고루를 부르더군요.
높이 순서로 집합시키면 신, 예, 인, 의, 지의 순이라는군요.
제일 많은 고루가 있기에 이 마을을 고루지향이라고 부른답니다.
고루는 주로 1.2층은 4각형이고 3층 이상은 8긱형으로 만든다네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목수마음대로 입니다.
같은 마을에 있는 고루도 모두 층수나 모양이 다릅니다.
일종의 마을회관이며 손님을 접견하는 장소이고 경로당이고 회의도 하고 공연도 하는 그런 곳입니다.
고루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러니 촉 나라의 제갈량이 남정(南征)을 하였을 때 동족마을에 군영을 설치했다고 합니다.
이때 군대를 통솔하기 위해 진중에 높은 고루를 짓고 그 꼭대기에 구리 북을 걸어두고 명을 내릴 때 그 북을 두드렸다고 합니다.
이것이 동족마을에 고루를 짓게 되는 효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지금도 고루 꼭대기에는 구리로 만든 북은 없지만, 쇠가죽으로 만든 북이 걸려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또 다른 믿거나 말거나의 결정판은 고대에 외계인이 어느 날 불쑥 내려와 동족마을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왜 내려왔느냐고 따지지 마세요. 무엇 때문에 왔느냐고도 따지지 마세요.
외계인은 원래 로켓과 비행접시를 보유하고 있었을 것 아닙니까"
바로 동족이 그 모습을 보고 고루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어때요?
모양이 기막히게 비슷하지 않나요?
여러분께서는 지금 佳人의 이야기를 듣고 비웃고 계시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저도 심히 부끄럽습니다.
佳人이 중국이라는 나라를 여행하다 보니까 그만... 동화되어가나 봅니다.
황당하지만, 계속 이야기 해도 되겠습니까?
고루의 본체는 로켓의 모습이고 제일 꼭대기를 보면 마치 비행접시처럼 생겼습니다.
그들의 고루를 칭송하는 노래중에 那天神仙 下界途禮錢이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거 봐요~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왔다잖아요~
여기서 이야기하는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이 외계인인지 모르잖아요?
지금 또 비웃으셨죠?
사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저는 울고 싶습니다.
웃어야 합니까? 울어야 합니까.
나 원 참... 환장하겠습니다.
좌우지간, 고루는 마을회관입니다.
혹시 자오싱에서 주무시다가 밤에 엔진소리가 들리면 밖으로 나와 고루를 찾아보세요.
누가 압니까? 고루로 위장한 로케트가 야간비행이라도 나갈지...
그들이 공연 때 부르는 노래는 그냥 노래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역사와 규약과 의학지식 등을 노래로 전했다고 합니다.
공연은 주로 밤에 한다고 합니다.
마을 입장료는 없어도 공연할 때 관람료를 50원 정도 받는다고 하네요.
그러나 오늘은 공연조차 하지 않습니다.
자오싱이란 마을은 동족이 처음 자리를 잡았던 마을이라는 점이 이곳을 찾아오게 하는 가 봅니다.
그리고 우물(수웨이 징:水井)은 꼭 찾아보아야 하고요.
조금만 청결하게 관리했으면 좋겠습니다.
고루는 모두 5개가 개천을 따라 남쪽에 3개 북쪽에 2개가 있습니다.
풍우교야 당연히 개천 위에 걸쳐있겠지요.
무심한 아이들이 밤에 고무줄놀이를 합니다.
우리 어렸을 때 저런 고무줄은 끊고 도망가야 제맛이지만, 이제 나이가 드니 정겹게 보입니다.
물론 고루는 화치아오(화교:花橋=풍우교)와 언제나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2개는 화교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없는 게 아니고 개천이 멀어 화교가 떨어져 있습니다.
남쪽으로 흐르는 강을 따라 가다 보면 화교가 있습니다.
마을이 무척 어둡습니다.
밤에 머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루의 불도 모두 밝혀놓은 게 아니고 한 곳만 밝혀놓았습니다.
이곳 자오싱의 화교를 돌아보면 그 이름을 왜 화교라고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다리 안에다가 모두 그림을 그려 놓았습니다.
주로 그들이 살아오며 겪었던 일상의 생활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놓았지요.
전설을 그림으로 나타내 후세에 전하고 민속놀이 등을 보여줍니다.
다리 밖에도 지붕을 보면 조금 조잡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림으로 장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붕에는 어설픈 용이나 원숭이나...
그리고 다리 안에는 원래 신당을 차려 놓았습니다.
다른 마을인 청양에 가보면 워낙 다리가 크기에 풍우교라 부르고 그 다리 안에는 신당이 차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을을 드나들기 위해 누구나 화교를 지나야 하기에 빌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풍우교란 그냥 건너다니는 다리뿐 아니라 모두 모여 담소하는 공간이며 일상의 모습을 방문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그 안에 신당을 차려놓아 마을뿐 아니라 개인의 안녕과 가족의 축원을 하는 곳이지요.
먼 길 떠나는 사람은 건강을 빌고...
정자의 역할도 하고 보탑의 역할도 하지요.
동족은 자신들을 山+同이라는 통(峒)족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중국정부에서는 人+同의 동(侗)족이라고 명명했지요.
그 동(侗)의 의미는 무지하고 미련하다는 의미라고 하네요.
한족이 워낙 잘난 민족이 아니겠습니까?
주로 강가에 자리 잡고 살며 아이가 태어나면 산에다 삼나무를 심고 18세가 되면 그 나무를 잘라 집을 짓고...
우리네 삶에 아이가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어 시집갈 때 오동나무로 장롱을 짜 시집보내는 것이랑 비슷합니다.
반란근을 사용해 옷감의 물을 들이고 쪽빛 옷은 주로 봄가을에 입고 흰옷은 여름에 입습니다.
자주색의 옷은 주로 잔치를 할 때 입는 옷입니다.
옛날에는 결혼 후에도 여자는 아이를 낳기 전에는 친정부모집에서 살았고 잔치때나 남편 집에 가 함께 지내다 온다고 하네요.
그러다 아이를 낳게 되면 그때야 남편과 함께 알콩달콩 산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립니까?
그럼 사랑은 언제 합니까?
나 원 참...
나는 밤이 무서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지금은 자오싱도 좋지만. 그 부근의 다른 동족 마을인 탕안(당안:堂安) 동짜이나 2.5km 떨어진 지탕(기당:紀堂) 동짜이로
가서 보는 게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많이 찾지 않은 그런 곳이 더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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